오베르 밀밭에서
우리는 그의 불행을 사랑한다
그의 격렬한 고통과 깊은 고뇌
붓자국처럼 거칠게 여기저기 찍힌 불운한 발자국과
스스로에게 총을 쏘며 극단으로 끌고 간
자학과 충동을 사랑한다
총소리를 들으며 푸드덕 날던 여러마리의 까마귀와
출렁이던 밀밭 그리고 연민으로 기우뚱거리던
지평선을 사랑한다
그게 인생이므로
우리의 생도 그처럼 잘 풀리지 않았으므로
오베르의 제일 싸구려 여인숙까지 이르는 동안
세상은 그를 눈여겨보아주지 않았으므로
그가 사랑했던 해바라기와 비에 젖은 창녀가
노랗게 질려 떨고 있는 생의 골목에는
오직 바닥만이 자리를 내주고 있었으므로
한쪽 귀라도 잘라 바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처절하였으므로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피 뚝뚝 흘리며 진한 커피색 계단을 걸어올라와
남루한 구석방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부릴 때
지친 구두와 다 짜버린 그림물감과
몇번을 다시 덧칠해서 쓴 화판들은
복음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세상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으리라
캔버스보다 작은 사각형 창을 통해 내려와
그의 마지막을 바라보던 저녁 햇살은
들끓던 그의 영혼이 잦아든 뒤
맑고 청빈했던 기도와
동생에 보낸 몇장의 편지 구절을 데려갔으리라
그러나 상처는 몸을 빠져나와 그가 마지막으로 그렸던
짙푸른 구름 속을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 짙고 푸른 상처를 사랑하는 것이다
푸른 별빛까지 가지 못한
칠흑의 영혼
그의 불행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를 사랑한다는 건 세상의 싸늘한 시선에 경련하던
그의 광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도 늘 파탄을 향해 기우뚱거리고 있으므로
살아 있는 동안 누구도
우리의 생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므로
도종환
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