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그러니까 정확히 10년 동안 잃어버렸던 후각을
침대에 누워 있던 어느 밤 되찾았다
어떤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는데
나는 그것이 몸속의 것인지 몸 밖의 것인지
정말 냄새이거나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꿈이 내게 얄팍한 속임수를 쓴 줄 알았다
이보라고, 너의 콧속에서 지금
아주 작은 짐승이 태어나고 있어
어서 확인해보라고!
그러나 나는 꺠어 있었고 이내 어안이 벙벙해졌다
10년 동안 사막을 홀로 떠돈 나그네의 눈앞에
사람이 나타나건 개가 나타나건
악령이 드러나건 천사가 나타나건
그에게 드는 첫번째 감정이란 필시 경이로움 아니
겠는가
나는 냄새를 다시금 맡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곁을 내준 옛 벗인 양 친근한 것들부터
어머니의 장항아리, 창고에 쌓아둔 가구, 1980년
대의 교양서……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나를
과거로
그토록 아름다웠던 과거로 데려가지 못했다
이 후각적 사태를 시각적으로 풀어보자면
마치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를
풀 컬러 유성영화로 보는 느낌이었다
낡은 지팡이, 통 넓은 바지, 꽉 끼는 프록코트는 그
대로였지만
그는 슬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스위스로 추방당한 무국적자가 아
니었다
또한 나는 냄새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냄새나지 않았던 옛 애인들을 떠올렸다
냄새만 오로지 냄새만 맡게 해달라는
터무니없이 분명한 이유로 그들을 찾아간다 해도
이미 모든 것이 변했을 것이다
노화를 숨길 수 없는 그들의 주름진 피부에는
다른 남자들의 체취가 깊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냄새
아버지의 냄새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의 기간 어느 해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후 나는 아버지의 옷가지를 꺼내 입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아버지의 헐렁한 내복까지 입었다
그것은 애니미즘과 페티시즘을 뒤섞은
아버지를 향한 나만의 기이한 애도 방식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옷들에 코를 파묻었다
아아,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들을 너무 자주 세탁
기에 돌리신 것이다!
아버지의 냄새는 좀벌레가 옷 여기저기에 파놓은
눈곱만 한 구멍들로 자신의 부재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집 안의 좀벌레들을 찾아보자
녀석들의 작고 하얀 주둥이에 묻은 망자의 잔항을
맡아보자
아아, 그러나 알고 보니 좀벌레의 수명은 최대 3년
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새로운 냄새들이 있었다
신제품들의 냄새, 새 지폐의 냄새, 시청 신사옥의
냄새……
나는 그것들에 금방 익숙해졌고
사소한 구원처럼 그것들을 즐겼다
10년 후에 비로소 정체를 드러낼 그 악취들을
나는 냄새의 얼리 아답터처럼 소비했다
나는 안다
세계가 돌이킬 수 없이 변한 건
새로이 나타난 냄새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진 냄새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비록 후각을 되찾았지만
냄새는 결코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추억이란 냄새의 경이로운 속임수
시간의 구멍에서 꺼내
허공으로 날리는 흰 비둘기라는 것을
나는 깨 있을 땐 냄새를 맡지만
꿈에서는 후각을 다시금 잃어버린다
나는 찾아 나선다
수명이 10년은 족히 넘는 좀벌레 한 마리를
10년 동안 사라진 세계의 모든 냄새를
아직도 배 속에서 소화시키고 있는 그 고괴한 벌
레를
매일 밤 꿈속에서 찾고 또 찾는다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