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경고로 겁주는 게임. 대만에서 올해 초 발매된 호러물로, 1960년대 즈음 장제스 치하의 중학교를 사회,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민간인, 특히 교사와 학생을 '불온 사상'을 지닌 공산당으로 몰아 학살한 시대적 배경을 담았다.
'위중장'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 잠이 든다. 수업을 하던 '은 선생님'은 갑작스레 교실 밖으로 불려나간다. 소년이 눈을 뜬 학교는 어딘가 이상하다. 태풍경보만 남은 채 모두가 사라져 버린 학교. 소년은 서둘러 학교를 벗어나보려 한다. 게임 플레이는 사이드뷰에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이다. 투박한 2D지만 잿빛의 색감과 빛 바랜 효과로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오묘한 사운드와 어우러지는 연출은 정말 훌륭하다. 걸음마다 느껴지는 기이하게 미스테리한 공기, 무슨 일이 더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게 된다.
학교를 떠나려던 소년은 강당에서 잠든 소녀를 마주치게 된다. 소녀의 이름은 '방예흔'. 둘은 예흔이 잃어버린 하얀 사슴 목걸이를 찾은 후 길을 나서지만, 다리는 무너져버렸다. 전화로 도움을 요청해보기 위해 학교로 돌아온 두 사람. 중장은 예흔이 덮을 만한 따뜻한 것을 찾겠다고 나가고, 끔찍한 일을 연상케하는 컷신이 갑작스레 튀어나온다. 중장이 주인공인 것처럼 시작했지만, 사실은 예흔이 주인공. 시작부터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이 되었으니 나라도 살아보자. 예흔은 촛불을 들고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탈출을 기도한다.
자동 세이브가 되지 않으므로 제단을 만나면 저장을 하자. 이런 제단과 같은 도교에 가까워보이는 종교색도 굉장히 강하다. 음산한 느낌으로 표현하니 꽤 공포스러운 느낌.
전반부에는 귀신의 등장으로도 무섭다. 학생이 죽은 듯한 교복 좀비 비주얼의 '망량'은 숨을 참고 지나갈 수 있지만, 걸렸다 하면 후드려맞으며 지나갈 수 없다. 계속 맞고 있으면 죽는다. '등불 귀신'은 뒤돌아 서 있다가 가까이 왔을 때 숨을 참으면 지나간다. 대신 걸리면 바로 즉사. 숨을 하루 온종일 참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정말 가까이 왔을 때 숨을 참아야 한다. 달려서 뛰어오는 귀신도 있고 인형들이 공격하기도 하지만 바이오하자드처럼 얘들이랑 싸우는 게 주된 콘텐츠는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정도는 아니다. 몇 번 마주치면 어 왔니 인사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갑자기 등장할 때 들리는 숨 넘어갈 듯한 사운드는 몇 번 들어도 무섭다.
후반부는 퍼즐의 요소가 더 많다. 난이도는 쉬운 편.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게임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건 공포감 외엔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 학교 안에서 한정적이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에는 장소의 이동도 많고 그만큼 다양한 연출을 경험하게 된다. 사연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전개도 지지부진하지 않게 이뤄진다. 암울한 시대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몰입해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엔딩 즈음이 되면 네 번의 선택을 하게 된다. 네 번을 모두 지정된 특정 답을 택해야 진엔딩을 볼 수 있다고. 나는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 흔하디 흔한 배드 엔딩을 봤다. 진엔딩은 영상으로 따로 찾아봤는데, 둘 다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게 하는 내용이어서 1회차만 하더라도 다른 엔딩의 내용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각 엔딩에는 도전과제도 하나씩 마련되어 있다.
게임을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단서' 외에, 예흔이 돌아다니며 줍고 다니는 '쪽지'의 내용은 이야기를 이해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꼼꼼히 읽다 보면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쪽지 하나를 발견하고 사연을 알게 될 때마다 한숨 한 번을 더 내뱉게 되는 가슴 아픈 게임.
3시간에 1회차 플레이가 가능한 짧은 게임이지만 깊이와 가치로는 30시간을 플레이 하는 분량의 게임에 비할 수 없는 무게를 지녔다. 사상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역사를 가진 데다, 동양권으로 공감할 요소가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더 특별할 수 있다. 깜짝 놀래키는 건 초반의 귀신 몇 번과 일부 컷신이 전부이니, 호러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음을 조금만 굳게 먹고 플레이해봤으면 싶다. 대만 게임에 대한 극호감을 갖게 된 수작이다.
※ 개인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https://realkkan.blog.me/221172523791 (2017.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