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THER2 칼럼 - 결국 향수라는 것은, 되돌아 갈 곳이 있다는 기쁨.
◇ MOTHER3 칼럼 - "엔딩을 볼 때까지 우는게 아냐."그 의미를 넘어서
* 이 글은 특정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스토리의 일부를 자세하게 누설하고 있으며,
강력한 스포일러를 토대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스크린샷은 GBA전용 MOTHER 1+2 한글패치를 적용한 에뮬레이팅 플레이에서 추출 하였습니다.
MOTHER 2 - POLLYANNA Home,sweet home ver. Vocal Remix (by itoki hana)
Ⅰ) 이상한 게임인가. 감동의 RPG인가.
누군가가 "2015년 최고의 게임 중 하나를 꼽아 보아라." 라고 말한다면, 그 대답으로 "언더테일"이라고 이야기 하는것에 대해 이견을 표하는 사람은 아마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년 9월에 출시한 인디게임 언더테일은 FC와 SFC 그 중간 어딘가에 자리 잡을것만 같은 수수한 그래픽으로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게임에 시간을 할애해도 괜찮은 걸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녹아든 게임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라고 선언이라도 하듯이 색다른 내러티브와 게임에 있어 이야기란 어떻게 작용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우리나라에도 입소문을 타 상당히 유명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언더테일의 놀라운 점은 게임의 문법과 형식적 구조를 비틀고 재배치하여 그것을 이야기에 융화시켜 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른 게임에서 기능에 지나지 않는 세이브 시스템이 그중 하나이고 다른 RPG와 차별점을 보여주는 탄막 공격 시스템과 적의 탄막조차 이야기의 요소로써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더테일이 이룩한 가장 훌륭한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주인공인 나는 착한편이고 적인 너는 악한 편" 이라는 이분법을 완전히 분해했다는 것에 있을 겁니다. 모든 게이머들은 자신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을 받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체험해왔고 그 법칙을 항상 학습해 왔습니다. 그러나 언더테일은 그 특성에 대해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세계에 떨어진 캐릭터에게 튜토리얼에서 그런 방법 쓰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을 해준 뒤. 플레이어에게 그 이후에 주도권을 쥐어 줍니다.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는 상냥한 RPG. 언더테일. 그 필요란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언더테일을 하다보면 일정 부분 MOTHER 시리즈의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가끔 상식을 벗어난 캐릭터들의 농담과 메타 유머요소. MOTHER2 사운드폰트의 사용. 그리고 이야기 마지막에서 감정선을 건드리는 연출과, 마지막에 이르러 캐릭터들과 인사시키는 방식. 그리고 다시 한번 게임 속의 캐릭터들을 소개해주는 일종의 커튼 콜 장치인 CAST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MOTHER2에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던 저같은 플레이어가 언더테일을 하고 나면, MOTHER2에 대한 향수가 일정 부분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언더테일의 제작자 토비 폭스는 북미 MOTHER 시리즈 팬덤에서 활동해 왔으며, MOTHER2 할로윈 핵버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막상 MOTHER2가 북미 지역에서도 소개 되었을때만 해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로 펑추에이션에서의 MOTHER 2 리뷰를 보면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혹평했고, 그의 표현의 따르면 자국 내에서 걸레짝이 팔리는 정도로 팔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해외에서 MOTHER 시리즈를 다시금 다루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MOTHER 시리즈의 제작자 이토이 시게사토가 2010년 이후로 공연이나 칼럼. 인터뷰의 형식으로 MOTHER2를 재조명하고 있고, WWE 스맥다운 경기에서 어떤 팬이 "MOTHER 3를 로컬라이징해라" 라는 싸인을 들기도 했죠. 북미의 MOTHER 팬덤 커뮤니티 스타맨넷에서 파생된 팬게이머 포럼에서는 지속적으로 MOTHER2에 대한 이벤트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왜 이 게임에 주목하고 있을까요. 왜 팬덤은 22년이나 지난 이 게임에 대한 향수를 잊지 않고 있는 걸까요?
MOTHER2의 북미 제목 Earthbound. 그 당시 "이 게임 냄새나"라는 슬로건으로 홍보를 했는데, 대차게 말아먹었다.
이후 MOTHER3에서 묘한 뉘앙스로 이를 재언급한다.
패키지 앞면입니다.
로고가 음각처리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2006년에 나온 MOTHER3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작자 이토이 시게사토를 언급하는 뒷면입니다. 일어를 몰라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구성품입니다.
레트로 게임답게 메뉴얼의 양은 두툼합니다.
게임의 엔딩곡 Smiles & Tears의 가사인듯 합니다. 뒷배경은 흡사 베이퍼웨이브 느낌이 납니다.
기그의 위협을 설명하는 페이지 같습니다.
MOTHER2의 세계입니다. 3편과 다르게 2편은 세계의 다양한 곳을 탐험합니다.
그중 대도시 포사이드입니다. 미국의 선전물 느낌을 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네스와 폴라의 설명입니다.
제프와 푸의 설명입니다.
Ⅱ) 리얼함을 가장한, 가장 언리얼한 세계.
SFC에서 주력이 되었던 JRPG들이 대부분 판타지 세계를 다루고 있었다는 점과는 대조적으로 MOTHER1과 2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 중심을 들여다보면,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묘한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봐도 엉뚱하게 느껴지는 메타 유머 요소는 MOTHER2를 묘한 게임으로 만드는 유머 장치중 하나입니다.
"내 대사가 왼쪽은 위험해. 같은 대사밖에 없어서 슬프다"라던지. "너 누구에게나 말 거는 타입이지?" 같은 대사는 캐릭터들이 게임 속이라는걸 인지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극중 어떤 가게의 개와 말을 걸면 "나는 무당 도그. 지금부터 게임 디자이너의 혼에 빙의하고 있지."라며 게임 팁을 설명한 후 "지금까지 알지도 못하는걸 떠들어 버렸다."라고 말하는 상황이나, "너 상점에서 방어구 샀을때 장비는 하고 있어? 이렇게 적에게까지 힌트를 줄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나. 그러면 싸울까." 하는 대사는 직접적으로 게임 요소를 설명합니다. 이처럼 게임의 많은 부분에 들어있는 이런 메타 유머 요소는 이래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의 수준입니다. 물론 이는 MOTHER 시리즈의 대사 특징을 이루는 기본 골격중에 하나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2편은 가장 극단적으로 멀리 나가 있습니다.
"이거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보겠지?" 하는 듯한 팬심 가득한 대사도 있습니다. 미국적 배경을 한 게임이면서 일본 야구팀 아쿠르트 스왈로즈를 언급하며 뜬금없이 자기 팬심을 과시는 부분이 그렇습니다.(북미판 대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비튼 대사가 예상하지도 않은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을 한꺼번에 언급하는 대사도 있어서 퍽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오기도 합니다. (소설 불멸에서는 작가 밀란 쿤데라가 직접 등장하며, 이 소설의 이름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붙였어야만 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또한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이상한 곳에서 요상하게 배치 함으로써 현실적인 무게를 잡아주는데, "관광지에서 사람들이 친절한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라는 말과, "돈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을 의미심장하게 하는 어른들은 게임 내에 한 둘이 아닙니다. 극중 네스와 친구들이 몬스터만 잘 잡아내면 현금 카드에 돈이 착착 쌓여지는 것으로 돈을 판타지적으로 그려내는 비해서, 앞서 묘사한 어른들은 한탕주의와 부정한 방법으로 돈벌 생각만 하는 모습을 그려내어 마음속에 자본논리가 깊히 뿌리박힌 어른들의 군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블랙코미디 또한 많은데, 좀 당황스러운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쓰레기통에서 햄버거를 주워 먹는다거나 "화단의 꽃은 모두의 마음에 피어있습니다. 꽃을 소중히 합시다." 라는 내용의 표지판을 확인하려면 화단을 밟아야만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부터
진짜 대놓고 얼빠져 있는 것들은 이정도 수준인데다가.
뜬금없이 무라카미 류, 나쓰메 소세키, 밀란 쿤데라를 떠오르게 하는 문학드립까지...
꽤 유명한 쓰레기통에서 햄버거 집어먹기는 언더테일이 오마주하기도 했다.
제가 생각하는 MOTHER2의 얼빠짐을 잘 보여주는 요소는 선사시대에서 피자 시키기였습니다.
현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RPG이면서 엉뚱하게도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극중 공룡들이 우글거리는 선사시대 비슷한 곳에 도착 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에 갈수 있다는 것. 여기서부터 일단 상식적이지 않지만, 더 우스운 것은 거기서 전화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피자를 시킬 수 있습니다. 피자를 시킨 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전화가 옵니다.
이런 행각을 벌인 주인공은 피자 배달부를 미아로 만들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돈도 못받고, 피자도 식어버리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갈지도 미지수가 되어버립니다. 이만큼 이 게임은 비상식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Ⅲ)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MOTHER2 하면 많은 분들이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그입니다.
게임은 8개의 멜로디를 모으는 스토리를 거쳐오면서 지속적으로 유쾌하고 나사빠지고 이상한 경험을 연출 했습니다. 그리고 후반에 이르러 분위기를 우주 호러 이미지로 전환시킵니다. 기분나쁜 엠비언트 뮤직과 배경에 시빨갛게 어스린 색체. 그리고 기이한 기그의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전체이용가 게임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불쾌함의 극단 지점까지 밀어붙입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 라고 느껴지게 되지요
(사실 이 묘사는 전체이용가에 어울리지 못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그로테스크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전체이용가 등급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자국 내에서 대단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이토이 시게사토의 네임벨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3세 이상 이용가. 유럽에서는 12세 이상 이용가 등급판정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기도 커맨드의 기능을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 커맨드는 전투에 있어서 정말 불리하다 싶을때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이판사판의 기술입니다. 기도로 인해 HP를 올리는 이득을 취할 떄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파티원 전원에게 상태이상을 안겨주는 등의 불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게임 내에서 기그는 너무 강하게 설정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전투로는 이길 수 없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레벨을 올려와도 결국에는 체력과 PP의 한계가 오기 마련이죠. 전투의 한계에 이를때 플레이어는 이판사판의 감정으로 기도 커맨드를 사용합니다. 이 때, 기도 커멘드의 기능이 그동안의 전투에서 작용했던 기도와는 다른 양상으로 작동합니다. 폴라가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기도를 통하여 다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닌텐도 쇼크요소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기그의 이미지.
기도를 하면서, 게임은 그동안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폴라의 기도가 그들의 마음에 닿아 그들 역시 네스와 친구들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다는 것을 묘사합니다. 폴라의 기도가 닿은 후. 그때서야 기그는 유효한 데미지를 받습니다. 이 이후에는 기그의 공격을 버티면서 플레이어는 기도 커맨드에 의지하게 됩니다.
폴라는 계속 기도합니다. 기도는 네스를 포함한 4명의 인물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도움을 주었던 지인들에게 닿고 그들 모두가 네스일행이 무사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폴라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를 하고, 더 이상 폴라의 기도가 닿는 사람은 없는 때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폴라의 기도는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완전히 어둠속에 매장되는 듯한 그때, 게임은 플레이어의 이름을 직접 언급합니다. 그리고 표현합니다. 플레이어가 어디에서도 본적 없었던 소년소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다고 말입니다.
독자는 자신이 소설의 인물이 아니라는 걸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영화속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하게 알고 있죠. 그렇지만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면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하면서 인물들의 상황이 끝이 나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MOTHER2는 극중에 "당신이 이 인물들의 위기가 끝났으면 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며, 극 위로 플레이어를 올려 보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그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는 이 게임이 행복하게 끝냈으면 하는 마음을 더욱 증폭시키는 무대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MOTHER3의 칼럼에서 인용했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말을 다시 빌려오자면, 소설에 몰입한다는 것은 소설이 진짜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는 소설의 본질입니다.
소설 예술은 이 두가지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믿을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바탕을 둡니다.
오르한 파묵은 이것을 소설 예술의 특성으로써 설명했지만, 이것을 '이야기'의 특성으로 크게 치환하여도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스토리텔링 예술들을 경험했고, 그 경험들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자생해 커진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능력을 바탕으로 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MOTHER2에서 플레이어가 네스일행을 위해 기도했다고 하는 커맨드는 그것이 사실이라기 보다는 게임이 그렇게 바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정말로 그저 게임속 풍광에 불과한 이 이야기의 인물들을 믿게 되고, 이들이 지금의 상황으로부터 해방되고 "해피 엔딩"을 맞이했으면 하는 일렬의 소망이 마음속에 피어난다면, 급진적으로 보이는 이 주문이 유효하게 되는 것입니다.
MOTHER 시리즈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플레이어를 이야기에 직접 참여 시키고.
이야기를 믿도록 만드는 것.
Ⅳ) 결국 향수라는 것은, 되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
결국 게임을 끝까지 하고 나면 묘하게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은 향수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이 말하는 유년에 대한 향수라는 것은, 되돌아 갈 곳이 있는 것에 대한 기쁨을 말하는 것이구나 라는 느낌이 듭니다.
MOTHER2의 스토리는 지속적으로 과거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미래의 세계가 기그에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붕붕이라는 외계인이 과거로 돌아와 네스에게 '네가 미래의 희망'이라며 도움을 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후 네스는 친구들과 8개의 멜로디를 모으러 다니면서, 찬란의 과거의 영광이 있었던 이집트 문명, 과거 공룡이 밀집되어 있었던 선사시대. 미지와의 조우를 실현하게 하는 외계인의 마을 등. 어렸을때 관심 가지고 상상했을 법한 미스터리 스팟과 과거의 유산을 탐험합니다.
MOTHER 1편에서 등장했던 장소. 매지칸트의 의미도 바뀌었습니다. MOTHER1에서 환상의 세계로 그려졌던 매지칸트는 MOTHER2에서 주인공 네스의 무의식으로 형성된 유년의 모든 것들을 상징합니다. 게임의 후반부에서 기그를 무찌르러 가는 장소 역시 한 차원 이동된 과거라는 것에서 게임 내내 되돌아 가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고 있습니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줄곧 과거는 중요한 지점이다.
게임의 형식적인 요소로써도 되돌아갈 곳의 중요성을 나타내는데, 그 특징으로 향수병이 있습니다.
주인공 네스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오네트와 지리적으로 멀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향수병에 걸리고 맙니다. 향수병에 걸리면, 전투 상태에서 네스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게다가 향수병에 걸리는 분기는 예상할 수 없기 떄문에, 지속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합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위로의 말을 해 줍니다. 오늘은 드라마를 봤었지. 같은 일상도 들려줍니다.
사실 위로의 말은 거창한 위로의 편지에서 오기보다는 사사롭고 일상적인 별거아닌 말에서 옵니다. 그저 그 사람과 자신이 연결되어있다는 그 느낌만 있더라도 좋은 위안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네스는 힘을 내 여정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게임 속에서 계속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과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을 전화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유년에게 있어 가족이 갖는 의미란.
던전 사나이 '브릭 로드' 또한 인상 깊습니다. 브릭 로드는 극중 던전에 집착하는 남자처럼 보입니다. 여태까지의 전통적인 RPG 내에서 던전은 많은 몬스터들이 분포하고 있는 장소이고, 그 속에서 주인공들을 성장시키는 일종의 놀이터였습니다.
후반부에서 던전 남자는 안도넛츠 박사의 도움을 받아 던전 그 자체가 되어 버립니다. 던전이 되어버린 브릭 로드 안에는 많은 푯말들과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물건들은 대부분 낡거나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쓸모 없어진 것들이지요. 그러나 물건들을 설명하는 푯말에는 "녹슬었기 때문에 완전해지는 브레이크." "엔진이 없지만, 달리지 않아도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녹슬어야지만 완전해진다는 말을 함으로써, '쓸모 없어져도 괜찮다. 그 자체로 멋지니까'라고 긍정하기도 하지요.
던젼이 과거의 유산이라고 가정한다면, 던전 사나이는 과거 그 자체가 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MOTHER2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말하는 요소 하나만 꼽아라 라고 한다면 뜬금없이 나오는 사진사 아저씨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MOTHER2를 플레이하다가 하늘에서 갑자기 사진사가 내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것 자체가 일단 이상합니다. 이 이상한 사진사는 "달려오는 것도 빨라. 찍는 것도 빨라. 천재 사진가입니다." 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다짜고짜 추억의 사진을 찍겠다며 하나 둘 셋을 외칩니다.
사진을 찍은 후 사진가는 "이 사진은 최고의 추억이 될 겁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다시 하늘로 날아갑니다. 이후에 이 사진사 아저씨는 네스와 친구들이이야기를 진행하며 어느 지점에 도착할때마다 맥락없이 날아와 사진을 찍고는 다시 하늘로 돌아갑니다.
이 비현실적인 모습은 이야기 밖에 있는 캐릭터가 이 이야기 자체가 이미 과거가 될 것이라고 전언하는 셈이지요.
사진은 시간을 담는 예술입니다. 사진은 사각의 프레임 안에 시간을 봉인해 놓습니다. 보존만 잘 해놓는다면, 언제든 그 시간의 편린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옛날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볼때, 대부분의 경우 좋은 것만을 생각합니다.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웠던 기억들 조차 추억이라는 명분 하에 재포장됩니다.
사실 사람에게 있어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은. 현재가 고통스럽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지금 처해진 상황이 괴롭거나, 미래가 불확실성으로 흐려질때, 우리는 쉽게 과거의 어느 지점을 들여다 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과거 역시 힘들었던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나에게는 그때가 현재이듯이 모든 현재는 지금의 현재의 나처럼 똑같이 여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MOTHER2는 최종보스까지 쓰러뜨리면, 토성 골짜기에서 고향 오네트까지 다시 캐릭터를 움직여서 돌아가게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번에 만났던 NPC들을 다시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지요. 그 중에는 "너희들은 좋겠네..." 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줄곧 등장합니다. "세계를 구한거 가지고 우쭐 거리지 마라. 나때도 세계를 몇번이나 지켜냈었어."라며 이제는 물질의 화신이 된 어른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말이 허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소설 한권 쓸 정도의 이야기는 있다."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은 있었고, 모험은 있었으니까요.
과거는 이렇게 비관적이기도 하지만 과거는 좋은 진정제입니다. 우리에게 즐거운 과거가 있다면 그 향수를 음미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네스에게 비아냥거리는 아저씨의 "과거의 나때도 세계를 지켜냈었어." 라는 말을 역설하면, 유년시절의 자신도 그렇게 큰 일을 해냈는데, 현재의 자신이 못할것 없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MOTHER2의 크레딧에 이르면 사진사 아저씨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 비현실적인 아저씨는 플레이어의 시선쪽으로 사진기를 고정시켜서 사진 한장을 찍습니다. 사진기의 플래쉬 때문에 섬광이 반짝이고 그대로 컷을 전환하며 그동안 게임에서 네스가 찍었던 모든 사진을 보여줍니다.
이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은 그동안 플레이어와 네스가 함께 했던 여러 공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플레이어가 했던 게임이 이제 과거의 영역이 되었음을 공표합니다. 마치 "네스가 보통의 소년으로 돌아갔으니 당신도 현실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네스가 언젠가 자신의 유년 모험을 그리워 하게 될것처럼 당신도 언젠가 이 모험을 그리워하게 될 거에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미 과거가 된 이 이야기는 네스와 친구들의 것이지만,
당신의 것이기도 하다.
마치며.
게임 매체는 항상 기술적 진보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정말로 사람 피부 질감과 가까워진 것만 같은 시각적 비상을 이루어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연출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오락 영화적 경험과 비슷한 경험도 할수 이는 정도의 수준이 되었습니다. 가능성이 많아짐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실험과, 작가주의적 이야기를 녹여내 게임 역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게임 매체에 향수 마케팅이 불고 있습니다. 루리웹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패미컴 미니는 닌텐도에서 꽤 많은 물량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량 매진되어 현재는 중고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게 될 정도로 큰 인기와 화제를 이끌었습니다.
이미 22년전 게임이 되어버린 MOTHER2 역시 일간 이토이 신문의 '호보니치테죠'라는 다이어리 브랜드로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MOTHER2 디자인의 다이어리가 발매될 예정입니다. 미국 브루클린에 있는 어느 음반회사에서는 MOTHER2의 2xLP를 2016년에 이르러서야 발매하기도 했죠.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현재까지도 소비되는 여러 상품들.
첫번째 문단에서 질문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왜 이제와서 MOTHER2가 재조명되는 것인가.
그 이유는 게임 매체의 일부분이 이미 향수의 영역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레트로게임. 클래식 플랫폼의 복각. 도트그래픽 인디 게임들의 메인스트림화. 패스트 패션에서의 8비트 시각디자인 재림 등. 여러 방향으로 옛것에 대한 기억을 현대의 멋으로 다시 구성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무한도전의 토토가로 상징되었던 90년대 복고 열풍에서 보여졌던것처럼 90년대를 소년소녀로 지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어른이 되었고, 묘하지만 즐거웠던 그때를 기쁘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90년대의 문화를 즐겼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관계의 무거움과 세상의 때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곤 합니다. 현실이 힘들수록 어쩐지 즐거웠던 옛날 일이 아른거리기도 합니다.
시대성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 황폐화된 단어가 되어버린 요즘. 이 시점에서 가지는 향수의 총체적인 힘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의문이 유효하기 때문에 당시로써는 그저 이상한 게임으로 치부되었던 것이 지금와서야 게임의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던 향수의 표현과 더불어 거대한 프루스트 효과를 이룩하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진은 최고의 추억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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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옛날 게임이라 거의 자기만족으로 도움받아 번역한거라 묻힐줄 알았는데 이런 좋은 글도 올라오고 번역자로서 기쁘네요 마더3보다 패러디도 많고 말장난도 심해서 좀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어원문에 대해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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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요즘은 기자나 평론가들 글 수준이 기대 이하인 경우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위 글이 더 좋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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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마더2 번역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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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한 두개면 그냥 그런사람인갑다 하겠는데 오른쪽 베스트란 베스트에 다 저렇게 박아놓고있으니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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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20중반에서 30은 족히 됫을텐데 남들한테 자랑하고싶어서 구관인형 사진찍어 이미지댓글에박고 여자애처럼 글쓰는 아저씨를 생각하면 아무생각안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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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게임잡지들 보면 국내 상황과 상관없이 해외 주목도나 평가에 따라 잡지글에도 화제성이 부여될때도 많았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게다가 지금 인터넷 시대에 비해 인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하구요. 지금에 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기재하는 경우도 더 많았고 뭐 그래도 뭐가 틀린지도 모르고 재밌어서 계속 모았지만 | 16.11.24 14: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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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옛날 게임이라 거의 자기만족으로 도움받아 번역한거라 묻힐줄 알았는데 이런 좋은 글도 올라오고 번역자로서 기쁘네요 마더3보다 패러디도 많고 말장난도 심해서 좀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어원문에 대해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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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s0493
설마...마더2 번역자님?? | 16.11.25 2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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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시리즈를 한글화로 접하고 웃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면서 인상 깊게 즐겼습니다. 좋은 작품을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16.11.26 18: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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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정말 재미있게 즐겼어요. | 16.11.26 19: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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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겜해볼까
오히려 요즘은 기자나 평론가들 글 수준이 기대 이하인 경우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위 글이 더 좋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 16.11.25 22: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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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과 1편이 동일컨셉이라 구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2편만큼 1편이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없어서 안쓸듯 싶습니다 ㅜㅡ | 16.11.25 18: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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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더2가 팬덤이 많고 레트로게임 수준 이상의 활동성을 보여주지만, 그 당시 반응이 어땠는가는 저도 구전되는 걸로밖에 알 수가 없었어요. 본문에서는 제로 펑추에이션 리뷰에서 표현했던 당시 상황을 적어놨지만, 윗 댓글에서 남겨주신 글처럼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16.11.25 18: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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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돌핀 말하시는 거군요. 저도 거기서 신품 구매했었어요! | 16.11.26 19: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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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칼 너무 좋다.... 해본다해본다 해놓고 아직까지 안하고 있는 전설의 명작 마더. 왜 저는 이 게임이 나올 시기에 캐릭터 게임만 찾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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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 보세요. | 16.11.26 17: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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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보이
나이20중반에서 30은 족히 됫을텐데 남들한테 자랑하고싶어서 구관인형 사진찍어 이미지댓글에박고 여자애처럼 글쓰는 아저씨를 생각하면 아무생각안드세요? | 16.11.26 18: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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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어차피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타케메 타케요우인지 뭔지같은 사진붙이는거랑 같은거 아닌가요 | 16.11.26 20: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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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9575180736
글에 한 두개면 그냥 그런사람인갑다 하겠는데 오른쪽 베스트란 베스트에 다 저렇게 박아놓고있으니 그렇죠 | 16.11.26 20:53 | |
(IP보기클릭)222.97.***.***
그러니까 데하 같은 건가요? | 16.11.27 17: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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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만에 내 글에 답글. --; 마더2 해본 소감. 전체적으로 유니크하고 재밌는 완성도가 있는 게임이다. 아쉬운점 - 올드한 게임이라 그런가 밸런스가 별로 친절하지 않다. 유니크함을 주는 게임의 모든 느낌들이 나중에는 좀 질려버린다. 예를들어 4차원 농담은 나중되면 그냥 스킵해버림. 노래도 선을 넘은 기괴함이 종종 있다. 아이템 소지 제한이 최악이다. 이것 때문에 게임 때려칠까 생각함. 4명이 파티가 되는데 마지막 동방의 소년은 너무 늦게 나오고 존재감도 별로 없다. 사실 모든 인물들의 존재감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그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 텍스트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주인공이 혼자 알몸으로 꿈의세계에 갈때 난이도가 심각하게 급상승한다. 하지만 당시의 평범한 게임들과는 클라스가 다른 '과연 닌텐도' 라는 말이 나오는 게임. | 17.07.06 12: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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