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여행 도중 숙소 옮기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통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체크인 시간에 비해 서너시간씩 빠르다보니 중간에 시간이 붕 뜨기도 하고
짐을 다시 다 싸서 새로운 숙소에 풀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해서 말이죠.
하지만 하루 정도는 좀 괜찮은 숙소에 묵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감정적 이유에
이제부터는 긴자와 츠키지 어시장, 하마리큐 공원 등을 중점적으로 돌아볼 예정이기에 이쪽으로 숙소를 옮기는 게 이동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실리적 이유까지 겹쳐서 마지막 하루만 미츠이 가든 호텔로 예약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찍은 사진인데 왠지 호텔 웹사이트에서 쓸법한 이미지처럼 나왔네요.
워낙 땅 값 비싼 도쿄인지라 빌딩도 호텔과 오피스가 나눠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호텔 로비가 1층이 아니라 16층에 있다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네요. 저층은 사무실 공간, 고층은 호텔입니다.
좀 더 비싼 호텔이라고 해도 객실이 막 넓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저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침대, 방 안을 돌아다닐 때 가구와 충돌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욕조 수준입니다.
하지만 책상 앞에 한 번 앉으려면 몸을 우겨넣어야 하는 호텔방에 비하면 확실히 숨통이 트인다고나 할까요.
가구나 집기도 다 고급품이고, 무엇보다도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 누웠을 때 도쿄 시내 전경이 보인다는 게 좋았네요.
그리고 제일 신기했던 게, 욕실에 스마트 윈도우가 있었다는 거.
겉보기에는 보통 유리창인데 버튼 하나 누르면 순식간에 뿌옇게 변하면서 시야를 차단합니다.
하도 신기해서 유리창 버튼을 하염없이 누르고 있는데 '이러다가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서 폭포는 안 보고 변기 물내리는 센서에 감탄한 비비스와 벗헤드 꼴이 나겠다'싶어서 얼른 정신 차리고 긴자로 나옵니다.
원래는 에도 시절부터 은화를 찍어내는 화폐 주조소가 위치한 곳이어서 긴자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단순히 돈이 만들어질 뿐 아니라 그 돈을 유통시키고 소비하는 상업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번화가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유명 백화점들도 몰려있고, 세계 곳곳의 명품 로드샵도 긴자에 몰려있고, 고급 클럽과 바Bar)도 긴자에 몰려있습니다.
이런 번화가인데도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로 차량 운행을 통제하는 덕에 넓은 차도를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긴자를 돌아다니는 데 꽤 큰 비중을 할당했는데, 그 이유는 의류나 보석 뿐만 아니라 먹거리도 다른 곳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고급 브랜드가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지요.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마츠자카야 백화점에 위치한 베노아 티 룸.
'전차남'이라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및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여기에 고급 홍차로 등장한 베노아도 덩달아 인기를 얻었지요.
극중에서는 '영국 왕실에 납품되는 홍차'라며 다들 감탄을 하는데, 뭐 영국 왕실에서 베노아만 줄창 마셔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왕실에 납품되는 많은 홍차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도 그 퀄리티가 최고급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요.
다즐링과 스콘을 즐기며 잠시 티타임을 갖습니다.
홍차 한 잔 마시는데 물주전자에, 찻주전자에, 모래시계에, 스트레이너까지... 짐이 한가득 딸려옵니다.
홍차도 맛있지만 그보다도 스콘이, 아니 스콘에 발라먹는 클로티드 크림이 엄청나게 맛있습니다.
가공을 하지 않은 생우유를 가열해서 표면에 떠오르는 덩어리를 건져서 만드는게 클로티드 크림인데 버터와는 차원이 다르네요.
실내 인테리어가 촬영 금지인 건 별로 안 아쉬웠는데, 종업원 중에 만화에서 뛰쳐나온 듯한 미모의 메이드 사진을 못 찍은게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벨기에 초콜릿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피에르 마르콜리니.
마음에 드는 카카오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카카오 농장을 다 돌아다니는 걸로 유명한 쇼콜라티에이기도 합니다.
왼쪽은 초콜렛 카페, 오른쪽은 아이스크림 카페. 하지만 베노아 티룸에서 이미 배를 채웠으니, 여기서는 굳이 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6개들이 초콜릿 박스만 하나 구매합니다.
긴자 먹거리 투어 할 때 빠지지 않는 마네켄 와플.
다양한 맛의 와플을 판매하는데 조그만 크기인지라 여러 종류를 부담없이 맛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와플과는 차원이 다른 맛입니다. 무겁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있지요.
'와플따위, 그냥 한 개 맛만 보면 됐지'라는 생각에 돌아다니면서 먹으려고 한 개 샀다가,
호텔 돌아가면서 한 봉지 사고, 귀국하기 전에 다시 들러서 선물용 한정판 박스를 다시 하나 사왔을 정도.
또 다른 유명 홍차 브랜드, 마리아쥬 프레르의 로드샵입니다.
프랑스에 처음으로 홍차를 들여왔던 무역상 가문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면서, 지금은 손꼽히는 럭셔리 홍차 회사가 되었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커다란 홍차 양철통이 벽면을 꽉 채우고 있는 것에 압도될 지경입니다.
하지만 유명 브랜드마다 시그니쳐 제품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닥 고민하지 않고 '마르코 폴로'를 한 통 구입.
미츠코시 백화점도 들러서 해로즈 홍차 매장을 방문합니다.
해로즈 하면 영국의 유명 백화점이 떠오르지만, 실제로 그 뿌리는 홍차 상인이 운영하던 작은 식료품 가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뭐 살만한 게 없나 둘러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영국 런던의 해로즈 백화점에서 봐야 진짜 감동이 올 듯 하네요.
홍차보다도 캐릭터 상품이 더 많은 슬픈 현실...
사실 해로즈보다 더 기대를 한 건, 같은 백화점 내에 입점해있는 포트넘 앤 메이슨입니다.
홍차 로고에 박혀있는 시계가 티타임인 네 시를 가리키고 있어서 일명 '네시 홍차'라고도 불리는 F&M.
색깔만 보면 티파니 색깔같기도 한데, 홍차계에서는 티파니만큼이나 고급품 취급을 받는 브랜드지요.
영국 포트넘 앤 메이슨 백화점 5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애프터눈 티 셋트를 먹는게 꿈이긴 한데,
지금은 그냥 홍차를 사는 걸로 그 마음을 달래봅니다 ㅠ_ㅠ
다리를 엄청나게 혹사시키며 긴자를 돌아 획득한 물건들. 그런데 막상 사고나서 보니 이건 뭐 홍차 투어를 한 셈이네요.
이 당시만 해도 유명 브랜드 홍차는 거의 일본 구매대행이 대세였던지라 도쿄 온 김에 좀 저렴한 가격에 다 쓸어담았습니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여자들이 양 팔에 쇼핑백 잔뜩 걸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왜 저러나' 싶었는데
다 큰 남자가 홍차 쇼핑백 잔뜩 걸고 긴자 백화점들을 도는 모습을 연출하게 될 줄이야...
일단 무거운 짐을 객실에 놓고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이런저런 군것질은 많이 했지만 그래도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찾은 라이온 비어홀.
1934년에 오픈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맥주집입니다.
좀 커다란 서양식 동네술집(Pub) 느낌인데, 이게 또 부유함의 대명사 긴자에 위치하면서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묘한 곳입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바이킹들이 술마시던 연회장과 일본식 가라오케를 섞어놓은 느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지요.
들어가 보면 커다란 홀에 사람들이 북적이며 즐겁게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기 전에 주문부터 먼저 합니다.
"とりあえず生ひとつください (토리아에즈 나마 히토츠 구다사이)."
일본 맥주집 가면 꼭 해보고 싶었던 말. 우선은 생맥주 한 잔 먼저 주세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급한 회사원들이 식당이나 술집을 가면 앉자마자 외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단은 이슬이 한 병 주시구요~"쯤 되려나요.
삿포로 비어홀인 만큼 맥주도 삿포로 생맥주를 한 잔 앞에 놓고 메뉴를 살펴봅니다.
주욱 흝어보는데 눈을 사로잡는 메뉴, 긴자 오므라이스. 이렇게 지역 특선 메뉴라면 사족을 못 쓰는게 약점이지요.
소스 듬뿍 뿌린 오므라이스는 간이 제법 짭짤하게 되어 있어서 배를 채우는 술안주로 먹기에 좋습니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도쿄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하철을 탑니다.
원래는 낮에 들러서 맥주 시음을 하고싶었지만 일정상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아 포기했던 에비스 맥주 박물관.
그래도 야경이 아름답다고 하니 이렇게라도 들러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괜찮아! 삿포로 생맥을 먹었으니 에비스 안 먹어도 상관없어!"라고 말이죠.
흑흑.
사실은 삿포로보다 에비스가 고급 라인입니다.
자리를 옮겨 모리 타워에서 찍은 도쿄 야경.
의외로 도쿄타워보다는 모리타워가 도쿄 야경을 찍기에 더 좋습니다. 도쿄타워에서는 도쿄타워가 안 보이거든요.
모리타워 전망대에는 붉은 빛으로 물든 도쿄타워를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바라보듯 보면서 손을 꼭 잡고 있는 커플들로 넘쳐납니다.
오랜 기간동안 도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고, 그래서 도쿄 사람들에겐 서울 사람들이 63빌딩 보는 듯한 감정을 갖게 합니다.
실제로도 여러 매체에서 도쿄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등장하지요.
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왠지 파리의 에펠탑의 짝퉁 느낌이 난달까요.
실제로는 에펠탑보다 더 높은데 역시 랜드마크는 단순히 크고 높다고 더 좋은 건 아닌 듯 합니다. 그 뒤를 받쳐주는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더 중요한 거지요.
시선을 옮기면 도쿄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빛의 길, 수도 고속 3호선이 보입니다.
자동차들이 남긴 하얀 빛의 흔적이 도시의 혈관을 흐르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이렇게 거대한 도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을 보면
인간도 결국 개미나 꿀벌과 비슷한 군집생명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르는 채로 밤중에 마주치면 놀라서 기절하기 딱 좋은 조형물, 모리 타워의 마망입니다.
우리나라도 건축법상 일정 크기 이상의 건물엔 외부 환경조형물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가끔 '이건 참 무슨 생각으로 이런 조형물을 만든걸까' 싶은 물건들이 간혹 눈에 띕니다만
이렇게 대놓고 거대 거미를 공원에 배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듯 싶네요. 심지어 아래쪽에는 대리석 거미알도 주렁주렁...
프랑스 예술가인 루이스 부르주의 작품인데, "거미는 영리하고, 자식들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어머니를 떠올리게 만든다"며
세계 곳곳에 거미 조형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리움 박물관에도 한 마리 있지요.
야경 감상까지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밤이 깊었지만 긴자의 밤은 더욱 더 밝아집니다.
워낙 비싼 긴자 땅값 때문에 옆으로는 퍼지지 못하고 위로만 솟아오른 빌딩들이 휘황찬란한 불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1층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건물 옆 길다란 표지판에 적힌 클럽과 술집들은 이제 가장 붐비는 시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유명한 긴자의 바에 들러 칵테일 한 잔 하고싶지만, 츠키치 어시장에 새벽부터 나갈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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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좋아하는 취향이 워낙 다르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가향차 말고 오리지널로 시작하시는걸 권장합니다. 다즐링, 앗쌈, 실론, 닐기리 등등 이렇게 지명이 붙은 녀석들이죠. 우유랑 설탕 타서 먹으면 맛나요. 아니면 특별히 좋아하시는 향이 있다면 거기 맞춰서 가향차를 도전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가향차는 워낙 종류가 많은데 홍차 회사에서 설명한 거 보고 '이게 좋겠다' 싶은거 드심 됩니다. ㅎㅎ 가향차 중에 대표적인 건 포숑의 애플티, 루피시아 사쿠란보(탄산수 냉침 강추!), 트와이닝스의 레이디 그레이(입에 맞으면 좀 더 쎈 얼 그레이도 추천), 마리아쥬 플레르의 마르코 폴로와 웨딩 임페리얼 등이 있습니다. | 19.05.23 13: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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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사합니다 메모장에 옮겨놨다가 하나씩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 19.05.23 14: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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