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한 한달 전에 글을 올릴 계획이였는데 올리는 도중 컴퓨터가 맛이 가서 한 번 날아가더니
두 번째 올릴 때도 또 업데이트니 뭐니 하면서 컴퓨터가 자기 맘대로 리부팅되서;;; 다시 한 번
더 도전했지만 어김없이 세 번째도 실패...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날아가니까 빡이 차올라서
그냥 얼마간 음갤에서 놀다 왔습니다 흨흨 구 루리웹처럼 자동저장 시스템이 있다면 좋을텐데
없으니 안 타-노시... ㅠㅠ 어쨌든 다시 한 번 더 써봅니다... 였지만 네 번째로 날아갔고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써봤는데 운 좋게 성공했네요 ㅂㄷㅂㄷ
영국에 도착한 날 일정이 꼬여서 시간도 애매했고 비행기에서 영화 본다고 잠도 안 자서 너무 피곤했던 관계로
도착한 날은 씹어먹고 다음날이 되서야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첫 타겟은 대영박물관. 10년 전 영국에 왔을 때
홍수가 크게 나서 길거리는 물론 히드로 공항의 실내까지 발등까지 물이 찼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항공사의
실수인지 공항의 실수인지 아버지와 저의 캐리어를 분실해버려서 양말 한장 속옷 한장까지 유럽 여행하는 3주
내내 사서 다닌다고 고생한지라 영국에서의 추억은 커녕 부정적인 이미지만 한가득이였더랍니다. 홍수 때문에
첫날 대영박물관을 가보지 못하고 다음날 바로 프랑스로 떠났기 때문에 상당히 아쉬웠었고, 결국 10년이나 지난
두달 전의 여행 때에야 드디어 가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날은 그냥 눈도장만 찍고 나중에 와서 천천히 자세히
둘러봐야지 하고 생각했기에 유물들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찍어놓지를 않아 좀 중구난방 두서없는 글이될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박물관이 여는 시간에 맞추어 갔습니다만 벌써 사람이 많더군요. 첫날은 제가 길을 전혀 모르니 누나가 데려다줬고요.
마침 시간도 그렇고 같이 온 김에 누나도 브런치를 같이 했습니다. 누나가 박물관 회원인지라 특이한 곳에 가봤는데, 이곳
회원들만 입장이 가능한 VIP 전용 카페였습니다. 이름이 거창해서 엄청 기대를 했는데 그냥 일반 카페더라는 ㅎㅎ 그래도
하도 구석진 곳에 있던데다가 누나도 회원이면서 한번도 안 사용해 본 곳이라 박물관 직원들에게 이곳 위치를 물었는데도
한 명 빼고 모두 모르더군요. 이거 완전 비밀의 방 ㅎㅎ 어쨌든 잘 도착해서 각각 샌드위치를 하나씩 시키고 차와 커피,
샐러드 한 접시도 추가로 시켰습니다.
폰 만지는 개구리 누나. 글이 네 번이나 지워져서 그런지 얼굴이 안 타-노시해 보입니다.
저렇게 시키고 가격이 이렇게 나오자 살짝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비쌌거든요. 회원 전용 카페라길래 무료는 아니더라도
정말 싸게 음식을 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충격에 흨흨... 하지만 이날 제가 밖에서 음식을 사먹어본 첫 날이였으니
당연히 몰랐던거죠.
이틀 뒤에 버러 마켓에 가서 사온 피쉬 앤 칩스 가격이랑 겨우 £3.5 차이 밖에 안 날 줄은 ㄷㄷ
피쉬 앤 칩스는 양도 창렬하고 맛도 평범하니 저 돈 주고 사먹긴 아까운 맛이였죠. 그냥 영국에
왔으니 한번 사먹었을 뿐.
그리고 영국에서 며칠 지내보니 왜 이곳이 회원 전용 카페였는지 이해를 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앉아서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하면 서비스비가 추가로 붙어서 청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음식만 사다 길거리에 서서 먹는 광경을 꽤
많이 접하게 됩니다. 결국 이 카페는 점원이 매우 친절하고 서빙도 다 해주면서도 가격이 엄청
착했다는 거였죠. 그리고 제 기억으로는 제가 얼 그레이를 마셨던 것 같은데 평소 마시던 것보다
맛은 더 순하면서도 향 만큼은 진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시킨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 부리토입니다. 채소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던 건 좋았지만
뭔가 맛이 달짝지근한게 제 스타일은 아니였죠. 그래도 이게 아마 제가 영국에서 먹은 샌드위치
중에서 가장 건강식이였을 겁니다. 여행 내내 창렬스러운 음식 가격 때문에 풀쪼가리 하나 없는
싸구려 샌드위치만 주구장창 먹었거든요 ㄷㄷ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돈 주고 서빙 다 받으며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런던 시내 한복판에는 별로 없다고 봐도 됐거든요. 그리고 샐러드는 가지 샐러드였는데, 이때가
마침 스페인에 홍수가 나서 영국 내 마트들에 채소가 전멸한 시점이라 누나가 이왕이면 비싸서
먹기 힘든 가지나 먹자고 해서 ㅎㅎ 맛은 뭐 상당히 달짝지근한게 역시 제 스타일은 아니였지만
가지 외에도 채소가 상당히 많이 들어갔기에 그냥 즐기면서 먹었습니다.
음식 앞에서 예의없게 계속 폰만 만지작 거리는 개구리 누나. 이 카페는 회원 전용이라 그런지 와이파이도
따로 있더라고요. 이 방을 나가니 박물관 와이파이가 있기는 했는데 신호가 거의 안 잡혀서 못 썼습니다.
쿰척쿰척. 파오후라 배가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 했기 때문에 누나가 남긴 샌드위치와 약간 남은 샐러드도
제가 싹싹 비웠습니다. 그나저나 누나 샌드위치가 참 맛있더군요. 저도 부리토 말고 저거나 시킬 걸 그랬습니다.
저기서 누나랑 수다도 좀 떨고 밥먹고 나니 만사 귀찮아져서 최대한 시간을 때우다 역시 일단 박물관에 왔으니
둘러보기는 해야지 싶어서 밖을 나왔습니다.
회원 카페로 가는 길에 있던 모자이크들. 설명을 읽어보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단 스타일로 보아
그리스 본토나 지중해 섬들 중 어딘가에서 훔쳐온 것이 아닐까 싶네요. 대도 박물관 ㅋㅋ
대영박물관이 장사하는데 매우 큰 한 축을 담당한다는 이집트 유물 전시실. 입장료 자체는 무료지만 런던에 이거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 만큼, 카페에서 돈 쓰고, 음료수 사먹고, 가이드북 사고, 기념품 사고 등등 박물관 내에서도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다 더해 이 사람들이 묵을 숙소, 먹는 음식 등 영국에게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전시해 놓은
대부분의 유물들이 훔쳐온 거라 여러 나라들에서 반환을 요구하는데도 거의 무조건 씹는 거겠죠.
이날은 원래 이집트 전시실을 둘러볼 계획이 없었던지라 그냥 몇개 눈에 띄는 전시물들만 찍었습니다.
대영박물관 크기와 전시된 유물들 수가 하더 엄청나서 어짜피 하루만에 다 보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여기에 로제타석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계획이 바뀌어 두번째 방문이 무산되어 보지는 못 했습니다.
다른 못 가본 곳들과 함께 다음에 보러 와야겠죠. 로제타석에 대한 매우 웃긴 이야기로는, 19세기에
프랑스가 영국에게 로제타석 반환 요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1799년 지들이 먼저 찾을 것을 영국군이
빼았아 갔다면서요. 영국은 당연히 씹었지만 이집트 입장에서는 완전히 어이없는 일이죠. 원주인은
이집트인데 도둑놈 새끼들이 소유권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모습이라니 허헣
카페에서 시간 좀 죽였다고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 한 것이 영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둘러보지 못 하고 마음에 드는 것 위주로만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남아공 예술 전시관은 한번 가보려고 했지만 기회가 안 되서 못 가봤습니다. 저곳 꼭대기에는 스테이크 등을
파는 레스토랑이 있더군요. 상당히 비싸 보였어요.
설명이 없던(있었나? 아몰랑 히힣) 기마상. 로마 시대의 것 같네요.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식사중입니다.
어디부터 둘러볼까 한참을 망설이다 동양 전시관부터 가자! 하고 정했습니다. 위의 두 전시물들은 가는 길목에
있던 것들이고요. 설명에 대한 사진을 남기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둘 다 이란에서 훔쳐온
것들일 겁니다.
아즈텍의 수정 해골. 19세기 말에 멕시코에서 훔쳐온 고대 유물이라 선전된 것이지만 현대의 짱짱한 과학 기술로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냥 유럽에서 만들어낸 가짜라네요. 실제 도굴품이 아니라 멕시코가 시비를 걸 일도 없고
법적인 문제로도 걸리지 않아서 가능했던지 미국에서 사와서 저렇게 전시해놨습니다. 저것도 아마 19세기 서구
이집트 탐사팀이 후원금을 모으려고 미이라의 저주니 황금산이 쌓여있는 무덤이니 노이즈 마케팅을 하던 것과
비슷한 케이스가 아닐까 합니다.
파푸아 뉴기니에서 가져온, 한국의 장승이나 돌하르방과 비스무리한 역할을 하던 나무 조각상. 하우스 포스트로 불립니다.
최대 36m 짜리 거대한 조각상도 있다고 하네요. 20세기 초반이나 중반에 영국에 들여온 것이라 추정된다고 써있는데,
동양관이라봐야 중국이랑 일본이겠지 했는데 한국이 있어서 의외였어요. 한국과 영국의 접전이랄게 거문도 사건 정도 밖에
없고 한국전쟁 때는 UN군으로 참전한 거라 훔쳐간 것은 그닥 없을텐데 도데체 언제 뭘 얼마나 훔쳐다 온 걸까 싶었죠. 그래서
중국에서 훔쳐온 불상 1. 아쉽게도 설명은 못 찍었네요. 다른 멋지구리한 자세의 불상도 있었는데
그건 제 파오후한 얼굴이 유리에 비추어져서 그냥 안 올렸습니다 ㅠ
중국 수나라 때 옥으로 조각해 만들어진 아미타불입니다. 원래는 허베이 성의 한 불교 사원에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합니다. 일단 설명에는 중국 정부가 1935년에 열렸던 국제 중국 예술 관람회를
온전한 물건을 주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애초에 7세기 때 만들어진 귀한 유물을 순순히
외국에 넘길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 저것도 말로만 선물 받은 것이지 실제로는 강탈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래서 이미지 관리를 잘 해야해요. 실제 저게 합법적으로 선물을 받았다고
해도 박물관 안에 대부분의 전시물들이 훔쳐온 것들이다 보니 모든게 의심이 가는 안습한 상황 허헣
한국실입니다. 도데체 뭘 훔쳐왔나 확인해보고 싶어서 온 것인데, 다행히 훔쳐온 것은 없더군요.
2000년에 개관했다고 하며 삼성문화재단의 쇼미더 머니의 힘을 빌렸다고 하네요. 훔친 게 없고
한국의 박물관들에세 대여해 오거나 기증을 받은 전시물들만 있다보니 규모도 중국실이나
일본실에 비하여 훨씬 작고 볼거리도 적긴 합니다만 뭐 다행이라면 다행이죠. 1선급의 유물들은
당연히 한국에 있어서 여기에 있는 것들은 그 가치가 2선급 정도 되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한국 전통 가옥의 일부를 전시해놓은 곳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본관에 가면 아버지의 생가가 저런 모습이였기에
눈에 꽤 익숙한 모습입니다만 당연히 거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까지 사용된 집이라 현대식으로 개조가 되어있어서
이게 더 뭔가 마음에 드네요. 제가 초등학교 시절 한국을 떠난 이후로 한자를 배우지 않아 현판에 뭐라고 써있는지가
궁금해요 ㅎㅎ 구석에서 건물의 스케치를 하고 있던 여성분의 그림을 얼핏 봤는데 상당히 잘 그렸더군요.
방 내부 모습. 사극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입니다. 고려와 조선의 한국식 차 문화도 독특하고
정해진 다례가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한번 배워보고 싶네요.
한국의 온돌 문화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온돌은 진짜 최고예요. 캐나다도 추운 지방이 많은데,
한국계 인구가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 가면 온돌 회사들이 있어 집을 지을 때 설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저희 본가는 전체 인구에서 백인이 85% 이상 사는 동네라 밴쿠버에서 사람들을 불러다 설치하려면 차라리
그 돈으로 집 한체 더 사는 게 나을 정도로 비싼지라 부모님이 늘 아쉬워 하시죠 ㅠ 짱짱한 성능 덕분에
캐나다인들도 온돌을 선호하는 매니아층이 늘어나는 추세라 온돌을 깐 집은 상당히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시대에 거쳐 사용된 조선의 화폐들. 보통 조선의 화폐하면 동전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대동은전이라는 은화도 존재했네요. 물론 상평통보처럼 전국적으로 쓰이진 못 했고
처음 발행된 시기도 1882년인 것을 보면 얼마 안가 못 쓰게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엄청 큰 장독. 어머니가 늘 눈독을 들이시는 아이템이죠. 집에 마당도 있고 장 담글 재료도 다 있는데
저렇게 커다란 장독만 없어서 늘 아쉬움만 ㅎㅎ 밴쿠버에서는 팔던데 배달도 안 되고 부모님은
픽업트럭을 가지고 계시지 않아 실어 나를 방법도 없어서 포기.
일반 부채들과 카리스마대빵큰부채. 여름에 유용하겠다 싶어서 좀 탐나더군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철로 된 불상입니다. 철불상은 신라와 고려에서만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아마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조선 초기 이후로는 일절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이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것이라고 합니다.
예쁜 고려청자들. 물론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따지자면 한국 여러 박물관들에 있는
그것들에는 미치지 못 합니다. 그래도 첫번째 병은 은은하고 차분한게 마음에 드네요.
내래 조선의 락을 보여주갔어! (멍멍)
이것도 아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전시물로 기억합니다. 송나라 갑옷을 입고 비파를 켜는 모습이
완전 중국인스럽지만 저런 그림이야 엄청 흔하고 애초에 저 신이 중국산이니 뭐 그냥 넘어갑시다. 그런데
상당히 의외로 비파 음악은 중국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훨씬 더 발전하고 유행했었다네요. 일제시대인
1930년대에 명맥이 완전히 끊겼다가 80년대에나 와서야 다시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이걸 전통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엉뚱하게 중국식으로 복원해버려서 현대 비파는 술대를 사용하지 않고 중국처럼 손가락을
사용해 현을 뜯습니다.
보자마자 반했던 병입니다. 조선 시대의 물건으로 기억하는데 이거 어떻게 만들었지?!
두 겹으로 만들어 구웠나?
양반집 여인의 옷입니다. 색이 마음에 드네요.
조선백자들입니다. 고려청자도 좋지만 저는 백자도 꽤나 화려하면서도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대충 쓱 둘러본 것이지만 그다지 사진으로 남길만 한 것이 그닥 없어서 바로 옆에 있던
중국 도자기 전시관에 갔습니다.
이곳의 전시물들은 퍼시발 데이비드 경의 개인소장 콜랙션을 빌려다 전시한 것이라고는 합니다.
주로 송, 원, 명, 청 대의 유물들이라고 하며 이곳에만 1700여점의 자기들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와서 더 자세히 둘러보려고 많은 사진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퍼시발 데이비드라는 인물이
영국에서는 중국 도자기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추앙되는가 보지만 일단 이런 보물들을
헐값에 마구 들여온 것을 보면 중국 입장에서는 속이 매우 불편할 일입니다. 다만 이게 외국으로
빼돌려졌기에 문화대혁명을 피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라 생각을 하면 참 쉽지 않은 문제네요.
대영박물관의 대부분의 외국 유물들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영국이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있긴 합니다. 지금 치안이 매우 불안하고 유물 파괴에 서슴없는 중동 몇몇 지역들이나
아프리카 등등 유물을 관리할 능력은 커녕 이 세상에 보존만 해주면 감지덕지한 곳들이 많기에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대도들이 활개를 치게 만드는게 아닌가 합니다.
도자기를 뜻하는 영 단어가 China죠. 그만큼 서양에서는 도자기 하면 중국이 최고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요즘에야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하면 싸구려 쓰레기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일단 도자기는
무조건 중국제가 특등급이였기에 중국은 유럽을 상대로 도자기 장사만으로도 늘 흑자를 본 반면 현재에는
최고로 쳐주는 잉글랜드나 북유럽의 본 차이나가 18세기에 처음 세상에 나왔을 무렵 중국의 자기들과의
경쟁에서 쪽도 못 쓰고 밀려나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참고로 요즘 나오는 영국 회사 도자기들
중 밑바닥에 England라고 써있지 않으면 사는 걸 피하셔야 합니다. 생산가가 높아졌다고 이제는 중국이나
인도 같은 해외에서 싸게 공수해와서는 어디서 만들었는지 표기를 안 하는꼼수를 부린다고 하네요.
전시되어 있던 도자기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들입니다. 복숭아 먹고싶다 흨흨
눈이 어지럽게 화려하지 않고 적당하게 청아한게 아주 마음에 듭니다. 마침 아버지가
도자기 덕후신데 여름에 여기에 모셔오면 너무 행복해 하시겠군요 흐흐
그림이 모두 마음에 쏙 듭니다. 그냥 곱다는 말 밖에 ㅎㅎ
병의 뒷면에는 아예 다른 나무와 꽃,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예뻐서 또 한 컷. 아버지가 소장하신 로얄 알버트의 Blossom Time이라는 도자기와
분위기가 흡사하네요. 물론 바로 옆에 두고 뜯어보면 완전히 다른 두 물건이지만.
황제를 뜻하는 황색에 오조룡이면 이건 중국 황실의 물건이 맞는 듯 한데 도데체 무슨 수로 쌔벼왔는지 참 용하네요.
퍼시발 데이비드가 활동한 시기는 청나라가 이미 망한 이후인지라 황실을 통해 구했을 리는 없고, 또 외교관도 아닌,
작위를 가졌다고 해봐야 귀족도 아닌 일개 준남작한테 저런 것을 퍼줬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ㄷㄷ
적당히 중국 도자기실을 둘러본 뒤 빠져나와 일본실로 가봅니다. 이건 뭐 입구부터 다르네요.
같은 섬나라라고 편애하나 ㅎㅎ
뭔가 시원시원하게 써있던 글씨와
8등신 가까이 되는 호리호리한 불상. 일본인들의 키에 대한 갈망이 옅볼 수 있는 듯한 착각도 듭니다 허헣
한국실과 비슷하게 여기도 건물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도실이라네요.
찻잔이 상당히 투박합니다. 똑바로 서라 핫산! 왜 조선에서 도공들을 납치해 가고도 이렇게 밖에 못 만들지?
18세기와 19세기의 물건이라네요. 훔쳐온 것은 아니고 교토에서 대여해왔답니다.
원숭이 프렌즈를 괴롭히는 부라리큰 너구리 프렌즈와 토끼 프렌즈 흨흨
자파리파크엔 왕따가 없다고 들었는데...!!!
두 종류의 단도들. 일단 와키자시라고 써있긴 한데 와키자시 치고는 너무 심하게 짧습니다.
탄토 수준으로 짧아요 ㄷㄷ 보통 와키자시하면 40~50cm는 넘겨야 하는데 저것들은 30cm나
간신히 될까 싶을 정도? 특히 첫번째 것은 진짜 와키자시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네요.
여러 코등이와 동호인들. 코등이는 생긴 것 그대로 방패 역할을 하며, 동호인은 칼을 칼집에 넣을 때
꽉 물리게 해서 칼이 쉽게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물론 이런다고 절대 안 빠지는 것은 아니라
조선 환도의 경우 비녀장이라 해서 잠금장치가 따로 있는데, 이러한 장치는 일본에서는 2차대전까지
거의 안 쓰였다고 하네요.
젓가락(?)과 진짜진짜 작은 단도. 단도의 경우 진짜 위급할 때 쓰는 호신용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야영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막칼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조선 선비들도 은장도나 죽장도를 늘
품고 다니며 거기에 딸려있는 젓가락을 사용해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고 하니 아마 일본도 비슷한
개념이겠죠.
일본 무사의 갑주와 타치(太刀)입니다. 흉갑 중앙에 있는 문양을 보면 아자이 가문의 것과 비슷한데
확실한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문제는 칼에 대한 설명을 보고 대영박물관에 대한 불신이 살짝
솟아오르기 시작했는데, 타치를 카타나라고 표기해놓고 설명도 카타나에 대해 써놨더군요. 물론
일본도를 타치, 우치카타나 가리지 않고 카타나로 퉁쳐 부르기도 한다지만 이건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영국 최고의 박물관인데 이래서야 ㄷㄷ 그냥 이름만 카타나로 표기했으면 모를까 패용법에
대해서도 타치의 패용법이 아니라 우치카타나의 패용법을 설명해놔서 어이가 많이 없었습니다.
일본의 전통 등자입니다. 저걸 사용해서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 외의
마상무예는 거의 불가능해서 통신사가 일본에 가면 무조건 마상재를 보여줘서 기를 눌렀다고도 하죠.
뭐 말이 기를 누르는거지 도쿠가와 막부는 조선이 일본에 조공하러 온다고 백성들에게 뻥쳐서
사실 조선 통신사들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는 일본인들은 없었겠지만 :/ 그래도 마상재 자체가
요즘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완전 서커스 수준이고 동작이 화려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볼거리로 인기는 짱이였다네요. 그리고 마상재도 마상재지만 통신사 자체가 인기 짱이였다고
합니다. 그 행렬이 하도 화려하고 일단 아주 가끔만 들어오는 외국 사신단인데다가 유행을 몰고
들어와 돈을 뿌리며 일본 전국을 화끈하게 휩쓸고 돌아가는 집단이였다보니 :)
투구와 진바오리라고 불리는 갑옷 위에 걸치는 민소매 형태의 겉옷. 무사 계급만 저러한 겉옷을
걸칠 수 있었습니다.
안장입니다. 앉으면 엉덩이가 아플 것 같지만 화려하긴 하네요.
세 가지 가면들. 오른쪽 끝에 있는 가면 완전 무섭게 생겼어요 ㄷㄷ
궁중악사들입니다. 왕실에 속한 악사들이지만 종종 쇼군이 불러다 즐겼다고 하네요. 안습 ㄷㄷ
그리고 위의 전시물도 1816년 궁중악사들이 에도 성에 불려가 공연을 한 것을 기록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맨 오른쪽 붉은 옷을 입고 북을 치는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악사가 단장이라네요.
여성의 기모노. 길이가 미친듯이 길어서 소매가 짧아 보이는 착시현상 ㄷㄷ
철로 만든 공작과 뱀. 공작의 꼬리는 가동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피그마의 시조격인가 ㅎㄷㄷ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칼집이나 다른 장신구 하나 없이 도신만 덩그러니 전시되어 있더군요.
고훈 시대에서 아스카 시대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관입니다. 왕이나 귀족처럼 큰 권력을 가진
계층만이 석관에 뉘여 장사 지내졌다고 하며, 한반도나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 같다고 쓰여있네요.
고위 계층의 무덤이라 규모가 상당히 컷는지 무덤 안에 방이 있고, 석관을 놔둔 주위로는 동으로 만들어진
거울, 유리 구슬, 도자기, 갑주와 승마 도구 등 살아생전 권력자에게만 사용이 허용되었던 물건들도 모두
부장품으로 묻혔다고 합니다.
동으로 만든 창날. 창날이 너무 넓게 만들어진 것으로 볼 때 이는 실전에서 사용된 무기가 아닌
장식이나 예식, 종교의식을 위해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아마 이 물건의 주인이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도구로 쓰였을 거라네요.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하며, 1965년 한
일본인 교수가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처음 보고 저거 완전 사다하루!라고 생각한 해태를 탄 부처입니다. 정확히는 문수보살이라네요.
고코묘 덴노의 즉위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코묘 덴노 본인은
주자학에 심취해 불교를 혐오하는 성향을 감추지 않고 불교가 무용의 학문이라고 대놓고 까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삼종신기를 담은 궤짝을 열어봤을 때 거울 옆에 불사리가 놓여있자, "이 요망스러운 것!"하고
소리치며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덴노라고 하더라도 삼종신기를 함부로 다루기는 커녕 한번
구경해 보기도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짓을 한 셈이죠. 옆에 있던 신하들은 아마 놀라
까무라쳤을 겁니다.
일본실을 대강 둘러본 후 밑으로 내려오자 삶과 죽음의 전시실이라는 전시실이 나타났습니다... 크큭... 달이 차오른다...
저 배 모형은 고대 이집트인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러한 모형들은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무덤들부터 중왕국
시대의 제 12왕조의 무덤들에서 주로 나온다고 합니다. 옛 고대 이집트인들은 큰 강을 넘어 명계에 들어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망자가 명계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배와 뱃사람들을 딸려 보낸 것이라네요. 저런 부장품 덕분에 고대 이집트의
조선술과 어떻게 배를 운용했는지 잘 알 수 있어 귀중한 유물이라고 합니다... 만 저것도 훔쳐온 것이고 언제 누가 훔쳐온
것인지도 몰라서 발굴 장소는 미상이네요 허헣
미이라 입니다. 다만 저 안에 실제로 들어있지는 않고 그냥 재현해 놓은 것입니다. 대영박물관 하면 역시
이집트 전시실이라는 느낌인지 사람들이 너무 바글바글해서 사진을 못 찍겠더라고요. 그래서 저것도
설명을 찍어오진 못 해서 미이라라는 것만 빼면 별다른 정보가 없습니다 흨흨
무슨 이름도 붙여져 있던 남자 미이라였는데 이것도 역시 재현해 놓은 것이고 실제 미이라는 따로
잘 보관하고 있다네요. 원래 미이라로 만드려던 것은 아닌데 토질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미이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맞나?)
이제 메소포타미아 전시실로 들어갑니다. 길군의 고향... 크큭...
입구 위의 조각상 포스가 장난이 아닌데 저건 또 어떻게 훔쳐왔을까요 ㄷㄷ
하도 입체적으로 생겨서 운반할 때 좀 힘들었을 것 같네요.
청동 황소입니다. 설명은 찍지 못 했지만 디자인이 딱 저 동네 스타일이네요.
닭둘기 구구구
메소포타미아 전시실은 관람객이 너무 미친듯이 많아서 그냥 사진 찍는 걸 포기했습니다.
매너 밥말아 먹은 유럽인들과 중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어요 ㅂㄷㅂㄷ
아니 박물관이 놀이터도 아니고 웬 애들을 뛰어놀게 풀어놓질 않나 무조건 플레쉬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질 않나 참나 ㅂㄷㅂㄷ 이건 비매너 관람객들 수가 너무 많아서 박물관 직원들도
어떻게 하지를 못 하더군요. 사람이 밀려서 그때그때 잡으러 가지도 못 하고 말로 주의를
줘도 우리 영어 못 함 히힣 이러면서 씹어버리고 완전 노답들이예요.
그리스 양식의 청동검입니다. 검신과 손잡이를 아예 통짜로 찍어낸 게 흥미롭군요 ㄷㄷ
그리스인들의 청동 갑주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출토된 것들이죠. 원주인이 남부 이탈리아에
식민지를 건설한 고대 그리스인들 중 하나거든요 ㅎㅎ 기원전 물건인데도 디테일이 장난 아닙니다.
저런 갑주나 도자기들을 보면 왜 로마가 그리스를 먹고 나서도 그리스뽕에 취해 좋은 대우를
해줬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런걸 기원전 8세기 때 만들어 내던 민족이니 우러러 볼 수 밖에.
물론 기술력 외에도 철학과 문학 분야에서도 엄청 점수를 줬지만.
엄청 복잡한 디자인이지만 하나도 안 예쁜 도자기. 세 여신들은 운명의 여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고
고르고 세 자매라고 하기엔 너무 예쁘게 만들어져서 누굴 모델로 만든 건지 감이 안 잡히네요 ㅎㅎ
신알못이라 죄송합니다 헤헿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자기
이런 조각상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달까요. 아무리 석회암이 부드럽고 조각하기
좋다고 해도 대리암만 못 한데도 저런 디테일을 뽑을 수 있네요 ㄷㄷ
기원전 5세기 쯤 만들어진 키프로스의 조각상들입니다. 이 시기는 페르시아에 복속된 이후라 그런지 이미 몇백년 간
그리스화 되었음에도 이 동네 스타일은 그리스 본토보다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색채가 강하죠.
청동 방패입니다. 무지막지하게 오래된 물건이다보니 뽀글뽀글하네요 ㅎㅎ
키프로스는 구리 매장량이 지중해 지방에서 으뜸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Copper라는 단어도 Cyprus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네요. 이렇게 구리
산출지로 유명하다보니 고대 문명이 꽃피우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었다네요.
키프로스의 고대 도시인 이달리움이 있던 곳(현재의 달리 시)에서 발견된, 기원전 5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조각상입니다. 아폴론 신전 사제의 혹은 왕을 조각한 것이라고 하며,
키프로스 답게 복장과 수염 스타일이 그리스 본토와 페르시아 지방의 스타일을 섞어놓은
모양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나 로마의 일반적인조각들과는 달리 석회암으로 깎아 만들었기때문에
대리암으로 만든 조각상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표면이 덜 매끄럽고 투박한 느낌도 줍니다.
요즘으로 치면 가족사진인 키프로스 귀족 가문의 조각입니다. 죽은 가족을 기리기 위해
조각했다는 것 같은데, 제가 깜빡 잊고 설명을 따로 찍지 않은데다가 조각 옆에 있는 설명도
사진상에는 잘려서 정확한 해설을 읽을 수가 없네요. 키프로스 전시실은 적당히 둘러보고
이탈리아 반도 전시실로 넘어갔습니다. 로마라고 쓰지 않은 이유는 로마 이외의 고대
도시국가들을 다루는 전시실이라 그렇습니다.
위의 사진은 에트루리아족의 여러 청동제 무기들을 전시해놓은 것입니다.
에트루리아족은 라틴족이 강성해지기 이전 이탈리아 반도 북부에 많은 도시국가들을
건설해 큰세력을 떨친 민족인데, 에트루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제각기 따로 놀았지만
12도시 연맹이라는 체제를 유지하며서 필요할 때는 서로 군사, 종교행사등에 협력했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진보적인 민족으로, 당시 거의 모든 그리스나
남부 이탈리아, 지중해와 소아시아 지역들에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아닌,
훨씬 못 한 존재로 인식되었으나 에트루리아에서는 여성을 남성과 동일한 하나의
인격으로 보았기에 에트루리아의 여성들은 복장이나 외출의 제한 같은 것이 없던
것은 물론, 운동 경기에도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출전이 가능했고 연애상대를
직접 골라 즐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에트루리아는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독자적인 양식의 예술이나 공예도
발전했는데, 위의 투구도 에트루리아 양식 투구로 그리스의 일반적인 투구와는 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에트루리아가 로마에 복속되어 민족성이 라틴족에게 동화된
이후에도 그들의 문화 만큼은 흔적을 남겼는데, 로마하면 떠오르는 아치형 건축물이나
검투사 경기 등이 에트루리아에서 로마가 도입한 문화이기도 합니다. 또한 라틴 문자도
에트루리아인들이 그리스 문자를 자기네 식으로 손본 것을 라틴족이 가져다 쓴 것이
기원입니다.
사르코파구스입니다. 쉽게 말하면 석관이지만 모든 사르코파구스가 돌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고유명사 그대로 불리는 것 같네요. 에트루리아 문화에서는 사후세계가 매우
중요했기에 죽은 사람의 생전에 살던 집과 똑같은 모양의 무덤을 만들고 꾸며 관을
안치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현대 학자들이 에트루리아인의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죠.
청동 방패와 전투 나팔. 세월은 참 무섭네요. 옛날엔 창으로도 못 뚫는 물건이였을텐데.
고대 덕후들의 장난감. 헤라클레스 씨의 근육은 참 다부지다능! 하앍... 이러거나
여신님은 무슨 색깔 팬티를 입었냐능? 헠헠... 이러면서 절대영역을 막 뜯어보면서
피규어를 요리보고 조리보던 덕후들도 있던게 아닐까 마음대로 상상해봅니다... ㅋ
잘 나가는 운동 선수들은 웬만한 아이돌 뺨치게 인기있는 존재였죠.
제 기억이 맞다면 이 사진까지가 에트루리아 전시관에서 찍은 사진일 겁니다. 여행을 다녀온지 두달이
넘어가니 벌써 가물가물 하네요 ㄷㄷ 투구들의 모양이 매우 독특한데, 특히 맨 왼쪽의 투구와 큰 뿔
같은 장식이 달린 투구는 페니키아와 카르타고의 투구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에트루리아인들이 하도
오래전 사람들인데다가 이후 로마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기록도 부족하고 어디서 온 민족인지 온갖 설이
고대는 물론 현대까지도 난무했는데,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서 "역사"에 에트루리아인들이 소아시아에서
이탈리아 반도로 흘러 들어온 민족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현대에 행해진 유전자 조사
결과에서 밝혀진 바에 의해 헤로도토스의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입증되었죠. "역사"는 헤로도토스가
직접 발품 팔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조사한 것을 서술한 책인데, 참 무섭습니다 ㅎㄷㄷ기원전
고대인의 정보수집능력 스-꼬이!
맨 위의 투구는 갈리아 지방에서 유래된 몬테포르티노 양식의 투구입니다. M1 헬멧이랑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네요 ㅎㅎ 로마 군단병도 기원전 1세기 까지는 저런 형태의 투구를
많이 착용했다고 합니다. 몬테포르티노 양식의 투구 밑에 있는 투구와 훙갑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서 번영했던 삼니움족의 것입니다. 로마2 토탈워 같은 게임을 접해보신
분들은 아마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저 물건들을 착용하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로마 초기의 가장 큰 라이벌로, 총 세 번의 삼니움 전쟁을
치룬 뒤 로마에 복속되어 결국 흡수됩니다. 모두 저런 갑주를 착용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사회적 지위와 부유함에 따라 더 경무장하거나 중무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가족사진(?) 이번엔 남성들만 있는데 가주와 후계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둘 다 코와 턱이 깨져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일부러 부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저 조각의 설명은 찍지 못 하였기에 그냥 개인적인 추측이긴 합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두상입니다. 흔히들 아시는 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이름이 완전히 같기에
구분을 위해 가이우스 카이사르로 부릅니다. 사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아우구스투스도 입적 후
이름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개명했기에 셋이 이름이 똑같은 것은 덤 ㄷㄷ 혈연적으로는 직계는
아니지만 일단 법적으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손자입니다. 친부는 아우구스투스의 평생지기 친구였던,
미술을 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다들 그려보셨을아그리파이고,친모는 아우구스투스의 외동딸인 율리아
아우구스투스인데, 그래서 그런지 아우구스투스의 젊었을 적 얼굴을 거의 빼다 박았다 할 정도로 닮았죠.
제국의 차기 황제로 선택되어 외조부인 아우구스투스에게 동생인 루키우스와 함께 입적되었으나 둘 다
20대에 해외 원정을 나갔다가 전투에서 전사해 자기 피붙이를 차기 황제로 만들겠다는 아우구스투스의
소원을 다시 한번 좌절시킵니다. 첫 번째 좌절은딸로 태어난 율리아 ㅠ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왕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로마에서 교묘한 술수로 제정을
완성시켰는데, 자신에게 국가 제1시민이라는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은 군주가 아닌 똑같은 로마 시민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방법을 썼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원로원과 시민들이 그에게 부여한 독재권도 거절해
자신이 술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는 다른 존재임을 어필했지만 실상은 군 통수권과 호민관 권한, 집정관
권한을 모두 쥔, 아무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쥔 인물이였고, 결과적으로 세습까지 성공시킵니다.
다만 자손복은 없어서, 유일한 친자식이 딸이라 후계자로 삼을 수 없으니 외손자들을 양자로 들였더니 모두
죽고, 그래서 자신의 또 다른 핏줄이라 여긴 게르마니쿠스를 후계자로 삼으려했더니 예상치 못 한 병으로
요절해버리죠. 어쨌든 정치적으로 큰 업적을 쌓았고 오랜 혼란을 끝내고 내정을 안정시켜 팍스 로마나라는
개념을 확립시킨 인물이기에 로마 제국에서 무한한 존경과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 예로 겨우 30세 밖에
안 된 그에게 원로원에서 "존엄한 자"를 뜻하는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부여하는 것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그의 이름이 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져 옵니다. 로마 문명권에 속한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쓰이는 여덟 번째
달을 뜻하는 단어가 모두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에서 따왔죠. 재미난 것은 아우구스투스가 프로파간다에도
꽤 신경을 썼는지 그의 모든 흉상과 두상, 전신상 등의 얼굴은 그의 청장년 시절의 모습만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을 당시의 모습만 후세에 남기게 한 것이죠. 이 두상도 아우구스투스가 76세의 나이로
죽은 이후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죽어서도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 ㄷㄷ 그래서 그의 노년의 모습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들이자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흉상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사랑하여 유부녀였던 리비아 드루실라를
남편에게서 강제로 이혼시켜 뺏은 뒤 결혼할 때 데려온 두 아들 중 장남이였는데 (둘째는 임신중),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계부의
인정을 못 받고 장기말로만 쓰여지길 반복해 나이가 들 수록 성격이 괴팍해집니다. 소시오패스적 끼가 다분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친구이자 사위였던 아그리파가 사망하자 과부가 된 자신의 딸 율리아를 티베리우스에게 시집 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깨가 쏟아지던 티베리우스를 강제로 이혼시켰는데 로맨티시스트였던 그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죠. 이후에도
전처를 잊지 못 해 힘들어 했다고 전해집니다. 거기다 더해 재혼상대인 율리아는 장모뻘 되는 여성이였는데, 티베리우스의
전처가 아그리파의 첫 번째 부인 소생입니다. 완전 개족보죠. 그만큼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혈족에게 제위를 물려주고싶어
안달이 나있던 상황이였지만 티베리우스와 율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어려서 죽고, 율리아는 개념없게 대놓고신전에서
남들 남들 다 보라고 공개성교까지하며 남편을 철저하게 깔보았고 결국 티베리우스에게 이혼 당한 뒤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유배당해 죽을 때까지 이탈리아 본토로 돌아오지 못 합니다. 이렇게 온갖 일을 겪어 가뜩이나 까칠해져 있는데 아우구스투스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장에 딱히 후계자로 삼을 인물을 찾지 못 했으니 어쩔 수 없이 티베리우스에게 제위를 넘겨준다고써놔서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은 티베리우스는 처음엔 즉위도 거부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의해 양자로 들였던, 나이가 어려서 아우구스투스가 후계자로 삼지 못 한, 게르마니쿠스가 소아시아에서 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는데, 로마의 민중으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조카를시샘해서 티베리우스가독살했다는 악소문이 퍼져서 인기가
떨어졌고, 만사 다 귀찮아진 그는 카프리 섬으로 들어가 은둔하며 로마를 원격 통치합니다. 저도 10년 전에 카프리 섬에 한 번
가봤는데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라 이만하면 짱박혀 살만 하겠다 싶었더랬죠. 그래서인지 티베리우스는 겨울만 빼면 이 섬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는데, 심지어는 친모인 리비아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 비정함까지 보여줍니다. 세상살이 만사 다
귀찮은 것을 넘은 경지랄까요. 그래서 전임자인 아우구스투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통치를 했는데, 친위대를 이용한 정치를
했습니다. 원로원이고 뭐고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다 숙청해버렸죠. 유능했던 그에게는 잘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였을지는
모르나 이 선례가 결국에는 독이 되어 훗날 수많은 황제들이 친위대에게 암살 당하고 폐위 당하는 등 반동이 심했죠.
역대 로마 황제들의 퇴위 원인들을 찾아보면 평범하게 자연사한 황제들은 진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추측된다는 두상입니다. 카이사르는 모두가 아실 테니 그다지 설명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굳이 쓰자면 공화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제정의 길을 연 인물입니다.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풍운아였고 한편으로 보면 공화정을 무너뜨린 희대의 대역죄인이지만 그가 후계자로 삼아
제정 체제를 탄탄하게 굳혀 완성시킨 아우구스투스의 존재로 인해 영웅으로 기억되는 인물이죠. 초대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지만 제정의 반석을 다진 것은 카이사르이기에 이후 다른 왕조 황제들의 이름에도
카이사르가 들어가기도 했으며, 이는 훗날 고유명사로 굳혀져 유럽 국가들에서 황제를 칭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사후 신의 반열에 올라 높임을 받았고, 아우구스투스처럼 일곱 번째 달을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휘어잡는 능력이 뛰어나서, 휘하 병사들뿐만 아니라 동료
정치인들까지도 마음대로 쥐락펴락 했고, 대머리라는, 어찌 보면 살짝 핸디캡이 있었던 외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눈 바람둥이이기도 합니다. 정실 부인은 그냥 속으로만 분을
삭혔다는군요. 다만 재밌는 것은 그렇게나 씨를 여기저기 많이 뿌리고 다녀 로마 최고의 난봉꾼이라
불린 인물이건만 실제로 얻은 자식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 율리아와 클레오파트라에게서
얻은 카이사리온 밖에 없었고, 둘 다 자식을 남기지 못 하고 젊은 나이에죽게되어 카이사르의 직계
혈통은 그의 대에서완전히 끊겨버립니다.
사진 찍을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거 지금보니 호모나 섹상에 게이 뭐야!
참고로 로마는 그리스 만큼 동성애를 권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기시 여기지도 않는 나름 남색에 관대한
사회이긴 했는데, 한 가지 조건이 붙었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이라면 올라타는 것은 허용하되 밑에
깔리는 것은 불허하는 게 그것입니다. 로마 사회에선 로마 시민권자는 정복사업을 업으로 삼는 존재였기에, 밑에
깔린다는 것은 정복 당한 것으로 인식되어 치욕으로 받아들여졌고, 수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카이사르도 젊었을 시절 소국이였던 비티니아 왕국의 니코메데스 4세에게 뚫렸다는 소문이 돌아 평생
정적들이 놀림감으로 써먹었고, 로마의 23대 황제였던 엘라가발루스는 여장을 즐기며 자랑스럽게 수 포지션임을
드러내놓고 다니면서 공 역할을 할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유혹하거나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주는 자에게 제국의 절반을
떼어주겠다고 선포하는 등, 황제이기 이전에 로마 시민으로써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버려 결국에는 제위에 오른
4년만에 친위대장에게 암살 당해 시신은 로마 저잣거리에서 조리돌림 당하고 사지는 토막나 티베르 강 하수구에
쳐박힙니다. 물론 단순히 게이라 죽었다기보다는 제위에 오른 내내 노는 것 밖에 안 했고 재미로 사람을 죽였으며,
매일 온갖 기행을 일삼아 워낙 적이 많긴 했습니다. 하지만 조리돌림을 당할 때 로마 시민들이 같이 즐겼다는 것을
보면 그닥 동정을 얻지도 못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4대 황제인 클라디우스의 두상입니다. 크게 과장이 더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폭군으로 유명한 칼리굴라와 네로의 중간에 낀
황제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는 황제죠. 이 사람은 소아마비 혹은 뇌성마비를 심하게 앓았던 환자라 황족임에도 주위 사람들이
박대했고 위에서 언급된 그의 친형 게르마니쿠스만이 그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한명의 인간으로 대했기 때문에 형에 대한 애정이
아주 남달랐다고 전해집니다. 몸이 많이 약하니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겠다고 판단한 친위대장 (칼리굴라를 시해한 주범)은
황숙이였던 클라디우스를 옹립시키지만, 클라디우스는 형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오히려 친위대장을 황제를 시해한 죄로
처형시킵니다. 그 후 조카의 유해를 수습해 예우를 갖추어 장례를 치루고 원로원에 연설을 통해 칼리굴라가 기록말살형에 처하지
않도록 호소하며 힘썼고 결국 막아냈습니다. 무난한 치세를 이어갔고 인품도 괜찮았지만 후처로 맞이한 자신의의 조카딸
小 아그리피나에게 독살 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정도로 석연찮게 갑작스럽고 뒤가 구린 죽음을 맞이합니다. OTL...
범행동기는 클라디우스의 적자였던 브리타니쿠스가 아닌 자신이 데려온 아들 네로를 차기 황제로 옹립시키기 위해서인데,
안습하게도 남편이였던 자기 숙부까지 죽여가며 힘들게 네로를 옥좌에 앉혀놨더니 나중에 아들과 사이가 크게 틀어지게 되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려고 브리타니쿠스를 밀어줍니다. 이게 오히려 큰 화를 부르게 되는데, 애초에 네로는 小 아그리피나가
친위대를 움직여 쿠데타로 제위에 앉혔기 때문에 클라디우스의 적자인 브리타니쿠스보다 정통성에서 크게 밀렸던 겁니다.
자신의 기반을 흔들어버리는 짓을 하니 네로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자기 어머니와 함께 의붓형제인 브리타니쿠스를
죽어벼립니다. 자기 어머니 라인이였던 아내도 같이 죽인 것은 덤. 로마 황실은 정말 개족보에 돌아가며 서로 죽고 죽이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죠.
티베리우스 황제가 제위에 오르기 전, 아우구스투스의 무리한 뻘짓으로 게르마니아의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3개 군단을 날려먹자, 게르마니아에 파견되어 양아버지가 벌인 일의 뒷처리를 맡은 적이 있는데, 위의 칼이 그 당시
티베리우스 휘하의 고위 장교가 차고 다니던 글라디우스입니다. 칼날은 강철이고 칼집은 주석을 덧댄 청동이라네요.
칼집에 새겨진 조각은 아우구스투스가 주신들의 왕인 유피테르(제우스)로 묘사되어 있고, 그를 향해 티베리우스가
승리를 형상화 시킨 기념 조각품을 바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둘 주위에 있는 다른 둘은 각각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니케)와 전쟁의 신 마르스(아레스)인데, 마르스는 많은 바리에이션 중 복수의 성격을 띄는 Mars Ultor가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 하네요. 3개 군단만 날린게 아니라 라인 강 동쪽의 영토를 모두 날렸으니 빡칠만 합니다.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금기인 오현제 시대의 두 번째 황제인 트라야누스의 흉상입니다. 그런데 조형이 뭔가 심하게
재범오빠 찌찌파티!!! 같네요 ㅎㅎ 누드를 강조한 이유는 그리스 문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거기다 로마 황제는 반쯤 살아있는 신 취급 했으니 살짝 신격화가 들어간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제위 10주년을
기념해 제국 구석구석에 대량으로 뿌린 흉상이라는데, 엄청 뿌려대다 보니 전대의 황제들의 조각보다 파손되지
않은 것을 찾기 수월했던 모양입니다. 흉상 상태가 엄청 깔끔하네요. 특이한점으로는 그가 이탈리아 반도 출신이
아닌 첫 속주 출신의 황제라는 겁니다. 물론 속주 출신이긴 한데 속주민 신분은 아니고 집안이 로마 출신의 명문
유력가문이라 당연히 로마 시민권자이긴 했습니다.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인물인데, 꽤나 공격적인 스타일의
정책으로 여러 나라와 부족들과 전쟁을 해 그가 통치하던 시절 로마 제국은 역사상 최대 판도를 자랑하게 됩니다.
덕분에 후임자인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가 남긴 제국을 보존하려고 여기 뛰고 저기 뛰어 빨빨거리며 엄청
구르게 되죠. 거기다 예전의 황제들과 달리 정복한 속주에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고 상당히 잔인한 면모를 보인
인물이기도 한데, 한 예로 새로이 편입된 다키아 속주의 다키아인들을 정복 과정 중 대거 학살해 찍어눌러
로마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모두 초토화 시켜버리는 어두운 일면도 보였습니다. 다키아의 은광과 금광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원 덕에 국고는 넘쳐 흘렀고 이를 바탕으로 제국 곳곳에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실시하는 등
공공재산에 투자해 로마인들에게 있어서는 빛이자 적들과 속주민들에게 있어선 어둠인 존재가 트라야누스였죠.
하지만 찬란하고 영원할 것 같던 그의 치세도 파르티아 왕국 원정을 갔다 실패해 회군할 때 병사하면서 종말을
맞이합니다.
금으로 만든 인장 반지입니다. 저 물건은 4세기의 물건이라고 하고, 로마 성인 남성은 모두 소지하고 있었다고 하죠.
물론 빈민들은 그러지 못 했겠지만 ㅠ HBO의 드라마 ROME에도 자주 나옵니다. 명령서나 통행증을 즉석으로 발급해
줄 때 진흙을 발라 저 도장을 찍어주는 장면도 나오죠. 저 금반지는 동양의 인감 같은 것이였기에 매우 중요한
물건이였다고 합니다. 다만 위의 반지는 일반적으로 쓰인 인감은 아니고 금화를 박아넣은 반지입니다. 금화에 세겨진
얼굴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로, 3세기 군인 황제 시대로 혼란스러웠던 로마를 50여년 만에 안정시킨 황제죠.
설명에는 아마 휘하의 군인이 황제에 대한 충성을 표하기 위해 자신의 반지에 황제의 얼굴이 세겨진 금화를
박아넣은 것 같다고 하네요.
오현제 중 세 번째 황제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흉상입니다. 상당히 유능한 노력파 황제로, 그 능력을 일찍이 인정받아
트라야누스 황제의 최측근으로 활약했고 이후 트라야누스가 사망하기 직전 후계자로 세워졌습니다. 참고로 이 둘은
5촌 관계라고 하네요. 광적인 그리스 빠돌이로, 로마 역대 황제 중 처음으로 그리스 스타일로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고
이게 결국 유행이 되어 하드리아누스가 죽은 138년부터 고르디아누스 3세가 즉위하는 238년까지 단 한 명의 황제도
빠짐없이 수염을 길렀습니다. 거기다 이 황제는 진성 게이로 (정확히는 양성애자), 그의 애인이자 총신이었던 안티노우스도
매우 유명합니다. 위의 흉상도 트라야누스의 흉상처럼 재범오빠 찌찌파티!!!인데, 이는 본인이 그리스 문화에 깊히 심취해
있던 이유도 있고, 그리스의 고대 영웅이나 신들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였다고 합니다. 하드리아누스의 흉상과 전신상
등은 제국 곳곳에 널리 퍼뜨렸는데 이는 황제의 얼굴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함이였다고 하죠. 동양에서는 황제와 왕의
용안을 함부로 볼 수 없고 군주를 알현할 수 있는 것은 고위신료들이나 내시, 그리고 내명부 소속의 궁녀들이나 가능했던
것과 대조됩니다. 또한 전대 황제들과 크게 다른 점으로는 하드리아누스는 거의 이탈리아 반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과거의
황제들과는 달리 제위에 있는 내내 제국의 곳곳을 직접 발로 뛰며 눈으로 확인해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수술을 감행해
그가 죽은 뒤, 그리고 오현제의 시대가 끝나고 오랜 혼란이 찾아왔을 때에도 로마는 망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건축물로는 판테온이나 하드리아누스 방벽이 유명한데, 이 성벽을 경계로 켈트족의 영역과 로마의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 되었고 결과적으로 스코틀랜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독자적인 민족성과 문화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죠.
뜬금 없지만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장벽과도 상당히 유사한 것 같네요. 사실 웨스테로스가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것 같으니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드리아누스가 제국 곳곳을 뼈 빠지게 시찰할 때 옆에서 몸과 마음을 따듯하게 녹여주던 존재였다는 안티노우스의
흉상입니다. 11살에 하드리아누스를 처음 만나 15살에 그의 애인이 되었다고 하며 23살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타살 혹은 ■■이라고 하네요. 하드리아누스가 이 연하의 애인을 얼마나 아꼈던지, 한 번은 함께 사자 사냥을 하다
안티노우스가 사자에게 죽을 위기에서 하드리아누스가 직접 구해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사건을 그림으로 세겨넣은
청동 메달을 대중들에게 뿌리는 가 하면, 안티노우스가 죽자 악어에게 물려 죽으면 신이 된다는 이집트의 신앙을 활용해
그가 악어에게 물려 죽었다고 공식으로 발표하고 신격화 시켜 별자리와 안토니오폴리스라는 도시까지 만들어 줍니다.
위의 흉상이 머리에 포도 덩쿨을 두르고 있는 이유도 그가 신격화 되어 디오니소스와 동일시 되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안티노우스가 죽자 가뜩이나 모가 났던 하드리아누스의 성격이 더더욱 괴팍해져 그의 말년을 기록한 실록에는
사관이 “저 노인네 성격이 하도 더러워서 신하 노릇 못 해먹겠다,”라는 뉘앙스의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신으로서 꽤
잘 정착한 인물로, 그를 신격화 시켜준 하드리아누스가 죽은 뒤에도 100여년을 더 신으로서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상 롱런하지 못 한 이유는 더 라이징 오브 기독교…
통짜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로마군의 갑옷입니다. 당연히 실전용이 아니라 개선식 등의 군사 퍼레이드 같은
행사 때나 꺼내 입던 물건이죠.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알아낸 결과 3세기나 4세기의 물건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도시인 만팔루트에서 발굴되었다고 하네요. 당시 이집트가 로마에 합병되어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해 로마 군단병들 사이에서도 이집트인들 처럼 악어를 긍정의 상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악어가죽이 상당히 여러 무기와 생활용품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흉상입니다. 160년에서 17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리비아의 도시인 키레네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키레네 시민의 개인 소장품이였다고 하는데 1861년에 한 영국군
중위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말이 찾은거지 사실은 훔쳐온거 ㅋㅋㅋ 어쨌든 이 황제를 마지막으로 로마의 황금기는
끝이 나고 혼란기가 찾아옵니다. 철인황제로 불릴 만큼 뛰어난 철학자이자 선정을 베풀어 시민과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명군이었지만 계속되는 야만족의 침입과 역병으로 쉴 세 없이 여러 국경과 전장을 순시하며 뼈 빠지게
굴러야 했던 황제이기도 합니다. 혼자서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기에 벅차니 의형제이자 사위였던 루키우스 베루스에게
공동황제 자리를 줘 동시에 공동즉위를 했지만 루키우스 베루스는 너무 신나게 놀다 지쳐 병이 날 정도로 노는 것을
좋아해 제국을 다스리는데 그리 큰 도움을 주진 못 했습니다. 더욱이 동생이 39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결국 11년 간
혼자서 나라를 통치해야 했죠. 군사개혁을 하고 최전선에 직접 나아가 이리저리 땜빵을 하고 다닌 덕분에 그가 죽은 뒤
로마 최악의 암군이자 폭군 중 하나였던 그의 아들 콤모두스 황제가 나라를 개판 5분 전으로 만드는 상황까지 갔지만
국경 어디도 뚫리지 않았고,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는 총독이나 장군들도 없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선
아들에게 암살 당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이는 단순히 영화적 장치로 실제로는 전장에서 59세의 나이로 병사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유일한 실책으로 아들에게 제위를 넘겨줬다는 것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전임 황제들은 단순히
아들이 없어 똑똑한 인물을 후계자로 지명해 나라를 맡긴 것이고, 아우구스투스 처럼 외손자를 양자로 들였다가 포악하고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양하고 죽여버리기까지 할 만큼의 비정함을 갖추지 못 하다면 아들에게 양위하는 수 말고는
별 다른 도리가 없죠. 이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만의 잘못이라기 보단 전제군주제의 한계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의동생이자 정치적 파트너였던 루키우스 베루스 황제의 흉상입니다. 친형제는 아니였으나
일반 친형제 보다도 둘의 사이가 더욱 돈독했다고 하며 미남으로도 유명했던 사람입니다. 이 조각상 외에도 어릴적이나
수염을 기르기 전 등 많은 작품들이 남아있는데, 현대적인 기준으로 봐도 배우처럼 생긴 미남입니다. 금발벽안이였다고
하네요. 나라를 통치하기 보단 지위를 이용해 신나게 노는 것을 더 좋아해서 실질적으로 형에게 별 다른 도움은 주지
못했습니다. 사망원인도 너무 노는 것을 좋아해서 생활리듬이 개판이였던 것으로 인해 건강을 해쳐 급사한 것이였죠.
8년간 형과 공동통치를 하면서 한 일은 대부분 노는 것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군사적 제능이나 정치적 안목도 그닥이라
일선에서는 황제가 저렇게 가만히 있는게 차라리 더 도움이 된다며 놀게 내버려둔 채 군사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의 20대 황제이자 내란기를 끝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전신상입니다. 상당한 단신이였다고 하는데 비율로
보면 전혀 작아보이지 않습니다. 황제 보정인가 ㅎㅎ 속주였던 리비아 태생으로, 첫 아프리카 출신 황제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평생 아프리카 방언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아프리카 방언이라는 것은 고대 페니키아의 억양이 섞인
그리스어라네요. 원로원에게 임명받은 게 아닌, 경매를 통해 전임 황제를 시해한 친위대에게 제위를 산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에 대항해 군대를 일으켜 사로잡아 사형시키고 세베루스는 새로운 황제로 등극합니다. 황제를 죽여
나라를 좌지우지하려고 했던 친위대도 교묘한 술수로 도시 밖으로 꾀어내어 모두 죽이고 자기의 사람들로 채워진
친위대를 새로이 창설해 세력을 단단히 굳히는 동시에 스스로 황제를 칭하던 여러 장군들을 하나하나 격파하고
내정에도 힘을 쏟아 나라를 얼마간 안정시키는데 성공하는 등 뛰어난 술수와 정치적 안목을 보여줍니다. 20년 간
나라를 훌륭하게 통치했지만 말년이 꽤나 힘들었는데, 일단은 후계자였던 아들이 막장 중의 막장이였고, 통풍을
오래 앓아 심신이 지쳐있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아들이 얼마나 막장이였냐면 빨리 황제가 되고 싶다고 아버지를
암살하려고 여러번 시도했는데 이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정적들에게
했던 것 처럼 아들도 처단하지 못 하고 부성애에 져버린 한 인간이기도 했죠.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그러한 그의
복잡하고 씁쓸한 심정을 잘 비추어 줍니다. 아래는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원로원 의원도 했고, 변호사도 했다. 집정관도 했고, 대대장도 했다. 장군도 했다.
그리고 황제도 했다. 국가 요직은 모두 거쳤고,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이 다 헛된 것 같구나."
21대 황제인 카라칼라의 흉상입니다. 그가 재위하던 시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로마 시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를 소개할 때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하루라도 빨리 황제가 되고싶어 아버지를 해하려고 했는데,
의사들과 시종들에게 아버지를 독살할 것을 명하거나, 등 뒤에서 아버지를 칼로 찌르려다가 들켜 겁먹고 도망가는 등
별에 별 미친짓은 다 했는데, 세베루스 황제가 그를 제거하지 않은 게 큰 실수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사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우 그가 죽으며 아들인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넘겨줄 당시까지만 해도 콤모두스는 별달리 정신적
문제를 보이거나 사고를 전혀 치지 않아 차기 황제로서의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에 반해 카라칼라는 이미
싹수가 노랗다 못 해 썩어 문드러진 것이 보이는데도 부성애로 인해 처단하지 못 했죠.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죽자
공동황제로 함께 즉위한 동생 게타를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직접 칼로 찔러 죽이면서까지 단독황제 자리에 집착을
보입니다. 하지만 군인들에게 만큼은 인기가 좋았는데, 그 이유는 공동황제였던 동생을 죽인 것으로 게타 휘하의
군대가 반발하자 군인들의 연봉을 1.5배나 올려 충성을 돈으로 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국고가 텅텅
비게 되어 나라 상황은 점점 막장으로 치닫게 되고, 워낙이 흉폭해 폭정을 일삼아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에 그가
동생을 칼로 암살했듯 카라칼라도 개인적인 원한을 품은 한 병사의 칼에 암살됩니다. 대변을 보려고 바지를
내리는 와중에 찔렸다는군요. 물론 배후가 있는 암살이였지만 황제를 시해한 병사는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실제 배후였던 마크리누스는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황제의 죽음을 애도하는 척 연기를
했고 결국 황제 자리를 차지하는데도 성공합니다.
조각상들은 위의 황제들 외에도 엄청 많았지만 사람들도 너무 많고 시간도 애매해 다음을 기약하고
다른 전시물들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재미난 것을 발견했는데 이 은쟁반에 세겨진 卐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서양에서 쓰이는 卐자가 북유럽에서 유래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이미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쓰여져 왔다네요. 이 은쟁반도 3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에 나와있습니다. 무게는
약 2.7kg 정도 나가는 무거운 쟁반이에요.
대리암으로 만든 어린아이의 사르코파구스입니다. 뚜껑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신은 바쿠스(디오니소스)의
스승인 목축의 신 실레노스인데 뚜껑 자체는 이 사르코파구스가 만들어진 3세기의 물건이 아니라 근대에 새로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합니다. 석관이 훼손 된 것이 안타까워 누군가가 만들어줬나봐요. 사진에는 별로 그리
잘 나와있지는 않지만 사르코파구스의 측면에는 여러명의 날개없는 쿠피드(에로스)들이 춤을 추며 포도주를
담그고 있는데, 이는 죽은 아이를 기억하기 위해 새겨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은으로 만들어진 피규어들입니다. 디테일이 현대의 금속 피규어랑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놀라움을 보여줍니다. 무슨 수로 저렇게 정교하게 찍어냈는지 궁금하기만 할 뿐이네요.
은으로 만든 여러가지 병과 그릇, 쟁반들입니다. 3세기 중반에 갈리아 속주 북부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이라고 하는데, 기술력으로 보나 시기로 보나 완전히 로마화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상업과 수익창출의 신인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와 숫양, 수탉이 새겨진 은쟁반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동일시 되기는 하지만 목동과 나그네의 수호신의 역할 보다는
돈만 밝히는 성격이 좀 더 강한 듯 합니다 ㅎㅎ 이 물건 역시 위의 물건들 처럼 3세기에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하네요.
기원전 4세기 즈음에 만들어진 청동 투구와 흉갑, 발등 보호갑입니다. 이탈리아의 루보라는
마을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기원전 4세기 이탈리아 남부는 그리스인들이 도시들을 많이
세워 살고 있었기에 이게 그리스인들의 것인지 이탈리아 원주민들의 것인지 모른다네요.
특히 발등 보호갑은 전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유물이 몇 점 안될 정도로 귀하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그리스의 투구이지만 이것도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견된 물건입니다. 상당히 날렵하게 생겼네요.
현무암을 깎아 만든 게르마니쿠스의 흉상입니다. 현무암도 대리암 만큼 매끈하게 조각할 수 있다는 걸
사진 찍으면서 알았어요. 이 사람이 티베리우스가 시기해 죽였다고 소문이 퍼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인물인데, 아우구스투스가 살아있을 때 이 인물을 후계자로 점 찍어두고 티베리우스는 게르마니쿠스의
후견인이자 징검다리 정도의 역할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이렇게 게르마니쿠스를
편애한 이유는 그가 1대 게르마니쿠스인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의 아들이였기 때문입니다.
드루수스는 티베리우스의 동복동생이였지만 티베리우스와는 달리 어머니인 리비아 드루실라가
아우구스투스에게 시집올 당시 임신중이였고 세간에서는 뱃속의 아이가 리비아의 전 남편의 씨가 아닌
아우구스투스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돌았죠. 그리고 아우구스투스 본인도 그렇게 믿었다고 합니다. 아마
둘은 결혼하기 전부터 몰래 밀회를 가졌을 테니 그럴만 하죠. 즉 자신의 핏줄을 후계자로 삼고 싶었던
아우구스투스는 게르마니쿠스를 자신의 친손자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게르마니쿠스가 단명했기에
아우구스투스의 바램은 이루워지진 못 했지만 어쨌든 게르마니쿠스의 아들인 칼리굴라에 이어 친동생인
클라디우스가 즉위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의 혈통을 두 번 잇기는 합니다.
이는 4세기 부터 유행처럼 번진 기독교인들의 만행으로, 신격화 되어 유일신 사상에 맞지 않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상으로 불경하게 여겨진 역대 황제와 황족들의 조각상들을 찾아내는 족족 부수고 녹여버렸다고 합니다.
저렇게 코를 깨고 십자가를 얼굴에 세기는 것은 엑소시즘의 일환으로 행한 정화의식이였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제국 곳곳에 자기 얼굴을 대량으로 뿌려 알린 황제들 처럼 프로파간다에 신경쓰지 않았다면 멀쩡한 조각을 찾기가
꽤 힘들죠. 재밌는 사실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이 유명한데, 기독교인들이 이 기마상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1세로 착각해서 그대로 놔두었고,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야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 밝혀져
운 좋게 현대에까지 남겨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혁대 황제들의 대형
기마상은 그거 하나가 유일하다고 하네요.
청동으로 만들어진 클라디우스 혹은 네로 황제의 두상입니다. 네로는 클라디우스의 친자식이 아닌데 젊은
시절의 외모는 흡사했나보네요. 다만 네로일 확률이 더 높다고 쓰여있기는 합니다. 영국의 랜드햄에 있는
알드 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이 동상은 원래 전신상이였던 것을 기독교인들이 목을 쳐서 분리한 후
강물에 던져버린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예전에 터키에 갔을 때 기독교에서 교회로 쓰다 모스크로
바뀐 건축물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모자이크로 세겨진 예수나 마리아, 천사들의 눈이 모두 파여 있었죠.
왜 그런가 했더니 인간을 형상을 한 그림은 우상이기도 하고, 옛 투르크인들은 인간의 눈에 영이 있다고
믿어 기독교의 기운을 없애기 위해 파낸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양쪽 다 참 가지가지 합니다 허헣
다만 현대 터키인들이 운이 좋은 것은 선조들이 이웃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온건해서 교회 건축물들이나
유적들을 아예 파괴하는 것이 아닌, 모자이크의 눈을 파내는 정도로 끝내고 건축물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활용했다는 점이죠. 덕분에 지금도 그리스보다 그리스 유적이 많고 이탈리아 만큼 로마 유적과 기독교
유적도 많이 남아있어 관광수입으로 후손들의 배를 불려줍니다.
1세기쯤에 만들어진 청동 의자입니다. 귀족들이 사용하던 거겠지만 등을 기댈 수도 없고 쿠션도 없어서
불편할 것 같아 보이네요. 물론 당시에는 쿠션을 얹어 사용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ㅎㅎ
황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밤하늘을 질주하는 달의 여신 루나(셀레네)의 청동 피규어입니다.
올림포스 12신의 일원이자 또 다른 달의 여신인 디아나(아르테미스)와 설정이 곂쳐 인지도가
밀립니다만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긴 합니다. 아르테미스가 처녀신이자 남성혐오자라면,
셀레네는 인간 남성과 사랑을 해 50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였습니다. 문제는 이 인간 남성이
어린 소년이라는 것과, 이 소년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수면간을 통해 자식들을 본 점에서
엄청 무서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죠. 다만 제일 큰 원흉은 이 인간 소년이 불멸의 존재인 자신과도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게 영원한 생명을 내려 달라는 셀레나의 부탁을 영원한 잠이라는 형태로
준 제우스 새끼에게 있긴 합니다. 트롤러 새끼 >:(
1~2세기 즈음에 만들어진 개간되지 않은 삼림지대와 산야의 신 실바누스의 청동 피규어입니다. 머리에는
소나무를 엮어 만든 관을 쓰고 염소의 가죽을 걸쳤으며, 양손에는 각각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원래는 산야의 신이였지만 땅이 개간되던 지역에선 목초지, 전원, 공원 등의 신으로 탈바꿈 했다고 합니다.
신전은 따로 없었지만 울창하다 못해 어둡고 두렵기까지 했던 고대의 숲은 인간들이 그를 경외하는 신으로
세대를 이어 숭배하게끔 만들었다고 하죠.
마지막으로 승리의 여신 니케(빅토리아)의 청동 피규어입니다. 오른쪽 손에는 챔피언에게 씌워줄
월계관을 들고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네요. 월계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명예와
영광의 상징으로서 올림픽 경기 챔피언, 개선장군, 황제 등만이 쓸 수 있는 관이였습니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조차도 평소에는 주로 시민관을 써 겸손함을 어필할 정도로 함부로 쓸 수
없었다네요. 물론 제정이 깊게 정착한 뒤에는 황제들이 아무때나 쓰고 다니긴 합니다. 니케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어서 보통 머리, 양팔,
한 쪽 날개가 마밋! 된 형상이 가장 익숙하고 저도 직접 루브르에서 봤을 때보다 대영박물관의
청동상 니케는 별 감흥이 없었어요 ㅎㅎ 그냥 흔한 천사 같달까요.
어쨌든 계속된 컴퓨터의 반란으로 네 번씩이나 계속 썼다 지워졌다를 반복해서 한달 간 엄청
안 타-노시 했는데 이렇게 부분적으로나마 끝낼 수 있어서 되게 후련하네요. 하지만 아직도
대영박물관으로 글 올릴 분량이 반이나 더 남아있...
오른쪽 베스트 감사합니다 ㅠㅠ 네 번이나 날아가서 참 안습했는데
오른쪽에라도 오니 그나마 보상받은 느낌이네요 흨흨
(IP보기클릭)118.36.***.***
VIP 전용 카페 말고 안에 일반 카페도 있습니다. 배고프면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데 물론 맛은 없습니다. ............ 박물관 오픈 하는 시간에 들어갔다가 폐관 하는 시간에 나왔는데 처음 들어가서 오디오 가이드 들고 우측의 긴 방 하나를 가이드 다 들어가며 자세히 보니 2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응?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는 주요 유물 위주로 빠르게 둘러보니 간신이 폐관시간까지 대충 볼 수 있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죄다 뜯어다가 전시해놓은곳에서 와 이런 시1벌놈들 싶었고 로제타 스톤 진품을 보고 감동먹기도 했습니다. 대영박물관은 무료인데 그 이유가 국제법상 자국의 유물이 20%인가가 안되면 입장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네 거대한 약탈품 보물창고라고 볼수도 있죠. 루브르 박물관은 이거보다 2배 이상 큽니다. 유명한 전시물 3~4개 보고 나온다 = 2~3시간 유명한 주요 전시물을 보고 나온다 = 1일 유명한 전시물을 보고 저명한 전시물도 몇개 본다 = 2일 저명한것 까지 좀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 3일 모든 유물을 일일히 오디오 가이드 설명 들어가며 보고싶다 = 5~6일
(IP보기클릭)65.93.***.***
대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쓰입니다. 옛 위상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영국은 여전히 해외 여러곳에 속령들을 보유한 제국인 것은 맞습니다. 거기다 영연방국들은 독립하긴 했지만 형식상 여왕과 영국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고 총독들도 따로 두고 있죠. 물론 임페리얼 브리티시 뮤지엄도 아니고 브리티시 뮤지엄이니 영국박물관으로 칭하면 되긴 하겠는데 대영박물관이라는 이름이 워낙 널리 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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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보태자면 대영이라는 명칭을 일제의 잔재로 많이들 착각하고 계시지만 이미 조선시대에 명명된 명칭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처음 대영국이라 칭하는 기록은 순조실록 32권, 순조 32년 7월 21일 을축 4번째기사 - "홍희근이 홍주의 고대도 뒷 바다에 정박한 영길리국의 배에 대해 보고하다"(http://sillok.history.go.kr/id/kwa_13207021_004)에 나와있는데 영국이라는 나라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네 나라를 합쳐 왕국을 이루기 때문에 대영국이라 칭한다고 기록되어있죠. 그리고 순조실록 이후로 헌종실록과 고종실록에도 8번이나 더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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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감상하고갑니다 ㅎㅎ
(IP보기클릭)61.79.***.***
잘 감상했어요 사진마다 재밌는 설명때문에 더 술술 읽히네요
(IP보기클릭)112.214.***.***
잘 감상하고갑니다 ㅎㅎ
(IP보기클릭)65.93.***.***
감사합니다 :) | 17.04.30 03:46 | |
(IP보기클릭)220.117.***.***
"1965년 한 일본인 교수가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 저 유물의 기증에 대해서는 비판이 강합니다. 엄연히 한국역사인 비파형동검을 마치 일본이 전수해줘서 한국이 그와같은 물건을 만들수있었다고 유도했다는 것이죠. 이런걸 차단하려는 한국정부의 노력도 지난 9년간 사실상 멈춘상태였구요. | 17.05.03 12:25 | |
(IP보기클릭)65.93.***.***
저건 비파형동검이 아닙니다. 생김새가 많이 다르거든요. 그리고 박물관에서도 청동검이라 설명하지 않고 제가 써놓은 대로 창날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유물에 대해 일본에서 한반도로 넘어갔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본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박물관 측에서 제대로 설명하고 있어요. | 17.05.03 14: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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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교훈을 주긴 하죠 ㅎㅎ | 17.04.30 03: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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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말로만 듣다가 이제야 가봤지만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역시 전 세계에서 약탈해 온 스케일 답달까요 ㄷㄷ 저는 이번 여름에 한 번 더 갈 계획인데 이번엔 계획을 잡고 한 3일은 저기서 놀아야 겠어요 ㅎㅎ | 17.04.30 1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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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65.93.***.***
계획없이 두서없이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ㅠ | 17.05.01 03:12 | |
(IP보기클릭)222.98.***.***
(IP보기클릭)65.93.***.***
저도 파르테논 신전에 가봤는데 정말 관리가 안 되어있기는 하더군요. 거기다 볼게 정말 적었던 게, 하도 보수 공사를 하고 있던 터라 들어가볼 수 있는 곳도 없고 다 멀찍이서 사진이나 찍는 게 전부였습니다. 다른 박물관들처럼 가이드 책자나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수 있던 시스템도 아니였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파르테논 신전의 예술품들이 죄다 뜯겨나가 비닐류님이 얘기하신 엘긴 마블 전시관에 죄다 있기 때문에 정작 그리스 본토의 박물관에서는 복제품이나 실컷 보다 왔습니다 ㄷㄷ 그리고 그리스인들이 이를 가는 이유가 당시 예술품들을 죄다 영국인들이 헐값에 사갈 때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영국과의 거래였지 그리스 정부가 판 게 아니니 열 받을 수 밖에요 ㅠ | 17.05.01 03:19 | |
(IP보기클릭)61.79.***.***
잘 감상했어요 사진마다 재밌는 설명때문에 더 술술 읽히네요
(IP보기클릭)65.93.***.***
긴 글인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 17.05.01 03:20 | |
(IP보기클릭)218.147.***.***
(IP보기클릭)65.93.***.***
그냥 영국박물관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워낙 대영박물관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그리 표기했습니다 ㅎ 그리고 크기가 크긴 크죠 ㄷㄷ 진짜 다음에 가면 계획을 짜서 하루는 어느 섹션 커버하고 다음날은 어디 관람하고 해야겠습니다. | 17.05.01 03:21 | |
(IP보기클릭)118.36.***.***
VIP 전용 카페 말고 안에 일반 카페도 있습니다. 배고프면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데 물론 맛은 없습니다. ............ 박물관 오픈 하는 시간에 들어갔다가 폐관 하는 시간에 나왔는데 처음 들어가서 오디오 가이드 들고 우측의 긴 방 하나를 가이드 다 들어가며 자세히 보니 2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응?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는 주요 유물 위주로 빠르게 둘러보니 간신이 폐관시간까지 대충 볼 수 있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을 죄다 뜯어다가 전시해놓은곳에서 와 이런 시1벌놈들 싶었고 로제타 스톤 진품을 보고 감동먹기도 했습니다. 대영박물관은 무료인데 그 이유가 국제법상 자국의 유물이 20%인가가 안되면 입장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네 거대한 약탈품 보물창고라고 볼수도 있죠. 루브르 박물관은 이거보다 2배 이상 큽니다. 유명한 전시물 3~4개 보고 나온다 = 2~3시간 유명한 주요 전시물을 보고 나온다 = 1일 유명한 전시물을 보고 저명한 전시물도 몇개 본다 = 2일 저명한것 까지 좀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 3일 모든 유물을 일일히 오디오 가이드 설명 들어가며 보고싶다 = 5~6일
(IP보기클릭)65.93.***.***
일반 카페는 맛이 없군요 ㅋㅋ 뭐 영국맛이 거기서 거기니 무슨 맛의 샌드위치들을 팔 지는 대충 상상이 가네요 ㅎㅎ 그리고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진짜 계획없이 가면 손해인 것 같아요. 저도 다음엔 계획을 짜서 며칠 시간을 들여 보고 와야겠어요.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온 것들은 영국 입장에서는 제값 주고 사왔다고 우기지만 그리스는 당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식민지라 그리스가 판 게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가 팔아치웠고 지금도 이를 갈 정도로 빡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ㄷㄷ 그리고 루브르는 옛날에 한 번 가봤는데 그때는 자유여행이 아니라 관광회사를 끼고 단체로 투어를 해서 진짜 유명한 작품 몇 점 보고 그냥 발도장만 찍고 나와서 루브르가 그렇게 큰 지도 지금껏 몰랐네요. 언제 한 번 제대로 보고 오고 싶어요 ㅎㅎ | 17.05.01 03:26 | |
(IP보기클릭)61.75.***.***
크기도 크지만 유물의 퀄리티도 장난 아닙니다. 유명하다고 하이라이트 되어있는것이 아니라 그냥 스윽 지나가며 보는 유물 하나 하나가 우리나라 에서는 특별전 같은데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루브르에만 3일 있었던 박물관 덕후가 여기 있습니다. ............. 이번 파리여행에서는 시간 남는거 항공우주 박물관에 갔는데 고고학박물관은 언제 가보나 싶네요. 파리에 있던게 3회에 걸쳐 한달 가까이 체류했는데 아직도 가고 싶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남은게 언제 또 가나 싶습니다. 물론 런던도 7일간 체류했는데 반도 못봤어요 조만간 꼭 다시 가야할것 같아요. | 17.05.01 10:27 | |
(IP보기클릭)65.93.***.***
루브르도 마음 먹고 둘러보면 정말 재미나겠네요 ㅎㅎ 그리고 런던에 또 가시면 여러곳 다녀오시면 좋겠어요. 박물관 덕후들한테는 진짜 재미난 곳이죠 ㅎㅎ | 17.05.01 11:20 | |
(IP보기클릭)122.43.***.***
(IP보기클릭)65.93.***.***
오호 저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시연하는 건가요? ㅎㅎ 아프리카관에 가보니 음악이랑 춤으로 공연중이던데 시연 이벤트를 꽤 많이 하나보네요 ㅎㅎ | 17.05.01 03: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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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65.93.***.***
그렇긴 한데 위키피디아 뿐만 아니라 여러 백과사전들에도 대영박물관으로 소개하는 데다가 워낙 예전부터 그렇게 들어와서 더 친숙하달까요 ㅎ | 17.05.01 03:30 | |
(IP보기클릭)58.225.***.***
개인적으론 영국 박물관이라기 보다 대영 박물관이라고 적어두는게 더 알맞다고 생각하네요. 저거 전부다 대영제국 시대에 식민지에서 약탈해온 물건이지, 영국의 보물들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표기할거라면 당시 영국령 아래에 있던 모든 식민국가 문화들을 대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영국 박물관이라고 하면 마치 스코틀랜드도 빼고 아일랜드도 빼고 당시 제국령 아래 있던 세계 4분의 1의 규모의 식민지들도 다 빼고 저 조그만한 섬나라의 보물처럼 표현되는 느낌이라.... | 17.05.02 18: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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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당시 해양민족으로 유명했으니까요 ㅎㅎ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반도 남부도 로마에 합병되기 전엔 거의 그리스나 다름 없었고요ㅎ 그리고 로마가 그 거대한 규모의 제국으로서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근과 채찍을 정말 교묘하게 적절하게 사용해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다신교가 뿌리내린 로마에서 외국의 종교와 신을 수입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죠. 사람도 죽으면 신으로 올릴 정도니 ㅎㅎ | 17.05.01 03:34 | |
(IP보기클릭)121.164.***.***
ㅋㅋ황제한테 사랑받으면 신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기분좋은일일련지 ㅋㅋ 부럽습니다 저도 한번 가보고싶네요 | 17.05.01 06: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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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황제의 사랑을 안 받아도 좋으니 평범한게 좋습니다 ㅠ 안티노우스도 의문사를 했기에 분명 자의로 죽은 것은 아닐 것 같아요 ㄷㄷ 신도 되고 별자리도 생기고 도시도 세워졌지만 겨우 20대 초반에 죽기엔 ㅠ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가보세요 ㅎㅎ 볼거리가 참 많아요 :) | 17.05.01 07: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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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은 어렸을 때 가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나서 한 번 또 가보고 싶어요 ㅎㅎ 한국에도 좋은 박물관들이 많고 옛날에 꽤 많이 여러곳 가보긴 했는데 다 초등학생 때 가봐서 기억이 흐릿하다는 게 문제 ㅠㅠ | 17.05.01 03: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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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 17.05.01 03: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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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당이였군요 ㅎㅎ 그리 어려운 한자가 아니라 알아봤을 법 한데 아마 글씨체 때문인가 전혀 집작도 못 햇어요 ㄷㄷ 그리고 일본 다기는 투박함의 미학을 찾는다나 하면서 유행이 되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럴거면 애초에 조선 도공들을 끌고가지 않아도 됐을 것을 ㅠ | 17.05.01 03: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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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볼게 많더군요. 사실 런던 시내는 자연환경이 예쁘거나 한 것은 아닌데 박물관이 정말정말 많아서 이쪽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진짜 유럽 다른 어느 도시들보다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ㅎㅎ | 17.05.01 03: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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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다녀오셨군요 ㅎㅎ 한국관은 가보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투어를 참 많이 오더라고요 ㅎ | 17.05.01 03:39 | |
(IP보기클릭)66.190.***.***
덕분에 추억이 새록새록입니다. | 17.05.01 0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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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해주신 구다라관음은 찾아보니 무려 백제 스타일로 조각한 조각상이군요 ㅎㄷㄷ 백제 양식의 조각이 일본에서 만들어져 지금은 영국에도 하나 가져다 놓은 것을 보니 신기해요 ㅎㅎ | 17.05.01 05: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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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게,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대부분의 조각상들이 모두 도색했다고 하네요. 세월이 지나 칠이 벗겨진 것인데 그걸 모르고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는 그냥 칠하지 않고 조각만 한 것이고요 ㅎㅎ | 17.05.01 06:54 | |
(IP보기클릭)114.205.***.***
(IP보기클릭)65.93.***.***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리고 지식이랄게 있나요 그냥 수박 겉핥기 식이죠 ㅎㅎ | 17.05.01 11:21 | |
(IP보기클릭)58.238.***.***
(IP보기클릭)65.93.***.***
대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쓰입니다. 옛 위상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영국은 여전히 해외 여러곳에 속령들을 보유한 제국인 것은 맞습니다. 거기다 영연방국들은 독립하긴 했지만 형식상 여왕과 영국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고 총독들도 따로 두고 있죠. 물론 임페리얼 브리티시 뮤지엄도 아니고 브리티시 뮤지엄이니 영국박물관으로 칭하면 되긴 하겠는데 대영박물관이라는 이름이 워낙 널리 쓰이니까요. | 17.05.01 14:26 | |
(IP보기클릭)65.93.***.***
조금 더 보태자면 대영이라는 명칭을 일제의 잔재로 많이들 착각하고 계시지만 이미 조선시대에 명명된 명칭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가장 처음 대영국이라 칭하는 기록은 순조실록 32권, 순조 32년 7월 21일 을축 4번째기사 - "홍희근이 홍주의 고대도 뒷 바다에 정박한 영길리국의 배에 대해 보고하다"(http://sillok.history.go.kr/id/kwa_13207021_004)에 나와있는데 영국이라는 나라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네 나라를 합쳐 왕국을 이루기 때문에 대영국이라 칭한다고 기록되어있죠. 그리고 순조실록 이후로 헌종실록과 고종실록에도 8번이나 더 언급됩니다. | 17.05.02 01:03 | |
(IP보기클릭)58.225.***.***
일제의 잔재가 아니라 실제로 스스로를 대영으로 부르던 시기가 있었어요. | 17.05.02 18:02 | |
(IP보기클릭)182.172.***.***
작년에 빙상대회였나 출전했을때 Great Britain걸고 뛰더군요.... | 17.05.02 18:39 | |
(IP보기클릭)112.162.***.***
(IP보기클릭)65.9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 17.05.01 14:26 | |
(IP보기클릭)147.47.***.***
(IP보기클릭)65.93.***.***
감사합니다 :D | 17.05.02 00:46 | |
(IP보기클릭)211.226.***.***
(IP보기클릭)65.93.***.***
개구리 누나는 밥만 먹고 도서관 갔어요 헤헿 | 17.05.02 00:46 | |
(IP보기클릭)115.145.***.***
(IP보기클릭)65.93.***.***
개구리 누나입니다 :) | 17.05.02 00:47 | |
(IP보기클릭)211.212.***.***
(IP보기클릭)65.93.***.***
가면 사진 한 장만 사용하실 거라면 강좌 글에 사용하셔도 괜찮습니다 ㅎㅎ | 17.05.02 00:49 | |
(IP보기클릭)121.149.***.***
(IP보기클릭)65.9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찌찌까지 표현한 것은 당시 남성의 몸은 완벽함의 상징으로서 그 자체를 예술이라고 보았기에 그렇다고 합니다 ㅎㅎ | 17.05.02 09:00 | |
(IP보기클릭)58.151.***.***
(IP보기클릭)65.93.***.***
감사합니다 :D 제가 계획을 세우지 않고 대충 둘러봐서 사진을 많이 못 남겨 아쉽지만 2편도 최대한 노력해서 써보겠습니다 :) | 17.05.02 10:08 | |
(IP보기클릭)117.20.***.***
(IP보기클릭)65.93.***.***
ㅠㅠ | 17.05.02 10:08 | |
(IP보기클릭)221.143.***.***
(IP보기클릭)65.93.***.***
사실 요즘 직원들도 영국인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소근) 그리고 박물관 간판급 전시물인 루이스 체스맨도 잉글랜드산이 아니라 사실 스코틀랜드산이래요 (소근) | 17.05.02 12:48 | |
(IP보기클릭)122.47.***.***
(IP보기클릭)65.93.***.***
저도 사먹으면서 퀄러티나 가격이나 양이나 참 창렬하다 싶었지만 뭐 피쉬 앤 칩스 맛이 사실 거기서 거기일테니 제대로 된 식당에 들어가서 먹기는 좀 그렇더군요. 워낙 외식하기 비싼 동네다보니까요 ㅎㅎ | 17.05.02 14:06 | |
(IP보기클릭)115.40.***.***
그 뭐지.. 레미제라블 보러간 퀸즈씨어터 맞은편 골목에 보면 스포츠펍이 하나 있는데, 뭐라더라 피쉬앤칩스 무슨 어워드에서 3년동안 우승했다고 하는 집이더군요 ㅋㅋ 저는 뮤지컬 보러 갔다가 시간이 1시간정도 딱 뜨길래, 마침 영국에서 피쉬앱칩스를 아직 먹기 전이어서, 하나 시키고 맥주 2~3잔 먹었는데용, 맛있더라구요. 저는 사실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특히 생선까스류.. 입에 넘 안맞는 ㅋㅋ) 맛있더라구요 :) 가격도 창렬하긴 했어도(아마 그게 10파운드가 넘었던 것 같은..ㅋㅋ) 별로 아깝지 않았습니다. 혼자 먹긴 양이 너무 많아서 대충 먹다가 나왔는데, 그 집은 맛있는 집(이었다고 지금도 믿기로 하고 있음) 이었습니다. 한 번 쯤 가보세요. 혹시 아직 런던이시라면 ㅋㅋㅋㅋ | 17.05.03 04:07 | |
(IP보기클릭)65.93.***.***
이미 두달 전에 귀국했습니다 ㅠ 다만 다음달에 또 영국을 가긴 하니 한 번 추천해주신 곳에도 가봐야겠네요. 양만 많고 맛만 있다면 10파운드 넘어도 괜찮죠 ㅎㅎ | 17.05.03 04:11 | |
(IP보기클릭)115.40.***.***
https://www.google.co.kr/maps/dir//51.5113209,-0.1327762/@51.5114985,-0.1326293,18z 여깁니다. 구글맵스엔 따로 표기되진 않았네용 ㅎㅎ | 17.05.03 04:17 | |
(IP보기클릭)65.93.***.***
감사합니다 :D | 17.05.03 04:23 | |
(IP보기클릭)218.158.***.***
(IP보기클릭)65.93.***.***
그런데 무시무시한 것이 제가 계획없이 방문했던 터라 전시되어있던 것들 중 찍어온 것의 양은 거의 1/100이나 될까 말까 싶습니다 ㄷㄷㄷㄷ | 17.05.02 16:07 | |
(IP보기클릭)65.9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 17.05.02 16:08 | |
(IP보기클릭)211.209.***.***
(IP보기클릭)65.93.***.***
뭔가 해서 찾아봤더니 메이플스토리 도적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7.05.03 01:41 | |
(IP보기클릭)115.40.***.***
(IP보기클릭)65.93.***.***
조선왕조의궤는 프랑스가 전리품으로써 훔쳐간 것이지만 파르테논에서 떼어온 것들은 영국이 돈 주고 사온 것이라 문제가 되죠. 일본에도 조선왕실 보물들이 많은데 이게 헐값이나마 형식적으로 사갔기에 반환받기 힘들죠. 교묘한 놈들입니다 ㄷㄷ 그리고 저 동네는 확실히 폐관시간에 얄짤없긴 하더군요 ㅎㅎ 저도 타워 오브 런던에서 폐관시간이 되서 슬슬 나가는데 계속 요먼 경비병이 빨리 걸으라고 압박을 ㄷㄷㄷ | 17.05.03 04: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