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오늘은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 이 동네를 걸으며 언제나 눈에 들어왔던
타워 브릿지나 가볼까 하며 숙소를 나왔습니다. 겸사겸사 수제 블랙 푸딩도 사야겠다 하고
굳이 타워 브릿지로 바로 향하지 않고 런던 브릿지 쪽으로 갔건만 이때는 몰랐죠.
버러 마켓의 상점들은 일요일에 닫는다는 것을. 시장 입구가 굳게 닫혀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ㅂㄷ거리며 런던 브릿지를 건너 강변을 따라 타워 브릿지 쪽으로 향했습니다.
여러분도 여행을 하실 때엔 꼭 사전조사를 하고 갑시다. 저처럼 인터넷 뒀다 엿 바꿔 먹지 마세요 흨흨
제가 지나온 루트로 걸으면 타워 브릿지보다 타워 오브 런던(이하 런던 탑)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고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아직 오전이라
사람도 그리 많지 않기에 한번 들어가 볼까 해서 매표소에 가봤는데 가격에 하늘도 땅도
놀라 매우 재빠르게 포기합니다. 하지만 이때도 몰랐죠. 몇시간 후면 어짜피 또 돌아와
결국에 입장하게 되니 그냥 시간 넉넉할 때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는 것을.
파노라마나 한장 박아야지 했더니만 색이 이상하게 나왔습니다.
제가 무슨 설정을 잘못 건들였는지 파노라마는 무조건 뿌옇게 나오네요.
내 카메라가 고자라니!
너무 비싼 너. 그리고 뭘 먹으라고 그렇게 자신감 있게 써놓은거야?
여기서 파는 피쉬 앤 칩스도 가격 엄청 창렬하더만!
단단해 보입니다. 그리 높거나 으리으리하지는 않으나 요새로서는 충분히 제 기능을 할 것 같이 생겼네요.
사실 지어진 이후 외적의 침입이 없어서 요새로 쓴 적이 거의 없지만서도.
걷던 중 캐나다 국기가 보이길래 혹시 대사관인가 했는데 이후 찾아보니
이전에는 런던항만청 본부였고 지금은 그냥 호텔이라네요. 왜 유니언 잭을
안 걸어놓고 커먼웰스의 국기를?
앞을 지나가는 한무더기의 관광객들 ㅎㅎ
런던에는 주요 건축물이나 시설에는 언제나 방패휘장(Coat of Arms)이 세겨져 있더군요.
당연히 제각기 디자인이 모두 다릅니다.
활이나 총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이 정말 많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첫 관문인 아치에 도착했습니다. 다리 위로 올라가는 것만 아니면
입장료가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모두들 셀카봉을 들고 있는 것은 덤.
강 주변 어딜가나 보이는 사우론의 탑, 더 샤드.
타워 브릿지의 이름이 이렇게 정해진 것은 디자인을 런던 탑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화이트 타워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죠. 그래서 그냥
다리일 뿐인데도 뭔가 복잡하고 웅장한 디자인입니다.
늘 생각하던 거지만 템즈 강 수질은 진짜 더럽... 그래도 낚시는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붕장어가 잘 잡힌다네요. 옛날에 노르웨이 국왕이 선물한 북극곰은 저기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놀도록 허락되었대요.
매표소에서 표를 삽니다. 학생할인을 받아 £6.30였는데 여기가 돈내고 들어가는 곳 중에선
제일 혜자스러운 곳이였어요. 문제는 의외로 생각보다 볼 게 없더라는 거지만. 웃긴 건 매표소 직원이
제 학생증을 보지도 않고 통과시켜주네요. 일을 하러 직장에 나왔으면 제대로 일해라 이 사람아.
다리 위로 올라가기 위한 엘리베이터입니다. 근데 영국에선 엘리베이터라는 단어를 안 써요.
다른 정교한 조각들에 비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저걸 보면서 새삼
석재 조각 장인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싶었습니다. 저걸 망치랑 못으로만
깍아내라니 저는 못 할 것 같네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맨 처음 내리면 도착하는 곳입니다.
가이드 분이 한분 계시고 영상을 통해 왜 언제 어떻게 다리를 짓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줍니다. 올해 6월이면 123주년을 맞이한다고 하네요.
당시 다리든 건물이든 위에 올라가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는 안전장비 하나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저 같이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밥벌이도 못 할 시대네요 허헣
5명의 주요 건설자 중 한명인 존 잭슨 경입니다. 눈매가 매서워요.
맨 처음 도착한 곳을 곧장 가로질러 나가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옵니다.
그런데 창문 구조라던가 각도라던가 이것저것의 이유 때문에 밖을 찍기가 좀 거시기 합니다.
실외로 나갈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었다면 더 좋았겠는데 그런건 없더라고요.
런던에는 다리가 참 많습니다. 사실 필요 이상으로 많아요. 강변을 걷다보면
한 5분마다 다리가 하나씩 있을 정도예요. 템즈 강에만 200개가 넘는 다리가 있거든요.
고소공포증을 가진 파오후는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어봅니다.
템즈 강물 정말 더럽 X2
이래 지을까 요래 지을까 고민을 하던 흔적입니다. 두번째 디자인도 꽤 예쁘네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디자인. 지금의 타워 브릿지의 모습이죠.
21세기인 지금도 노동자들은 조각상으로 다시 태어나 일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흨흨
어떻게 지어졌는지 영상을 통해 해설이 나왔습니다. 꽤나 자세하게 설명해주네요.
HMS 벨파스트 응딩이 히힣
...와 존재감을 뽐내는 사우론의 탑. 다리 위에서는 전술했다시피 사진 찍기도 좀 애매하고
유리바닥에서 사람들이 아예 주저앉아 사진을 찍으며 뒹굴거리길래 그냥 대충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올라올 때는 엘리베이터 태워주더니 내려갈 때는 알아서 걸어 내려가라네요 허헣 고얀 놈들 허헣
그래도 계단 내려갈 때 심심하지 말라고 런던의 랜드마크들을 소개해놨네요. 반짝반짝
런던 아이. 세계에서 제일 큰 관람차였네요. 왜 몰랐지 ㄷㄷ
멀리서 한번 본 적이 있긴 한데 낮인데다가 날씨가 우중충하기까지 해서
그닥 예쁘지는 않았습니다. 밤에는 그나마 괜찮아요.
입장료가 꽤 비싸서 고민하다 그냥 안 들어가본 곳. 나중에 한번 가봤으면 좋겠네요.
예술 쪽은 문외한이라 예술 박물관을 잘 안 찾아 다니다보니 가볼 기회가 없던 곳.
누나가 못 들어간다고 구라를 쳐서 안 가본 곳. 2차대전 때도 무너지지 않아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영국의 상징이 되었고
꽤 많은 역사속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넬슨 제독과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가 있네요.
트라팔가 광장에 서있는 넬슨 제독의 기념비인데 엄청나게 큽니다.
너무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넬슨 얼굴은 보이지도 않아요.
유럽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고 대놓고 구라를 쳐놓은 더 샤드.
왜 모스크바는 유럽 도시로 안 치나요? EU 회원국의 도시가 아니라?
이제 곧 니들도 아닌데 헤헿
런던 최초의 마천루인 세인트 메리 엑스입니다. 멀리서 몇번 봤는데 생긴게 총알처럼 생겼어요.
숙소 주위 동네를 걷다보면 맨날 보는 시청 건물
그리고 이따 가볼 런던 탑.
그래도 몇층만 내려가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태워줍니다. 그냥 처음부터 태워줘도 괜찮은데.
엘리베이터에는 가이드가 한명 대기하고 있고, 기념품점 10% 할인권을 나눠주며 어딧는지 위치를 알려줍니다.
사실 기념품점만 목표가 아니라 기관실이랑 함께 딸려있어서 어짜피 구경하려면 갈 수밖에 없는 구조죠.
나는 팔고싶어! 너와 함께!
옛날에는 전기가 흔하지 않으니 수력과 화력을 이용해 다리를 올리고 내렸습니다.
여기는 석탄으로 열기를 만드는 장소네요.
뭔가 칙칙폭폭 소리를 낼 것 같이 생긴 기계. 하지만 이제는 작동은 안 되니 당연히 소리는 커녕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바퀴? 물레방아? 여튼 이렇게 생긴 기계는 열심히 돌아갑니다.
이 기계가 설치된 방은 두갠데, 한곳에서만 작동해요. 물론 요즘은 전기로
다리를 올렸다 닫기 때문에 이건 그냥 퍼포먼스입니다.
앗, 빛이... 너의 정체는 뭐냐...
히트 프레셔 실린더냐 하이 프레셔 실린더냐 그것이 문제로다
기관실 볼거리는 이게 끝으로 곧바로 출구로 나갑니다.
구성이 살짝 아쉽지만 뭐 가격이 착하니까 넘어갑니다.
이것 저것 설명은 많았지만 그냥 대충 사진만 찍고 패스했습니다. 역시 제 관심 분야가 아니면
의욕이 없네요 허헣
가파른 계단
가파른 사다리
넌 뭘까?
밖으로 나오면
작은 기념품점이 나옵니다. 뭐 크게 땡기는 것은 없었지만 부모님 기념품도 사서 가야하고
어짜피 10% 쿠폰 받은 김에 두어개 샀습니다.
밋밋한 런던 브릿지만 주로 사용하다 타워 브릿지를 걸으니 되게 마음에 드네요 ㅎㅎ
언제 어디서나 인간계를 내려다보는 사우론의 눈
사진을 대충 여러장 박은 뒤, 다시 런던 탑 쪽으로 걸어가봅니다.
심지어 이때까지만 해도 입장할 생각은 없었죠. 그냥 산책로가 있길래
사진이나 찍을까 해서 걸었을 뿐 흨흨
장미의 한 종류인 것 같은 꽃. 런던이 하도 따듯하다보니 한달 전인 이때 벌써
심지어 며칠째 눈보라만 치는데 ㅠㅠ
지금은 다리도 생기고 해서 상대적으로 런던 탑이 작아보이지만
940년 즈음 전에 지어졌을 때는 런던에서 가장 높고 큰 건물이였다죠.
하긴 애초에 요새가 아니라 왕궁으로 지은 건물이다보니 ㅎㅎ
동쪽에서 런던 탑으로 들어올 수 있던 성문의 터입니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져 없지만 원래 런던 탑은 외벽과 내벽이 따로 있는 성이였으니까요.
아주 오래 전 무너진 뒤 땅에 묻혀 잊혀져 있던 것을 지하철 공사를 하다 발굴했다네요.
지어진 시기는 13세기 즈음이고 성문에는 두겹의 두꺼운 나무로 된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글쓴이의 수고를 마구마구 덜어주는 친절한 한글 해설 헤헿
한글로 된 해설은 왕립박물관이나 그 소속 박물관들에는 없었는데
여기서 보니 뭔가 신기했어요.
진상짓 하는 관광객들을 골라내려고 궁수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습니다 흨흨
지금이야 저렇게 잔디가 푸르지만 원래는 그냥 똥밭이였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건물들이 다 그렇듯 화장실은 높으신 분들이나 사용하는 거였는데,
이게 왕궁이자 요새이다보니 언제나 2500명쯤의 인원이 탑에서 살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요새 밖에도 군기지가 있어 너도나도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던 탓에
악취가 장난이 아니였다고 하네요. 런던 탑이 지어진지 대략 500년 뒤에나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으으 다시 돌아와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아침에 입장하는건데 ㅠㅠ
학생할인은 받아 £19.50으로 표를 샀습니다. 비싸다 비싸.
그런데 단순히 저 가격만 안습한 것이 아니였으니... 두둥! (카페X네)
참고로 나중에 찾아보니 멤버쉽은 £50로,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횟수 제한 없이
런던 탑을 포함한 6개의 궁성에 입장할 수 있으니 이런 쪽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는
상당히 좋은 딜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이번 여름에 런던 갈때 쓰려고 하나 질렀어요.
런던 탑 공식 사이트를 통해 구하실 수 있는데, 멤버쉽 카드가 주소로 배달되는 데에
한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니 영국에 가시기 전에 미리미리 주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사이트를 통하면 새벽녘 투어 예약도 가능한데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처형된 사람만
3063명이라 심령현상이니 괴담이니 하는 이야기거리가 많이 존재해서 새벽녘 투어도
나름 재밌을 것 같네요.
입구에서 표를 두번씩이나 확인하는데 어떤 사람은 표도 안 사고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하더군요.
와-이! 대단-해! 너는 뻔뻔함이 넘쳐나는 프렌즈구나!
런던만 해도 국제공항이 6개에 소규모 공항도 많다보니 비행기가 참 많이 날아다니더군요.
제가 항공기 덕후가 아닌 게 다행이였죠. 경비병 설명도 안 듣고 비행기만 찍었을 테니 ㅎㅎ
두번째 표 검사를 마치고 미들 타워를 통해 런던 탑 안으로 들어갑니다. 저기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이유는 저기가 요먼 경비병이 가이드를 해줄 때 사람들을 불러모아 가장 먼저
해설을 해주는 미팅 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별도의 가이드비가 있는 것은 아니고, 요먼
경비병의 해설을 따라다니며 듣거나 음성해설 기계를 받아 혼자 돌아다니며 듣는 것이
옵션입니다. 역사적 배경 해설 다 필요없고 그냥 사진만 열심히 찍겠다 싶으시다면 그냥
발이 인도하는대로 걸어다니셔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참고로 요먼 경비병들의 발음이
완전 영국 발음이고 심지어 지방 사투리 쓰는 사람도 있기에 알아듣기 좀 자신없다
싶으시다면 그냥 음성해설 기계를 받으셔도 되지만 음성해설 기계는 요먼 경비병처럼
개드립을 치는 유머감각은 없으니 이왕이면 경비병을 따라다니며 해설을 들으실 것을
강력하게 추천 드립니다. 제가 속해 있던 그룹 요먼 할아버지 완전 웃겼어요 ㅎㅎ
좀 더 일찍 올걸 ㅂㄷㅂㄷ
제가 참여한 투어가 마지막 투어였습니다. 저때만 해도 엄청나게 낙관적이여서
어짜피 5시에 닫는데 다 둘러볼 시간은 넉넉하겠지 하고 착각에 빠져있었죠.
그리고 실제로는 겨울엔 4시 반에 닫더군요. 일해라 영국놈들! 적어도 5시까지는 열라고!
혹시 런던을 여행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어딜 가든 아침에 가세요. 여기처럼
큰 곳은 말 할 것도 없고 일반 박물관 한 군데만 둘러봐도 2~3시간 가지고는
정말 택도 없습니다.
런던 탑의 지도입니다. 얼핏 보면 오각형 같지만 실제로는 크게 삐뚤어진 육각형입니다.
제가 우유부단하게 밍기적 거리다 늦게 가서 겨우 한 20% 정도 밖에 못 둘러본 것 같네요 ㅂㄷㅂㄷ
아까부터 요먼 요먼 거렸는데, 이게 뭐냐면 15세기쯤에 출현한 신분계층으로, 농노가 아닌 독립 자영 농민,
그리고 17세기 이후엔 부농으로 성장하여 젠트리 계급과 함께 영국의 등뼈를 이룬 중산계급입니다. 이들은
군대에서 기사나 종자보다는 아래이나 일반 병졸보다는 높은 계급으로, 요즘의 부사관과 비슷한 위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도 요먼 경비병이 되려면 준사관 중 최소 22년 장기복무한 군인들만 지원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는데 과반은 육군 출신이라고 합니다. 육군 출신은 25명쯤 있고, 공군, 해군, 해병대 출신들을
다 합쳐도 15명을 넘지 못 하더군요. 일단 뽑히면 성밖의 집에서 출퇴근 하는 것이 아니라 런던 탑 내부의
군인 주택에서 살게 됩니다. 대부분 기혼이라 온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 대부분이라네요. 이들을 위해
런던 탑 내부에는 경비병 전용 술집과 병원도 존재합니다. 참고로 군에서 은퇴해서 요먼이 되는 것은
아니고 아직도 현역인 군인들입니다. 특이한 점으로는 아이작 뉴턴이 한때 런던 탑 기숙사장(이라고
해야하나 동대표라고 해야하나)을 지내며 공직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뉴턴이 중력을"
발명"한 이후 세계인들이 더이상 공중에 둥둥 떠다니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 축복을 얻었다는
개드립과 함께 요먼 할아버지가 설명해주네요. 교과서나 위키는 크게 다뤄지지 않는 것도
얘기해 주니 꽤나 재밌고 유익합니다.
저희 그룹 담당 요먼 경비병 할아버지인데 매표소에서 받은 지도에
사진이 실려있네요. 나름 간판 가이드인 듯 ㅎㅎ 겨우 이정도 이유만으로
뭔가 이득 본 기분이 들어서 좋았네요 :) 겨울이라 망토를 입고 계셨습니다.
요먼 경비병들은 준사관이지만 경비대장은 대대로 대개 귀족이 임명되며,
현재 경비대장은 코트타운 백작 패트릭 스톱포드 경입니다. 부대장과
참모들은 영관급이나 준장인데 지금의 부대장은 데이비드 이네스 준장이죠.
투석기(?) 같은 공성병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먼 할아버지의 여러가지 개드립을 열심히 들으며 한바탕 웃고 나면
바이워드 타워를 지나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벽 두께가 가장 두꺼워 거물급 죄인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쓰인 벨 타워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는 길포드 더들리와 후술하게 될 제임스 스콧 공작이 있습니다.
길포드 더들리는 후술할 제인 그레이의 남편으로, 메리 1세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성 안의 타워 힐이라는 장소에서 민중들 앞에 공개적으로 참수형 당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 또한 대역죄인으로서 아들보다 몇달 전에
같은 곳에서 참수형 당합니다.
하도 옛날에 깔아놓은 길이라 걷기 좀 불편할 정도로 울퉁불퉁 합니다 ㅎㅎ
생각없이 걷다가 넘어지는 불상사를 당하지 않으려면 주의하셔야 합니다.
세인트 토머스 타워입니다. 런던 탑으로 들어오는 관문 중 하나로, 템즈 강을 통해 들어오는 구조였으며
주로 이 루트로 반역죄인들이 런던 탑으로 호송되었기 때문에 트레이터즈 게이트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두명의 왕비와 한명의 여왕이 이곳을 통해 런던 탑으로 들어와 갇혔는데, 한명은 아들을 낳지 못해 목이 잘린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이였고, 또 다른 한명은 겁도 없이
바람을 피우다 걸려서 목이 잘린 헨리 8세의 다섯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 그리고 마지막 한명은
반역죄인으로 체포되어 목이 달아난 제인 그레이입니다. 제인 그레이의 경우는 특히나 딱한데,
처형되었을 때의 나이가 겨우 16세였으며, 스스로 왕좌를 원한게 아닌, 막장 부모가
제인이 즉위하겠다고 직접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 방에 가두고 두둘겨 패서 억지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리 1세도 제인을 딱하게 여겨 살릴 기회를 주려고 그녀를
가톨릭 교도로 개종 시키려 시도했지만 제인이 끝내 거부하자 하는 수 없이 처형시킵니다.
꽤 많은 분들이 한번쯤은 보셨을 그림입니다. 제인 그레이가 처형을 당하기 직전
가려진 눈 때문에 처형대를 찾지 못해 당황해 했다고는 하지만 같은 날 타워 힐에서 먼저
목이 잘린 남편보다 더욱 차분한 모습으로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였고, 그 소식을 들은
민중들도 동정심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제인 그레이의 막장 부모가
딸과 사위를 버려둔 채 런던을 탈출했고, 나중에 제인의 아버지인 서포크 공작 헨리 그레이도
결국에는 잡혔지만, 탈주에 성공한 그의 아내 프렌시스 그레이는 남편과 딸, 사위의
구명활동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숨어있었고, 결국 모두 목이 잘립니다. 이후 메리 1세에 의해
사면령이 내려지자 프렌시스 그레이는 재혼을 해서 잘 먹고 잘 살다 천수를 누리고 갑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윌리엄 월레스도 런던 탑으로 호송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잠시만 머무르다 곧바로 런던 도시 밖으로 다시 옮겨서 처형을 당했는데, 귀족이 아닌
기사의 신분이였기에 귀족만의 특권인 참수형의 혜택을 누리지 못 하고 위에서 언급된 교수척장분지형을 받고
죽게 됩니다. 교수척장분지형이란, 동양의 능지형과 거열형을 모두 합쳐놓은 엽기적이고 잔혹한 형벌로,
대역죄인에게만 내려지는 형벌이였습니다. 영국의 가장 잔혹한 형벌로서, 평민이 아닌 귀족일지라도 그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되면 이 형벌을 받을 수 있었고, 죄인이 여성이거나 성직자일 경우엔 화형으로 대체 시켰습니다.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 앤 불린도 화형을 선고 받았다가 왕의 마지막 배려(?)로 참수형으로 감형되었고, 그녀는
거기에 더해 도끼를 이용한 참수가 아닌 프랑스식으로 처형해 줄 것을 부탁해서 받아들여집니다. 이야기가 살짝
샛는데, 어쨌든 생각해보면 윌리엄 월레스가 에드워드 1세의 조카의 목을 잘라 보내 왕을 도발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서 만약에 기사가 아닌 귀족이였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교수척장분지형을
받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상당히 유명한 타워 중 하나인 블러디 타워입니다. 재밌는 것은 원래의 이름은 가든 타워였다고 하는군요.
원래는 왕궁이였던 만큼 왕들 취향에 따라 여기저기서 기거했는데 저곳이 가장 지내기 편안한 장소였다나요.
이후 감옥으로서의 기능이 더욱 부각되고 셰익스피어가 처음으로 블러디 타워로 부르자 굳혀진 것인데, 이곳은
영국판 단종으로도 불리는 에드워드 5세가 그의 동생과 같혀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어머니의 신분이
낮아서 왕권이 크게 실추된 상황이였는데, 부왕인 에드워드 4세가 생전에 주색에 빠져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
다녔던 것이 합쳐져,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리처드 3세의 대중 선동이 잘 먹혀들었고, 그 결과 에드워드 5세가
왕의 적자가 아닌 사생아로 선포되어 왕위에서 쫒겨나 런던 탑에 갇히게 된거죠. 그리고 이곳에 갇힌지
겨우 두달만에 동생과 함께 잠을 자다가 암살됩니다. 베개로 질식 시킨 뒤 단검으로 찔렀다는군요.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는데, 에드워드 5세가 1483년 8월에 죽었다는 설을 맨 처음 제기한
사람은 셰익스피어로, 그가 튜더 왕가의 엘리자베스 1세를 위해 글을 쓰던 사람이였기에 리처드 3세를
죽이고 요크 왕가를 박살낸 튜더 왕가의 시조 헨리 7세가 범인이라고 지목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이
불경한 것이였기에 범행을 리처드 3세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 그 주장입니다. 진실이야 어찌됐든
어린 나이에 암살을 당한 것은 맞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1674년 런던 탑을 보수하던 찰스 2세가
어린 아이들의 유골을 2구 발견하고는 이를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요크 공작 리처드로 여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시킵니다.
블러디 타워의 설명을 듣고나서 문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나오게 되면,
화이트 타워가 나옵니다. 런던 탑이 요새임에도 그냥 타워라고 불리는 이유죠.
전술했듯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지은 왕궁이자 성입니다. 지금은
저 안에 왕족들의 생활양식과 실제 왕들이 사용하거나 선물받은 무기와 갑옷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네요. 제가 왕실의 보물과 역대 왕들의 왕관이 전시된 전시관에
먼저 들어간 것이 실수였는데, 줄이 길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거기다 더해
거긴 촬영금지 구역이였거든요. 요먼 할아버지 말로는 자기네는 미국놈들이랑 다르게
모조품 같은 건 취급 안 해서 진품만 전시하니 온갖 보안장치들이 있고, 그래서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인한 혹시 모를 보안장치의 오작동에 철문들이 모두 닫혀
단체로 갇히는 건 난감하니 그냥 못 찍게 한다는 것이 설명이였습니다.
비싼 돈 주고 입장했는데 지들 귀찮다고 사진도 못 찍게 하니 왕립박물관도
그렇고 얘네는 삥을 아주 참신하게 뜯네요. 인간적으로 플래시만 안 터뜨리면
좀 찍게 해주라 이 날강도 프렌즈들아!
설명 듣다 말고 어디가니 꼬마야 ㅎㅎ
블러디 타워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저는 시간이 없어서 못 가봤네요 ㅠㅠ
거듭 얘기하는 거지만 가시려면 오전에 가세요. 오후에 가면 시간도 쪼들리고
금방 어두워져서 사진도 찍기 거시기해집니다.
그리고 화이트 타워 옆의 계단에서 요먼 할아버지의 해설이 이어집니다. 잔디에서 놀고 있는 새들은 한국의
일반 까마귀랑은 살짝 다른, 훨씬 큰 크기의 레이븐이라는 종으로, 한국에서는 큰까마귀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런던 탑에는 이 큰까마귀에 대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큰까마귀가 런던 탑을 떠나면 왕국이
몰락한다는게 그것이죠. 그래서 영국에 기독교가 완전히 뿌리를 내린 이후로도 왕실에서는 전설을 그냥 흘려 넘기지
않고 레이븐마스터라는 직책을 두어 요먼 경비병들로 하여금 큰까마귀를 관리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관리라는 것이
그냥 밥을 주고 돌보는 것만이 아닌,
윙컷을 해서 멀리 날아가는 것 자체를 막아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쟤들은 총총총 뛰어다니지
날아다니지 않아요. 다만 윙컷 자체가 신경과 이어진 깃털을 뽑는 것도 아니라 인간으로 치면
그냥 이발하는 수준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윙컷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깃털이 자라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털을 뽑아주며 관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직접 찍을 기회는 없었지만
위의 사진처럼 요먼 경비병이 직접 손으로 잡아서 관리해준다고 하네요. 윙컷으로 관리하는
큰까마귀는 총 6마리가 있고 야생 큰까마귀도 멋대로 눌러앉아 살지만 거의 애완동물 수준이라
요먼 경비병에게는 저항하지 않고 고분고분 하다네요. 다만 일반인이 잡으면 부리로 쪼고 문다고
하니 만지지 말라고 요먼 할아버지가 당부했습니다.
쟤들은 요먼 경비병들에게 귀한 대접 받으며 평생 밥도 거를 일 없고 관광객들도
예뻐해 주기에 사는데 큰 불만은 없지 않을까 제 멋대로 상상해봅니다. 애완용 사료가
아니라 진짜 고기를 주거든요. 특식은 양의 심장이라고 합니다 ㅎㅎ 그리고 윙컷을
해도 완전히 못 나는 것이 아니라 창공을 가르며 바람을 느낄 수 없을 뿐 기본적으로
잘 나는 닭보다 훨씬 나은 비행실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요먼 경비병이 왕실의 재산을 지키는 병사임에도 역대 왕들과 왕족들에 대한
개드립을 치며 신명나게 깝니다. 그래도 윈저 왕가는 절대 안 까는 것을 보면 에드워드 7세
이전의 왕들(빅토리아 여왕 제외)은 윈저 왕조의 일원들이 아니라 까도 별 문제는 없는
분위기인가 봅니다. 설명으로는 런던 탑에 맨 처음으로 투옥된 죄인이였던 더럼의 주교
로날드 플람바드가 탈옥에 성공했고, 런던 탑 역사에서 3500명이 넘는 죄인을 수용하던 중
81명이나 탈옥에 성공했기에 세계의 감옥들 중에서 가장 경비병들 군기가 빠지고 구린
쓰레기 감옥이였다고 자학개그도 합니다. 정확히는 자학개그가 아니라 자기 선배들
욕하는 거지만 ㅎㅎ
못 들어가 본 것이 한이다아아아앙!!!! X2
뭐 여름에 또 갈거긴 하지만요. 헨리 8세의 변태 같은 투구는 꼭 보고야 말겁니다.
적들을 능욕하는 시선과 미소를 품은 투구거든요. 물론 실전용은 아니고 의전용인데
1514년에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가 헨리 8세에게 선물로 준겁니다.
당연히 투구들뿐만 아니라 갑주 풀세트도 전시되어 있고 그중 헨리 8세의 갑주가
종류도 많고 특이하기로 유명한데,
헨리 8세가 말년에 몸이 매우 비대해졌기에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갑옷보다 훨씬 크며,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부라리큰 형태의 고간 가리개를 달고 있습니다.
ㅂㄹㄹㅋ ㅂㄹㄹㅋ ㅈㄴㄴㅂㄹ!
저걸 보게 될 생각을 하니 여름이 기대되네요 ㅎㅎ 그리고 화이트 타워에는
유럽 양식 갑옷들만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갑옷들도 상당히 많은데,
이렇게 일본의 갑옷도 몇개 있습니다. 이건 도쿠가와 막부의 2대 쇼군이였던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자신의 영국인 가신이였던 윌리엄 애덤스를 통해 1610년 제임스 1세에게 선물했다고 하네요.
원래 주인은 다케다 카츠요리로 추측 되는데, 다케다 가문에서 빼앗은 것을 보수해서 외국에
선물 보낸거라고 합니다.
내부는 촬영금지 구역인 더 크라운 쥬얼스 건물입니다. 3층짜리 건물이길래 볼거 많겠다 했는데
페이크다 이 색히야!!! 일줄은 ㄷㄷ 1층만 전시실이 있고 위로는 못 올라갑니다. 뭐 이리
못 하는 것 투성이야?! 근위병들이 건물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면 2층부터는 근위병들의
생활실이 아닌가 합니다.
너희들을 모두 방문해보지 못 했어 흨흨
타워 브릿지는 여기서 봐도 예쁘네요. 슬슬 어두워지려는 삘입니다.
귀신 나오면 좋겠다 히힣
요먼 할아버지가 열심히 해설을 해주는 동안 뒷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하길래
할아버지한테는 살짝 미안 하지만 그룹에서 이탈해 무슨 일인지 보러 갔습니다.
왕실 근위병들이 교대식을 하고 있더군요. 현재 런던 탑을 지키는 근위대는
웨일즈 근위 연대 3대대 소속으로, 연대장은 인기 없기로 소문난 웨일스 공
찰스 왕세자입니다. 어머니가 하도 장수하니 왕위는 꿈도 못 꾸고 먼저
죽을 지도 모르는 양반이죠. 엘리자베스 2세도 90이 넘었는데 양위도 안 하고
버티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아들한테 왕위 물려주기 싫은가 봅니다. 왕가의
법도로는 좋든 싫든 일단 웨일스 공에게 왕위가 돌아가야 하니 형식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만 재위 한다고 해도 영국 시민들이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거든요. 자연스럽게 아들이 먼저 죽으면 손자한테 물려주려고 계획하나
싶을 정도예요.
그룹으로 돌아가기 전에 찍은 6 파운더 대포입니다. 영국의 대포는 아니고 1813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제예요.
그런데 똑같은 대포들 앞에 일일히 설명이 쓰여있던 것을 주목했었어야 합니다. 나중에 위키로 찾아보니 전부
다른 전투에서 노획한 것이더라고요. 제가 찍지 못한 대포 중에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가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군을 때려잡고 가져온 대포도 있었습니다. 이래서 아무것도 안 찾아보고 싸돌아다니면
손해 봅니다.
다시 그룹에 돌아왔습니다. 제가 왔을 때는 뒤의 건물들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더군요.
저 뒤의 건물들 중 하나에 나치의 고위 간부인 루돌프 헤스가 갇혀 있었다고 합니다.
헤스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요먼 할아버지의 해설은 참 귀에 착착
잘 감기더군요. 요먼 경비병이 되려면 군 경력도 경력이지만 일단 말을 잘 해야하나봐요.
이후 뒤에 있던 세인트 피터 애드 빈큘라 예배당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는데, 찍을
타이밍을 놓쳐 교회 외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진 못 했습니다.
교회 외부 전경인데, 밑의 내부 사진과 함께 구글의 힘을 빌렸습니다. 특히 내부는
보안상 문제로 촬영금지라 어짜피 제가 찍을 수는 없었어요. 저기 오른쪽 구석에
서있는 요먼 경비병이 있는 곳에서 입장합니다.
교회 내부인데, 지하에는 위에서 언급한 두명의 왕비와 한명의 여왕을 비롯해 런던 탑에서
처형된 여러 왕족과 귀족들이 묻혀 있다네요. 이 교회에 안장되는 것도 귀족의 특권으로,
평민이나 죄질이 특히 나쁜 대역죄인의 경우 사지가 잘려 본보기로 여러 지방에 보내지거나
템즈 강에 그냥 버려지는게 보통이고, 운이 좋아야 가매장 되거나 가족들에게 돌려보냈다나요.
이 교회의 크기는 상당히 작은데 평소에는 그냥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특별한 날에만
왕가에서 사적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어짜피 런던 탑은 현재 왕이 기거하지 않을 뿐
아직도 왕실 사적 재산이자 왕궁이거든요. 저는 오른쪽에서 두번째 줄에 앉았었는데 벽에는
역대 영국군 원수들의 이름과 출생 연도, 사망 연도, 군 경력과 지휘했던 부대 등의
이력이 써있는 판이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요먼 할아버지가 모든 설명을 끝내게 되면 밖으로 나가 해산을 시킵니다.
그때부터는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죠. 그리고 저도 자연스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줄을 서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실수였죠 흨흨
버킹엄 궁전에 놀러가려다가 처칠 워 룸즈로 길을 새서 못 본 근위병입니다.
요먼 경비병만 있지 않고 근위대도 있는 이유는 역시나 여기가 아직도 왕궁이기
때문입니다. 근위대는 8개의 연대 중 포병 연대만 빼면 모두 실전부대라
평시 근무에도 타국의 의장대와는 달리 현용 소총을 사용합니다. 다만 테러의
위협이나 왕실 인사가 행차하지 않는 이상 실탄을 소지하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근위대 하면 떠오르는 저 곰가죽 모자는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근위대를
격파한 공로로 착용하는 것이 허용된 것인데, 캐나다산 그리즐리 곰의 가죽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개당 $1300 정도로 매우 비싸고 조달이 어려워 2000개 정도만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근위병의 수가 4000 정도라는 것. 그래서
돌려서 쓴다고 하네요. 그중 100년 넘게 오래 사용하고 있는 현역 할아버지
모자도 있다고 합니다 ㄷㄷ
근위병 앞에 펜스가 세워져 있는데, 이건 관광 온 사람들 중 멍청이가 하도 많아서
근위병에게 스킨쉽을 시도하거나 총을 만지거나 하는 관종 어그로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몇년 전부터 근위병이 근무를 서는 곳에는 모두 설치했다고 합니다. 여행을 가면
ㅄ 같은 진상짓을 하지 않는 착한 관광객이 됩시다.
3시 반... 난 사실 이때만 해도 니가 5시에 닫는 줄로 착각했었어...
2차대전 때 영국 포병의 주력 야포였던 25 파운더 포입니다.
왕립전쟁박물관에서도 봤었죠. 이 포는 2001년까지 런던 탑에서
예포로 사용되다가 은퇴했다고 하네요.
이 박격포는 1808년에 만들어진 물건인데 군 규격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예포로 사용하거나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아까 설명한 프랑스제 대포와 똑같은 모델의 대포입니다. 이것도 1813년에 만들어졌네요.
줄이 꽤 길었는데, 입구에서만 시간을 잡아먹은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줄이 밀리고 좁아서 시간을 많이 지체했습니다 ㅠㅠ
EIIR은 로얄 싸이퍼라고 해서 일종의 군주의 문양 비스무리 한 것입니다.
영국 어딜 가나 볼 수 있죠. 공중전화박스, 우편배달차, 전봇대, 가로등, 기타등등
역대 왕들마다 모두 디자인이 다른데, E II는 당연히 엘리자베스 2세를 나타냅니다.
R은 Rex나 Regina로, 라틴어로 각각 왕과 여왕을 뜻하죠.
모조품을 전시해 보안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유는 영국 법인지 왕궁 법도인지
하여튼 왕실의 보물은 런던 탑에 보관하도록 정해져 있다나요. 실제로 왕실 보물들이
런던 탑에서 옮겨진 유일한 사례는 2차대전 당시 본토 항공전 밖에 없다고 합니다.
런던 탑은 독일의 폭격으로 폭탄 15발을 맞았고 그외에도 로켓이 3발 떨어졌다네요.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들어갑니다...
하지만 촬영금지인 탓에 당연히 한장도 못 남기고 나왔습니다 흨흨
사진을 이딴 식으로 올려놓으니 스크롤을 내리시던 분들의 허무함이 저보다 더 심하실지도요 흐흐
안에는 미친듯이 거대한 황금 욕조나 황금 쟁반, 황금 퐁듀 그릇, 황금 잔, 황금 메이스, 황금 보검,
다이아몬드와 보석이 엄청 박힌 왕관, 기타등등 넋을 놓고 멍때리며 볼 전시품은 엄청 많았습니다.
요먼 할아버지 말대로 죄다 진품이여서 왕실 행사 때 필요하면 꺼내다 쓴다고 하네요.
빅토리아 여왕의 왕관은 다른 왕관들과 함께 있지 않고 따로 보관되어 있었는데, 아마 크기가
너무 작아 혼자 튀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왕이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인 그녀의 부군 앨버트 공이 예상치 못 하게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빅토리아 여왕은 그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상복을 입고 살았는데,
상복의 일부인 면사포를 쓰기 힘들다며 원래 쓰던 왕관을 안 쓰고 공식 석상에 나오는
일이 계속 벌어지자 영국 왕실의 권위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 신하들이 특별히 작은 크기의
왕관을 만들어 바치게 됩니다. 저렇게 작아도 다이아몬드만 1187개가 박혀있다고 해요 ㄷㄷ
그런데 전시관에 있는 왕실 보물들은 찰스 2세의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이 왕정을 폐지하고 보물들을 다 녹여버려서 ㅎㄷㄷ
왕궁에 웬 원숭이 조형물이냐 싶으신 분들도 계실텐데 한때 런던 탑의 일부가 동물원으로 쓰인 적이
있어서 입니다. 창경원처럼 왕실의 권위를 격하 시키기 위해 동물을 들여 대중에 개방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왕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설치했다고 합니다. 세계 온갖 나라에서 우리 킹왕짱 쎈 영국에 조공을 바친다!
하고 선전하려고요. 물론 모두가 조공은 아니였고 그냥 선물이였죠. 들여온 루트 중 상당수가 식민지나 소국들이
아닌 신성 로마 제국이나 스웨덴 왕국, 노르웨이 왕국, 프랑스 왕국 등 한때는 다들 한주먹 한다던 나라들이거든요.
저 원숭이들은 1799년에 들여온 한 무리라고 합니다. 얘들은 우리가 아닌 가구가 제대로 갖추어진 방에서 살았는데,
어느날 한마리가 한 관람객 남자아이의 한쪽 다리를 잡아 뜯어버려서(...) 일반 동물원으로 보내졌다고 하네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수백년간 동물을 키웠기 때문에 그 규모가 꽤 컸고, 그 결과 1828년에는 60여종의
동물이 모두 합쳐 280마리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곳을 둘러보기 위해 성벽에 올라왔더니 유명한 사람이 보이네요.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초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입니다.
그의 칭호는 웬만한 일국의 왕 뺨치게 긴데,
Arthur, Duke and Marquess of Wellington, Marquess Douro, Earl of Wellington, Viscount Wellington and Baron Douro, Knight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Knight Grand Cross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the Bath, One of Her Majesty's Most Honourable Privy Council, and Field Marshal and Commander-in-Chief of Her Majesty's Forces.
Field Marshal of the Austrian Army, Field Marshal of the Hanoverian Army, Field Marshal of the Army of the Netherlands, Marshal-General of the Portuguese Army, Field Marshal of the Prussian Army, Field Marshal of the Russian Army, and Captain-General of the Spanish Army.
Prince of Waterloo, of the Kingdom of the Netherlands, Duke of Ciudad Rodrigo and Grandee of Spain of the First Class.
Duke of Victoria, Marquess of Torres Vedras, and Count of Vimiera in Portugal.
Knight of the Most Illustrious Order of the Golden Fleece, and of the Military Orders of St. Ferdinand and of St. Hermenigilde of Spain.
Knight Grand Cross of the Orders of the Black Eagle and of the Red Eagle of Prussia.
Knight Grand Cross of the Imperial Military Order of Maria Teresa of Austria.
Knight of the Imperial Orders of St. Andrew, St. Alexander Newski, and St. George of Russia.
Knight Grand Cross of the Royal Portuguese Military Order of the Tower and Sword.
Knight Grand Cross of the Royal and Military Order of the Sword of Sweden.
Knight of the Order of St. Esprit of France.
Knight of the Order of the Elephant of Denmark.
Knight Grand Cross of the Royal Hanoverian Guelphic Order.
Knight of the Order of St. Januarius and of the Military Order of St. Ferdinand and of Merit of the Two Sicilies.
Knight or Collar of the Supreme Order of the Annunciation of Savoy.
Knight Grand Cross of the Royal Military Order of Maximilian Joseph of Bavaria.
Knight of the Royal Order of the Rue Crown of Saxony,
Knight Grand Cross of the Order of Military Merit of Wurtemberg.
Knight Grand Cross of the Military Order of William of the Netherlands.
Knight of the Order of the Golden Lion of Hesse Cassel, and Knight Grand Cross of the Orders of Fidelity and of the Lion of Baden.
이게 정식 타이틀입니다. 공식 석상에서 저걸 다 불러주려면 입이 좀 많이
아팠겠네요. 나폴레옹을 쳐부순 1등공신인지라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예쁘다고 작위와 훈장을 뿌려대서 저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나폴레옹 전쟁 후 육군 총사령관이 되는 명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야전에서
구른 인물이라 그런지 식사를 대충 때우기로 유명했는데, 보통은 계란 몇개 까먹는
수준으로 식사를 한끼를 해결했다고 하죠. 미식의 기준도 상당히 이상해서 프랑스
요리가 맛 없다고 먹을 때마다 불평을 했는데, 한번은 나폴레옹의 26인 원수 중
한명인 니콜라 장드듀 술트와 전투를 치루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그날 전투 계획이
없었던 것인지 술트는 요리사와 격렬한 토론을 벌여가며 자신이 먹을 스테이크를
정성스레 준비했는데, 전투에서 패해 급히 퇴각함에 따라 자기의 저녁식사를 버려두고
자리를 뜰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승자인 웰즐리는 나중에 여유롭게 막사에 들어와
스테이크를 낼름 뺏어먹는데, 한입 먹어보고는 맛이 더럽게 없다며 양념을 모두
걷어내고 식초를 듬뿍 쳐발쳐발해서 맛있게 촵촵 먹습니다. 모범적인 영국인
입맛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19세기 초중반만해도 고위 작위를 가진 귀족이 영국의 총리로 뽑힐 수도 있었습니다.
이 양반도 두번이나 역임했는데, 군대는 잘 지휘해도 정치는 영 꽝인지 그간 쌓아놓은
이미지를 홀랑 날려먹었다고 하네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로도 정치생활은 계속
이어나갔는데, 1840년 그가 만든 흑역사도 나름 유명합니다. 아편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이죠. 아편전쟁은 요즘처럼 배경과
실상이 잘 알려진 현대가 아닌 당시에도 지식인들에게는 상당히 까였습니다.
쳐들어 갈 명분도 없고 애초에 영국 장사 수단이 너무 찌질하고 더러웠습니다.
그래서 의회 찬반투표에서도 간신히 과반을 넘어 통과했고요.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어쨌든 이겨야 했던 영국은 이런 유치한 프로파간다
선전도 대중들에게 뿌립니다. 무슨 사악한 괴물을 잡는 용사처럼 표현해놨네요.
한국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아서 웰즐리의 직책입니다. 뭐 사실 이건 거의 명예직이라 그런 것이긴
하겠습니다만. 콘스터블이란 왕의 부재시 성을 대신해서 관리하던 직책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성 관리 장관이나
성주대리인(?) 등이겠지만 딱히 정해진 한국식 명칭은 찾지 못 했습니다. 런던 탑 내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이며
왕이 크게 신임하던 신하에게만 맡기는 직책이였죠. 다만 실무는 그 바로 밑의 자리이자 런던 탑에서 직접 살며
관리를 하던 총재(Resident Governor)가 보는데, 이 두 직책들은 아직도 있습니다.
뭔가 구세계와 신세계가 공존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경치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
저런 고층 빌딩들이 들어섰다고 하는데 영국은 유독 건물 디자인이 하나같이 특이하네요.
전술했듯 지금은 호텔이 된 옛 런던항만청의 앞에 있는 잔디밭이 타워 힐로 불리는 처형집행장으로,
죄인들이 런던 탑 안에서 처형된게 아니였나 하고 의아하신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위에서 런던 탑 동쪽 외벽 성문터를 설명할 때 이미 한번 썼듯이 지금의 런던 탑 외벽은 사실 내벽으로,
주위에 해자가 파여있었고, 지금의 호텔 자리와 그 주위를 외벽이 빙 둘러 세워진 구조였습니다. 근세의
런던에는 그닥 큰 유흥거리도 없었던고로 공개처형이 민중들에겐 크나큰 엔터테인먼트였고, 왕실
입장에서도 공개처형을 함으로써 정적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형장 주위는
특별히 벽 위로 올라가서 구경을 하도록 허용해주었습니다.
당시 처형 집행인은 도끼로 죄인들을 참수했는데, 죄책감이나 공포를 덜어내기 위해 술에 취해
집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빗나가 목이 아닌 뒤통수를 찍거나 단번에 목을 베지 못해서
사형수들에게는 큰 고역이였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처형되기 직전에 깨끗하게 단번에 날려달라고
사형수가 가족들을 통해 금화나 은화를 쥐어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더욱이 처형 집행인은 나라에서
따로 봉급을 받던 것이 아니라 사형수가 내는 돈이 오직 수입이였기에 돈을 많이 낼 수록 깔끔하고
신속하게 머리를 날려줬다고 합니다.
일례로 몬머스 공작 제임스 스콧은 처형 집행인에게 돈을 쥐어주길 거부했고 불쾌하게 여긴 집행인은
그를 엿먹이려고 못된 짓을 꾸밉니다. 일부러 목을 치지 않고 왼쪽 어께를 내리쳐 쪼개버린거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제임스 스콧이 절명하기까지 다섯번의 도끼질을 합니다. 마지막 도끼질을 할때까지
의식이 남아있었다고 하는군요. 집행인의 장난질은 거기서 끝이난 게 아니여서 추가로 마지막 세번의
도끼질에도 목은 아직 붙어있었기에 결국 푸줏간에서 사용하는 정형용 칼로 머리를 잘라냈다고 합니다.
애초에 도끼 가지고는 머리를 날려줄 생각 자체가 없었다고 밖에 할 수 없겠군요. 다만 이 사람이 직접
군대를 동원해 내전을 일으킨 대역죄인이기 때문에 당시 왕이였던 제임스 2세는 그 꼴을 보고 만족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형수들의 머리는 대개 조리돌림을 당한 후 옛 런던 브릿지나 타워 힐에 효수됐는데,
새들이 먹어 살점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놔뒀다고 합니다. 참고로 3500명이 넘게 런던 탑에
갇혀 대략 열명 중 아홉은 처형 당했지만 타워 힐에서 공개처형 당한 죄인들은 겨우 20명이라 상당히
레어한 이벤트였던 관계로 런던 시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환장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ㄷㄷ
다만 효시 자체는 더 자주 한 편이라 총 125두가 파이크에 꽂혀 민중들 앞에 전시됐다네요.
공개처형 장소가 타워 힐이였다면, 비공개처형 장소는 교회 옆에 있는 이 장소였습니다.
여기서 앤 불린고 제인 그레이 등의 인물들이 목이 잘렸습니다. 앤 불린은 이 장소에서
목이 잘린 첫 죄인이였는데, 그녀는 특이하게도 도끼로 목이 잘리지 않고 프랑스 스타일로
투핸디드 소드를 사용하여 참수되었다고 합니다. 집행인도 프랑스인이였다는군요.
프랑스의 처형 집행인의 경우 영국과는 달리 국가에서 제대로 된 봉급과 직책을 주어
주위 사람들에게 기피되기는 했으나 타국들처럼 크게 천대나 따돌림을 받지는 않았기에
훗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집행을 맡아 유명한 샤를 앙리 상송이 속해있던
상송 가 같은 특정 가문에서 검술에 통달한 인재를 가려내 대를 이어 집행인을 하기도 했죠.
이러한 풍조 덕분인지 앤 불린의 처형을 담당한 칼레에서 온 이 집행인도 겉모습만 보면
복장과 언행이 일반적인 귀족 신사였던 덕분에 앤 불린이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길을
떠날 수 있었다네요. 그리고 실제로도 앤 불린의 기대에 부응하듯 기도를 막 끝내고 눈을
미처 뜨기도 전에 단칼에, 요먼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적으로", 목을 베어서
앤 불린은 스스로 죽은 줄도 몰랐을 거라고 합니다. 다만 목에 칼이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눈을 뜬 것인지, 잘려진 머리는 한동안 눈을 좌우로 부라리며 입으로 무언가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소리는 낼 수 없었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그 모습에 동요했다고 하는군요.
사진의 중앙에 근위병이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저곳은 현재 런던 탑 총재가 거주하는 곳으로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곳은 일반 주택이면서도 지하엔 감옥이 있는데, 헨리 8세의 오랜 친구이자
왕이 성공회의 수장 자리까지 차지하려는 것에 반대했다가 반역죄로 잡혀들어가 머리가 잘린 토머스 모어가
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신실한 가톨릭 교도로, 법률가이자 이단심문관이기도 했기에 헨리 8세가 너무
막 나간다 싶어 직언을 했다가 밉보여 죽은 케이스죠. 사실 헨리 8세도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을 내심 기대했기에 바로 처형을 시키지 않고 저곳에 1년이나 가두어두고 유예기간을 줍니다.
하지만 끝내 토머스 모어는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못 해 교수척장분지형을 선고 받았지만 헨리 8세가 옛 정을
생각해서 배려한 끝에 참수형으로 감형됩니다. 운 좋게 단 한번만에 머리가 잘렸다고 하네요. 죽으면서
"나는 국왕의 충신으로 죽지만, 그 이전에 하느님의 종입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이후 죽은 지로부터 4세기가
지난 193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참고로 저곳의 지하감옥은 감옥 치고는
꽤 안락했는데, 모어는 저 안에 개인 침대, 책상, 책장, 의자 등을 넣어놨고, 심지어는 집에서 데려온
여종이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모어가 끝까지 마음을 고쳐먹지 않자 왕의 명으로 모두 감옥에서
빼내 심적 압박을 주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이름 그대로 읽는다면 보우숌 으로 발음하겠겠지만 영국에선 비첨프 타워라고 부르더군요 ㅎㅎ
위에서 벨 타워에 갇혀있었다고 소개한 길포드 더들리도 잠시 이곳에 옮겨졌었는데, 죽기 전 아내의
이름을 벽에다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찾지 못해서 사진은 없어요 ㅠㅠ 몇백년간 감옥으로 쓰였기
때문에 비첨프 타워에는 많은 사람들이 벽에 새긴 조각이 있습니다. 주로 자신의 가문의 문장이나
이름, 시, 기도문, 그림 등이 있어요. 식물학자 존 제라드도 여기서 살다가 탈옥합니다.
일단 옛날 건물이나 엄청나게 좁고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습니다.
HMS 벨스파이트보다 심해요 ㄷㄷ
한때 나치당의 의전서열 2위였던 루돌프 헤스입니다. 이 인간은 비첨프 타워에 4일만 갇혀 있었다네요.
총통 대리인이라는 듣기 좋은 직함을 가지고 당 서열은 높긴 했지만 실권은 없었는데, 원래 영국과 화친을
주장하던 그의 계획이 영국의 항전으로 실패하자 초조함을 느끼고 ㅁㅁ짓을 합니다. 단독으로 전투기를
몰고 영국으로 가서 강화 협정을 시도한 것이죠. 그런데 그건 이 인간만의 과대망상에 불과하고 영국은
강화에 대한 관심이 요만큼도 없었던 관계로 발견되자마자 곧바로 체포됩니다. 뒤늦게 사실을 안 독일도
저놈이 원래 정신병이 있어서 회까닥 해서 그런거다 라며 그냥 흑역사 취급 해버렸습니다. 다만 만약에
영국에서 헤스를 독일로 송환시킬 경우 총살해버리라고 히틀러가 명령을 내리긴 합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전후까지 구금된 채 살아남았지만 자유 만큼은 허락되지 않았고 1987년 93세의 나이로
■■하기 전까지 베를린의 슈판다우 감옥에서 평생을 삽니다. 곧 죽을 나이에 ■■까지 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감옥생활이 지겹고 따분했나봅니다.
사진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계단의 가파름과 좁은 폭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거기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아 난감하더군요.
공간은 좁은데 사람은 많고 해서 그냥 몇개만 골라 찍었습니다. 저 방 안에 87개의 저런 조각들이 있습니다.
제가 제인 그레이의 이름을 제대로 못 찾을 만도 하죠 ㅎㅎ 저게 남을 시킨 것도 아니고 저곳에 수감되어 있던
본인들이 조각한 것인데도 상당히 정교합니다. 귀족들이라 예술은 기본소양이였나봐요 ㄷㄷ
5.84톤 짜리 24 파운더 대포입니다. 성 요한 기사단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실전용은 아니고
예식용이였다네요. 그때문에 엄청나게 화려합니다. 1800년대쯤에 몰타 섬에서 영국으로
들여왔다네요. 런던 탑에 전시된 것은 1962년부터라고 합니다.
흨흨 이번 겨울엔 널 보지 못 하고 남겨두고 떠나야 했구나 흨흨
화이트 타워 외에도 타워가 엄청 많은데 거기마다 볼거리가 많으니까요 ㅠ
얘들은 1235년에 맨 처음 탑에 들여온 동물들입니다. 사자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헨리 3세에게 선물한 놈들인데, 얘들의 특별한 점은
일반 사자가 아니라 지금은 멸종해 지구상에서 사라진 바버리 사자라는 것입니다.
뭐 아직 모로코 술탄이 몇마리 기른다고는 하지만 순혈인지도 확인되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멸종된 것으로 기록되었죠. 저 자리에는 라이온 타워가 있었는데,
항상 저 자리엔 사자가 살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런던 탑에서 살던 사자는
1835년에 요먼 경비병을 물어 큰 부상을 입힌 죄로 다른 동물원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에도 라이온 타워는 계속 놔두다가 1853년 마지막 사육사가 죽고 나서야
허물었다는 것을 보면 아마 1층은 사자 우리고 그 위에는 사육사가 살았나 봅니다.
지금의 애견 애묘가들이 듣기에 많이 안습한 것으로는, 18세기의 런던 탑 입장료가
3.5 펜스 혹은 떼껄룩이나 개한마리로, 사자의 먹이로 던져졌다고 합니다 ㅠㅠ
으앙 나는 간다 흨흨 여름에 또 보자 흨흨
뒤에 요먼 경비병들이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 눈을 부라리며 쫒아오기 때문에 빨리 나가야죠 뭐.
관람객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수문장(?) 교대식을 치룬다고 하는데
이건 따로 예약하지 않으면 안 보여준답니다 ㅠㅠ 그래도 입장 자체는 무료라네요. 너무
인기가 좋아서 예약을 통하지 않고는 입장불가랍니다. 700년간 매일 교대식을 했다네요.
진짜 간다 흨흨
이대로 그냥 가기는 좀 아쉬우니 기념품점에 들려서 기념품을 하나 질렀습니다.
꼴에 핸드 메이드라고 £35나 했는데 뭐 디자인은 마음에 드니 만족합니다.
원래는 칼이랑 투구랑 플린트 락 권총도 사고 싶었지만 이건 비행기에 들고
탈 수가 없어서 포기 ㅠ 어쨌든 금속 잔에는 역대 왕들의 이름과 역사적으로
공이 큰 왕들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모두 둘러볼 기회를 놓쳐 이렇게
1/5짜리 탐방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어쨌든 긴 글 쓰는 것을 끝내고 나니
기분은 후련합니다 ㅎㅎ
오른쪽 베스트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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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17.03.16 14: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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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탑은 시대에 따라 내부 건물이 새로 지어지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해서 17세기 배경의 게임과는 외관적으로 살짝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아싸씨노 게임도 그렇고 인왕이라는 새 게임도 그렇고 영국 하면 무조건 런던 브릿지랑 런던 탑이 나오나보네요 ㅎㅎ | 17.03.17 10: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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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역사랑 유적, 유물에 관심이 많다보니 개인적으로는 런던 브릿지보다 런던 탑이 더 재밌었어요. 다 둘러보지 못해 그만큼 더 아쉬웠고요.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런던 탑에는 꼭 가보세요. 볼거리가 참 많아요. 길고 지루할 수도 있는 글을 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17.03.17 1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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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정반대시네요 ㅎㅎ 저는 시간에 쫒겨 꼭 가야겠다 싶은 곳을 고른게 역사 박물관들였는데 ㅎㅎ 그래도 다음에 또 영국에 가면 예술 계열 박물관들도 들러보고 싶네요 ㅎㅎ | 17.03.17 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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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카가 아니라 미러리스인데 제가 사진을 자주 찍지 않다보니 이것저것 눌러보고 하다가 더 안되니 아리송하네요 ㅎㅎ 낮에는 저렇게 이상하게 찍히는데 밤에 찍으면 정상적으로 나오더군요. 아마 Sarc님 말씀대로 저 사진은 첫샷이 너무 밝았을지도 모르겠어요. | 17.03.18 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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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ㄷㄷ 미러리스라니 ㅋㅋㅋ 맨날 제가 파노라마 사진을 폰으로 찍어서 폰카인줄 알았네요. ㅎㅎ | 17.03.18 15: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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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신다면 꼭 가보세요! | 17.03.18 01: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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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올릴 수 있었는데 많이 못 찍어와서 아쉽습니다. 여름에 또 가면 더 올릴게요 :D | 17.03.18 01: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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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10년 전에 런던에 갔었는데 그때는 마침 홍수가 나서 공항에서 짐도 다 잃어버리고 밖에도 못 나가서 아무것도 못 했던 안습한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또 가보니 첫인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재밌었어요 ㅎㅎ Nadrazi님도 언젠가 또 가보시면 좋겠네요 :) | 17.03.18 0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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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계속 안 지우고 놔둘 생각이예요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 17.03.18 0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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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 17.03.18 08: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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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글 쓰면서 뭔가 좀 왕좌의 게임스럽다 싶었어요 ㅎㅎ 사실 왕궁으로 쓰이며 왕이 직접 기거한 것은 14세기 초까지로, 에드워드 1세가 거의 마지막으로 이 성에서 살았고 그 이후 왕들은 다른 곳에 궁을 열심히(?) 지어 다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런던 탑을 왕궁 겸 감옥으로 사용한 겁니다 ㅎㅎ | 17.03.18 09: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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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해서 사진 찍기가 좀 애매했지만 그래도 나름 즐기고 왔어요 ㅎㅎ | 17.03.18 13: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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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17.03.18 14: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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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17.03.19 03:3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