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닭다리만 살까 하다가 복습도 할 겸, 아예 통닭을 한 마리 사서 해체를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닭 손질하는 방법을 배우긴 했어도 학생 한 명당 대여섯마리,
그것도 여러가지로 방법을 바꿔가며 손질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숙달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기회가 될 때마다 복습을 해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학교에선 조별로 한 마리만 주고 단체 실습을 시키거나,
아예 셰프가 손질하는 걸 구경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양반입니다.
허벅지와 다리를 분리하고, 날개는 어깨 부분에서 잘라냅니다.
몸통뼈는 냉동실에 얼려뒀다가 모이면 육수를 만들기 위해 남겨두다보니 수프림컷도 아니고 8등분컷도 아닌, 이상한 방식으로 자르게 되네요.
하지만 이것 또한 직접 손질하는 것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서 마음대로 자를 수 있거든요. 이렇게 손질한 닭고기 중에서 튀김하기 좋은 다리, 허벅지살과 날개를 사용합니다. 가슴살은 나중에 갈아서 치킨버거를 만들 생각이니 따로 남겨둡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하면 역시 프라이드 치킨입니다.
소울푸드가 원래는 미국의 흑인 요리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혼의 음식 정도로 해석되면서 뜻의 차이가 생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프라이드 치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기인 닭고기를 정육점에서 버리는 돼지 기름에 튀겨서 만든,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섞여있는 소울푸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대표적인 영혼의 양식이 프라이드 치킨이니까요.
그 옛날 몸보신을 위해 삶아먹던 백숙에서, 월급날 아버지 손에 들린 종이 봉투 속의 통닭을 거쳐, 오늘날의 다양한 프라이드 치킨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많은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프라이드 치킨들이 자신만의 특색을 내세우며 팔리고 있지만, 의외로 미국식 오리지널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인지라 진짜 제대로 만든 프라이드 치킨과는 좀 차이가 있거든요.
제대로 만든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 요리는 버터밀크에 닭을 푹 담궈두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흔히들 닭고기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우유를 사용하는데, 버터밀크가 고기 재워두는 용도로는 좀 더 좋은 듯 합니다. 우유에서 버터를 만들고 남은 유청을 발효시킨 게 버터밀크인데, 약간은 시큼한 요거트 비슷한 느낌입니다.
여기에 소금, 후추, 타라곤, 그리고 벨 시즈닝을 넉넉히 뿌려서 닭을 재워둡니다.
벨 시즈닝은 닭이나 오리 등을 마리네이드 할 때 항상 들어가는 향신료입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가금류 시즈닝을 팔고는 있지만 벨 브랜드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거의 다시다 수준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요.
저녁 때 재워두고 다음 날 점심 때 튀겨먹으면 딱 좋습니다.
밀가루에 소금, 후추, 그리고 올드 베이 시즈닝을 넉넉하게 뿌립니다.
올드 베이는 원래 해산물 요리 할 때 빠지지 않는 향신료인데, 의외로 닭 튀길 때도 사용되네요.
좀 덜 매운 라면 스프의 풍미입니다.
튀김이라고 하면 보통은 SBP (Standard Breading Procedure)라고 해서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의 3단계를 거치는 게 일반적인 반면,
이 버터밀크 프라이드 치킨은 그런 거 없이 그냥 마리네이드만 얼추 털어내고 시즈닝 된 밀가루를 덮어버립니다.
지금까지 튀김이라고 하면 SBP 아니면 걸쭉한 튀김옷 반죽을 사용하기만 해서 이래도 되나 싶네요.
뭐, 이래봬도 CIA 교과서에 실려있는 레시피이니 별 문제 있겠나 싶어 그냥 넘어갑니다.
밀가루를 뒤집어 쓴 닭고기는 170도 (화씨 350도)로 가열한 기름에 튀겨줍니다.
튀김요리는 두 번 튀기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처음 튀기면서 안쪽의 재료에서 빠져나오는 습기가 튀김 껍질을 눅눅하게 만들 수 있으니 완전히 익기 전에 한 번 빼서 습기를 날려주고 다시 튀겨서 바삭함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책에는 한 번 튀긴 후 오븐에서 마저 조리하라고 되어 있는데, 이 경우엔 오븐팬과 맞닿은 아래쪽이 눅눅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초벌 튀김 – 오븐 구이 – 레스팅 – 서빙 직전 마지막으로 짧게 한 번 더 튀기는 단계를 거치곤 하지요.
이왕 기름을 끓인 김에 감자도 좀 튀겨보기로 합니다.
예전에 감자 고프레 만든 것을 보고 알려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이번에는 감자 고프레를 튀겨봅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만돌린이라는 도구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채칼 내지는 슬라이서로 불립니다. 대패로 밀듯 요리 재료를 슥슥 밀면 칼날이 얇게 썰어주는 요리 도구지요.
이 칼날을 지그재그 형태의 크링클 컷 칼날로 바꿔 준 다음 감자를 45도 각도로 방향 바꿔가며 슬라이스 하면 끝입니다.
감자의 요철 부분이 서로 만나며 구멍을 뽕뽕 뚫어주는 셈입니다.
구멍 사이로 기름이 끓으면서 짧은 시간에 바삭한 감자칩을 만들 수 있지요. 다만 한눈 팔다간 그대로 태워먹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치킨과 감자튀김만으로는 왠지 좀 허전한 거 같아서 치즈 누룽지도 재빨리 구워줍니다.
정식 명칭은 치즈 튀일인데, 파마산 치즈를 강판에 갈고 틀을 이용해서 모양 맞춰 팬 위에 얇게 깔아 준 다음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내기만 하면 됩니다.
예전에 사이드 메뉴로 한 번 만들었는데, 짭짤하고 바삭한 게 맥주랑 먹으면 맛있겠다 싶었지요.
갓 구워낸 치즈 튀일은 굳기 전에 모양을 잡아 먹을 수 있는 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별다른 재료나 기술이 필요 없으면서도 바삭하고 짭짤한게 노력 대비 성능비가 훌륭한 간식입니다.
오븐에 미리 넣어서 따뜻하게 데워 둔 무쇠팬에 프라이드 치킨과 감자 고프레, 치즈 누룽지를 함께 담아줍니다.
이렇게 담아놓고 보니 딱 맥주 모듬안주네요. 맥주도 한 병 따서 잔에 부어놓습니다.
맥주를 따를 때는 거품이 손가락 한두개 정도 두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거품이 너무 적으면 금방 사라져서 맥주의 향을 잡아둘 수가 없고, 마셨을 때 탄산이 너무 과하게 발생합니다. 반면에 거품이 너무 많으면 김빠진 맥주가 될 뿐 아니라 잔을 기울여 마시려고 해도 거품만 끝없이 입에 들어오게 되지요.
맥주를 한 잔 가득 따르고 갓 튀겨낸 치킨과 안주들을 담아 놓으니 한국인의 소울푸드, 치맥이 완성되었습니다.
치킨은 우리가 흔히 먹는 맛과는 좀 다른, 독특한 풍미가 살아있습니다. 이게 의외로 너무 짜지도 않으면서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육즙이 가득합니다. 고소한 치킨이 감자 튀김과 치즈를 부르고, 짭짤한 안주를 먹으니 맥주가 당기고,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넘기니 다시 치킨을 찾게 되는 무한 루프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나 접시 위에 닭 뼈만 남기고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빵과 소금이 몸을 지탱하는 음식이라면 닭과 와인은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고 했던가요. 주말의 치맥은 역시 평일에 먹는 밥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제대로 푹 쉬었다는 만족감과 함께,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몸과 마음의 연료를 보충받는 기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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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공포의 통풍 듀오긴하지만 맛은 진짜 좋죠 글도 사진도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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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바속촉 | 19.01.07 17: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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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게 존재한다면 말이지 | 19.01.08 1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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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국 거주중이라 ㅎㅎ 마트에 가면 항상 있더라구요. | 19.01.08 18: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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