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가 먹고 싶어지면 '차라리 돈 주고 사먹는 게 낫겠다'와 '그 돈 주고 먹느니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는 주머니 사정, 요리 숙련도, 시간적 여유 등 다양한 변수에 달려있지만 몇몇 음식들은 고민 할 필요도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훈제 연어는 일단 만드는 데 익숙해지기만 하면 한 번에 왕창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는 것이 이득입니다.
연어를 소금과 설탕에 절여 연기 한 번만 쐬어 주면 되는데, 사 먹을 때는 가격 차이가 무지하게 나기 때문이지요.
가끔 생연어와 비슷한 가격의 훈제 연어가 보이기도 하는데, 잘 보면 진짜로 훈제한 게 아니라 목초액 발라서 가짜 훈연향을 입힌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 해체한 연어(https://blog.naver.com/40075km/221410516533)의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조리 훈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일단은 소금과 설탕에 절여서 내부의 수분을 쫙 빼고 맛을 더하는 염지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레시피마다 그 양은 천차만별인데, 저는 연어 무게의 25~30%에 해당하는 소금과 설탕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연어가 1kg이라면 소금 125g, 황설탕 125g을 사용하는 셈이지요. 레시피에 따라서는 연어 무게의 50%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 입맛에는 너무 짜더라구요.
소금과 설탕을 고루 펴서 발라주고, 딜을 한 줄기 끼워서 진공 포장 합니다.
딜(Dill)은 연어 요리를 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허브입니다. 그 특유의 향이 연어와 잘 어울리지요.
24시간 정도를 냉장고에 놔두면 연어 내부에서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물이 흥건하게 고입니다.
진공 포장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중간중간 뒤집어 주며 수분이 골고루 빠지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염지가 끝난 연어는 찬 물에 담그거나 흐르는 물에 씻어서 염도를 조절하고, 물기를 닦은 다음 냉장고에 다시 넣어서 표면의 수분을 건조시킵니다.
물기가 있으면 훈제할 때 연기가 잘 안 스며들기 때문이지요.
그릴에 훈연칩이 담긴 통을 놓고 불을 붙여 연기를 냅니다.
연어는 워낙 섬세한 고기인지라 대충대충 훈제해도 맛있는 소시지나 햄과는 달리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겨울이라 날씨가 춥다고 방심하지 말고 훈연 박스 위에 얼음이 담긴 알루미늄 그릇을 놓고 온도를 떨어트립니다.
예전에는 눈 오는 날이라고 방심하다가 절반은 익어버린 훈제 연어를 만든 적도 있거든요.
조그만 그릴이다 보니 훈연 박스와 생선의 거리가 멀지 않아 생기는 불상사입니다.
셰프들이 자기 집 뒷마당에 갖고 있다는 스모크 하우스는 언감생심이고, 훈연용으로 쓰기 좋은 대형 그릴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작업 자체가 어렵지는 않기 때문에 일단 한 번 셋팅하는 방법만 알면 그 다음부터는 금방 익숙해 지지요.
이렇게 만든 훈제 연어는 빵에 끼워먹어도 맛있고, 흰 쌀밥 위에 얹어 먹어도 맛있고, 그냥 집어먹기에도 좋아서 금방 사라지곤 합니다. 이번에는 연어 한 마리를 거의 통채로 훈제 한 셈이라 이것저것 만들고 싶은 것을 다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브런치로 에그 아틀랜틱을 만들어 먹기로 합니다.
가게에 가면 널려있는 게 잉글리쉬 머핀이지만 이왕 훈제 연어를 만들었으니 아예 빵도 구워버렸지요.
잉글리쉬 머핀은 굽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식빵 구울 때와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설탕 넣고 이스트 넣어서 효모를 활성화 시키고,
밀가루에 소금 넣고 우유와 달걀 넣고 반죽기에 돌리다가 버터 추가하고,
둥글게 공 모양으로 만든 후 한 시간 반 정도 발효시키는 것까지 비슷하네요.
하지만 여덟 개로 나누어 성형을 한 뒤, 세몰리나 밀가루를 묻히면서 잉글리쉬 머핀만의 특징이 살아납니다.
세몰리나는 주로 파스타 만들 때나 써먹었는데, 잉글리쉬 머핀의 거칠거칠한 표면을 만들 때도 사용되네요.
모양을 잡은 반죽은 오븐이 아니라 버터를 두른 그리들(넓은 철판 모양의 팬)에 구워줍니다.
이렇게 해서 일반적인 빵과는 다르게 표면이 약간은 바삭하고 질긴 듯한 식감을 가진 잉글리쉬 머핀이 만들어지지요.
양쪽 면이 갈색을 띌 정도로 팬에 구운 다음 오븐에 넣어 안쪽까지 마저 익히면 됩니다.
원래는 그리들에 머핀 네 개는 구울 수 있는데, 휴대용 버너로 굽다보니 열 전달이 잘 안되는 바람에 그냥 하나씩만 구웠네요.
영국에서는 집집마다 오븐을 들여놓기 전에는 행상인이 이 잉글리쉬 머핀을 한보따리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팔았다고 하지요.
요즘은 오븐 있는 집은 많아도 시간이 없어서 잉글리쉬 머핀을 직접 굽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사라진 머핀 장수의 역할을 맥도날드의 맥머핀이 대신하고 있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든 빵의 맛은 공장에서 찍어낸 머핀의 맛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일단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포크를 이용해서 빵을 반으로 잘라봅니다.
잉글리쉬 머핀은 칼이 아니라 포크로 잘라야만 더 맛있다고 하지요. 에그 베네딕트 계열의 요리를 만들 때는 포크로 만들어 낸 거칠거칠한 표면이 다른 재료가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도 하구요.
그런데 분명 8개를 구웠는데... 잘 익었는지 확인만 했는데도 세 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갓 구운 뜨거운 빵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거든요.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훈제 연어와 잉글리쉬 머핀은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홀랜다이즈 소스만 재빨리 만들면 됩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와인 식초에 샬롯과 후추를 넣고 끓이다가, 수분이 거의 다 날아가면 불을 끄고 물을 부어서 희석시킵니다.
예전에 에그 베네딕트를 만들 때는 이 과정에 타라곤이라는 허브를 추가하면서 "타라곤이 없으면 진정한 홀랜다이즈 소스가 아니지, 엣헴!"했는데, 알고 보니 타라곤이 들어간 소스는 베르네이즈 소스라는 이름이 따로 있더군요.
호텔 주방장 레시피만 철썩같이 믿었다가 학교에서 홀랜다이즈 만들 때 "타라곤은? 타라곤은 왜 안들어 갑니까?"라고 난리를 부렸더니 셰프가 "그건 홀랜다이즈가 아니라 베르네이즈거든"이라고 핀잔을 주더라구요.
역시 사람은 언제나 '내가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하나 봅니다.
달걀 노른자 두 개에 식초 용액을 붓고 거품기로 저어서 폼(Foam) 형태로 만듭니다.
여기에 설탕을 넣으면 디저트 만들 때 자주 쓰이는 사바용(Sabayon)이 되지요.
냄비에 물을 끓이고 그 위에 스테인리스 보울을 놓고 계속 저어줍니다.
노른자가 걸쭉해진다 싶으면 녹인 버터를 조금씩 흘려넣으며 계속 휘젓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소스를 유화(Emulsion) 소스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홀랜다이즈와 마요네즈입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꾸준히 저어주면 수분과 지방이 뒤얽힌 상태가 됩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마시는 우유도 잘 섞어주는 균질화 과정을 거친 덕에 기름(유지방)이 둥둥 뜨지 않는 거지요.
흔히들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의 사이를 물과 기름같은 앙숙관계라고 하는데, 이런 유화 소스를 만들다 보면 아무리 꼬인 인간관계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서로 잘 지낼 수 있다는 증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레몬즙을 뿌리고 소금간을 해서 홀랜다이즈 소스를 완성합니다.
이름은 네덜란드(Holland) 소스인데 정작 프랑스 요리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소스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요리의 5대 소스가 홀랜다이즈, 토마토 소스, 베샤멜, 벨루테, 에스파뇰 소스거든요.
이 다섯 가지 소스에서 수많은 프랑스 요리의 소스들이 파생되어 나옵니다.
홀랜다이즈만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베르네이즈 외에도 빈 블랑, 포엿, 모슬린, 말타이즈, 쇼롱, 로얄, 팔루와즈, 바바로아즈 등 수많은 자식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네요. 네, 미국 요리학교에서도 주입식 교육을 합니다...
접시에 포크로 자른 잉글리쉬 머핀을 올리고, 얇게 썬 훈제 연어 서너 조각을 올린 다음, 수란(https://blog.naver.com/40075km/221396770600)을 두 개 삶아 얹고, 마지막으로 홀랜다이즈 소스를 끼얹으면 에그 아틀랜틱 완성입니다.
아틀랜틱 연어로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에그 아틀랜틱이네요.
여유로운 브런치를 만끽하기 위해 커피도 내리고, 나 자신에게 '이건 균형잡힌 식단이야'라고 최면을 걸기 위해 샐러리도 몇 조각 곁들입니다.
나이프로 달걀과 연어, 빵을 단번에 잘라내면 노른자와 홀랜다이즈 소스가 뒤섞이며 마치 황금빛 용암처럼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아직 음식을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그 맛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지요.
잘라낸 조각을 포크로 쿡 찍어서 접시에 흘러내린 소스와 노른자를 살짝 훑어 입에 넣습니다.
짭잘하고 기름진 맛의 연어, 고소하고 부드러운 머핀, 노른자가 톡 터져나오는 수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데 묶어주는 소스까지.
브런치로 먹기엔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베이컨이나 햄을 사용하는 에그 베네딕트도 맛있지만, 훈제 연어 특유의 쫄깃한 질감이 살아있는 에그 아틀랜틱은 식감을 중시하는 제 개인적인 취향을 그대로 직격하네요.
이렇게 느끼는 게 저 뿐만은 아닌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에그 헤밍웨이, 에그 로열, 에그 코펜하겐, 에그 몬트리올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러가며 먹는 요리이기도 합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홀랜다이즈 소스는 오랫동안 보관하기가 어려워서 먹을때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거지요. 여기에 수란 만드는 것까지 포함하면 워낙 귀찮은 작업이라 브런치 카페에서 에그 베네딕트 주문 들어가면 종업원이 한숨부터 쉰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어떻게 보면 그런 번거로움이 있기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풍은 한철이라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홀랜다이즈 소스는 서너시간만 지나면 분리되기에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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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훈연칩을 사용했습니다. 제일 무난한 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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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40075km/221244859051 이미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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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훈연칩을 사용했습니다. 제일 무난한 향이지요. | 18.12.11 11: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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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40075km/221244859051 이미 있습니다 ㅎㅎ | 18.12.11 11: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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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은 이미 다 정주행했는데 시간이 꽤 되서 그런지 잊어먹었네요! ㅋㅋㅋ | 18.12.11 11: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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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다이즈랑 수란만 만들 수 있으면 나머지는 걍 돈주고 사서 해먹어도 됩니당 ㅎㅎ | 18.12.12 11: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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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18.12.12 11: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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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라서 아침 먹기 전에 보면 더 맛있어 보입니다 ㅎㅎ | 18.12.12 11: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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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18.12.12 11: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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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가 무시무시하게 들어가지요 ㅎㅎ 게다가 달걀 두 개에 노른자 두 개를 한꺼번에 먹는 셈... 역시 칼로리는 맛의 척도인듯... | 18.12.12 11: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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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18.12.12 11: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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