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추수감사절 기념 만찬으로 야생동물 고기 스페셜 디너가 제공된다길래 부리나케 신청한 저녁 식사.
미국에서는 사냥으로 잡은 동물 고기를 Game meat라고 해서 의외로 많이들 먹습니다.
전화 걸었더니 딱 마지막 한 자리 남았다고 해서 얼른 예약했지요.
학생들에게는 한 학기마다 교내 부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도록 $350 가량의 포인트가 지급되는데,
그 중 $50 정도를 써서 먹는 저녁 식사입니다. 여기에 와인 페어링은 추가금 $20.
5코스 디너에 와인 페어링까지 포함해서 7~8만원이면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입니다.
자리에 앉으니 즐비한 글래스들의 압박. 매번 음식이 나올때마다 서버가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채워줍니다.
오르되브르 (Hor D'oeuvre)로 나온 야생 메추라기 튀김. 전채답게 딱 감질날 정도의 양만 줍니다.
메추라기 튀긴 거야 뭐 프라이드 치킨과 비슷하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소스가 굉장히 맛있네요.
마요네즈에 뭐 이것저것 섞어넣었는데 살짝 매콤짭잘한 게 아주 잘 어울립니다.
식전주로는 사과주(Apple cider)가 나왔는데, 평소에 파인 다이닝 가면 미모사를 주로 마시는지라 왠지 미모사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은 사과주에는 손이 잘 안 가더군요.
꿩고기와 포아그라 테린느. 꿩고기와 포아그라를 겹쳐눌러서 편육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고기는 씹히는 맛이 있으면서도 포아그라는 살살 녹는게, 그야말로 새고기로 만든 삼겹살 느낌입니다.
여기에 마데이라 소스와 크렌베리를 곁들여 먹습니다. 그런데 소스보다도 와인하고 궁합이 완전 잘 맞네요.
캘리포니아산 블랙 머스켓 와인이 나왔는데, 처음엔 '왠 디저트 와인이 나오나' 싶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기름진 고기와 달달한 와인이 엄청 잘 어울립니다.
입맛이 약간 초딩 입맛이라 달달한 거 좋아하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요.
야생 새끼비둘기 요리. 오늘 먹은 것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 하나 꼽으라고 하면 단연 이 요리!
비둘기 고기는 예전에 여행하면서 한 번 먹어보긴 했는데, 새끼 비둘기는 또 완전 다르네요.
아니면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와 야생 비둘기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야생동물은 많이 돌아다니는데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고기가 질기고 특유의 냄새가 나서 그 풍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가축보다 맛이 없는게 일반적인데...
이건 무시무시하게 맛있네요. 한국 돌아가면 닭둘기 둥지를 털어야 하나...
게다가 와인과 함께 먹으니 그 풍미가 더 살아납니다.
허드슨 밸리의 와이너리에서 만든, 바코 누아르(Baco Noir)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인데 스파이시한 느낌이 고기에 양념처럼 스며듭니다.
멧돼지 고기찜. 버섯, 사과, 순무를 곁들인 파스타와 함께 나옵니다.
멧돼지는 그냥 기름기 적은 돼지 고기 느낌입니다.
잘못 다루면 누린내가 강하게 나기 때문에 굳이 이 고기를 쓸 필요가 있나 의구심이 드는 식재료.
이번 요리는 냄새는 별로 나지 않고 야생의 풍미가 희미하게 살아있는 정도였는데, 오히려 고기보다도 버섯 소스와 파스타의 궁합이 좋았네요.
야생동물 고기가 국물 내기 좋다는 말은 들었는데, 고기를 찌고(Braise) 나서 남은 국물로 소스를 만들어서 그런가 봅니다.
페어링한 와인은 뉴욕의 선라이즈 힐에서 만든 렘베르거 레드 와인. 뭐, 나쁘지는 않은데 비둘기의 페어링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그냥 그런 수준으로 느껴집니다.
야생 사슴 고기. 버본으로 조리한 비트와 자두 졸임, 구운 양파를 곁들여서 나왔습니다.
마지막 요리가 좀 실망스러웠네요. 사슴 고기가 원래 그런건지 좀 퍽퍽한 느낌이 강해서 입맛에는 안맞더군요.
게다가 해지스 레드 마운틴으로 페어링을 했는데, 안 그래도 퍽퍽한 고기에 드라이한 와인이 들어가니 안 좋은 의미로 연쇄 효과가 엄청납니다. 결국 와인에는 거의 손도 안대고 중간에 나왔던 바코 누아르와 함께 먹었네요.
물론 이것만 따로 먹었더라면 '나쁘지 않네'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앞쪽에서 먹었던 요리들이 워낙 맛있었던 탓에 상대적으로 더 맛없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사슴과 멧돼지 순서를 바꿨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재밌는 건, 홀 매니져가 요리 설명을 하면서 "셰프가 고기 손질하면서 벅샷(산탄총알)을 찾아냈다. 고기를 꼼꼼히 확인해서 더 이상 남아있는 총알이 없는 것을 확인했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해서 꼭꼭 씹어먹고, 혹시라도 총알이 나오면 행운상 당첨된 거니까 특별 선물을 증정할거다."라고 하더군요.
다들 총알이 나오길 빌며 열심히 먹는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스킬을 하나 배웠습니다.
디저트 나오기 전에 찍어 본 술잔들.
맨 오른쪽부터 물, 사과주, 엘리시움 디저트 와인, 허드슨 채텀 바코 누와르 2016년산, 다미아니 렘베르거 2015년산, 마지막으로 헤지스 레드 마운틴 2012년산입니다.
디저트 와인이 입맛에는 잘 맞았는데 요리와의 궁함은 바코 누와르가 가장 좋았네요. 고기와는 이래저래 잘 맞을 듯 합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와인 페어링을 하면 거의 음식값의 50% 이상이 추가금으로 붙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와인 페어링은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합니다.
치킨만 먹을 때와 치맥 혹은 치콜라의 차이가 무시무시한 것처럼 말이죠.
디저트로는 커피, 그리고 허클베리와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도토리 브라운 버터케이크가 나옵니다.
가니쉬가 신기해서 한참 쳐다봤는데, 액체질소로 얼린 허브 잎사귀에 고운 설탕을 묻혀 장식했습니다.
근데 왜 세이지를 사용한건지는 이해 불가능. 독특하기는 한데 그래도 민트나 레몬버베나 같은 허브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도토리는 희미하게 풍미가 나기는 하는데, 도토리묵을 쑤어 먹는 입장에서는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싶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해서 추수감사절 식사 종료.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 요리를 맛본다는 게 좋은 경험이었네요.
야생의 풍미가 엄청나게 풍길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강한 소스를 곁들여 내니 오히려 그레스페드 소고기보다 풀냄새는 덜 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제일 큰 소득은 역시 비둘기 고기. 예전에 이집트 여행(https://blog.naver.com/40075km/220904969270) 갔을 때 한 번 먹어보고는 '그닥 엄청나게 맛있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집집마다 비둘기를 키우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요리를 제대로 못했던 거였네요.
역시 음식은 잘 하는 집에서 먹어봐야 진가를 알게 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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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생각해보면 닭둘기들은 저 맛이 안 날 거 같아요. 걔네들은 사람들이 술취해서 쏟아놓은 전봇대 피자 같은거 먹고 사니까요... 아무래도 숲 속에서 건강한 것만 먹고 자란 비둘기랑은 맛이 다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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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산중의 숲 속 야생 조류가 살점은 적지만 씹는 맛이나 뜯는 고기 결이 비할 데 없이 일품이죠. 걍 구워서 간도 없이 먹어도 전혀 냄새 안 나고 뭔가 밍밍한 듯하지만 자연의 맛이 느껴짐. 거기 비하면 치킨 살은 비만증 걸린 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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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쫀득한게 새고기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싶은 식감. 나중에 다른 친구들한테도 물어보니까 의견이 다들 비슷하더라구요. 비둘기 최고, 사슴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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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생각해보면 닭둘기들은 저 맛이 안 날 거 같아요. 걔네들은 사람들이 술취해서 쏟아놓은 전봇대 피자 같은거 먹고 사니까요... 아무래도 숲 속에서 건강한 것만 먹고 자란 비둘기랑은 맛이 다를 듯... | 18.11.20 11: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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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네 그저 비둘기고기 하면 낯설어서요ㅋ | 18.11.20 12: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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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바바밥
와...그렇군요! 중국가면 꼭 챙겨먹어봐야겠네요 ~ 알려주셔 감사합니다 ㅋ | 18.11.20 1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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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관리한 식용비둘기는 고급식재료입니다. 저도 스페인에서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비둘기다리먹고 진짜 눈물흘릴뻔..너무맛있었습니다. | 18.11.22 0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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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보는 닭둘기(종명은 바위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봐서 그렇지, 세계적으로 보면 은근 많이 먹히는 가금류에요. 글고보니 우리나라도 산에 자생하는 멧비둘기도 먹긴 하죠. | 18.11.22 08: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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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스페인까지 ㅋㅋ 언젠가....스페인가면 챙겨먹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ㅋㅋㅋ | 18.11.22 10: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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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사실 비둘기 혐오증이 생긴건 길거리에 오바이트하고 열심히 모이주는 사람들이 문제이긴해요 ㅋㅋ | 18.11.22 1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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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인데 쥐나 바퀴벌레도 ㅠ ㅠ....영양분으로 보면 훌륭한 먹을 거리입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쥐는 시궁쥐를 말함) 지내는 곳이 워낙 더러운 곳이니 세균투성이라... 관리잘하는 쥐나 바퀴벌레도 먹을거리이긴 하지만 | 18.11.22 13: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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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ㅋㅋ시궁쥐는 정말 30~40년대에 미국에서 못살던 흑인들이 잡아먹었대요 | 18.11.22 13: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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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못 사는 나라들 빈민들이 먹는 고기죠... 물론 쥐고기를 대수롭지 않게 먹는 나라도 있지만 (동남아나 중국 일부 지역) | 18.11.25 09: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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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구리는 먹어봤는데 기회되면 쥐고기도 맛보고싶네요 ㅎㅎㅎ | 18.11.25 11: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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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이 잡은 걸 이렇게 먹어보니까 직접 사냥해서 먹는 사람들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나름의 풍미가 있어요 ㅎㅎ | 18.11.20 11: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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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시라스
뉴욕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내에 위치한 American Bounty 레스토랑입니다. 근데 야생동물 요리는 딱 하루만 특별 판매한거라 지금은 메뉴에 없어요 ㅎㅎ | 18.11.21 1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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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파크 캠퍼스인가 보군요. 가까운곳에서 일하지만 왠지 안가보게 되는곳... | 18.11.21 14: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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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산중의 숲 속 야생 조류가 살점은 적지만 씹는 맛이나 뜯는 고기 결이 비할 데 없이 일품이죠. 걍 구워서 간도 없이 먹어도 전혀 냄새 안 나고 뭔가 밍밍한 듯하지만 자연의 맛이 느껴짐. 거기 비하면 치킨 살은 비만증 걸린 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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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쫀득한게 새고기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싶은 식감. 나중에 다른 친구들한테도 물어보니까 의견이 다들 비슷하더라구요. 비둘기 최고, 사슴 최악. | 18.11.21 14: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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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등판 ㄷㄷ | 18.11.22 0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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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는 시신
| 18.11.22 08: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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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노숙자같은 아저씨가 비둘기 잡아와서 소주랑 바꾸자고 했다던 그짤인가 | 18.11.22 20: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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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국에서는 보통 게임이라고 하더라구요. | 18.11.22 11: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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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모르겠는데 미국은 검역이 이루어집니다. 자기가 잡아먹는 건 검사받을 필요 없고 돈 받고 팔 경우엔 검사받아야 하지요. 의외로 시장 규모가 꽤 되거든요 ㅎㅎ | 18.11.21 22: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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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부터 계속 말이 나오기는 했는데, 단어는 점점 더 무서워지는 듯 합니다. 처음엔 소해면상내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이었다가 8,90년대에는 광우병(Mad Cow disease)였다가 지금은 좀비사슴병(zombie deer disease)이라니... 나중에는 세계 멸망의 마왕 돼지병... 뭐 이런 이름을 붙일지도 모르겠네요. | 18.11.22 11: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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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즈데이 데블 피그 디지즈... 이쯤되면 죽음의 기수 못지 않은데요 | 18.11.22 19: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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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중에 셰프도 있고, 공중위생 과목이나 영양학 같은 과목은 다른 분야 전공하고 가르치는 교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 18.11.22 1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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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