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여행기(https://blog.naver.com/40075km/221281436244)를 쓴 김에 만들어 먹은 필리 치즈 스테이크.
호기 브레드(hoagie bread)가 샌드위치 빵으로 사용되고, 쇠고기, 피망, 프로볼로네 치즈가 필수적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에 추가로 양파와 버섯, 그리고 간을 하기 위한 소금과 후추 약간씩을 준비해주면 됩니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필라델피아 크림치즈와는 달리, 이 치즈 스테이크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필라델피아 대표 음식입니다.
양파와 피망, 버섯을 얇게 썰어서 준비합니다.
양파와 버섯은 선택사항이긴 한데, 양파는 거의 기본 옵션으로 항상 들어가는 추세이고 버섯은 그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재료지요.
그래서 필라델피아 토박이들은 치즈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 "Whiz with (치즈에 양파 추가)" 혹은 "Whiz without (치즈에 양파는 빼고)"라고 말합니다.
"Cheese steak with onions"라고 하면 그건 타지에서 여행 온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라나요.
롯지 무쇠 그리들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뜨겁게 달군 다음 양파와 피망을 먼저 볶습니다.
스킬렛이 좀 깊이가 깊은 후라이팬이라면 그리들은 깊이가 없는 철판에 가까운 후라이팬이라고 보면 됩니다.
빨리 뜨거워지기 때문에 간단한 아침 식사 용도로 팬케이크나 달걀 후라이, 소시지 등을 요리하기에 좋지요.
양파가 흐물흐물해지면서 얼추 익으면 버섯을 넣고 마저 볶아줍니다.
피자라면 모를까 햄버거나 핫도그에 피망이 들어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필리 치즈 스테이크에서만큼은 피망과 고기, 치즈가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그 외의 재료는 다들 옵션 취급을 받지요.
채소가 다 볶아지면 잠시 치워두고 고기를 그리들에 얹어서 구워냅니다.
고기는 보통 소고기 등심을 사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꽃등심(Rib-eye) 부분을 살짝 얼린 다음 얇게 썰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스테이크용 고기를 종잇장처럼 얇게 써는 건 꽤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냥 정육점에서 불고기용으로 썰어놓은 쇠고기를 사서 쓰면 됩니다.
고기가 얇기 때문에 스테이크 구울 때처럼 미리 소금을 뿌려놓으면 육즙이 다 흘러나옵니다.
고기를 거의 다 굽고 따로 빼놓은 채소를 다시 얹어서 함께 볶다가 소금과 후추 간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료가 익으면서 맛이 어우러지면 빵에 올리기 좋게 두 덩어리로 나눠서 길쭉하게 모양을 잡아줍니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프로볼로네 치즈를 얹은 다음 그리들에 남은 잔열로 녹입니다.
필리 치즈 스테이크에 어떤 치즈를 사용하는지도 의견이 분분한데,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팻츠 레스토랑에서는 치즈 위즈라는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다.
크래프트 사에서 만든 치즈로, 엄밀히 따지면 진짜 치즈라기보다는 치즈 소스에 가까운 물건이지요.
보통은 크래커나 칩을 찍어 먹거나 구운 감자나 옥수수에 뿌려 먹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필리 치즈 스테이크 만들 때는 빵에 고기와 채소를 끼운 뒤 마지막으로 치즈 위즈를 한 국자 듬뿍 떠서 뿌리서 완성합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치즈 위즈 토핑을 관광객 상대로 하는 싼티나는 맛이라고 비난하며, 진짜 필리 치즈 스테이크라면 프로볼로네 치즈를 얹어 녹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개인적인 입맛에는 프로볼로네 치즈가 더 맞지만 치즈위즈는 그 특유의 짭짤하고 싼티나는 맛이 오히려 매력인지라 뭐가 더 좋다고 확언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케첩 듬뿍 묻힌 피카츄 돈까스와 두툼한 돼지고기를 튀겨서 만든 생돈까스가 서로 다른 각자의 매력이 있듯이 말이죠.
치즈가 제대로 녹으면 반으로 자른 호기 브레드 위에 올립니다.
길쭉한 샌드위치를 클럽(Club: 몽둥이) 샌드위치라고도 하는데, 만들 때 곤봉처럼 생긴 길쭉한 빵을 이용합니다.
바게트를 사용하는 레시피도 많지만, 필리 치즈 스테이크는 이탈리안 브레드의 일종인 호기 브레드를 주로 사용합니다.
보통 이탈리안 브레드보다 조금 더 폭이 좁고 길쭉한데다가 바게트보다 부드러워서 샌드위치 만들기 좋은 빵이지요.
이 빵도 원래부터 호기 브레드라고 이름붙은 것은 아니고, 필라델피아의 호그 섬(Hog island)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이 샌드위치 만들어 먹던 빵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필리 치즈 스테이크는 원래 핫도그 장사를 하던 팻이라는 사람이 필라델피아에서 1930년대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자기 점심으로 만들어 먹으려고 소시지 대신 쇠고기와 양파를 구워서 빵에 끼워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택시 운전사가 그 모습을 보곤 자기에게도 하나 만들어 팔라고 주문했고, 맛보고 나서는 "핫도그 때려치우고 이것만 팔아라"라는 감탄을 들었다고 하지요.
그때부터 팻의 스테이크 킹 (Pat's King of Steaks)라는 음식점이 필리 치즈 스테이크의 성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음식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팻츠와 지노스의 대결 구도.
1960년대 들어서 필라델피아 곳곳에 수 많은 음식점들이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팔고 있었고, 조이(Joey)라는 요리사 역시 치즈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치즈 스테이크를 팔려면 치즈 스테이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게를 내야 한다. 치즈 스테이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팻츠 레스토랑 앞이다. 그러니 팻츠 레스토랑 앞에 가게를 내자'였지요.
이미 조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등록되어 있는지라, 문에 누가 낙서로 써 놓은 "Gino"라는 이름을 살짝 바꿔 "Geno's"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합니다.
지노스가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필라델피아 최강자인 팻츠에 밀려 얼마 못 가 폐업할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국엔 팻츠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맛으로 손님을 끌며 두 가게 모두가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필라델피아의 치즈 스테이크 골목을 가 보면 팻츠와 지노스가 마치 서부 개척시대의 총잡이 결투 마냥 좁다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치즈 스테이크의 최강자 자리를 놓고 성업중입니다.
하지만 둘 다 먹어본 바로는 확실히 고급 요리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고기의 질이 특출나게 좋은 것도 아니고, 양념을 좀 쎄게 하는 데다가 치즈위즈까지 듬뿍 뿌려놓았으니... 1930년대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요리입니다.
게다가 팻츠 이후로도 수많은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이 음식을 좀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발전시켜왔고, 좋은 재료를 써서 최소한의 양념으로 맛을 낸 필리 치즈 스테이크는 맥도날드와 수제 햄버거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입니다.
녹아내리는 프로볼로네 치즈의 뒤로 쇠고기 특유의 육즙 가득한 맛이 피망, 양파, 버섯과 함께 섞이면서 빵과 함께 씹히는 맛은 기존의 다른 샌드위치와는 차별화되는 필리 치즈 스테이크만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샌드위치를 먹을 때면 언제나 처음 이 음식을 접했을 때의 당혹감이 떠오르지요.
당시 미국 중부 일리노이에서 동부 뉴저지로 이사를 하는 중이었는데, 큰 짐들은 컨테이너에 넣어 보내고 자동차 트렁크에 이불과 밥솥만 싣고 운전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돌도 안 지난 딸내미를 데리고 가는 길이라 직선거리로 따지면 자동차로 열세시간 걸리는 거리를 단번에 가지는 못하고, 서너시간 운전하고 도시에 들러서 쉬고, 서너시간 운전하고 도시에 들러서 쉬는 식으로 쉬엄쉬엄 2박 3일에 걸쳐서 이동중이었지요
중간에 레스토랑에 들러서 뭐라도 맛있는 걸 먹자고 메뉴를 봤는데 마침 눈에 띈 치즈 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두툼한 스테이크에 치즈가 올려져 녹아내리는 음식을 상상하곤 잔뜩 기대에 차 있었는데, 눈 앞에 등장한 것은 샌드위치 하나.
웨이터 불러서 "나, 치즈 스테이크 주문했는데?" 했더니 "그거 치즈 스테이크 맞는데?"라는 대답을 들으며 실망과 당혹이 버무려진 감정을 맛봐야 했지요.
뭐, 다행히도 처음 먹어 본 필리 치즈 스테이크의 맛은 훌륭했지만요.
만들기가 굉장히 간단하면서도 뜨겁게 먹는 음식인지라 그 뒤로 종종 만들어 먹는데,
뜨거운 치즈와 쇠고기가 입 속을 채울 때마다 언제나 이사를 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미국 중부에서 동부까지 며칠에 걸쳐서 이동하던 그 추억이, 인디애나 폴리스와 콜럼버스, 워싱턴, 필라델피아와 같은 주요 도시들의 기억이 샌드위치 빵 속에서 후추와 함께 양념처럼 버무려지곤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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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맛있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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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 근처에 아메x칸 필x스 에서 파는거 같은 빵을 직접 만드신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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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도 음식에 대한 지식과 문화적 이해가 필요하다는걸 항상 느끼고 갑니다 선추천 후감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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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을가진 문타쿠
저도 치즈케이크로 왔는데 서브웨이가 있어서 왓??? 했네요 ㅋㅋ | 18.05.27 11: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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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을가진 문타쿠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행 | 18.05.27 16: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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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을가진 문타쿠
필라델피아 치즈 까지만 읽고 케이크로 받아들인 당신들은 모두 군필자 입니다. 물론 저도... | 18.05.27 17: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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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을가진 문타쿠
저만 그런게 아니엇군요ㅋㅋ | 18.05.27 19: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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킄.........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 18.05.27 22: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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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흣... 분대카드로 애들이랑 하나 사서 나눠먹었엇는데.. | 18.05.28 16: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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엌ㅋㅋㅋㅋㅋ 저도 이 댓글 달려했는데 ㄷㄷㄷ | 18.05.28 08: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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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거기서 사먹는데 보통 햄버거나 써브웨이샌드위치와는 또 다른 맛입니다. ㅋ | 18.05.28 1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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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금과 치즈로 간을 맞춥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마요+케첩을 쓰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 18.05.28 05: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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