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몰아치는 날이면 왠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요리가 끌리곤 합니다.
"비도 오는데..."라는 말 뒤에는 칼국수, 우동, 하다못해 라면에 이르기까지 비에 젖고 바람에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는 음식 이름이 어울리는 법이지요.
마침 토마토 수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받았겠다, 미네스트로니를 만들기로 합니다.
육수와 각종 채소를 넣고 만드는 이탈리아식 토마토 수프인데, 제대로 맛을 내자면 역시 통닭으로 육수부터 내야 합니다.
닭을 대충 4~5토막으로 잘라서 핏물 빼고 잘 씻은 다음, 커다란 냄비에 담고 통후추, 마늘, 월계수 잎과 함께 끓여줍니다.
대략 한 시간정도 거품을 걷어가며 끓이다가 닭을 건저내서 살을 다 발라내고 뼈만 다시 넣어서 한나절 정도 국물을 우려냅니다.
나절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하루 낮의 절반 정도라는 의미이므로 한나절은 4~6시간 정도, 반나절은 2~3시간 정도를 의미하지요.
이런 류의 요리가 다 그렇듯이, 오랫동안 푹푹 삶아야 맛있습니다.
육수 준비가 거의 끝나가면 채소를 손질합니다.
미네스트로니는 이탈리안 가정식 요리의 대표격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레시피는 없습니다.
토마토 수프에 집에 남아있는 채소를 대충 이것저것 넣으면 다들 미네스트로니라고 하지요.
콩과 당근, 샐러리, 양배추를 주 재료로 넣기로 합니다.
콩은 껍질을 벗기고, 당근과 샐러리는 조그맣게 토막내고, 양배추는 얇게 썰어줍니다.
양파와 마늘은 잘게 다지고, 토마토는 껍질에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 다음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껍질을 벗겨서 준비합니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토마토를 넣고 으깹니다.
따로 물을 붓지 않아도 토마토에서 수분이 많이 나와서 부글부글 끓는데, 다 증발시키고 거의 퓨레처럼 되직해질 때까지 졸입니다.
레시피에 따라서는 토마토 심과 씨앗을 제거하고 쓰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껍질만 벗기고 심까지 잘게 썰어넣곤 합니다.
어떨 때는 껍질도 그냥 함깨 으깨버리기도 하지요. 수프에 넣고 오래 끓이면 껍질과 심도 그 나름대로 먹는 맛이 나거든요.
"오, 껍질도 벗기지 않은 배를 먹어야 한다면 이 세상은 정말 끔찍한 장소일거예요!" 피노키오가 외쳤습니다.
제페토는 칼을 꺼내 배의 껍질을 깎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습니다.
피노키오는 눈 깜빡할 새에 첫 번째 배를 다 먹어치우곤 남아있는 심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려고 했습니다.
"아니야. 그걸 버리지 말거라. 세상 모든 물건은 다 쓸모가 있는 법이야."
"하지만 나는 심을 먹지는 않을 거예요!" 피노키오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피노키오가 배 세 개를 다 먹고 나자, 테이블 위에는 세 개의 심과 껍질이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난 아직도 배가 고파요, 아빠." 피노키오가 울며 말했습니다.
"이제 남은 음식이라곤 이 세 개의 심과 껍질 뿐이란다."
피노키오는 심과 껍질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모두 먹어버리곤 배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이제 훨씬 더 기분이 나아졌어요."
- 카를로 콜로디, "피노키오" 중에서
다 우러난 육수는 체에 걸러서 뼈와 향신료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육수를 끓이가며 토마토 퓨레를 넣고, 좀 더 끓이다가 손질한 채소들을 마저 넣어줍니다.
가정식 요리답게 집에 남아있는 채소를 아무거나 넣어도 됩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샐러리, 당근, 콩이지만 그 외에도 브로콜리, 양배추, 단호박, 병아리콩, 순무, 감자 등 어떤 재료를 넣어도 잘 어울리는 것이 장점입니다.
여기에 바질과 이탈리안 시즈닝, 소금, 후추를 뿌려서 간을 합니다.
다만 정말 맛있는 미네스트로니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무엇을 넣느냐보다는 육수를 오래 끓이고 토마토 퓨레를 정성들여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요.
토마토가 들어간 육수 맛을 봤을 때 맛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나중에 채소를 넣어서 우려냈을 때 성공적인 미네스트로니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수프를 가리키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주파(Zuppa)와 미네스트라(Minestra)가 그것입니다.
주파는 영어로 수프(Soup)와 대응되는 단어로, 국물에 적신 빵(suppa: soaked bread)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면에 미네스트라는 관리한다(administer)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집의 가장이나 안주인이 커다란 솥에서 국을 떠서 개인 접시에 나누어 준 데서 따온 이름입니다.
주파가 국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미네스트라는 국물을 이용해서 다른 재료들을 요리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미네스트라에는 일반적으로 콩이나 감자, 파스타, 쌀 등 국물을 걸쭉하게 만드는 재료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지요.
심지어는 국물이 거의 없는 리조토나 파스타도 Dry minestra로 분류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 수많은 미네스트라 중에서도 여러 가지 채소를 핵심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미네스트로니입니다.
파스타는 펜네 파스타를 넣었습니다. 날카롭게 잘린 끝 부분이 펜촉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요.
미네스트로니에 들어가는 파스타 역시 집 안에 남아있는 것 중 아무거나 넣으면 되지만
그래도 펜네나 부카티니(http://blog.naver.com/40075km/220949627572)처럼 안에 구멍이 뚫리거나,
돌돌 말린 조개껍데기 모양의 콘킬리에 처럼 소스를 흠뻑 머금을 수 있는 파스타들이 주로 사용됩니다.
스파게티 등의 롱파스타를 사용할 때는 숟가락으로 떠먹기 좋게 부숴서 넣기도 합니다.
파스타를 넣기 전에 작은 냄비를 하나 꺼내서 먹을 만큼만 따로 덜어내고 끓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 번에 다 끓여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팅팅 불어터진 파스타를 먹어야 하니까요.
"방은 상태가 좋고 아늑해서 들어서면 왠지 편안함이 느껴진다. 바람소리와 빗물받이로 흐르는 빗물이 이런 느낌을 더해준다.
마치 커다란 나무 꼭대기의 새 둥지처럼 포근해 보이는 방이다.
집 안의 모든 것들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덮개 달린 난로 위에는 작은 냄비가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며 조용히 끓고 있다.
하지만 이따금 조바심이 나는지 김을 뿜어내며 뚜껑을 들썩인다. 그럴 때마다 맛있는 더운 김이 피어올라 방 안으로 퍼진다.
오! 치즈가 든 수프의 맛있는 냄새...
(중략)
이 모든 감정적 변화와 장엄한 연설의 결과로 찾아온 배고픔이 위장을 공허하게 만들고,
그 남자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작은 테이블 앞에 앉는다.
그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킨나(고대 로마의 집정관)에서부터 막시무스 황제까지 시선을 돌려본다.
하지만 그 초점은 이미 적당하게 끓어서 이제 막 완성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프와
숟가락 끝에서 하얀 실타래처럼 늘어지는 매혹적인 치즈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다."
- 알퐁스 도데, "치즈 수프" 중에서
어릴 적 책장 한 켠에서 발견한 오래 된 알퐁스 도데 단편집.
어찌나 오래 되었는지 한자가 무수히 섞여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무려 세로 쓰기로 인쇄되었던지라 읽기가 고달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수록되어 있던 치즈가 든 수프의 묘사는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인스턴트 수프에 올려 먹던 슬라이스 치즈는 금방 녹아버렸기 때문에 하얀 실타래의 묘사를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지만요.
뜨거운 미네스트로니에 갓 갈아낸 파마산 치즈를 듬뿍 올려 녹인 다음 스푼으로 뜨면 하얀 실타래가 늘어지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으로 간단하게 먹기 위해 다시 끓인 미네스트로니.
이번에는 파스타나 치즈 없이 가볍게 먹어줍니다.
오랫동안 끓여야 맛있는 음식은 역시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던 것을 다음 날 다시 끓여먹는게 더 맛있게 느껴지네요.
채소의 맛이 국물에 다 우러나오는 느낌이랄까요.
토마토의 맛이 베이스가 되어 다양한 채소들의 맛을 한데 뭉치고, 그 밑바닥에는 닭뼈 육수의 고소한 맛이 묵직하게 받쳐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국물이 비바람 치는 창문 밖 풍경과 대조되며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오랜 시간을 끓여내야 하기 때문에 타이머 맞춰놓고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요리이지만,
그 과정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집 안을 맛있는 냄새로 가득 채우는 따스한 분위기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부글거리는 냄비에서 퍼져나오는 증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전의 사제가 향을 태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춥고 배고픈 기운을 몰아내는 맛있고 성스러운 기운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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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맛있는데 이게 양식조리사준비할때 시험용메뉴로만들면 진짜 맛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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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75님 글은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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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봤습니다. 역시 가정식이라 하면 준비하고 조리하는데는 비교적 시간이 걸리지만 해놓고 나면 큰 냄비에 두었다가 한끼마다 적당히 덜어 데우고 먹으면 맛이 퇴보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소재의 맛이 진해져서 냄비가 바닥에 가까울수록 오히려 요리의 맛이 더욱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클리셰같은게 있는것 같아요. 다만, 익숙한 요리일수록 제대로 할려면 숙련도가 있어야 한다는것도 가정식의 공통점이 될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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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몸의 양식이기도 하지만 이럴땐 영혼의 양식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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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맛있는데 이게 양식조리사준비할때 시험용메뉴로만들면 진짜 맛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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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만 많이들어가고 육수를 제대로 안내니 맛도 빈약하고, 조리시간도 짧고 ㅋㅋㅋㅋㅋㅋ 맛보면서 테크닉도 그닥 필요없는 이런 메뉴를 왜 넣은건지 이해가 안갔음ㅋㅋㅋ | 18.05.18 13: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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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봤습니다. 역시 가정식이라 하면 준비하고 조리하는데는 비교적 시간이 걸리지만 해놓고 나면 큰 냄비에 두었다가 한끼마다 적당히 덜어 데우고 먹으면 맛이 퇴보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소재의 맛이 진해져서 냄비가 바닥에 가까울수록 오히려 요리의 맛이 더욱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클리셰같은게 있는것 같아요. 다만, 익숙한 요리일수록 제대로 할려면 숙련도가 있어야 한다는것도 가정식의 공통점이 될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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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중이신걸로... | 18.05.21 14: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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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얘기한겁니당^^;; | 18.05.21 13: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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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과실은 마력을 저하시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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