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까지만 해도 학교가 휴교할 정도로 눈이 내리곤 해서 봄은 언제 오나 싶었는데
드디어 주차장에 쌓인 눈도 다 녹고 나뭇가지에는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는게 봄기운이 완연히 느껴집니다.
한국이었으면 봄나물을 잔뜩 먹었을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대신 신선한 농작물을 파는 파머스 마켓에서 쇼핑을 합니다.
오늘 준비한 재료는 호박, 양파, 당근, 피망, 방울토마토,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시금치, 민들레, 바질.
여러가지 채소를 잔뜩 넣은 프리마베라 파스타를 만들 예정입니다.
세몰리나 밀가루 220그램에 달걀 두 개 넣고 반죽하면 파스타 2인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반죽기에 넣고 열심히 돌려 반죽을 한 다음 비닐 랩을 씌워서 20분 정도 숙성시킨 후 파스타 기계에 넣고 뽑아냅니다.
오늘의 파스타는 푸실리(Fusilli).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모양이 인상적인 숏 파스타입니다.
그 어원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그 꼬인 모양이 마치 총의 내부에 새겨진 회오리모양 강선 같다는 이유로 이탈리아어로 소총을 뜻하는 fucile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회전하는 막대기로 밀어내면서 만드는 파스타인지라 회전축이라는 뜻을 지닌 fuso에서 따 온 이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민들레잎은 줄기 부분을 잘라내고 바질, 시금치와 함께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잘 씻은 후 따로 보관합니다.
다른 채소들도 썰어서 준비합니다.
2인분 기준으로 양파, 당근, 애호박, 브로콜리는 반 개 씩. 노란 피망과 빨간 피망 합쳐서 반 개 분량.
아스파라거스는 줄기 부분은 잘라버리고 제일 맛있는 끝부분만 사용합니다.
파머스 마켓 채소들은 근교의 농장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하지만,
그 대신 흙이 묻어있는 경우도 많아서 잘 씻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소금을 넉넉히 뿌린 다음, 올리브유 살짝 넣고 팔팔 끓입니다. 끓는 물에 푸실리를 넣고 삶아줍니다.
방금 만든 생파스타인지라 건조 파스타 만들 때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만 삶아줘도 됩니다.
그래서 건조 파스타를 사용할 때는 면이 거의 다 익을 때가 되어서야 소스를 준비하는데,
생파스타는 끓는 물에 파스타 넣자마자 소스를 준비합니다.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른 팬에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단단한 채소부터 당근, 피망,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호박 순으로 넣어줍니다.
개인적으로 방울 토마토는 씹으면 뜨거운 즙이 톡 터져나올 정도로 살짝 익히는 것을 좋아해서 파스타 넣을 때 함께 넣습니다.
채소들이 어느 정도 익어서 부드러워지면 푸실리를 넣고 볶습니다.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으면 파스타 삶은 물 약간과 발사믹 식초를 넣고 잘 섞어줍니다.
물과 기름은 안 섞이는 게 원칙이지만 이렇게 마구 지지고 볶다 보면 유화작용(emulsion)이 일어나서 얼추 섞이는 분위기가 됩니다.
면수와 발사믹 소스, 채소의 풍미를 머금은 올리브유가 적절하게 섞이면서 프리마베라 파스타의 소스 역할을 합니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크림을 넣어서 크림 파스타 풍미의 프리마베라를 만들 수도 있고,
가장 흔한 토마토 소스를 듬뿍 넣어서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신선한 채소를 맛보기에는 올리브 오일 베이스의 깔끔한 소스가 제격입니다.
"새러는 메뉴를 앞에 놓고 울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성스러운 절망의 눈물이 솟구쳐나와 그녀의 두 눈에 고였다.
그녀는 조그만 타자기 위에 머리를 떨군 채 자신의 흐느낌 소리에 맞추어 덜거덕거리며 자판을 두드렸다.
그녀는 두 주일이 지나도록 월터에게서 편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메뉴에 타자할 다음 항목은 바로 민들레, 무슨 종류인가의 달걀을 곁들인 민들레 - 달걀이야 아무러면 어떠랴! - 요리였던 것이다.
그것은 지난 봄 월터가 사랑의 여왕이자 미래의 신부인 새러의 머리 위에 씌워주었던 그 황금빛 민들레,
지금은 새 봄의 전령이며 슬픔의 왕관, 그리고 행복했던 지난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바로 그 민들레였다.
새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여성 독자 여러분은 아마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퍼시라는 청년에게 마음을 바친 그 날 밤,
그가 들고 온 마레샬니엘 장미꽃이 슐렌버그 식당의 테이블 위에 프렌치 소스와 함께 샐러드가 되어 나왔다고 상상해보라."
- 오 헨리, "식탁에 찾아온 봄" 중에서
새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민들레 잎을 샐러드로 만들어 먹으면서 봄을 느끼는지라
접시에 잎채소를 넉넉하게 깔고 그 위에 파스타를 올려줍니다.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갈아서 뿌리고 드레싱 역할을 하는 발사믹 식초를 잎채소 위에 한 번 주욱 둘러주면,
이탈리아어로 '봄'을 의미하는 프리마베라 파스타 완성입니다.
파스타를 사용하고 요리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되어있으니 이탈리아 요리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레시피입니다.
뉴욕의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인 르 써크(Le Cirque)에서 가장 먼저 '스파게티 프리마베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거든요.
정확히 누가 이 메뉴를 개발했는지는 약간 애매합니다.
르 써크의 오너인 시리오 마치오니(Sirio Maccioni)가 다른 두 셰프와 공동 연구로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시리오 마치오니의 아내가 캐나다 여행 당시 신선한 채소로 만들어 냈다는 말도 있고,
르 써크의 요리사였던 베르네스(Vergnes)가 크림이 들어간 최종 완성본 레시피를 만들었다고도 하니까요.
프랑스식 크림소스와 이탈리아의 요리재료(올리브유, 파스타, 발사믹 식초)를 섞어서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미국식입니다.
샐러드는 민들레의 약간 씁쓸한 맛이 살짝 무미건조한 시금치와 어우러지면서 입 안을 상쾌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 새콤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발사믹 식초가 흠뻑 스며 든, 꼬들꼬들한 푸실리 파스타를 먹고 있노라면
가끔씩 입 속에서 씹히는 채소들이 봄이 온 것을 알려주는 기분입니다.
한 편으로는 드디어 봄이 왔구나 싶어 기쁘다가도, 다른 한 편으로는 오 헨리가 말한 "더 이상 굴 요리를 즐길 수 없다는, 다소 천박한 방법으로만 그 무딘 가슴속에 봄을 맞이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좀 부끄러운 기분도 들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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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봤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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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모닝스타를 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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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야겜만들면 정말 좋을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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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핥으면 맛 느낄 수 있는 신기술 나오면 좋겠네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보면서 제일 탐나는 기술이 TV로 초콜릿 전송하는 거였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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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면부터 뽑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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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로 치면 봄나물 비슷한 이미지인 듯 합니다. 꽃 피면 질겨서 못 먹으니 이른 봄에만 먹을 수 있으니까요. | 17.04.05 22: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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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추천 먹고 삽니다. 냠냠 | 17.04.05 22: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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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봤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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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핥으면 맛 느낄 수 있는 신기술 나오면 좋겠네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보면서 제일 탐나는 기술이 TV로 초콜릿 전송하는 거였음요... | 17.04.05 2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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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작성자님 답글다시는건 처음 봅니다 ㅎㅎ 아무튼 글 잘 보고있습니다! 고마워요! | 17.04.05 22: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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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75km
그걸로 야겜만들면 정말 좋을거같다 | 17.04.08 0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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큽...! 저 같은 유게이도 기회를 가질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 | 17.04.08 12: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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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33193039 액정핥기.. | 17.04.08 15: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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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해피엔딩이 많지요. 그래서 오 헨리 단편선은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 17.04.05 2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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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는 본능에 충실하게 또 뭐 먹어주면 됩니다! | 17.04.05 2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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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요리는 그냥 사먹는 것보다 더 비싸게 들었습니다... 막판에 뿌린 발사믹 식초가 워낙 비싼 놈인지라...ㅠ_ㅠ | 17.04.05 22: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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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민들레는 씨앗 후후 불면서 노는 용도만 있는 줄 알았더랬지요... ㅎㅎ | 17.04.05 22: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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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나갈 정도의 '맛' 이 느껴집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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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꺽기 당하신분 죽었나요? 입에서 뭐 나가는거 같은데 강냉이 털린건가요? | 17.04.09 14: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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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잘은 몰라도 정준하가 노홍철한테 주식 하자고 했는 데 망해서 ㅋㅋㅋ 저래요 ㅋㅋㅋ | 17.04.09 16: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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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모닝스타를 드리지요. | 17.04.08 11: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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