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투쟁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치열한 투쟁이라면 역시 배고픔과의 투쟁일 겁니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사람들은 어떻게든 더 많은 먹거리를 구하려고 애썼고, 또 그렇게 목숨 걸고 구한 음식을 보존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 대표적인 음식 보존 방법이 바로 소금에 절이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생선을 소금에 절인 자반이 만들어진 반면, 서양에서는 고기를 소금에 절여 햄이나 베이컨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염장 고기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은 단순히 쇠고기를 초석과 소금에 절인 다음 소금물에 넣어서 보관한 형태입니다.
이른바 콘비프라고 불리는 음식인데, 이름만 보면 옥수수를 곁들인 쇠고기 요리를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옥수수는 안들어갑니다.
정확한 명칭은 콘'드'비프(Corned beef).
콘이라는 단어를 흔히들 옥수수라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실제로는 곡물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특히 굵은 소금 알갱이나 통후추처럼 곡물 모양을 한 알갱이들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Corned라고 하면 옥수수에 버무린 게 아니라 소금에 절였다는 의미지요.
고기는 양지 부위를 사용하고, 여기에 소금 반 컵, 황설탕 1/4컵, 클로브(Clove: 정향), 월계수잎, 시나몬 스틱, 마늘이 들어갑니다.
콘비프를 만드는 것 자체는 그닥 어렵지 않습니다.
고기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물에 넣고 한 번 끓인 다음 완전히 식혀서 고기에 부어주기만 하면 되지요.
이렇게 소금물에 넣은 채로 일주일에서 열흘정도 절여줍니다.
집에서 먹을거라 방부제 역할을 하는 아질산염은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중에서 파는 베이컨은 요리해도 빨간 색깔이 유지되는데 집에서 만든 베이컨이나 콘비프는 요리를 하면 보통 고기처럼 회색으로 변하는 게 특징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수제 베이컨을 구워주면 "이거 삼겹살 구이인데?"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한 입 먹고는 "베이컨 맞네"하지요.
다 만들어진 콘비프는 찬물에 잘 씻어서 여분의 소금기를 빼 준 다음 요리합니다.
여담이지만 옛날에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콘비프는 보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엄청나게 짜게 만들었고,
콘비프를 식량으로 배급받던 선원들은 염도를 낮추기 위해 바닷물에 씻어 먹었다는 말도 있지요. 고기가 바닷물보다 더 짜다는 소리.
다행히 요즘 만드는 콘비프는 보존식이라기보다는 맛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금 반 컵 정도로 절인 소고기는 조금만 씻어줘도 됩니다.
원래 방식대로 물에 콘비프와 양배추, 당근을 넣고 오랫동안 삶아서 콘비프 캐비지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해서 좀 부드럽게 만들어 보기로 합니다.
(수비드에 대한 이야기는 수비드 스테이크 http://blog.naver.com/40075km/220910475047 포스팅 참조)
양파를 썰어서 겹친 후, 진공포장 한 후 히팅보울에 넣고 65도로 24시간동안 조리합니다.
수비드가 끝난 고기는 밀봉된 채로 냉장고에 넣어 식힙니다.
완성된 콘비프의 모습.
전반적으로 장조림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간장 대신 소금과 향신료로 맛을 낸 까닭에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염장 단계에서 수분을 많이 날려버린지라 육즙이 흘러넘치지는 않습니다만, 수비드로 조리해서 부드러운 식감은 살아있네요.
이게 깡통햄이나 소시지에서 볼 수 있는 갈은 고기의 인위적인 부드러움이 아니라 근육 자체의 자연스러운 부드러움이라 씹는 맛이 좋은게 특징입니다.
예전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반나절동안 끓여서 만든 콘비프보다 식감이나 맛에서 좀 더 나은 듯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놓은 콘비프는 얇게 썰어서 샌드위치에 끼워먹어도 되고, 그냥 쭉쭉 찢어서 밥반찬으로 먹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는 콘비프 해쉬를 요리하려고 만든 콘비프인데, 입이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뜯어먹다보니 1/3도 남지 않았습니다.
위기감을 느끼며 허겁지겁 콘비프 해쉬를 만들 준비를 합니다.
해쉬라는 요리 이름이 프랑스어의 hacher (잘게 썰다)에서 온 만큼, 준비라고 해봤자 콘비프와 감자, 양파를 잘게 썰어놓는게 전부지만요.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다가 감자와 고기를 넣고 마저 볶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소금간은 콘비프에 이미 되어있고, 기호에 맞춰 후추만 좀 더 뿌려줍니다.
달걀을 하나 구워서 올리고 후추를 좀 더 뿌려줍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백작부인의 요리사가 후추를 들이붓는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듬뿍 뿌려주는 걸 좋아합니다.
후추가 금값이던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원래 콘비프는 저렴한 부위의 고기를 오랫동안 먹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저장식품이었고
특히 병조림이나 통조림이 개발되기 전에는 군인들에게 주로 지급되던 품목이기도 했지요.
그나마 현지에서 싱싱한 식재료를 조달할 수 있는 육군과는 달리 바다에서 오랜 기간 항해를 해야 했던 선원들은
믿고 의지할 거라곤 이빨이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건빵(쉽비스킷)과 입이 돌아갈 정도로 짠 콘비프밖에 없었습니다.
왜 선원들이 럼주에 목숨 걸었는지 알만하지요. 취하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으니까요.
당시의 콘비프는 가축 방목과 소금 확보가 유리한 아일랜드 지방에서 주로 만들었고,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 콘비프이기도 합니다.
아일랜드 최대 명절인 성 패트릭의 날에는 온 세상을 물들인 토끼풀의 녹색과 기네스 맥주와 더불어 콘비프가 명절음식 비슷한 대접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던 것이 통조림이 널리 퍼지고, 콘비프도 무식하게 짜게 절이는 대신 적당히 간을 해서 양철캔에 넣고 가열하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을만한' 고기가 됩니다.
특히 신선한 고기가 부족했던 세계대전 당시에는 콘비프를 이용해서 여러가지 요리를 해 먹기도 했구요.
그러나 스팸이나 캔에 든 콘비프는 전쟁통에서나 별미였지 일상적으로 봤을 때는 어디까지나 저렴한 맛에 먹는 고기 대용품 정도의 위치입니다.
그래서 직접 만든 콘비프 요리와 깡통에 든 콘비프는 거의 다른 음식으로 간주되기도 하구요.
실제로도 둘 다 먹어본 입장에서는 시간과 노력과 향신료를 아낌없이 쏟아넣은 콘비프는 공장에서 대량생산 하는 물건과는 전혀 다른 맛을 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와는 별개로, 고기의 짠 맛이 감자와 양파에 잘 스며든 콘비프해쉬에 달걀을 곁들여 먹으면 왠지 하얀 쌀밥에 지글지글 구운 스팸 한 장 얹어 먹는 느낌입니다.
간단한 요리지만 그 속에 녹아든 정서는 간단하지 않은, 호화롭게 차려먹기는 힘들어도 나름 기운을 내기 위해 저렴한 고기나마 구워서 짭짤한 반찬삼아 든든하게 먹는 그런 메뉴랄까요.
(IP보기클릭)183.96.***.***
음겔에서 혼자 요리 칼럼을 쓰고 계신 이 분...
(IP보기클릭)125.188.***.***
향할 곳 잃은 분노와 증오가 유령처럼 떠도는 이 게시판에서, 홀로 묵묵하게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계시는 분..
(IP보기클릭)183.106.***.***
밥위에 잔뜩 얹어서.. 반숙 계란 올린후 비벼서 김에 싸먹으면 엄청 맛있을 거 같아요.
(IP보기클릭)122.45.***.***
콘비프가 저런 뜻이었다니.... 새로운 지식에 1따봉 드리고 갑니다. 게시글 볼 때마다 요리법+먹거리의 역사를 보는 거 같아서 항상 재밌게 보고 있어요!
(IP보기클릭)121.130.***.***
이 분 글은 읽을때마다 재미있네요 ^^
(IP보기클릭)183.106.***.***
밥위에 잔뜩 얹어서.. 반숙 계란 올린후 비벼서 김에 싸먹으면 엄청 맛있을 거 같아요.
(IP보기클릭)119.207.***.***
(IP보기클릭)122.44.***.***
(IP보기클릭)119.196.***.***
(IP보기클릭)221.152.***.***
(IP보기클릭)124.49.***.***
(IP보기클릭)175.197.***.***
콘킹은 그냥 상표입니다 패키지에도 대놓고 옥수수 그림 그려져 있어요... | 17.02.20 15:12 | |
(IP보기클릭)118.41.***.***
콘킹 소시지는 콘시럽이 들어가있어서 콘이 붙은걸로... 콘킹 베이컨도 있죠... 다른것처럼 메이플 시럽쓴게 아닌 콘시럽 쓴... | 17.02.20 17:30 | |
(IP보기클릭)124.49.***.***
옹 그렇군요. 제가 또 뇌내망상을.... | 17.02.20 17:51 | |
(IP보기클릭)122.45.***.***
콘비프가 저런 뜻이었다니.... 새로운 지식에 1따봉 드리고 갑니다. 게시글 볼 때마다 요리법+먹거리의 역사를 보는 거 같아서 항상 재밌게 보고 있어요!
(IP보기클릭)183.96.***.***
음겔에서 혼자 요리 칼럼을 쓰고 계신 이 분...
(IP보기클릭)121.124.***.***
(IP보기클릭)222.121.***.***
(IP보기클릭)14.53.***.***
(IP보기클릭)121.152.***.***
(IP보기클릭)219.255.***.***
(IP보기클릭)1.237.***.***
(IP보기클릭)206.180.***.***
(IP보기클릭)121.130.***.***
이 분 글은 읽을때마다 재미있네요 ^^
(IP보기클릭)221.165.***.***
(IP보기클릭)125.178.***.***
(IP보기클릭)210.221.***.***
(IP보기클릭)119.193.***.***
(IP보기클릭)125.188.***.***
향할 곳 잃은 분노와 증오가 유령처럼 떠도는 이 게시판에서, 홀로 묵묵하게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계시는 분..
(IP보기클릭)58.127.***.***
오~ 비유 쩔어요~ ^^ | 17.02.20 17:24 | |
(IP보기클릭)14.55.***.***
19세기에 많이 먹었던 콘비프라 리플도 19세기에 나온 공산당선언 비스무리한게 쓰였네요 ㅎ | 17.02.20 23:25 | |
(IP보기클릭)182.222.***.***
(IP보기클릭)112.171.***.***
(IP보기클릭)14.45.***.***
(IP보기클릭)211.117.***.***
(IP보기클릭)220.123.***.***
(IP보기클릭)211.222.***.***
(IP보기클릭)122.43.***.***
(IP보기클릭)59.20.***.***
(IP보기클릭)218.239.***.***
(IP보기클릭)27.137.***.***
(IP보기클릭)122.36.***.***
(IP보기클릭)121.148.***.***
(IP보기클릭)183.102.***.***
(IP보기클릭)118.37.***.***
(IP보기클릭)219.255.***.***
애초에 장기 보관을 위한 염장고기 조리법을 재현하신 거니, 신선하고 육즙 가득한 일반 고기보단 시각적으로 맛이 없어 보이는게 당연하겠지요. | 17.02.21 14:56 | |
(IP보기클릭)61.75.***.***
(IP보기클릭)175.215.***.***
(IP보기클릭)121.130.***.***
(IP보기클릭)14.41.***.***
(IP보기클릭)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