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기 정리하다가 하라주쿠에서 사 먹었던 딸기 크레이프 사진을 보니 갑자기 다시 먹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매년 2월 2일은 크레이프 먹는 날이라고도 하니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만든 크레이프 수제트.
재료는 밀가루 80g, 설탕 20g, 소금 한 꼬집, 달걀 2개, 우유 200ml, 버터 20g입니다.
여기에 오렌지 소스를 만들기 위해 오렌지 네 개, 설탕과 버터 약간, 그리고 오렌지 브랜디를 준비합니다.
버터를 제외한 나머지 크레이프 재료를 핸드 블랜더나 믹서 등으로 갈아서 섞어줍니다.
다 섞이면 녹인 버터를 조금씩 넣어가며 마저 섞어줍니다.
반죽 만드는 게 귀찮을 경우에는 핫케이크 가루 사서 좀 묽게 만들어 써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후라이팬을 예열하고, 조그만 국자로 크레이프 반죽을 떠서 휙 두르듯이 부은 다음 후라이팬을 이리저리 기울여가며 반죽이 골고루 퍼지도록 해 줍니다.
평소에는 무쇠팬 사용하는 걸 좋아하는데, 크레이프 만들 때는 어쩔 수 없이 가벼운 코팅팬을 사용해야 합니다.
전문적으로 크레이프 만드는 사람들이야 로젤(rozell)이라고 불리는, 반죽을 얇게 펴는 도구를 사용합니다만
집에 그런 게 없는 사람은 열심히 후라이팬을 움직여가며 반죽을 얇게 펴야 하거든요.
게다가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크레이프를 뒤집으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무쇠팬은 무리입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크레이프.
크레이프라는 이름부터가 '둘둘말리다'라는 뜻에서 왔을 정도이니 둘둘 말 수 있을 정도로 얇게 구워줍니다.
두껍게 구워버리면 크레이프가 아니라 팬케이크가 되어버리니 주의가 필요하지요.
워낙 두께가 얇은 탓에 팬케이크라면 네다섯 장 구울 정도의 반죽인데 크레이프로는 거의 열 장 가까이 나옵니다.
구워진 크레이프를 쌓아두고 오렌지를 짜서 주스를 만들어 줍니다.
오렌지 반 개 정도는 껍질을 깨끗하게 씻고 강판으로 갈아서 제스트를 만듭니다.
예전에 "어차피 끓일 건데 가열처리한 시판 오렌지주스나 갈아서 만든 거나 별 차이가 있는가"라는 코멘트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만
천연재료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요.
오렌지를 가열처리해서 농축하는 이유는 유통의 편의성을 위해서 입니다. 그냥 끓이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걸쭉해질 정도로 졸여버리기 때문에 오렌지 천연의 맛과 향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옵니다.
이걸 되살리기 위해 원액에 물을 부으면서 여러가지 첨가물을 넣지요.
재밌는 건 우리나라 식품법상 오렌지 원액+물의 비율이 95% 이상이면 100% 오렌지 주스라고 광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렌지 100%라고 광고하는 주스 중에도 실제로는 이런 저런 인공향이나 감미료가 추가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눈 앞에서 직접 짠 오렌지 주스는, 진짜로 오렌지 100%가 확실하지요.
버터를 녹이고 설탕을 부어서 캐러맬화 시킵니다.
설탕이 녹으면서 갈색으로 변하고 끓기 시작하면 오렌지 주스를 붓고 제스트를 뿌려서 마저 끓여줍니다.
소스가 완성되면 크레이프를 접어서 올립니다.
원래 크레이프라면 둘둘 말아먹어야 제 맛인데 이렇게 접어서 소스를 적시는 것도 크레이프라고 해도 되는 건지 의문입니다.
크레이프가 소스에 푹 적셔지면 오렌지 브랜디인 그랑 마르니에를 뿌리고 불을 붙여서 플람베 해 줍니다.
플람베를 하면 브랜디의 알콜은 날아가면서 브랜디 특유의 깊은 맛이 스며들고 여러 재료가 자연스레 어우러집니다.
그랑 마르니에가 워낙 가격대가 높다보니 비슷한 오렌지 술인 쿠앵트로를 사용하는 곳도 많은데 아무래도 코냑 베이스 브랜디가 갖는 특유의 깊이를 따라오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술과 관련된 이야기도 썰을 풀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이건 또 다음 기회에...
크레이프 수제트의 기원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코미디 프랑셰즈 극장의 여배우였던 수잔느 라이헨버그(Suzanne Reichenberg)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수잔은 수제트라는 예명을 쓰며 연극에서 크레이프를 만들어주는 연기를 했는데,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실제로 크레이프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 레스토랑에서 연극 소품으로 사용할 크레이프를 구입했습니다.
크레이프를 만들어주던 마리보 레스토랑의 주인은 차갑게 식은 크레이프를 먹어야 하는 배우들을 위해 브랜디를 붓고 불을 붙여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고, 불길이 솟아오르는 장면이 관객들에게도 호응을 얻으면서 유명한 요리가 되었지요.
또 한가지 설은 록펠러의 전속 요리사였던 앙리 샤르팡티에(henri charpentier)가 몬테카를로의 카페에서 견습 웨이터로 일하던 무렵 실수로 인해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 황태자였던 에드워드가 수제트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인과 카페에 들러서 크레이프를 주문했는데,
당시 열 네살의 앙리가 너무 긴장하고 서두르던 탓에 크레이프 위에 오렌지 술을 쏟고, 그것도 모자라 거기에 불까지 붙여버립니다.
아이고 망했다 싶어서 걱정했는데 막상 불을 끄고 맛을 보니 의외로 맛있어서 그대로 서빙하고
이 요리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에드워드 왕자는 함께 있던 여인의 이름을 붙여 크레이프 수제트라고 명명했다고 하지요.
물론 열 네살짜리 견습 웨이터에게 영국 황태자의 서빙을 맡기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원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요리의 뒷 이야기라는 건 진실성보다는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리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불이 꺼진 크레이프를 접시 위에 옮겨 담고 소스를 부어 준 다음, 얇게 슬라이스한 오렌지 조각 등으로 장식합니다.
소스가 듬뿍 묻은 크레이프를 잘라서 한 입 먹으면 달달한 오렌지 맛과 코냑의 뒷맛이 함께 따라옵니다.
크레이프 자체의 맛은 그닥 강하지 않은데, 아무래도 워낙에 얇게 펼쳐 구운데다가 결국엔 평범한 빵 맛인지라 강렬한 소스의 존재감에 좀 묻히는 느낌이랄까요. 버터 한 조각 올리고 시럽 뿌린 팬케이크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그 대신 흠뻑 젖어서 부드러운, 마치 푸딩과도 같은 크레이프의 식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의외로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아서 팬케이크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몇 번만 연습해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허공에 날려서 뒤집기를 하거나, 플람베로 불을 붙이는 등 퍼포먼스 하기 좋은 메뉴이기도 하지요.
여기에 달달한 오렌지 소스, 그리고 크레이프 수제트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곁들이면 연인에게 만들어주기 딱 좋은 요리인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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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갤에서 40075km님의 글을 가장 좋아합니다. 정보전달력이라든가 비주얼 좋은 음식사진도 있지만 만들게 된 동기-준비물소개-요리과정-요리에 얽힌 일화-맛 감상 으로 이어지는 기승전결이 눈에 쏙쏙 들어와 정말 정독을 아니할 수 없게 하네요. 진심으로 완결되면 책한권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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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크레페 사먹는게 편하지 않나?? 했는데 뒤로 갈수록 ㅋㅋㅋㅋㅋㅋㅋ 전문점에서도 찾기 힘들만큼 높은 품질이네요 ㅋㅋㅋㅋㅋ 향이라도 맡아보고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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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예약 입니다 ㅋㅋ | 17.02.09 14: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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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크레페 사먹는게 편하지 않나?? 했는데 뒤로 갈수록 ㅋㅋㅋㅋㅋㅋㅋ 전문점에서도 찾기 힘들만큼 높은 품질이네요 ㅋㅋㅋㅋㅋ 향이라도 맡아보고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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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갤에서 40075km님의 글을 가장 좋아합니다. 정보전달력이라든가 비주얼 좋은 음식사진도 있지만 만들게 된 동기-준비물소개-요리과정-요리에 얽힌 일화-맛 감상 으로 이어지는 기승전결이 눈에 쏙쏙 들어와 정말 정독을 아니할 수 없게 하네요. 진심으로 완결되면 책한권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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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블로그 아주 잘보고 있습니당 | 17.02.10 21: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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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ㅅ'/ 요리책 안사는 데 님꺼 나오면 살께요~~~ | 17.02.16 16: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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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요. 사진도 깔끔하고 설명도 항상 잘보고 있어요! | 17.02.17 0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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