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을 가게 되면 동물들의 표정을 최대한 가까이 담는 것을 좋아합니다.
종을 초월해서 느낄 수 있는 복잡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흥미롭다고나 할까요.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은 미국 내에서 가장 큰 동물원으로, 동물 개체당 사육 공간이 굉장히 넉넉하기 때문에 표정을 관찰하기가 훨씬 더 수월합니다.
환경이 열악한 동물원의 동물들은 지루함이나 갑갑함 외에는 다른 감정을 보기가 힘들거든요.
근엄한 표정의 호랑이님.
워낙 공간이 넓고 숨을 곳이 많다보니 호랑이를 직접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섯 번 째 방문에서 겨우 볼 수 있었네요.
호랑이와 사자가 자주 비교되는데, 사자에 비하면 뭐랄까 한층 더 격조라던가 품위가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산 위에 올라가 구경꾼들을 내려다보는 갈색곰.
이렇게 보니까 동물원이 아니라 무슨 국립공원에서 야생곰을 만난 것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하얗게 드러난 발톱들을 보면 자연에서 곰을 마주치는 건 반드시 피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호랑이가 쉬는 모습이 양복 차림의 노신사가 서재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듯한 분위기라면
사자의 쉬는 모습은 런닝셔츠에 팬티만 입은 중년 아저씨가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게으른 모습은 숫사자 공통인 듯. 꽤나 다양한 동물원을 가 봤지만 숫사자들은 항상 이렇게 세상 다 산 표정을 짓고 드러누워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립공원 사파리 투어를 하면 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눈동자가 가로로 길게 누워있는 염소나 양들을 보면 왠지 무서운 느낌입니다.
여기에 크게 구부러진 뿔까지 더해지면 왜 이녀석들이 악마의 모습을 대변하는지 약간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브롱크스 동물원에는 공작새들이 곳곳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아옭아옭!하는 큰 소리가 나면 바로 공작새가 우는 소리지요.
운이 좋으면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깃털을 활짝 펼쳐 뽐내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핑크빛 플라밍고들. 먹는 게 시원찮아서 그런지 옅은 핑크색을 띄고 있습니다.
홍학은 그 이름에 걸맞게 짙은 분홍색 깃털로 유명한데, 원래는 깃털 색깔이 회색입니다.
그런데 먹이 중에 베타 카로틴이 풍부한 새우나 미생물을 먹으면 깃털과 피부에 붉은 색이 축적된다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동물원 홍학들은 사진으로 보는 야생 홍학보다 색깔이 옅고, 그나마도 계절을 좀 타는 느낌입니다.
겨울보다 먹을 게 풍부한 여름철에 더 붉은 빛이 도는 느낌이 들더군요.
벌레를 잡아주는 원숭이들.
평소에는 까불대다가 서로 모여서 벌레 잡아줄 때는 세상 진지한 표정입니다.
헤엄치다 말고 꿀잠 자는 물개.
밤 새서 뭘 했길래 다른 친구들 다 헤엄치고 노는데 혼자 바위 위에 드러누워서 낮잠을 자는 건지.
미국 흰머리수리. 영어로는 Bald Eagle인데 여기서 Bald는 대머리가 아니라 Piebald, 즉 흑백 얼룩무늬를 뜻합니다.
머리와 다리 부분은 흰색이고 몸통은 검은색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지요.
진짜 대머리인 독수리(Vulture)는 따로 있는데 괜히 탈모조류로 오해받는 새입니다.
언제나 보면 포스가 그냥 아주 후덜덜 합니다. 그야말로 하늘의 제왕이랄까요.
또 다른 대표적인 piebald 동물인 얼룩말.
줄무늬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왠지 최면 걸리는 느낌입니다. 야생에서는 무리지어서 돌아다니면 사자가 줄무늬 때문에 헷갈려서 사냥하기 힘들다는 말도 있지요.
흰 말에 검은 줄무늬인지 검은 말에 흰 줄무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겠다 싶었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검은 말에 흰 줄무늬가 있다고 하더군요.
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깔이 매우 더럽고,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가축화가 성공한 사례가 없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언제나 인기 만점의 기린.
날씨가 추워서인지 실내 사육장에 들어와 있습니다. 평소에 야외 사육장에서 뛰어다니는 모습도 볼만하지만 이렇게 실내에서 가까이 마주하는 것도 나름 즐겁습니다.
얘네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지 열심히 사진찍고 있으면 물끄러미 보다가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철조망 사이로 고개를 쭉 내밀고 뭐 하는지 훔쳐보곤 합니다.
리카온.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들개 (African wild dog)으로도 불립니다.
아프리카 동물들 중에는 하이에나의 입지가 워낙에 단단한지라 비슷한 포지션의 리카온은 인지도가 바닥이지요.
정면에서 보면 셰퍼드처럼 생겼는데 옆에서 보면 미키마우스마냥 둥그런 귀가 귀여운 면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진찍다보니까 떡대 있는 조폭처럼 나왔네요. 실제로는 두마리가 누워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고개만 들어서 이쪽을 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포유류에 비하면 악어는 참 표정에 변화가 없습니다.
통나무마냥 가만히 있는게 악어의 미덕인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무생물처럼 숨죽이고 있어야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테니 미덕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뭐, 동물원에서는 굳이 필요 없는 재능이지만요.
마지막으로 백조 사진 한 장.
깃털에 기름을 짱짱하게 발라놔서 물방울도 다 튕겨냅니다.
브롱크스 동물원은 여러 번 방문하면서 사진은 많이 찍었는데 워낙에 가까이 당겨서 찍는데다가 동물들이 촬영에 협조를 안 하고 뽈뽈거리며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건질만한 사진이 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동물 구경 외에도 특별 전시관들도 많고, 체험학습이나 놀거리가 많은데다가 워낙 넓어서 하루로는 다 못 돌아보는 동물원입니다.
4D 영화도 보고, 모노레일도 타고, 짚라인도 타고 하면서 정말 제대로 구경하려면 사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곳이지요.
(IP보기클릭)126.99.***.***
(IP보기클릭)165.230.***.***
원래 독수리의 독(秃)자가 대머리를 뜻하기 때문에 대머리수리라고 하거나 독수리라고 하는게 맞다더군요. 사진에 나온 애도 흰머리독수리가 아니라 흰머리수리... | 18.05.23 02:11 | |
(IP보기클릭)106.241.***.***
(IP보기클릭)125.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