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호텔 조식과 함께 시작하는 대구에서의 아침.
메뉴가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적당히, 그리고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바로 밖으로 나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호텔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시킨다.
같이 준 저 작은 병이 물인 줄 알고 커피를 비운 뒤 잔에 따랐는데, 따르고 보니 시럽이다.
뭐 어차피 커피는 다 마셨으니까, 손해 본 것도 없지만 액땜이라 치자.
어제 저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한산한 길거리.
생각해보니 한국도 밤에 할 게 많은 거지, 오전엔 딱히 할 게 없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위기의 좁다란 골목길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따라가 보자.
가끔 다니다 보면 이유 없이 끌리는 가게가 있는데, 그런 가게가 하나 생기고 말았다.
문 너머로 인기척은 느껴진다만, 개점 시간이 아직 멀었으니 조금 이따가 와보자.
서울 촌놈이라 프렌차이즈 카페인 줄 모르고 들어간 핸즈커피.
프렌차이즈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이 있는 건 아니다만, 굳이 여행까지 와서 가고 싶은 종류의 가게는 아니다.
뭐, 그래도 이 동네에만 있다고 치면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라며 애써 좋게 생각해본다.
가게 내관은 굉장히 잘 꾸며놓은 큰 사설 카페 느낌이다.
간단하게 에스프레소 콘파냐를 한 잔 받고 위로 올라간다.
살짝 민트향이 느껴지는 초콜렛이 마음에 든다.
크림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가볍게 털어 마시기엔 부족함이 없는 한 잔이다.
어제 못 간 영생덕이 열릴 때 까진 아직 한 3~40분 남았으니,
어제 산 만년필이나 테스트 할 겸, 올해 여행계획을 간단히 짜면서 시간을 보내본다.
어제 남대문, 종로, 용산이었다면 오늘은 청량리지 싶다.
경동시장 느낌이 좀 나는 약령시를 지나 영생덕으로 향한다.
가격을 보고 한 줄 정도 나오겠거니 하고 자신 있게 찐교스와 꾼만두를 시켰는데, 둘 다 만풍당당이다.
기름이 좀 많긴 했지만, 칼로리가 즉 맛인 튀김 아닌가...
결국 꾼만두부터 두 줄 다 처리해버린 뒤 찐교스 한 줄을 남기고 가게에서 빠져 나온다.
원보의 육즙하고는 다른, 기름기를 통한 터지는 느낌이긴 했다만 난 이런 혈관 막히는 맛도 언제든 환영이다.
입도 기름기로 흥건하니, 입가심도 할 겸!
끌리는 인연을 찾아 다시 골목길로 돌아왔다.
입이 좀 찝찝하긴 했는지, 정신 차리니 바닐라 라떼에 브라우니라는 당 중독 조합을 주문했다.
심지어 브라우니 위에 크림까지 뿌려놔서, 단 맛은 두 배.
바닐라 라떼랑 먹으니 도저히 맛이 느껴지지 않아 이쪽은 잠시 보류하기로 한다.
자리는 화장실 바로 옆이라 조금 방해되긴 해도 묘하게 책읽기 편하다.
오늘 일정 중 가장 큰 부분을 여기서 보내도 아쉬움이 남을 것 같지 않다.
책을 마저 읽으며 쉴 장소로 간택을 하였으니, 커피를 한 잔 더 시켜본다.
이번엔 남아있는 브라우니를 생각해서 아메리카노로 한 잔.
원두의 특징을 잘 살린 좋은 커피였지만, 아쉽게도 원두 자체가 내 취향이 아니다.
책도 다 읽고, 다리에 힘도 돌아왔는데 어디로 가기엔 시간이 애매하다.
코인노래방 가서 노래도 뽑아 보고, 사주라도 볼까 했다만 그건 확실히 돈이 아까워서 일단 길거리를 헤매본다.
그러다 발견한 고양이 카페.
정신을 차리니 이미 가게에 앉아 있었고, 웬일로 고양이가 따르는지 벌써 한 마리가 다가온다.
도도하게 잠자거나 멍 때리는 주인님들.
그리고 그분들을 모시기 위해 돈을 내고 들어온 일일 집사들...
이런 자본주의 고양이들을 길들일 때엔 간식 만한게 없다.
월급은 이럴 때 쓰라고 버는 거니까!
한바탕 고양이들과 진득한, 일방적인 스킨쉽을 마친 뒤 피곤해서 바닥에 앉아 있는데 방석이 필요한 주인님이 와서 잠을 청한다.
숙박비는 초상권입니다 주인님.
그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미 코트는 사망.
한 마리도 버거운데 한 마리 더 와서 눕는다.
세탁소 번호를 미리 알아 놔야겠다.
그 와중에 짬밥 안 되는 녀석은 감히 내 코트에 발도 못 딛는다.
하지만 나도 밥 먹을 시간이기에 여기까지. 주인이고 뭐고 둘 다 맨바닥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메뉴는 복지리.
대학생 때 마산에서 너무 맛있는 복지리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동네에 복 잘한다는 가게가 있으면 지리부터 찾고 본다.
가감 없이 쟁반채로 나온 반찬.
왠지 텅 빈 가게, 잘 못 찾아 온 걸까 걱정이 된다.
국물 자체는 맛있다만, 바랬던 맛은 아니다.
여러모로 아쉬웠던 저녁 식사. 언제쯤 예전에 먹었던 것 같은 푸짐한 복지리를 먹을까 싶다.
그냥 마산을 한 번 갈까 싶기도 하고...
썩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였기에, 어제 지나가면서 봐둔 카페를 찾아왔다.
가게 내장에 많이 힘을 쓴 티가 역력하다.
그런데 원래 일요일 저녁이 한가한 시간인가? 어째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다.
어딜 가더라도 원두를 고르고, 그 풍미에 대해 잘 필기해 놨을 정도의 카페면 한 잔 시켰을 때 실망할 일은 없는 것 같다.
잠깐 쉬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의 커피 한 잔이다.
쇼파에 기대어 잠깐 눈을 붙이고 슬슬 여행을 마칠 준비를 한다.
사진도 살짝 정리하고, 까먹기 쉬운 일들은 수첩에 적어두고.
다시 돌아온 공항.
호텔에 두고 온 짐이 있어서 좀 왔다갔다 하긴 했다만, 시간 내에 무사히 도착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었고, 얼마나 쉴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만 꽤나 행복한 이틀이었다.
다음 여행 때 까지, 이 즐거운 기억을 갖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2019.01.27
- Epilogue -
3달만의 여행인데 왜이렇게 오랜만에 다녀오는 느낌인지 모르겠네요.
1박 2일의, 아주 짧은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런 국내여행도 괜찮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누군가에게 해외인데
한번 외국에 나가서 다닐 때 처럼 주위에 집중하고 다니니 우리나라도, 그것도 심지어 뻔한 큰 도시임에도 재미있는 풍경이 많네요.
여러모로 느낀게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3월에, 제주 여행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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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 19.01.30 15: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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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 19.02.02 20: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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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동네 맛집은 타지 사람이 제일 잘 아는 법입니다 ㅎㅎ | 19.02.02 22: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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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혈관막히는 맛을 좋아하는지라 ㅎㅎ, 영생덕도 괜찮았어요. 군만두를 가장한 튀김만두 가게의 상호가 궁금하네요~. 납작만두는 워낙 소문이 흉흉해서 이번엔 굳이 대상에 안 넣었습니다. | 19.02.18 2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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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억....남문만두가 맛있는곳이고 남문납작만두가 절대가시면 안되는곳입미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urin0830&logNo=220620669918&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 19.02.18 21: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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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검색하니 잘 쓰신거 같아서 두개 링크해봅니다 https://noproblemyourlife.tistory.com/109 윗댓글 오타는 양해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 | 19.02.18 21: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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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만두가 아니라 그냥 만두군요. 찐교스가 정말 먹음직스러워보입니다 ㅎㅎㅎ.. 대구는 아무래도 몇 번 더 가봐야 될 것 같아요. | 19.02.18 23: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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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만두는 타지역분에게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익숙해지기 전까진 밀가루 피만 먹는거 같다는 소리만 들어서요 ㅋㅋㅋㅋ 그래서 쫄면 또는 비빔만두 또는 무침회랑 같이 먹는걸 추천합니다ㅠㅎ | 19.02.18 23:5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