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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스트죠?
*
본 글에는 기차역 사진만 가득합니다.
*
때는 8월 23일. 모 사이트에서 약소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에게 뜬금없이 쪽지가 한 통 날라옵니다.
그것은 무려 '극장판 울려라! 유포니엄'의 시사회 초대 쪽지. 원래 9월 1일에 개봉하는건 알고있었고, 저 쪽지를 받기 직전까지 솔직히 시사회를 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정성스러운 낚시라 생각...한느게 정상인데 다른 이웃분에게도 똑같은 쪽지가 왔음. 그리고 찾아본 결과 저 말고도 몇 분 똑같은 쪽지를 받았고 그 중 한분은 이미 저 쪽지가 진짜라는 것을 확인.
올해 대학생이 되긴 했지만 다행히 개강은 9월 1일. 따라서 시간적으로는 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는데...
본인은 부산에 산다는 점. 그리고 KTX를 타고 갔다올 돈이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서울에 재워줄 수 있는 친척이 당장 없다는 것.
즉 만약 저 시사회를 참석한다면 저는 당일치기로 영화만 보고 내려와야합니다. 그것도 기차가 끊기기 전에 서울에서 출발해야했습니다.
그 점은 저를 5초동안 고민하겠습니다. 5초간의 고민 후 제가 내린 결론은 '가자'였습니다.
저 말도 안되는 결론을 내린 이유는 크게 2가지.
본인은 저번 겨울에 사실상 첫 여행으로 일본에 14박 15일을 다녀왔었습니다.(닉네임 검색하면 나옵니다) 그러니 당일치기 서울쯤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언어가 통한다는 사실 자체도 큰 플러스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이번 방학을 워낙 잉여롭게 보냈기 때문. 2달 넘는 방학 중 외출 횟수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 그래서 이번 여름 마지막으로 정신나간 짓을 한 번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말도안돼는 당일치기를 가게 된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개강이거나 저런 짓을 할 만큼 심심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가는 것은 저 혼자. 여기 서울행 기차표 단 하나!! 영화표도 단 하나!!
그리고 출발 전날, 그러니 28일이 되서야 기차표를 찾고 시간을 계산해봤는데... 편도 6시간. 왕복 12시간.... 돈 없으니 무궁화호를 탔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속으로 '엌ㅋㅋㅋ 차라리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보고올껄ㅋㅋㅋ'이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미 간다고 답신했고, 가기로 정한 만큼 진짜 하루 미쳤다 생각하고 가기로 결심.
대충 일정은 서울행 -> 메가박스 동대문을 가며 길잃기 -> 도착해서 노가리 -> 영화 감상 -> 서울역 가며 길잃기 -> 부산행. 저 길잃는건 반쯤 농담삼아 넣고 실제로는 남는 시간에 주위를 좀 둘러보려고 넣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요... 아ㅎ 구포역입니다. 안심하세요.
오전 10시 50분 집에서 출발해 11시 19분, 구포역 도착.
11시 23분 발권 완료.
네, 그렇습니다. 기차에서만 5시간 5분을 보내야합니다.
참고로 가격은 2만 7600원이였습니다.
11시 49분 무궁화호 도착
이 시점에서 글쓴이의 소지품은-
스마트폰(+이어폰), 배터리 2개, 충전기, 안경닦이, 책(내청코 11권), 지갑(현금 약 8만원)
당일치기인데 여벌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가방 하나에 저거 다 담고 혼자서 올라갑니다.
그러다 문득 밀양역을 지나치고 생각이 난게, 기차는 가끔 탔지만 대부분 기차에서 자다보니 어떤 역이 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왕 바보같은 짓을 하는김에 하나를 더 추가해보기로 했습니다.
잠을 않자고 정차하는 모든 역의 사진 찍기(밀양역 제외)
사실 원래 올라가면서 애니라도 보려고했는데 보조 배터리 하나가 고장... 충전이 안됩니다. 거기다 무궁화호는 와이파이가 안되더군요.
덕분에 배터리 아낀다고 데이터도 사실상 끄고 올라갔습니다.
12시 29분, 청도역 도착.
* 이 시점에서 글쓴이는 객실 내에 카페는 물론 자판기도 없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소리를 내며 위험한 생물이 기차 위로 올라옵니다.
엇, 애니메이션 시사회 가는데 진짜 서울행 찍는건가?
농담입니다. 사실 유치원생들이 올라탄겁니다. 물론 엄청난 소리를 내는 것도 맞고, 여러가지 의미로 위험한 생물도 맞습니다.
저는 아니지만 주로 명절때...
재잘거리는 소리가 모이고 모이다보니 생각보다 큽니다. 덕분에 제 이어폰을 뚫고 들어옵니다.
12시 46분, 경산역 도착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로 다음역인 경산역에서 아이들이 전부 내립니다.
다시 기차 안에는 평화가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번엔 뒷자리에 할머니 한 분과 손자가 탔는데, 할머니가 전혀 통제를 안합니다.
12시 59분, 동대구역 도착
생각보다 대구가 엄청 가까이 있었군요. 무궁화호로도 1시간이면 오는게 대구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배터리를 시험해보다가 하나가 고장난걸 알게됩니다.
1시 3분, 대구역 도착.
...기차로 4분이면 거의 의미없는거 같은데, 꼭 만들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높으신 분들이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이 시점에서 유일하게 단톡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명이 수업을 하러 떠납니다.
1시 23분, 왜간역 도착.
이 시점에서 글쓴이는 목이 마르지만 물도 없으니 침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1시 36분, 구미역 도착.
역에서 멈추는 위치마다 잘 찍히는 역도 있고, 이렇게 찍히는 역도 있습니다. 가끔은 멍때리고 있다가 급하게 찍기도 하고, 다른 열차가 방해하기도 하고...
1시 56분, 김천역 도착.
출발한지 이제 겨우 2시간.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다보니 유일하게 켜져있는건 노래뿐. 중간중간에 데이터를 켜서 블로그와 카톡체크만 할 뿐.
책을 한 권 가져오긴 했지만, 제가 멀미있단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읽으려했더니 멀미로 K.O. 될뻔.
2시 23분, 영동역 도착.
슬슬 심심함이 극에 달합니다. 평소 아무것도 안하는게 가장 큰 고통인 저에겐 이 여행길의 심심함은 굉장합니다.
더불어 아까 그 손주는 아직 열차에 있습니다.
2시 42분, 옥천역 도착.
속으로 '나는 가자미다. 가자미가 되어라'라고 속삭이며 정신줄을 붙잡고 있습니다. 솔직히 전기 코드는 있을 줄 알았는데...
2시 55분, 대전역 도착.
사람이 많아서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안앉길 빌었지만 아주머니 한 분이 앉으시며 실패! 어깨가 넓어서 계속 움츠린채 갔습니다.
3시 23분, 조치원역 도착.
이 때 궁금해서 지도앱을 켜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왔더군요. 지금 찾아보니 세종특별시... 부산에서 참 멀리도 왔습니다.
3시 46분 천안을 지나고...
의외로 보기 힘든 넓은 평야도 쓱 지나갑니다. 계속 산 터널 산 산 터널 산 터널이다보니 오히려 이런 장면이 드물더군요.
4시 정각, 평택역과 4시 20분 수원역을 지나갑니다.
이미 제 영혼은 빠져나간지 오래고 옆에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성분이 아름다운 언어로 부모님 안부를 친구와 여쭈고 있습니다.
...최소한 기차같이 다 들리는 곳에서는 안해줬으면.
그렇게 수원역을 지나고 올라가는 도중 앞차와의 간격이 좁아 잠시 속도를 줄였는데...
?! 너 뭐야?!
문득 창문을 보니 뭔가가 붙어있습니다. 순간 안쪽에 붙어있다 생각하고 기겁할뻔 했는데 잘보니 반대쪽에 붙어있더군요.
창문을 툭툭 쳐도 안떨어지길래 언제까지 붙어있나 궁금해져서 관찰했습니다.
빨라지는 속도, 버티기 힘든 곤충, 불어오는 바람, 뒤로 쏠리는 몸, 가속되는 기차, 날아가는 곤충.
아아 님은 갔습니다. 곤충은 침묵을 지킨채 날아갔습니다.
4시 49분, 영등포역 도착.
순간 영등포라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배터리 아낀다고 화면도 안켜서 시간도 몰랐는데 어느세 서울 안으로 들어왔더군요.
농담아니라 화들짝 놀라서 지도켜서 확인하고 진짜로 서울에 왔다는 자괴감 아닌 자괴감에 휩싸였습니다.
으아아아아 강남을 벗어나 이제 강북으로 간다아아아아
반대편에 63빌딩이 보이긴 했지만, 초6때 처음으로 혼자 서울 왔을때 이미 들렀으니 패스.
대신 서울역이 가까워지면서 저 멀리 남산타워도 보이더군요.
이 시점에서 남은 배터리는 16%. 집에서 충전을 했어야했는데 실수로 코드를 안꼽아서...
5시 정각, 서울역 도착
5분연착으로 총 5시간 10분... 기차에서 가만히 앉아서 버텼습니다. 한 30분만 더 있었으면 정말 가자미가 될뻔.
확실한건 제가 있던 객차에서 가장 멀리서 온 분은 대구라는 겁니다.
사실 왔어도 실감이 않남. 실제로 제가 한건 그냥 앉아있던 거였으니 서울에 왔어도 서울이란 느낌이 안들더군요.
그래서 서울말이라도 들으면 실감이 날까해서 이어폰을 뽑았더니 제일 먼저 들린건 영어. 외국인분들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와서 제일 처음 들은 말이 영어라니, 이 무슨...
어쨌든 표 배부는 6시부터, 지도에 의하면 가는데 약 20여분. 따라서 여유롭게 근처를 구경...!
하려고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패스....도 거짓말입니다. 사실 바로 가려고했는데 지하철 4호선을 찾아야했습니다.
입구 찾아서 10분간 서울역을 배회.
글쓴이는 길치에 방향치. 지도를 봐도 제대로 못 찾아갑니다. 그나마 이것도 일본에서 연습해서 나아진편. 일본에선 2분 거리를 30분간 헤맸던 적도...
여하튼 어떻게든 지하철역에 도착하고, 타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이번에 들리는 말은 일본어. 어라? 나 분명 한국에 있는데? 왜 한국말이 안들리고 외국어만 들리지?
심지어 그 일본인들의 대화는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어떻게든 메가박스 동대문점이 있는 굿모닝시티 건물에 도착했지만... 엘레베이터! 엘레베이터는 어디냐!
...결국 5분간 헤맨 끝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북적북적한 엘레베이터에서 내리고 보인건...
쿠미코다아아아!! 등신대다아아아!! 집에 하나 놔두고 싶다아아아아!! 아, 물론 유포니엄 말입니다.
오해 마세요. 전 저음을 좋아할 뿐입니다. 전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웃긴건 같은 엘레베이터에서 타신 분도 이거 찍고 있음. 서로 눈 마주치고 웃음.
어쨌든 표 배부까지는 약 15분이 남았습니다. 마침 폰 충전할 수 있는 코드도 있으니 단 2% 남은 배터리를 충전하며 기다리기로 합니다.
이 시각 준비중인 직원분들...
사담으로 제가 예전에 겨울왕국 유행할 때 대관 준비를 많이해서 그런지 어디서 많이 본 작업이였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둥둥.
7시 표 배부 시작! 줄은 파워블로거을 포함 총 3줄로 나뉘어졌는데 배부 시작하자마자 블로거 줄에 열명가까이 섰습니다.
역시 블로거 분들, 미리미리 오셨습니다. 물론 대부분 근처에 사셨으니 빨리 오신거겠죠? 설마 저처럼 부산에서 온 사람은 없었을거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왜 다들 두명이서 오신건가요! 1인 2매까지긴 하지만! 거기다 왜 표 줄 때 '혼자 맞으시죠?'라고 물어보는건가요! 확인 사살이 너무 심하시네.
팩트 폭력은 자제합시다...
이 시점에서 글쓴이의 라이프는 이미 제로입니다. 하지만 제로부터 시작하는 시사회라고, 사진 찍을껀 찍어야죠.
가진게 폰카밖에 없기에 저렇게라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붙어있는건 상영 1주차 특전입니다.
사담이긴 하지만 여자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어쩌면 남자분들보다 더 많았을 수도...?
이 작품이 남성향이긴 하지만 쿄애니라 그런지 여성분들도 많이 왔던 모양입니다.
6시 59분, 이미 대부분은 입장했고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표 받는 분만 몇 분 계셨습니다.
덧붙여 티켓 뒷면엔 콜라와 팝콘을 할인해준다 적혀있었지만, 전 영화 볼 때 마음을 경건히 하고 보는 파라서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돈이 없어서가 아니예요! 절대 콜라랑 팝콘 먹으면 배고파져서 집에 갈 때 까지 못 버틸꺼 같아서가 아닙니다!
당연하지만 상영 중 사진은 없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그 꽉찼었던 자리들이 텅 빈걸 보면 항상 느낌이 묘합니다.
영화평을 간단히 적어보면, 작화 EXCELLENT, 연출은 애매, 스토리는 GOOD, 사운드와 BGM과 성우분들의 연기는 흠잡을 곳 없을 정도의 완벽함.
TVA를 봤어도 똑같은 내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TVA를 보신분이라도 꼭 안보신 분 데리고 보러 가세요.
영화관 사운드로 취주악 연주를 들으니까 진짜 장난 아니였습니다. 특히 전 저음을 좋아하는데 아주 그냥 빵빵해요.
총편집이라더니 연주 장면을 대폭 늘려놔서 더 환상적이였습니다.
중요한건 3일만 더 있었으면 부산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이였죠.
대관같은 행사할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저렇게 정리 한 다음에 빈자리는 역시 뭔가 쓸쓸해보입니다.
5시에 서울에 도착하고 어언 4시간째. 다시 서울역쪽으로 돌아가야합니다.
그런데 아까 수업들으러 사라졌던 놈이 서울 야경 구경 좀해 해보자고 보채는군요.
같이 일본 보름갔던 놈이 무슨 서울 야경을...
그렇지만 안찍어 줄 순 없으니 한 장 찍어줍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저는 길치에 방향치입니다. 덧붙여 기억력이 매우 안좋죠.
길 잃음.
...여긴 어디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입니다.
사실 길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사람한테 길 물으려했더니 이번엔 중국인.
....서울에 와서 들은 말
영어 -> 일본어 -> 한국어(표 받을 때) -> 일본어(영화) -> 중국어
한국인이 한국의 수도에 와서 한국말보다 외국어를 더 많이 듣다니,... 괜찮은건가.
여하튼 15분간 헤맨 결과 다시 굿모닝시티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안에서 5분간 헤맨 결과 지하철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기차 출발은 22시 20분, 현재 시각은 21시 42분.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온거 걸어서 금방인 남대문이라도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 남대문이 항상 열려있을 줄 알았습니다.
....밤에는 닫는거였어...?
이게 무슨 소리야! 서울까지 왔는데 근처에도 못가다니!
결국 한바퀴 삥 돌면서 사진만 남기고 시간이 애매해져서 퇴각.
오는 와중에 진짜 목이 타들어가서 MAX커피를 한 캔...마시려 했는데 유일하게 MAX커피만 매진. 결국 웰치스 사마셨습니다.
덧붙여 느낀건데, 정말 서울역 근처에 노숙자분들이 많더군요. 서울역 앞 계단은 물론 구역사 앞에는 술잔치...
외국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곳인데 경찰쪽에서 어떻게 해줘야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어쨌든 당일치기 서울행은 이제 끝! 이제 애니메이션에서 현실로 돌아갑시다. 부산행으로 말이죠.
오후 10시 16분, 부산행 열차 탑승.
오후 10시 20분, 출발.
오후 5시에 서울을 밟고, 오후 10시 20분에 떠납니다. 즉 서울에 실질적으로 머문시간은 총 5시간 20분.
참고로 부산에서 서울가는데 6시간 10분 걸렸습니다. 즉 체류시간보다 '편도'이동시간이 더 걸린셈.
그리고 원래라면 피곤해서 자려고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피로가 일순해서 잠이 않옵니다. 진짜 큰일났습니다.
결국 저는 이왕 미친짓 한거에 미친짓을 더했으니 이번엔 미친짓을 곱하기로 결정합니다.
내려가면서도 역을 다 찍어보는것입니다.
오후 10시 30분, 영등포역 도착.
사실 기차가 텅 비어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꽉 들어찼었습니다. 다행히 제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올라갈 때도 봇치(혼자), 내려갈 때도 봇치(혼자).
단톡 방은 고요 그 자체.
배터리는 아까 영화관에서 충전해서 총 37% 있습니다.
오후 10시 55분, 수원역.
밤이 되니까 바깥도 잘 안찍힙니다. 사실 저도 어느 역인지는 다 기억못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행선에선 상행선의 역순이지만 청도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
오후 11시 14분, 평택역.
아까 보조 배터리가 고장난걸 까먹고 다시 꼽았더니 이번엔 어째서인지 작동이 됩니다.
알고보니 방향에 따라서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더군요.
어떻게든 배터리를 남겨서 가야합니다. 안그러면 사진도 못 찍어요.
오후 11시 31분, 아무것도 안찍혔지만 천안일것으로 생각됩니다.(아마도)
이 때 전 눈감고 가자미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역에 도착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는걸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후 11시 51분, 조치원역으로 예상.
시간이 시간인 만큼 이미 열차 운행이 끝난 구간은 불을 끄는 모양입니다.
오전 0시 9분, 신탄진역.
...어라? 올라갈 때 신탄진역을 지났었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간 기억은 없습니다.
어쨌든 드디어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거 당일치기라 할 수 있나? 어쩃든 무박이니 당일치기라고 합시다!
오전 0시 22분, 대전역 도착.
여기서 사람들이 대거 내립니다. 거의 8~90%가 찼던 객차는 이제 20%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오전 0시 54분, 영동역 도착.
남은 배터리는 32%, 어떻게든 보조 배터리로 버티고있긴 하지만 언제 떨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단톡방엔 아무런 말도 올라오지 않고 제 톡만 계속 올라올 뿐, 숫자가 작아지지 않습니다.
오전 1시 22분, 김천역 도착.
이미 제 심심함은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배터리고 데이터고 뭐고 상관없이 심심함을 달래는걸 최우선으로 합니다.
도와줘요! 유튜브!
그런데 보다보니까 꽤나 불편합니다. 그래서 뒤에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 의자도 젖히지만 그러니 팔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죠.
대충 사진 위에 그림을 덧그렸습니다.
핸드폰을 저렇게 사이에 끼우고, 뒤에 책을 두고, 위에 보조배터리를 얹고, 그 위에 충전기를 얹은다음에 앞쪽을 배터리 케이스로 막습니다.
그 아래에 안경닦이를 두면 어머나 놀라워라! 간이 핸드폰 거치대 완성!
...진짜 저렇게했습니다. 의외로 성능이 굉장합니다. 제가 하는거 보고 반대편 분도 질수 없다면서 간이로 만드셨는데 그 분은 계속 넘어져서 결국 들고 보시고, 전 저렇게하니 꿈쩍도 안해서 편안한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배터리가 없어서 밝기는 최소. 눈에 안보입니다.
오전 1시 38분, 구미역(추정) 도착.
승무원이 지나가면서 힐끔힐끔 봅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 3자가 보면 굉장해 보였을꺼같아요.
오전 1시 52분, 왜간역(추정) 도착.
오전 2시 11분, 대구역 도착.
라이프는 이미 제로를 넘어서서 음의 영역으로 돌파한지 오래. 배터리는 20%대로 떨어진지 오래. 곧 10%로 수직낙하합니다.
오전 2시 18분, 동대구역 도착.
이제 1시간만 더 가면 된다는 희망과 함께, 1시간이나 더 가야한다는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오전 2시 54분, 밀양역 도착.
철저한 모자이크는 생명입니다. 올라가면서 밀양역을 못 찍었었으니 이제 정말 정차하는 역마다 전부 다 찍었네요.
그리고....
오전 3시 20분
구포역 도착
다른 승객들이 모두 중간에 내릴 때, 저는 계속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구포역이 도착한다는 알림이 왔을 때 승객이 몇 분 계셨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의 포효(소심)를 내질렀습니다.
문제는 하루종일 앉고, 걷고하다보니 다리에 힘이 다 풀려버림. 피로도도 장난이 아니라 제대로 못 걸었습니다.
어쨌든 새벽 3시 23분, 다시 구포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전날 오전 11시 19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 3시 23분, 즉 16시간 4분만에 다시 구포역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저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이 다닐 리가 없으니 택시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단 배가 너무 고파서 중간에 편의점 들려서 먹을꺼 사고, 집으로...
집에 도착하니 미치도록 피곤합니다. 새벽 4시가 됬으니 그럴만도 했죠. 죽도록 자고싶지만 그래도 블로그에 글은 써야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1시간 30분동안 썼습니다. 쓰다보니까 해 뜸. 결국 다 쓰고나서야 편의점 도시락 먹고 잤습니다.
총 이동시간
왕복 12시간 3분
서울에 있던 시간
총 5시간 20분
심지어 영화는 104분짜리임.
그렇지만 분명 전 다시 시사회를 초대 받는다면 시간이 잡지 않는 이상은 또 이렇게 서울에 올라갔다가 오겠죠...
이 글의 교훈
극장판!울려라! 유포니엄을 봅시다.
물론 시사회 초대됬다고 광고하는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하고싶어서 하는거예요.
덧붙여 생각보다 이렇게 여러가지 의미로 당일치기라 할 수 없는 당일치기하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시.
그래도 다음에 다시 올라간다면 그 땐 좀 여유롭게 다녀오고 싶네요... 생각해보니 서울에 간 적도 몇 번 없으니 제대로 관광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어쨌든 기차역 사진뿐인 이런 글을 다 봐주셨다면 감사합니다. 아참, 교통비는 전부 다 해서 6만 5200원들었습니다.
p.s.
이 글을 문화/여행으로 해야할지, 행사/보도로 해야할지 애매하긴 한데, 기차역 사진이 대부분이니 문화/여행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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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된 이후 내용 추가.
사실 저도 고속버스를 타고 갈까, 기차를 타고 갈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부산->서울'만'따지면 버스가 더 싸고 빠른건 맞습니다.
그런데 서울버스터미널에서 메가박스 동대문점까지 가는데 상당히 걸리더군요. 그래서 계산해보니 기차타고 서울역에서 내리는 거랑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서울에서 길 잃을거같으니, 서울에서 덜 움직이는걸로 하자-라고 생각한게 기차를 택한 이유 하나.
두번째는 버스보다는 기차가 더 편하지 않을까란 이유 없는 믿음 때문입니다. 왠지 더 편할꺼같았어요. 다음에는 버스도 한 번 타봐야겠습니다.
그 쪽이 더 편하면 앞으로도 버스를 애용해야겠습니다.
결국 시간적으로 큰 차이없고, 돈도 큰 차이 없었으니 기차를 택했던 것. 사실 아버님이 기차가 더 낫다고 한 것도 있었습니다.
또 서울 올라갈 일 있으면 그 땐 버스로 당일치기를... 그리고 여러분은 절대 무궁화호 당일치기 하지 마시길...
(IP보기클릭)147.46.***.***
팁을 드리자면, 사상터미널에서 서울남부터미널로 오는 버스가 무궁화호보다 빠르고 저렴합니다. 구포역에서 타셨으니 사상터미널도 그리 멀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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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저도 저거 정말 보고싶었는데 하필 월요일이라 못갔더랬죠. 대신 일요일날 봅니다. 대구역-동대구역 거리가 가까운건 70년대에 대구역 확장할 공간이 없어서 만든거라 그래요. 지금 부산역에 더 이상 공간이 없어서 부전역 확장하듯이요. 말씀하신 대로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2003년에 롯데백화점 들어서기 전까진 무궁화도 안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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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저도 저거 정말 보고싶었는데 하필 월요일이라 못갔더랬죠. 대신 일요일날 봅니다. 대구역-동대구역 거리가 가까운건 70년대에 대구역 확장할 공간이 없어서 만든거라 그래요. 지금 부산역에 더 이상 공간이 없어서 부전역 확장하듯이요. 말씀하신 대로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2003년에 롯데백화점 들어서기 전까진 무궁화도 안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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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을 드리자면, 사상터미널에서 서울남부터미널로 오는 버스가 무궁화호보다 빠르고 저렴합니다. 구포역에서 타셨으니 사상터미널도 그리 멀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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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뒷자리도 있어요.. 다만 뒷자리 바로 뒤에 있어서 가끔 거기서 입석분들이 충전하는 경우가... | 16.09.02 23: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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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달려햇는데 달아 주셨네요 ㅋㅋ | 16.09.03 02: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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