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먼 길을 돌아 다시 이 자리에 섰다. 이후 파트에서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고 분석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본 리뷰가 진행하고 있는 ‘에반게리온 해석 여행’의 종점이 되는 부분이다.
보완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신지, 아스카, 레이 세 사람이 오랜만에 다시 모였다. 에반게리온에서는 기차 장면이 꽤 자주 등장했다. 대개 신지의 내면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활용하는 공간인데, 어째서 하필 기차인 걸까?
아빠가 버린 아들
우선 표면적인 이유로는, 신지가 3살 때 겐도우에게 버려져서 혼자 선생님 댁으로 갈 때 탔던 것이 아마 이 기차였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신지에게 기차라는 공간은, 믿었던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던 날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는 곧 처음으로 타인에게 배신을 당했던 곳이 된다. 즉, ‘신지의 타인에 대한 공포’가 에반게리온에서 기차가 지닌 이미지인 셈이다.
사도 레리엘과 대면한 공간
이 기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화에서였다. 앞서 설명한 대로 사도 레리엘은, 신지의 기억 속에서 어린 그의 모습으로 등장해 그 기차 내부를 배경으로 삼았다. 그 공간이 신지에게 있어선 일종의 트라우마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워낙 신지의 마음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탓에, 레이가 신지의 마음을 조명할 때에도 대개 이 공간을 활용하게 되었다.
레이와 대면한 공간
사실 이 기차 공간은 ‘꿈의 세계’라고 볼 수도 있으나, 동시에 명백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 가장 중요한 증거가 19화에서 나온다. 3호기 사건으로 기절한 신지는 꿈을 꾸고 있었다. 바깥에서 그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아스카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 꿈이란 신지가 기차 공간 안에서 레이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당시 2대 레이는 신지의 꿈 상황은 물론 꿈이란 개념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역시 기차 안의 레이는 3대 레이일 가능성이 크다. 마침 그녀의 질문은 엔드 오브 에바의 기차에서 신지에게 했던 말과 거의 일치하고 있어, 보완을 준비하던 그녀가 시간을 거슬러 다양한 시점에서 그의 마음을 물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3대 레이는 시간과 공간을 거스를 수 있으며, 신지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식의 연출도 나오는 만큼(초호기에 탄 신지가 2호기를 보고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렀을 때, 레이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그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느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토우지의 꿈 = 신지의 꿈
아무튼 그 기차가 단순한 꿈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19화에서 토우지가 그 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우지는 마침 히카리를 보고 난 뒤 살짝 잠이 든 상태였는데, 기차 안에서 눈을 뜬 그는 옆 칸에서 신지가 레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다만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아 대화의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다. 두 사건은 실재하기 때문에 그 기차 공간 또한 다른 차원에서 실존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기차의 칸은 개인의 공간 단위로 보이며, 따라서 신지에게 타인인 토우지는 다른 칸에 앉아 있되, 당시 레이 및 신지와 꽤 가까운 상태였던 덕에 바로 옆 칸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스카의 가슴
그런 이유로, 나중에 다룰 엔드 오브 에바의 기차 장면 또한, 보완을 주도하게 된 레이가, 그 결정권을 넘긴 신지의 마음을 알기 위해, 그가 바라는 대로 아스카를 데리고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스카는 2호기 안에서 죽었으나, 3대 레이는 미사토와 리츠코에게 행한 대로 시간을 거슬러 누구든 보완에 데리고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었다.
또, 이 기차 공간을 설명할 때엔 보다 상징적인 이유도 들 수 있다. 본 리뷰에서는 이미 에반게리온이 다양한 방법으로 프로이트의 학설을 차용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기차는 꽤 중요한 테마를 지니고 있다. 그에게 기차란 ‘폐쇄적이고 불쾌한 공간’이며, ‘에로틱한 환상을 주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동시에,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어렸던 자신을 싣고 간 두려운 장소’였다. 신지가 기차 공간에서 느끼던 심상과 꼭 같지 않은가? 신지에게 있어서도 기차는 불쾌하고, 두려우며, 에로틱한 환상을 겪는 공간이다. 결국 이 기차라는 내면 공간은, 신지가 세상에 대해 지니는 모든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스카 "이상하네…. 역시 받지 않아. 또 어딘가로 가 버린 걸까?"
"……!"
"뭐야, 어차피 나는 졌다고, 너 같은 것에게…."
붙여 설명하면, 사실 아스카 또한 이 기차 상징과 엮이는 부분이 있다. 우선 살필 장면이, 22화의 초반인데, 아스카가 기차역에 서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아마 카지일 것이다.(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신지와 미사토만 알고 있었다.) 카지가 받지 않자 이상하게 여기며 전화를 끊은 아스카는, 문득 반대편에 신지와 레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보는 즉시 불쾌해진다. 제르엘에게 완패한 것도 분하고, 신지가 자신을 구하지 않았던 것도 짜증이 나는데, 그는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레이랑 희희덕대고 있다. 자존심이 팍 상한다. 지금 아스카는 두 사람과 반대 방향의 승강장에 서 있으며, 이는 곧 두 사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고독을 선택한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기차는 아스카의 시야를 가려 신지를 보이지 않게 한다.
그런데 그녀가 아라엘에게 정신 공격을 받는 와중에, 기차 관련 상징이 또 나온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철도 위. 기다란 선로만 여럿 늘어져 있을 뿐, 기차는 아주 예전에 다 떠나간 모양이다. 주위 사람들과의 동행을 포기하고 혼자이길 원했던 아스카의 외로움을 잘 표현한 장면이다. 여기서 만약 기차를, ‘보완으로 향하는 공간’이라 해석하면, 이 부분은 아스카가 보완을 거부하여 개인으로 남는 것을 원할 것이란 복선이 된다. 실제로 엔드 오브 에바에서의 기차는 보완의 거점이 되며, 인류 보완 과정 중에는 기차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연출이 있다.
엔드 오브 에바의 기차에서, 레이는 아스카를 신지 앞에 세웠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아마 신지가 아스카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아스카를 직접 신지의 내면 공간으로 불러,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생각을 들으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공간에서 신지는 보완 여부를 정식으로 결정하게 된다. 그 대화를 자세히 살피기에 앞서, 우선 신지와 아스카가 각자 어떤 경로를 거쳐 기차에서 재회하게 됐는지, 잠깐 시간을 앞으로 돌려 확인해 보도록 하자.
신지 "어디야…여긴, 어디로 가야 해…?"
"미사토 씨, 어디로 간 거예요? 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스카, 아야나미, 토우지, 켄스케! 리츠코 씨! 카지 씨! 아빠…엄마…."
"…에반게리온 초호기…?!"
25화에서, 신지는 짙게 깔린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갈 곳을 잃은 채, 주변 사람을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누구도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는데, 그의 닫힌 마음은 단 한 사람도 담고 있지 않았다. 사실 이 장면의 안개는, 엔드 오브 에바의 첫 장면인, 신지의 두 번째 ■■ 시도와 큰 연계를 맺고 있다. 절망 끝에 물에 빠진 그의 암담한 시선을 상징하는 공간이란 것이다. 모두에 대한 마음을 닫고, 살 길을 잃어버린 신지의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에, 초호기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다. 과연 유이는 아들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TV판의 묘사
극장판의 묘사
그 시각, 2호기는 아스카를 품은 채 호수 깊은 곳에 숨어 있었다. 딸은 ■■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제레의 폭격 속에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딸이 가여웠던 것일까. 쿄코는 아스카에게 뭔가를 계속해서 말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아니 정확히는 언제나 그렇듯 미친 쿄코의 ‘같이 죽자’는 말만 들렸으나, 서서히 진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내 아스카는 2호기 속의 쿄코와 마주하게 된다.
"엄마…! 거기 있었구나!"
엄마를 만난 아스카는 그녀와 합일을 이룬다. 아스카가 자신의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모성과의 완전한 합일로 극복하는 순간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아스카는 카지에 대한 미련도 일부 떨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에 대한 육체적 사랑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그릇된 발현이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쿄코와 하나가 된 아스카는 전에 없던 컨디션으로 에바 양산기를 상대할 수 있었다. 19화에서 400% 싱크로를 등극한 신지처럼, 지금의 아스카도, 이상할 만큼 희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양산기를 파괴하며 가학 욕구를 해소하려는 느낌이다. 그렇다. 높은 싱크로의 상징, 데스트루도의 발현이다. 싱크로 수치가 높다는 것은 코어 내부 영혼에 대한 파일럿의 AT 필드가 열린 상태라는 의미이며, 이는 곧 안티 AT 필드에 상응하는, 데스트루도 에너지가 강력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소리이다. 아스카는 가차 없이 양산기를 파괴한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양산기는 복제 롱기누스의 창을 가지고 있었고, 엄마와 함께 만든 강력한 AT 필드도 속수무책으로 뚫리고 만다. 전원이 끊겼는데도 워낙 싱크로가 높았던 탓에 2호기는 폭주 상태나 다름없었다. 눈을 창에 찔린 2호기의 고통은 아스카에게도 똑같이 전해지고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발버둥을 쳐 보지만, 상대는 S2 기관을 탑재한 양산기 9대였다. 아스카는 그들의 부활을 보고만 있어야 했고, 양산기는 음흉하게 웃으며 복수를 시작한다.
22화의 아라엘이 아스카에게 행한 것이 정신적 ㅁㅁ이었다면, 지금의 양산기는 육체적 ㅁㅁ으로 그 정도를 더하고 있다. 의도적인 연출이 맞는 것이, 이미 22화의 심리 공격 중에도 Menarche(초경), Membrane(막), Popped(파열) 등과 같은 굉장히 적나라한 텔롭을 사용한 바 있다. 또 한 가지, 이 처참한 장면은 아스카의 ‘소류로서의 숙명’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그녀의 성인 ‘소류’는 일본 해군의 모함 이름으로 실제 미드웨이 해전 당시 미군의 군함 여러 척에 의해 격침된 배였다고 한다.
아스카 "…죽여 버리겠어…죽여 버리겠어…."
과거 쿄코가 아스카에게 함께 죽자며 목을 매달던 것과 미묘한 평행을 이루며, 쿄코는 다시 한 번 딸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아스카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하며, 누구보다도 위에 서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상황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이다. 죽음을 원할 때엔 억지로 살려 호수 속에 가둬 놓더니, 이젠 그 반대다. 애초에 그녀에겐 삶과 죽음에 대한 자유가 없었다. 죽여 버리겠다는 절규와 함께,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가린다. 언제나 당당히 세상을 비추던, 언젠가 그녀 자신의 상징이었던.
마야 "……!"
"신지 군! 아스카가! 아스카가!"
신지 "…그래 봤자 에바에 탈 수도 없어…. 어떻게 할 수도 없어…."
마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신지라고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다. 초호기는 베이클라이트에 묶여 있잖아. 사실 더 솔직히는, 그 스스로 에바에 탈 생각이 없었다. 미사토가 타라고 했어도, 그 한 마디에 사람의 의지가 변할 수는 없다.
"…엄마…?!"
신지 "…결국 이걸 타야 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아버지나 모두의 바람 대로…?"
"엄마, 뭔가 말해 봐요, 대답해 봐요!"
그런데 초호기가 직접 베이클라이트를 뚫고 신지에게 오는 게 아닌가! 신지는 그녀에게 물었다. 결국 난 에바에 타야만 하는 거냐고. 좋아하는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거냐고. 유이는 대답 없이 그를 태워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대답은 거기에 있었다. 신지의 눈에 보인 것은….
신지 "으아아아악-!"
초호기 구속구 해제
레이 "이카리 군이, 부르고 있어!"
롱기누스의 창도 소환
신지는 충격에 정신을 놓고 만다. 그의 마음을 반영한 초호기는 각성하여 구속구의 봉인을 푼다. 도그마에 있던 레이도 신지의 아픔을 느낀다. 서둘러 아담을 몸에 품고, 릴리스와 융합하여 신지를 만나러 간다. 초호기의 부름에 응답하여 달에 있던 롱기누스의 창도 그를 만나러 왔다. 초호기는 릴리스의 육체이면서도 코어에는 S2 기관을 탑재하고 있었다. 그 덕에 아담 세트의 롱기누스의 창을 획득할 수 있던 것이다.
생명의 나무
신이 되는 초호기와 신지
초호기는 창을 흡수하여 태초의 모습으로 환원된다. 신에 가까운 형태인 ‘생명의 나무’, 그 나무를 두 손에 감싸 안은 거대한 레이가 보인다. 정확히는 아담과 릴리스의 영혼을 담은 그릇이다. 거인이 나무와 융합하게 되면, 말 그대로 새로운 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양산기는 초호기를 십자가에 묶고, 두 손에는 창으로 성흔을 새겼다. 그 의식으로 초호기는 죄와 신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그 안의 파일럿, 신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에반게리온 초호기 파일럿의, 일그러진 자아로써 사람들의 보완을!"
킬 "세 번째 응보의 때가, 지금!"
제레가 바라는 것은 릴리스의 오명을 씻기 위한 인류 소멸이고, 따라서 초호기 파일럿의 ‘일그러진 자아’에 자신들의 소망을 의탁하려 한다. 나중에 그들은 인류가 LCL로 환원되는 것을 보며 계획이 성공했다고 믿었겠지만, 실은 아니었다. 그들은 진짜 변수가 따로 있음을 몰랐다. 초호기 안에는 오래 전 그들을 배신한 유이가 있었고, 초호기 밖에는 역시 그들을 배신한 카오루와, 겐도우를 배신한 레이가 있었다. 모두가 ‘인간 신지’를 사랑하고 있었다. 살고자 하는 사람의 순수한 의지를, 동경하고 있었다.
유이 "지금의 레이는 네가 바라는 대로야."
레이 "무엇을 원하니?"
거대 레이의 기괴한 모습에 패닉에 빠진 신지를 보며, 유이가 조용히 가르쳐 준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레이는, 너 자신이 바라는 그 자체라고. 이어 레이가 신지에게 묻는다. 무엇을 원하냐고. 그 물음에, 신지는 흐릿한 이미지를 하나 구현해 보인다. 바로 여성의 가슴이다.
이게 원본이다.
머리 모양을 보아 아스카일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이는 신지가 아스카에게 성적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부분이다. 신지의 자위 장면과도 연계하여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신지의 자아는 끝없이 영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신지의 얼굴이 물결에 흔들려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영혼의 힘이 더는 LCL로 신지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어, 그의 몸이 초호기 내부 LCL에 녹고 있는 것이다.
TV판의 평행 연출
신지 "뭐지…이 감각은? 전에도 한 번 느꼈던 것 같은데…내 몸이 사라지는 기분…기분 좋아…."
놀이터 시퀀스
무대 조명
TV판의 평행 연출
이후 약 2분 40초 동안 나오는 것이 ‘놀이터 장면’이다. 이 시퀀스는 굉장히 많은 상징적 연출과 은유를 포함하고 있어 비중 있게 다루려 한다. 우선 눈길이 가는 것은, 이 공간이 마치 연극 무대와도 같다는 점이다. 심지어 무대 조명이 따로 있다.
TV판에 나온 영화 세트와 조명 등
데스 앤 리버스의 합주 장면을 위한 무대 세트
그런데 이 연극 영화 세트, 생각해 보니까 TV판 25, 26화에서도 나온 적 있었다. 데스 앤 리버스에서 신지가 아스카, 레이, 카오루와 함께 합주 연습을 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즉, 이곳은 신지의 내면 세계인 동시에 인류 보완의 무대가 된다. 무대 조명을 보면 꼭 한 쌍의 눈이 신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실제로 신지가 주목의 대상이자 무대 너머에서 모든 사람들이 관객이 되어 그를 볼 수 있다는 표현이 된다. 더는 숨길 수 없는 신지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이 놀이터는, 인류 보완이라는 감독이 연출하고, 신지가 주연을 맡은 ‘진심이라는 이름의 영화’이다. 모두가 관람 가능하다.
어디 함께 보자. 해가 질 무렵의 사람 없는 놀이터. 그네는 삐걱거리는 소릴 내며 흔들리고 있고,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함께 노래 소리가 들린다. 일본 동요 ‘주먹 쥐고 손을 펴서(むすんでひらいて)’라는 곡으로, 신지의 버릇 중 하나가 주먹 쥐고 펴는 것이니 과연 의미 있는 선곡이겠다. 주변을 보자. 좌우 대칭인 언덕이 덩그러니 있는데, 여성의 가슴을 꼭 닮아 있는 것이, 방금 전 신지가 생각한 가슴 그림을 반영한 풍경인 것 같다.
신지 "…그래, 첼로를 처음 시작했던 때랑 같아.
여기에 오면,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
신지의 나레이션이 들린다. 그 의미는 잠시 후 파악하는 걸로 하고, 어린 신지가 가만히 서서 보고 있는 모래 피라미드를 좀 보자. 어째 상태가 많이 안 좋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멀뚱히 서 있는 신지에게,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신지 군도 같이 하자! 함께 만들자, 성!"
신지 "응!"
또래 아이의 말에 신지는 금새 표정이 환해진다. 기다렸다는 듯 그 옆으로 가서 두 아이와 함께 피라미드 성을 쌓기 시작한다. 두 명 모두 여자 아이인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아니라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지와 성을 쌓는다. 같이 노는 게 아니라 결국 그냥 혼자 노는 꼴이다.
무대 바깥에 앉아 있는 여성
신지만 남겨 두고 다들 간다. 신지는 갈 수 없다. 무대 밖이다.
어떻든 웃으면서 한참 놀고 있는데, 무대 뒤에 한 여성이 앉아 있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상황을 보니 두 아이의 엄마 되는 사람인 모양이다. 두 아이는 여성을 따라 무대 위에서 사라진다. 신지를 기다리는 엄마는 없다. 그래서 다시 혼자 남았다.
네르프 피라미드
뒤의 조명이 마치 신지를 보는 두 눈 같다.
자, 여기서 일단 스톱. 이 부분을 본격적으로 해석해 보겠다. 우선, 피라미드는 쉽다. 네르프 본부에 대한 상징이란 걸 다들 알고 있을 테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할 부분은, 신지가 처음 왔을 때, 피라미드가 꽤 무너져 있었으며, 신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1화를 생각해 보자. 처음 신지가 네르프에 왔을 때, 본부는 사키엘 때문에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또 당시엔 레이나 아스카도 없었기 때문에, 신지는 혼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신지는 가만히 서 있는가? 자, 이 놀이터 장면이 나오기 시작할 때, 신지가 뭐라고 했더라? “그래, 첼로를 시작했던 때와 같아. 여기에 오면,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
신지 "지금의 내겐 에바 외엔 없어."
-하지만 에바에만 의지하면 에바 그 자체가 네 전부가 되는 거야. 진짜 네 자신은 사라지는 거야.
"괜찮아! 원래 내겐 아무 것도 없었어. 배우고 있던 첼로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구."
신지 "선생님 충고를 듣고 시작했어. 금방 그만 뒀어야 했는데…."
아스카 "그럼, 왜 계속한 건데?"
"…아무도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신지는 첼로 연습을 에바에 타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하긴 그렇다. 첼로나 에바 파일럿이나, 둘 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 시작했고, 아무도 그만하라 하지 않아서 계속하고 있었다. 본인의 의지는 무관하다. 놀이터에서, 신지가 피라미드를 멀뚱히 보고만 있는 것은 그런 그의 성격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피라미드 상태가 어떻든 주변 사람이 그에게 아무 것도 시키지 않으면, 그는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아이가 그를 부른다. 신지에게 아마 그 대상은 레이가 아닐까 싶다. 곧 세 아이가 함께 피라미드를 쌓는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실은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세 사람이다. 세 명의 파일럿은 그런 식으로 에바를 통해 네르프를 지키고 있었다.
미사토?!
"아, 엄마다! 가야 돼!"
"그럼 안녕!"
"엄마…! 아하하!"
신지 "……."
다음으로 무대 밖에 서 있는 여성을 보자. 누군지 잘 모를 텐데, 놀랍게도 대본은 이 여성을 ‘미사토’라고 구체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과연, 알고 다시 보니 확실히 미사토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금 미사토는 무대 ‘바깥’에 앉아 있다. 신지에게 있어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을 그저 방관하고만 있는 의미 없는 동거인일 뿐이었다. 그리고 미사토는 끝내 신지의 어머니 역할을 맡을 수 없었다. 두 아이와 함께 미사토가 무대 밖으로 나가도, 신지는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혼자 놀이터에 남아야 했다. 그의 시각에서, 미사토는 절대 어머니가 될 수 없었으니까.
신지야, 어디 서 있니…?
다음 장면을 계속 보자. 두 아이는 미사토와 함께 떠났고, 혼자 남은 신지는 웬 철골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까마귀도 기분 나쁘게 운다. 물론 신지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죽을 용기가 없었으니까.
혼자 성을 짓는 신지
결국 그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로 돌아와, 피라미드 앞에 앉는다. 신지는 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울어도 위로해 줄 사람 하나 없음을 깨닫고 눈물을 멈춘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억지로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완성. 피라미드는 훌륭했으나, 그것을 보고 감탄할 사람도, 신지에게 칭찬해 줄 사람도 없었다. 에반게리온을 타서 열심히 사도를 무찌르면 뭐 하겠는가, 당연한 일일 뿐이다. 갑자기 신지는 화가 난다. 도저히 분노를 삭일 수가 없다.
기껏 완성한 피라미드를 발로 차는 신지
해는 지고, 그네도 멈춘다.
지금의 세상
신지는 공을 들여 쌓은 피라미드를 발로 차 부서뜨린다. 그러는 동안 해는 지고, 뒤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던 그네는 멈추기 직전이다. 잠깐, 여기서 그네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우선은 신지의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이다. 신지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땐 아주 빨리 흔들렸고, 아이들이 떠나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땐 아주 천천히 흔들렸다. 그리고 또 하나, 대개 그네의 진자 운동은 ‘시간의 흐름’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점에서 신지 뒤의 그네가 ‘완전히 멈추어 다시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은 곧, 그의 마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었다는 소리가 된다. 절망한 신지가 마음으로 죽어 버린, 엔드 오브 에바의 ■■ 시도 장면과 평행을 이루는 부분이다.
그리고 보완?
해가 완전히 지고,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신지는 무너진 성 주변에 있는 흙을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무슨 의미일까? 아마 그는 뭔가 새로운 것을 지으려는 모양인데, 그것이 뭔지는 묘사되지 않은 채 놀이터 시퀀스가 끝을 맺는다. 아마 이 부분은, 보완의 시작을 고민하는 신지의 마음을 조명한 것일 테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새로 지을 수 있는 상태이니까.
아스카 "아아…증말…! 널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난다고!"
신지의 영화가 끝나자마자, 아스카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신지 "자길 보는 것 같아서…?"
내면 여행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진짜 타인을 만났다. 아스카다. 레이가 원하는 것을 물었을 때, 신지가 떠올린 것이 그녀의 가슴이었고, 과연 아스카는 지금 옷을 다 벗은 채 그의 몸 위에 엎드려 있는 상태이다.(이 자세를 기억해 두자.) 아마 레이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아스카는 양산기에게 엄청난 수모를 당한 후 이제 막 깨어난 참일 테다. 자신을 구하려는 의지도 없던 신지에게, 지금 그녀가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겠는가. 서로의 마음을 보이고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인데, 두 사람 사이의 골은 이미 너무 넓고 깊었다.
미사토 "응…? 하자…? 아직 시간 있어…. 뻐근해서 그래. 그러니까…부탁해, 응…?"
미사토 "대개는 말야, 자기가 여기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야. 자기를 원한다는 걸 느끼고, 기쁜 거야."
신지는 미사토의 가슴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미사토는 과거의 모습으로 카지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역시 미사토의 입장에선 그녀가 주연이 되는, 모두가 관람 가능한 영화인 셈이다. 미사토는 이게 사실 꽤 아픔이 따르는 일이라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신지는 눈을 찌푸린다. 저런 식으로 밖에, 타인이 나를 원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니….
아스카 "야, 우리 키스해 볼래?"
미사토 "어린 애가 하는 거 아니다."
"그럼, 간다?"
아스카는 신지와 키스를 하던 순간으로 간다. 처음엔 미사토가 마음에 걸렸으나, 어른인 척만 하는 그런 여자,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그 날의 키스는 최악이었다. 아니, 그녀의 시각에서, 신지는 키스를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아스카 앞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당시 신지가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사이 아스카의 진짜 마음이, 이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나온다.
"……."
아스카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내 곁에 오지 마!"
신지 "…알고 있어…."
아스카 "너 모르고 있어, 이 멍청아!"
"네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도와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스카 "그거야 말로 오만한 생각이야! 이해할 리 없어!"
신지 "이해할 수 없지…왜냐 하면, 아스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잖아!"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얘기해 주려고도 안 하는데 알아 달라니, 무리야!"
자존심이 상한 아스카는 신지가 자신의 마음을 거부한 데 대해 화를 내며, 너 따위가 감히 나를 이해할 수 있었겠냐고 괜히 발로 찬다. 그런 그녀에게, 신지 쪽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나도 너를 이해하려 했지만, 도통 말을 제대로 해 주질 않으니, 내가 어떻게 알겠느냔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어긋나는 두 마음이다. 지금은 ‘보완’이 아니라 다만 서로의 마음을 꺼내 보이는 과정일 뿐이고, 따라서 타인을 접한 신지의 마음엔 생채기만 더한다.
레이 "이카리는, 이해해 보려고 했어?"
신지 "이해해 보려고 했지."
아스카 "바-보!"
"알고 있어…네가 나한테 그 짓을 한 거."
"언제나처럼 해 보시지 그래? 여기서 내가 봐 줄 테니까…."
아스카 "네가 완전히 내 것이 아니라면, 나, 아무 것도 필요 없어."
레이는 갈등하는 두 사람을 기차 안으로 불러 모았다. 보완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신지와 아스카는 이미 서로의 마음을 다 보고 온 상태이다. 신지가 자신의 몸을 보며 뻔뻔하게 자위한 사실도 아스카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신지가 원하는 게 ‘아스카 하나’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해 줄 ‘아무나’라 생각한 그녀는 신지를 허락할 수 없었다.
신지 "그렇다면 넌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 줘."
타인의 목소리 "친절하게 대해 주고 있잖아?"
신지 "거짓말!"
도저히 신지는 타인을 믿을 수가 없다. 그가 원한 건 다만, 그를 배신하지 않는 사랑인데, 애매하지 않은 분명한 표현인데, 그런 그에게 아스카는 조금도 타협해 주지 않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진 ‘진정한 타인’이었다. 혹시나 타인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여기에 왔건만, 겪으면 겪을수록 두려움만 커진다. 기차 오는 소리가 들린다. 신지는 이제 정말로, 보완을 부르기 직전이다. 타인의 공포가 그의 마음 안에서 온통 수런거린다. 그런 그를 레이와 아스카, 그리고 어느 사이 등장한 미사토가 가만히 보고 있다.
신지는 정말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아가 미련을 남긴 곳으로 향한다. 제3도쿄에 와서 타인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나마 믿게 되었던, 미사토의 집이다.
옷을 보니, 두 사람이 키스를 했던 당시인 것 같다. 사실 이 장면에서의 아스카는, 단편적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신지는 지금 본인의 마음속으로 도망을 친 상태였고, TV판 25화에서 잠깐 나온 대로,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아스카는 신지 안에 있는 아스카이기도 하다.
신지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너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어떻든 신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미련이 남은 타인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자세를 많이 굽혔다. 그가 타인에게 바랐던 태도로 아스카에게 접근해 본다. 그녀에게 솔직히 말했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고, 항상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아스카가 아니면 나, 안 된단 말이야!
아스카 "그럼, 아무 것도 하지 마…. 내 곁에 오지 마…."
"…넌 그냥 누구라도 좋은 거잖아!"
"가엾구나…."
그러나 아스카는 기어코 신지를 뿌리친다. 아니 더 정확히는, 신지의 마음에 존재하는 타인은 끝내 신지 자신을 거절한다.
신지 "도와 줘…응? 그래, 누구든…누구든 날 좀 도와 줘…."
"…부탁이니까…제발, 도와 줘…."
"…나를 혼자 두지 말아 줘!"
"…날 버리지 말아 줘!"
"…날 죽이지 말아 줘!"
신지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미사토 "날 버리지 말아 줘."
아스카 "날 죽이지 말아 줘."
"-싫어."
실제로 이 장면은 신지와 아스카의 대화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와 ‘타인’이라는 존재 일반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는 것이 좋다. 당장 25화에서, 레이와 함께 기차에 탄 세 사람, 신지, 아스카, 미사토는 지금 신지가 한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고, 이는 ‘신지’의 모습이 ‘세상 모든 나’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의도적인 대사 구성이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나요? 신지는 그 답을 찾고 싶어 기차 여행을 떠났고, 이제 그 결론을 내렸다. 아니, 절대로,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랬구나. 이 세상은 어차피 나 혼자였어. 누구도 나를 구할 수 없어.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였어. 그렇지?
BGM Komm, Susser Tod (Single Version)
사실 미리 말하면, 방금 신지의 판단에는 안타까운 오류가 하나 있었다. 지금 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신지는 신지이기 때문에, 아스카의 진심을 본다고 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맞다. 그러니 지금 그의 부탁을 거부한 아스카는, 다만 그가 판단한 아스카일 뿐이다. 신지가 스스로 타인을 믿지 못하는 탓에, 그의 마음에 존재하는 타인도 철저히 그를 배척하고 있다. 그걸 모르는 신지에게, 타인은 단지 공포이며, 고통일 뿐이다. 그럴 바에야, 모두 다 죽어 버리는 게 나아. 아니,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다들, 죽어 버려.
신지 "아무도 날 몰라 주는 거야."
레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타인도 자신과 같다고 혼자 믿어 버리고 있었구나."
"배신한 거야, 내 기분을 배신한 거야!"
"처음부터 너 혼자서 멋대로 믿은 것에 지나지 않아."
"다들 날 귀찮게 여겨. 그러니까 전부 다 죽어 버려."
"하지만, 그럼 그 손은 뭘 위해 있는 거야?"
"내가 있으나 없으나 아무 것도 변할 건 없어. 그러니까, 전부 다 죽어 버려."
"그럼, 사람의 마음은 뭘 위해 있는 거야?"
"없는 쪽이 나은 거지. 그러니까 나도 죽어야 해."
"그럼, 넌 왜 여기에 있어?"
"…여기 있어도…괜찮아?"
"으아아아아아악!"
I know, I know I've let you down
알아요, 내가 당신을 실망시켰다는 걸
I've been a fool to myself
난 참 바보였어요
I thought that I could live for no one else
누구도 필요 없이 혼자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But now through all the hurt and pain
이제 그 모든 고통과 아픔으로
It's time for me to respect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The ones you love mean more than anything
그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단 걸
So with sadness in my heart
정말 슬픈 일이지만 나는 알아요
Feel the best thing I could do is end it all and leave forever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모든 것을 끝내고 영원히 떠나는 것
What's done is done it feels so bad
여태 있었던 모든 일들에 참 유감이에요
What once was happy now is sad
한 때의 행복이 이제는 모두 슬픔이 됐죠
I'll never love again my world is ending
나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내 세상이, 끝나고 있어
I wish that I could turn back time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참 좋겠죠
Cause now the guilt is all mine
이게 전부 다 내 잘못이니까
Can't live without the trust from those you love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 없이는 살 수 없는데
I know we can't forget the past
알아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예요
You can't forget love and pride
그 사랑도, 그 기개도 잊을 수 없겠죠
Because of that, it's killing me inside…
그래서 내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인류의 보완이 시작된다.
[에반게리온] 34. 끝나는 세계 : Take care of yourself/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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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1. 이제 스크롤 자비고 뭐고 없습니다. 각오하시고, 중요한 내용도 많으니 찬찬히 읽어 주세요. 공지 2. 사실 이번 주에 좀 많이 달렸죠? 네, 6일 뒤에, 다음 주 금요일 밤에 다시 봅시다. ^^ 공지 3. 제 리뷰는 35+1(에필로그)편 구성입니다. 그러니까, 본편은 이제 두 편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도 서비스, 서비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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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이제 2편남으셨고 이제 신극장판을 중심으로 또다른 본편을쓰셔야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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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화와 EOE는 사실상 표현을 달리한 것일 뿐 똑같은 내용을 달리 말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는데 엄디저트님의 글로 새삼 그 근거를 얻은 기분입니다. 쿄코와 재회하기 직전의 아스카의 내면, 겐도가 자신의 인류보완계획을 행하기 위해 레이를 부르기 직전 레이의 내면, 미사토의 마음과 EOE에서 표현된 카지-미사토 신까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초반부 신지의 안개 낀 내면이 EOE 초반 ■■을 시도한 신지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새삼 감탄스럽습니다 :D 특히 신지와 아스카의 보완 장면은 커피메이커와 두 개의 잔과 그 커피가 엎어지는 모습으로 보아 24화 극초반 부분, 신지가 아스카에게 카지는 이미 죽었다고 일갈하던 그 순간의 이미지도 함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스카가 15화 때의 옷을 입고 있는 건 아스카가 신지에게서 가장 큰 상처를 받았던 순간이 그때였기 때문에 그런 아스카의 마음이 드러난 거고, 전체적으로는 신지가 아스카와의 관계에서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었던 24화 초반부를 주 모티프로 삼은 게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24화 초반 상황의 앞뒤 정황을 보면 레이 더미를 본 신지가 쇼크를 받고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아스카에게 다가갔었는데,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완전히 어긋난 탓에 상황이 꼬이고 꼬여서 말다툼으로 넘어갔고, 그래서 결국 카지 씨는 이미 죽어버렸다고 외쳐버렸고, 이미 극에 몰려 있던 아스카는 그 사실에 마지막 희망마저 잃고 ■■을 시도해버렸다.. 정도로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신지는 만약 그때 카지가 죽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곁에 있고 싶다고 했다면 차라리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그래서 레이의 도움을 받아 보완의 힘으로 그 순간을 다시 재생했지만, 사실 아스카가 신지에게 받았던 상처는 그때가 아니라 15화의 그 순간 깊어졌던 거였기 때문에 이제 와 신지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마음을 열기에는 이미 늦었고, 오히려 저 바보신지는 정말로 아무라도 상관 없었던 거라 생각해 더 분노하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엇갈려 버렸던 거고.. 그래서 신지는 결국 아스카를 거부해버렸던 건지도 몰라요. 그와는 별개로 엄디저트님께서 말씀하신 '신지의 영화'에서 아스카가 짜증난다며 화를 내는 건 정말 다시 봐도 가슴아픈 장면이네요. 아스카가 보기에야 뭘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자기연민에 빠진 신지의 삽질이 짜증나겠지만, 신지로서는 자신의 진심을 아스카가 매도해버렸다고밖에 보이지 않으니.. 게다가 여기 있어도 되냐는 질문에 레이의 무언은 정말 보고만 있던 저까지 상처받는 기분이었어요. 물론 저대로 있으면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지만, 처음 봤을 때는 아스카도 모자라 무얼 바라냐며 도와줄 듯이 돌아왔던 레이까지 신지를 배신해버린 느낌이라 그 절망감이 아주... 아 왜 신지는 가면 갈 수록 불쌍해지기만 하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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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쯤에 신지가"여기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무언이라는 하얀 글자만 마올 뿐이죠. 저는 이 장면과 의미있는 대비를 이루는 장면이 하나 있다고 봅니다. 바로 티비판 26화에서 박수갈채 장면 직전인데요. 신지는 "그래, 나는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거야!" 그리고 박수 시작. 전자에서는 무언이었는데 후자는 왜 박수일까요? 바로 전자는 남에게 물어봤다는 점, 여전히 의존적이며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기에 무언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후자는 자신있는 외침과 함께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죠. 결국 주체성이 중요하다는 것 같은데, 에반게리온의 주제와 통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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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들은 뭐 하냐 책 보완 계획이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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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이제 2편남으셨고 이제 신극장판을 중심으로 또다른 본편을쓰셔야지요?ㅎㅎ | 13.02.17 0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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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유치원 때, 누나가 만화를 보길래 아무 생각 없이 잠깐 같이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초호기가 각성을 하더군요. | 13.02.17 0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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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확실히 너무 어릴 때 보기엔 좀 그렇고 그런 작품이네요. | 13.02.17 00: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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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때 진짜 2화의 초호기 폭주씬 보면서 애니메이션보면서 공포를 느꼈던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네요 ㅎㅎ | 13.02.17 01: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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