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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Ones - 42
Fox and drag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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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이 연이어 터졌다. 그에 따라 건물 바닥과 천장이 사르르 흔들리며, 유리창은 요동쳤다. 건물 내부에 있음에도 바깥에서 싸우는 것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건물 내부에는 셸터가 있으며 또한 적들이 아직 이곳 가까이로 오지 못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말이다."
여우귀 여인 폭시 크리스타가 계단을 내려갔다. 한창 병사들이 싸우고 있는 외부는 가만히 놔둔 채로, 그녀는 민간인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본래는 세라와의 듀얼을 마치고, 여유롭게 전황을 바라 보려고 했으나. 계획이 바뀌었다. '
세라는 듀얼이 한창 막바지에 이르던 지점에서 도망쳐서 이제 보이지 않는다. 듀얼이 맥없이 끝나버리자, 폭시는 스트레스를 발산할 곳으로 스쿨 건물 내부를 선택한 것이다.
"간만에 피냄새를 맡아야 성이 차겠어."
폭시가 계단을 걷던 중, 아무도 없어야 할 정적의 공간에 신발 소리가 들렸다. 폭시는 귀를 쫑긋 세우고 걸음을 멈추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사람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누군가 서있구나. 너는 셸터에 들어가있지 않고 무엇 하느냐?"
"너같은 녀석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지."
"오호라."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청년의 목소리. 감정이 절제되고, 차분한 음색이다.
폭시는 청년을 향해, 청년은 폭시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는 매서운 눈빛. 청년은 스쿨의 새하얀 코트 차림 교복을 입고 있다. 그가 입은 것이 군복이 아니었음에도, 청년의 꿋꿋함과 투기가 그것을 군복처럼 보이게 했다.
"흐음. 가까이서 보니, 옛날에 어디선가 봤던 것 같구나."
"내 이름은 류세. 너는 폭시 크리스타겠지."
"류세? 류세라면……."
여인이 기억속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2년 전에 자신의 손으로 끝장을 낸 청년의 이름을.
"그때 내 손으로 죽인 양의 형제로구나. 그때는 우리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고 떠났었지."
"……."
"그나저나,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게냐?"
"넌 얼마전에 스쿨을 공격했던 장본인, 우리들의 적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초월체라는 사실도 알고 있겠구나."
불빛이 들지 않는 어둠속에서 여인의 눈빛이 선명하게 반짝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허리 아래로 아홉이나 되는 새하얀 꼬리가 빠져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마야. 너는 링커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데, 혼자서 나와 싸우려는 것이냐?"
"그래. 나는 링커는 없지만, 무기는 갖고 있거든."
"팔에 차고 있는 그것 말이냐?"
폭시는 류세가 왼팔에 차고있는 듀얼 웨펀을 가리켰다. 여인은 고작 그런 것을 믿고 자신과 싸우냐며 폭소했다.
"다른 아이라면 모를까, 나는 그런 잡스러운 물건에는 당하지 않는다."
"그건 해봐야 아는 일."
"시험해 보겠느냐."
여인이 오른팔을 불쑥 내밀자, 류세의 발 아래에서 새까만 칼날이 솟구쳐 올랐다. 류세는 잽싸게 뒤로 튀어올라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첫번째 공격을 피한 그의 등 뒤에서 새까만 칼날이 하나 더 빠져나오며 어깨를 찔렀다.
"큭!"
"원래라면 느긋하게 듀얼로 상대해줘야 맞겠지만. 지금은 짜증이 나서 말이다. 별로 듀얼하고 싶지 않구나."
여인은 실실 웃으며 류세를 공격했다. 새까만 날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류세를 찌르려 했다.
"가이저!"
류세는 듀얼 웨펀에 새하얀 카드를 강타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새까만 비늘로 뒤덮인 용 한 마리가 나타났다. 용은 눈을 새빨갛게 불태우며,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은 칼날들에 주먹을 날렸다. 총알처럼 빠르게 내질러지는 주먹이 칼날들을 박살내고 류세를 지켜냈다.
"제법 버티고 있구나. 그렇다고 해도."
그 순간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가이저로 상쇄하며 버티던 류세의 등에, 새까만 날 하나가 박혔다. 예상치도 못 한 곳에서 튀어나온 공격에 맞은 그는 입으로 핏줄기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금방 이리되는 법이지."
류세가 반쯤 무너진 자세로 바닥에 쓰러지자, 가이저가 포효하며 폭시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주먹은 폭시에게 닿기는 커녕, 새까만 칼날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꼬챙이가 되어 절단되어 버렸다.
"꼬마야. 네가 원한다면 계속 하겠다. 계속 찔려볼테냐?"
류세는 눈을 부릅뜨고 폭시를 노려보았다. 만약 그가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애원해도, 그녀가 류세를 풀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그는 차라리 끝까지 싸우기를 결심했다.
"어린애주제에 살기등등하구나. 싹을 밟아놔야지."
여인은 "뭐. 이 전쟁이 끝나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지만." 이라며 덧붙였다.
여인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갔다. 그러자, 천장에서 새까맣고 거대한 칼날이 류세를 두동강 내려 떨어졌다. 큼직한 칼날은 고기 써는 소리도 내지 않고, 바닥과 부딪히는 커다란 충돌음만을 냈다.
"흐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류세를 두동강 내야했을 칼날은 바닥에 박혀있다. 어찌나 세게 떨어졌던 것인지, 바닥에 커다란 흠이 패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주변에는 혈흔도 살점도 없다. 폭시는 당혹해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황급하게 방향을 바꾸자, 새까만 괴물 한 마리가 그녀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강철처럼 단단한 주먹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동시에 그녀를 덮쳤다.
"큿."
여인은 그 공격을 오른팔로 막아내며, 왼손으로 괴물을 할켜 쫒아냈다. 큰 부상을 입은 건 아니지만, 새빨간 피가 그녀의 오른팔에서 뚝뚝 떨어졌다. 이곳에 와서 싸우는 동안 처음으로 입은 제대로 된 상처. 그녀는 괴물을 응시하며 자신의 피를 할짝였다.
"기구한 일이구나. 죽었어야 할 녀석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것이더냐?"
"고작 그정도로 죽었다고 생각했나? 어수두룩한 녀석이다."
폭시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양. 얼굴 반쪽이 새까만 괴물로 변해버린 사내였다.
"너는 양!"
"여기서 도망쳐라."
"도망치라고?"
"방금 전에 저녀석과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을 거다."
"그렇긴 하지만……."
"네가 여기 있어봐야 방해만 된다. 상처입은 녀석은 쓰잘데기 없다."
"그래……. 알았다."
류세는 피가 쏟아지는 어깨를 붙들고 자리를 벗어났다. 피의 향기가 그득한 공간에는 폭시와 양이 남아있을 뿐.
"동생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것 같더니. 의외로 매몰차게 대하는 구나."
"류세에겐 내가 형제라는 사실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소중한 동생. 나는 류세가 나와 관계를 끊는 것으로 살아가게 하겠다."
"모순적인 이야기네. 엉터리야. 이치에 맞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점이 마음에 드는구나."
"네년의 기분이 좋아지라 한 말이 아니다."
양은 날개를 펼치고 순식간에 폭시를 향해 날아갔다. 빠르게 날아오는 양에게 팔을 휘둘러 새까만 칼날을 뽑아내는 폭시. 양의 두터운 발톱과 폭시의 칼날이 맞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폭시의 까만 칼날이 부러지고, 양이 주먹을 꽂아넣자 폭시는 그것을 한 손으로 가볍게 막았다.
"내 예상을 뛰어넘어 살아남았다고는 해도, 반푼이 초월체. 근본적으로 완력이 차이나느리라."
"그렇지만 신경은 둔해 터졌군."
"뭣이?"
폭시의 등 뒤에서 서슬퍼런 칼날이 번쩍였다. 폭시의 등을 대각선으로 베어버리는 칼 한 자루. 새빨간 선혈이 칼의 주인에게 튀겼다. 하얀색과 검정색이 반반씩 퍼져있는 특이한 머리색의 소녀. 양과 똑같은 용의 뿔과 날개를 가진 소녀였다.
- 양이 링커없이 혼자 싸울거라 생각했나요?
"뒤늦게야 부를 줄은 생각 못 했다."
다시금 칼을 쥐고 폭시에게 꽂아넣으려는 루어시. 폭시는 꼬리 하나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굳혀 루어시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루어시는 칼 꽂기를 포기하고 기민하게 뒤로 뛰어 그 공격을 피했다.
앞에서 날아드는 공격은 자신의 발톱과 칼날로, 뒤에서 덮쳐오는 공격은 꼬리로 막아내며 폭시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공격을 방어하면 방어할수록, 칼과 발톱에 베인 핏자국이 늘어만 갔다.
'위력은 별 거 아니지만, 두 꼬맹이 전부 다 속도가 빨라.'
폭시는 아예 방어를 포기하고 강한 일격을 먹이기로 결심했다. 양손을 모아 새까만 기운이 피어오르게 하고, 그것을 터지게 한다.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강한 폭발력이 링커와 그 주인을 덮칠 것이다.
- 일섬.
루어시는 폭시의 행동이 둔해진 것을 눈치채고, 방어를 내렸다고 판단해 묵직한 일격을 날렸다. 여태까지 공격은 모두 상처가 얕았기에 방심하고 있던 폭시는 제대로 된 공격에 한 쪽 팔이 잘려나가 크게 흔들렸다.
"큭!"
다시금 강한 참격을 날리려는 루어시의 동작을 포착하고, 폭시는 아홉 꼬리를 들어올렸다. 폭시는 재빠르게 팔을 재생시키고 새까만 벽을 세워, 양과 루어시의 공격을 차단했다.
"쓰레기라고 생각했거늘, 제법 좋은 링커를 두었구나."
루어시는 폭시의 말을 무시하고 아까와 같은 참격을 날렸지만, 폭시를 지키고 있는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름 회심의 일격을 했겄만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자 루어시는 혀를 찼고, 폭시는 격양된 감정을 가라앉히며 대화를 시도했다.
"네가 저 아이의 링커가 된 것은 내가 저 아이를 초월체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게 적의를 보이느냐?"
- 어째서 적의를 보이느냐고요? 그거야 제가 양의 반려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네가 나에게 품어야 할 감정은 적의가 아니라 감사함이여야 마땅할텐데?"
- 양과 저는 운명의 붉은실로 이어져 있어요. 당신이 수작부릴 필요 없이 언젠가는 만났을 거에요.
"운명의 붉은 실? 그런 이야기를 부끄러움도 없이 하다니. 완전히 어린 아이로구나."
폭시는 새까만 벽 틈새로 보이는 루어시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재빠른 동작으로 강한 참격을 날리고는 있으나, 본질은 어린애. 삐쩍 마른 몸에 보는 사람이 부끄러울만큼 대담하게 옆을 노출한 갑옷 차림이 기이한 감정을 유발했다.
"너같은 어린애를 보고 발정하는 것은 사상이 불순한 자 뿐이겠지."
- 지금은 어린 아이의 몸이라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힘을 되찾아 크면 그만입니다. 하긴, 키만 컸지 가슴은 껌딱지인 사람에겐 이해할 수 없는 말일까요.
"흠? 방금 무어라 했느냐."
- 저는 당신과는 달리 이만큼 커질거라고 했는데요.
소녀는 자그마한 가슴을 앞으로 쭈욱 내밀더니, 양팔을 한계까지 쭉 펼처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렇게 커봐야 징그럽기만 할 뿐이지. 애시당초 그렇게 쉽게 자라날 것 같더냐? 하긴 어린애라 이해를 못 하겠구나."
- 그건 한평생 커도 껌딱지인 당신에게나 그런 일이겠죠. 여성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법이에요.
루어시가 한 손으로 뺨을 짚고 "아차" 하는 말을 꺼냈다.
- 이러면 당신이 여성이라는 걸 부정하게 되는군요.
그 말이 폭시의 신경을 제대로 긁었던 것일까, 폭시는 새까만 벽을 치우고 두 사람 앞에 자기 몸을 드러냈다.
"도륙을 내주마. 버르장머리 없는 꼬마야."
- 바라던 바에요. 껌딱지.
"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덤벼라."
두 여성의 이해 못 할 대화에 끼지 못 하던 양이 왼팔을 펼쳤다. 새까만 용의 비늘이 삐져나오며 듀얼디스크의 형상을 취했다. 폭시는 그에 응하여 왼팔을 펼쳐 듀얼디스크를 형성했다.
"듀얼."
……
폭시가 철벽 가드 치니까, 공격 안 통하는 거 확인하고 말로 어그로 끌어서 제 발로 나오게 만드는 루어시. 양이 상대가 아니면 가차없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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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 17.08.20 01: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