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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힘’을 쥐어주면 마치 백지에 물감을 쏟는 것처럼 물들어간다.
대부분의 경우 썩은내가 진동하는 까만색이라고 단정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나의 아버지가 그랬다.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이 모은 알바비로 대학을 나온 그는 48세 젊은 나이로 세계에서 손에 꼽는 대부호가 되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엑시즈 크리스탈”의 독점.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물밑거래던 테러리스트를 고용하던 엑시즈 크리스탈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그 크리스탈을 필요로 하는 곳에, 대부분 엑시즈 크리스탈이 절실한 가난한 국가들에, 천문학적 가격으로 팔아넘기는 것이다.
국가수준에서 다뤄야만 하는,인류의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되었어야 하는 엑시즈 크리스탈.
그에게 있어서는 그저 돈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혼자만을 탓하는건 그도 좀 억울할 것이다.
이정도의 중요한 자원을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 그의 배후에는 어딘가의 강국이 있었겠지.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맘만 먹으면 세상의 모든 가정에 불을 밝히고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자원,
그에게 있어서 인류 전체가 구원받고도 남을만한 ‘힘”은 그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물건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부모로서의 ‘힘’ 역시 악용했다.
내가 죽은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매번 사선을 헤맬 정도로 구타당했다.
차라리 죽여버리라고 외치자 말하는 것까지 그 여자와 같냐며 더 때렸다.
인간으로서도 최악, 부모로서도 최악
이런 인간의 최후가 어떨지 보고 싶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30년, 40년이 걸려도 이 두 눈으로 봐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10번째 생일.
어느 때와 같이 저택의 메이드들로부터 몰래 조촐한 축하를 받았다.
물론 녀석은 내 생일인지 기억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그래도 10번째 생일...특별하지않은가.
태어난지 무려 10년이 된 것이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100년의 1/10인 것이다.
아무리 그를 미워해도, 사실 모든 게 다 연극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순간 모든 게 마법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 그날 밤, 몰래 녀석의 서재에 숨어들었다.
혹시 선물을 준비해둔건 아닐까, 10년치 생일선물을 한번에 주는건 아닐까.
가슴이 들뜬다.
서재의 안에 녀석이 있다.
창문 앞에 서서 아름다운 별하늘을 와인을 음미하며 올려다보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은 도대체 밤하늘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어머니의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 생각을 해주는 걸까.
말을 걸어도 될까. 분명 화낼테지.
아니, 오늘만큼은...
그렇게 결심하고 녀석에게 다가간 순간 얼굴과 티셔츠에 와인이 쏟아진다.
“퉤퉷”
입에 들어간 와인을 뱉어냈다.
와인이라면 작년 생일 때 또래의 어린 메이드 견습생이 쥬스인줄 알고 부엌에서 잘못 가져온걸 마셔본적 있다.
근데 뭐지, 왜 이리 뜨겁고 끈적하지....
“쿵”
소리에 놀라 창가를 본다.
그 녀석은 더 이상 서있지 않았다.
다만 그 녀석이었던 것이 바닥에 널부러져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 그의 머리에서 액체가 뿜어져나온다.
순간 서재의 구석에서 그림자가 나타난다.
달빛이 비치자 그곳엔 일반 남성의 최소 2배는 되어보이는 거구의 근육질 남성이 전신이 검은 옷을 입고 서있었다.
그가 이번엔 총을 나에게 향한다
하지만 나는 남성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그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울지 않는 건가?”
남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울어서 도움이 된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어.”
짧은 침묵. 남성이 총을 거두었다.
“녀석은 신에게 심판을 받은 거야?”
깨진 와인잔에 피가 흘러들어가는 걸 지켜보며 그에게 물었다.
신의 심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신이 그의 악행을, 어머니에게, 나에게 행한 못된 짓을 보고 벌을 내린 거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하지만 남성은 코웃음쳤다.
“신의 심판이란게 있다면 이렇게 늦게 떨어질까보냐.”
잠시 공백을 두고 녀석이 말을 잇는다.
“그 녀석은 그저 길을 잘못 들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남성이 들고 있는 총을 잠시 쳐다보고 대답했다.
“그럼 아저씨는 다른 거야?”
내가 묻자 그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대답한다.
“나만큼은 반드시 옳은 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망설임 없는 강인한 눈이었다.
“정말로?”
그의 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남성은 퉁명스런 얼굴을 유지하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쥐고 있던 권총을 내 양손에 쥐어주었다.
“만약 아니라면, 이번엔 내 차례일 뿐이다.”
그것이 나와 제로의 첫만남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제멋대로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의 차례가 오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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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어둡다.
나쁘지 않다. 보고 싶지 않은 걸 보지 않아도 된다.
어둠이라는 건 의외로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안심하는 순간 주위에 인간의 형태를 띄운 그림자가 여러개 나타난다.
전부 알고 있는 얼굴이다.
전부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어째서...도대체 어째서 제로를 막지 않았나, 에이전트 세븐.”
K가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를 질책한다.
“세븐...정말 우리보다 그 배신자를 믿은 거야...?”
평소에 항상 웃음만 짓던 식스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나는...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하...평소부터 럭키걸이었으니까 말야.”
에이트가 그녀의 얼굴을 긁적이며 웃어보인다.
“...”
일레븐은 항상 말수가 적었던 만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있는 아이스크림이 녹아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난 알고 있었다고, 네놈은 언제나 팀보다 그 배신자 녀석을 신뢰했다는 걸.”
나인이 입안에 고인 가래를 내뱉듯 내게 말했다.
그들의 말이 지당하다 내 탓이다.
나 때문에 포도, 식스도, 에이트도 나인도, 일레븐도, K도, 모두 죽었다.
내가...가장 중요한 순간에 제로를 마무리 하지 못한 탓에
내가...제로를 믿은 탓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한번에 전부 잃었다.
나 때문에...포는 죽은 것이다.
“세븐.”
순간 너무나도 그리운,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변이 순간 빛에 삼켜지더니 바닷가가 뒤에 훤히 보이는 언덕의 꽃밭으로 변했다.
그리고 언덕의 끝에...그녀가
...그녀가 있었다.
살아 숨쉬고 있었다.
“...포”
한 걸음 내딛는다.
“포...! 포!!”
기쁜지 슬픈지 모를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끝없이 부르며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살을 찢는 듯한 감각이 들만큼 뜨거운 눈물이 볼을 흘러내린다.
언덕의 끝에 도달해 그녀를 있는 힘껏 안았다.
그녀는 자신의 머릿결이 까칠하다며 그닥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좋아한다, 그녀를 안을 때 마다 눈 앞에서 살랑거리는 그녀의 금발을.
“포...살아있던 거구나...고마워...고마워...”
그녀가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속삭였다.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건가. 그녀는 살아남아주었다.
그것 이상 감사한 일이 어디있는가.
그렇잖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이제 세븐을 지켜주지 못해...그건 에이트도 식스도 일레븐도 나인도...K도 같아.”
그녀가 살며시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문지르며 말했다.
이를 악문다. 울지 않기 위해, 그녀 앞에서 꼴사납게 오열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다.
“세븐은 이제 혼자 해나갈 수 밖에 없어...괜찮겠어? 할 수 있겠어...? 옛날처럼 혼자 방에서 불 끄고 울지 않을 거야?”
입을 열면 울음소리가 새어 나갈 것 같아 차마 말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품에 안겨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거짓말인거 다 뻔히 보이는데? 세븐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항상 울보였으니까.”
그녀가 아이의 울음을 달래듯 내 머리를 문지른다.
겨우 3개월 빨리 태어난 주제에 그녀는 가끔 이럴 때 연상인척 한다.
“힘들겠지만 이제부터는 혼자서...혼자서...”
그녀 역시 울먹이느라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혼자가 되더라도...힘내야...해...?”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녀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잠시간의 정적.
그녀도 나처럼 필사적으로 울지않으려고 참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결국 먼저 울음을 터트린건 그녀였다.
“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세븐 혼자 두고 어째서 떠나야 하는 거야! 이런거... 이런거...! 이상하잖아! 세븐은 내가 없으면 안되는데...우리가 없으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말해야 한다.
그녀가 마음편히 떠날 수 있게
말해야 한다.
슬픔을 어떻 게든 억지로 삼키고 입을 연다.
“포! 나 말야! 네가 없어도...! 혼자서!”
순간 말을 끝내기 전에 온몸의 근육이 굳는다.
식은땀이 흐른다.
눈 앞에 있는 건 포가 아니라 음산한 보라색 머리를 한 소녀였다.
마치 시체같은 창백한 얼굴. 그녀의 눈에는 눈동자 대신 음표가 기분 나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신이 전부 죽여버린 거네. 불쌍하 게도...어째서 그들보다 배신한 그 남자의 말을 믿은 거야? 동료였잖아?”
그녀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생기없는 음표와 같은 눈동자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친구였잖아?”
“애인이었잖아?”
정말이다.
나는 왜 그들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제로를 믿은 걸까.
“배신자.”
소녀의 말이 날카로운 못처럼 심장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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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다.
나를 그냥 둬...
“나쨩씨!”
제발 나를 홀로 놔둬...
“나나쨩씨!”
정신을 차리니 메아가 나를 부축하며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주세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건...악몽입니다!”
여긴...아 그렇다.
트렌치코트 녀석에게 듀얼을 건 시점에서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졌었다.
“크크큭, 달콤한 꿈은 꾸셨는가, 피라미드의 예수? 아무래도 그 마녀와 링크한 후유증인 것 같군. 제정신이 돌아온 게 신기할 정도라고.”
트렌치코트가 나를 비웃었다.
“자, 선공은 양보할테니 예루살렘에서 보였던 기적이란걸 보여달라고! 기적이라도 없으면 네놈 따위가 내게 이기진 못할테니 말야!”
이겨야 한다.
여기서 질 수는 없다.
내가 제로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죽은, 내 탓에 죽어버린 동료들에게 보일 얼굴이 없다.
그 때 까지는 멋대로 죽을 수 없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바로 선다.
“드로!”
---Turn 1--- [LP 8000/8000]
첫패의 카드 5장을 확인한다.
[SPYRAL-댄디]. 오래간만이다.
아직 기억이 부근부근 비어있는 것 같지만 듀얼과 같은 기본적인 지식은 돌아온 모양이다.
지구에서도 신세를 졌지만, 여기서도...부탁한다!
“[SPYRAL-댄디]의 효과 발동! 몬스터를 선언! 네 녀석의 덱 위를 체크하고 내가 선언한 종류의 카드였을 경우 패에서 이 카드를 특수소환한다!”
“낄낄 이게 기적의 시작이라는 거냐?”
트렌치코트는 웃으며 덱위를 뒤집어 [검투수 옥타비우스]를 보였다.
“[댄디]를 특수소환! 그리고 패에서 카드를 한장 [세트]하고 턴 엔드!”
---Turn 2--- [LP 8000/8000]
“자, 그럼 피라미드의 예수에게 첫시련을 주도록 하지!”
트렌치코트가 찢어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외쳤다.
“패에서 [레스큐 레빗]을 일반소환! 레빗의 효과로 덱에서 [검투수 안달]을 2체 특수소환! 그리고 [안달] 2체로 링크소환!!”
필드의 상공에 마치 차원을 찢는 듯한 문이 열린다.
녀석이 소환한 별볼일 없어 보이는 몬스터 두 마리가 그 문에 빨려들어간다.
“[검투수 드라가시스]를 링크소환!!!”
빛의 원을 찢고 필드의 중앙에 적색의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전사가 등장한다.
“링크소환?!”
처음 보는 소환에 당황한다.
기억에 누락이 있는 것인가...? 저건 도대체?!
듀얼 도중이라 동요를 표정에 들어내는 건 최대한 억제했지만 전부 숨기는건 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문다.
“크하핫, 뭐야, 네놈 ‘링크’ 미경험자냐?”
트렌치코드가 비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나쨩씨, 저건 5년 전 피라미드가 고립된 이후부터 이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신 소환법입니다.”
침착하게 표정을 되돌리고 메아에게 묻는다.
“영향력은...?”
신규 소환법이라고 해서 영향력이 크리란 보장은 없다.
지구에도 있는 의식소환 역시 다른 소환과 차별된 카테고리의 소환법이지만 영향력은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미비한 수준이었다.
링크소환, 그것이 의식과 같기를 바랄 뿐이다. 실제로 카드 색깔도 비슷하니까.
방금 트렌치코트는 같은 카드 2장을 가지고 링크소환을 행했다.
즉 같은 이름을 가진 카드를 써서 소환을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제약이 적지는 않은 편이다.
“침착하고 들어주세요. [링크소환]의 영향력은...듀얼 전체를 뒤집을 수준입니다.”
“뭐...?”
엑스트라 존의 신설, 엑스트라덱 특수 몬스터의 메인존 소환 제한, 링크마커, 그녀가 하는 설명을 들을 때 마다 표정관리가 어려워진다.
이건...듀얼 자체가 완전 바뀌는 수준이 아닌가.
하지만 우선 자세한 차이는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막대한 소환법이라면 우선 나도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듀얼리스트에게 중요한건 승리냐 패배냐다.
이론 따위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링크소환을 하는 방법은? 당연 나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예...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건...?”
그녀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설명했다.
“그건 바로 두 파트너 듀얼리스트가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받아들여?”
“예. 링크소환이란 기본적으로 레벨, 종족, 속성등의 기존의 소환법에 존재했던 벽을 뛰어넘어 힘을 하나로 뭉치는 소환법입니다. 그 소환법을 사용하는 듀얼리스트들 끼리 역시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죠.”
“...정확히 뭘 하면 되는 거지?”
메아가 살짝 웃는다.
“쉽게 설명하면...서로를 믿으면 되는 겁니다. 아마 당신과 저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 왔겠죠. 가치관등이 완전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카드로 따지면 종족만 같지 공격력, 레벨, 효과, 속성 등등 전부 다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다른 저희들이 서로를 믿고 받아들이는 곳에서 링크소환의 원동력이 생성됩니다.”
믿는다...? 내가...? 그녀를?
“크큭, 바보 커플 한쌍이 듀얼중에 잘도 떠드는 구만. 더 기다려주고 싶어도 이대로라면 내 배틀 페이즈가 끝날 것 같거든! 배틀이다! 저 꼴보기 싫은 녀석을 처형하라!”
트렌치코트의 명령과 동시에 독수리의 모습을한 전사가 날개를 길게 펴더니 10미터 남짓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댄디는 순간적으로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방패처럼 내밀며 방어했지만
독수리 전사는 코웃음을 치며 거대한 빨간색 방패로 가방을 쳐낸 후 그대로 그의 배에 칼을 꽂아넣었다.
[전투 데미지: -100/ 라이프 8000 -> 7900]
“흥, 큰소리 쳐놓고 겨우 100 깎고 전부냐!”
여유있는 척을 하며 녀석을 도발한다. 녀석은 분명 이런 싼 도발에 약한 성격이다.
“크큭, 보고 있으라고...”
이건 좋지 않다. 녀석이 지금 도발에 타지 않는다는 건 아마 진짜로 무언가를 준비해둔 것이다.
“[검투수 드라가시스]의 효과 발동! 전투를 실행한 이 몬스터를 엑스트라덱으로 되돌리고 덱에서 검투수 몬스터 2체를 특수소환한다!”
“내가 특수소환 하는 건 [검투수 다리우스]와 [검투수 아우구스톨]”!
“나나쨩씨, 이 전개는 위험합니다.”
옆에서 메아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알고 있다. 기억이 완전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듀얼의 감각이 이건 분명 승패를 가르는 전개라고 알려오고 있다.
“검투수의 효과로 특수소환된 [검투수 다리우스]의 효과를 발동! 묘지에서 [검투수 안달]을 필드에 특수소환!”
“그리고 이어서 [아우구스톨]의 효과 발동! 패에서 [검투수] 몬스터 1장을 수비표시로 특수소환! 이 효과로 특수소환한 몬스터는 엔드 페이즈에 주인의 덱으로 돌아간다.”
“나는 패에서 [검투수 옥타비우스]를 특수소환!”
녀석의 순식간에 필드에 4체의 몬스터가...! 녀석은 패를 단 2장만 썼을 뿐이라고...?
내게 경악할 틈도 주지 않고 녀석이 외친다.
패에서 특수소환된 [옥타비우스]의 효과 발동, 네 필드의 세트된 마함 카드 1장을 파괴한다!
“가랏 [옥타비우스]!”
황금색 갑옷을 두른 독수리의 모습을 한 거대한 몬스터가 날개짓을 하며 이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온다.
“나나쨩씨, 어서 발동을...!”
알고 있다고!
“세트된 [SPYRAL MISSION-구출]을 발동! 그리고 효과를 발동! 묘지의 스파이럴 몬스터 1장을 대상으로 하고 패로 넣는다. 나는 전투로 파괴되어 묘지로 간[SPYRAL - 댄디]를 패에 넣는다! ”
“[옥타비우스]의 효과에 체인되어 발동된 구출은 [옥타비우스]의 효과 처리시 세트상태가 아니므로 [옥타비우스] 효과는 불발이 됩니다!”
옆에서 메아가 더했다.
“칫, 쓸 때 없는 짓을. 하지만 소용 없어!”
트렌치코트가 기분이 얹짢은 듯 침을 뱉으며 외쳤다.
“[검투수 다리우스]와 [검투수 안달]로 [검투수 드라가시스]를 엑스트라덱에서 링크소환!”
잠시 투기장의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던 독수리의 전사가 하늘을 날아 복귀한다.
“그리고 [검투수 아우구스톨]과 [검투수 옥타비우스]로 [검투수 테이머 에디토르]를 융합소환!
마치 하나의 거대한 힘이 두가지 뿌리로 나뉜 듯한 독수리 형상을 한 두 몬스터가 하나로 합쳐진다.
그리고 그 장막을 찢고 지팡이의 끝에서 사방에 전기를 뿌리는 사슴 형상을 한 몬스터가 뛰쳐나왔다.
“연속...엑스트라덱 소환...!”
메아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크하핫, 거기의 마녀,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검투수 테이머 에디토르]의 효과를 발동! 1턴에 1번 엑스트라덱에서 이 카드 이외의 “검투수” 융합 몬스터 1장을 소환 조건을 무시하고 특수소환한다!”
“나는 [검투수 헤라클레이노스]를 특수소환!”
딱 봐도 지금까지 봐왔던 검투수와는 격이 다름을 느낄 수 있는 괴물이 골목의 콘크리트 바닥을 아작내며 착지한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불길이 그가 서있는 근처의 콘크리트 바닥을 빨갛게 달군다.
“큿...”
메아가 엄지손가락을 깨문다.
“나나쨩씨, 저 몬스터는 조심해주세요, 발동된 마법과 함정 카드를 패를 1장 버리는 것으로 무효로 하여 파괴가 가능합니다.”
“뭐...?”
욕을 뿜을 것 같은 걸 참는다.
이쪽은 마법 함정 다 버리고 오로지 몬스터 카드로만 싸워야 하는 핸디캡 이라니. 제정신으로 할일이 못된다.
[구출]은 이미 발동을 해논 상태니 상관 없겠지만 바꿔 말하자면 저 괴물을 처리하기 전까진 필드에 발동되어있는 [구출]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마법/함정이란 소리다.
그런 나를 비웃듯 트렌치코트가 외친다.
“나는 카드를 한장 마법/함정 존에 세트하고 턴 엔드!”
---Turn 3---[LP 7900/8000]
“나나쨩씨, 마법/함정은 발동해도 소용 없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알고 있어.”
몬스터만으로 어떻게 하는 수 밖에 없다.
눈 앞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녀석과 나 사이에는 마치 벽을 짓는 것처럼 녀석의 몬스터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엑스트라덱 몬스터가 무려 3마리...
도저히 뚫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침착하자, 이럴 때일 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거다.
모든 전략은 정보수집부터 시작된다. 우선 거기서 부터다.
“[SPYRAL GEAR-드론]을 일반소환!”
“[드론]의 효과 발동, 네 녀석의 덱 위 카드 3장을 확인하고 원하는 순서대로 되돌린다!”
“히히, 남자 녀석에게 이런 곳 저런 곳 보여져봤자 기쁘지 않은데 말이지.”
녀석을 무시하고 카드를 확인한다.
[슬레이프 타이거]
[검투수의 전차]
[검투수 라크엘]
[라크엘] [타이거] [전차] 순서대로 제일 위에 올려놓는다.
“[댄디]의 효과 발동! 몬스터를 선언!”
녀석이 [라크엘]을 뒤집어 보임과 동시에 텅 비어있던 내 앞에 다시 한번 ‘그’가 나타난다.
“특수소환에 성공한 [댄디]의 효과를 발동! 네 필드에 세트된 마함카드를 날려버리겠다!”
필드에 등장한 댄디가 주머니에서 리모컨 하나를 꺼내 여유로운 미소를 날리며 눌렀다.
트렌치코트 녀석의 세트카트 밑에 설치되어있던 폭탄이 폭발한다.
“느려! 체인해서 내 세트카드를 발동! [디팬시브 텍틱스]! 발동된 이 카드는 덱의 맨 아래로 돌아간다!”
어찌됐든 녀석의 세트카드는 클리어 했다.
“필드에 몬스터가 2장! 지금입니다”
메아가 나를 쳐다보며 외쳤다.
링크소환인가. 좋아, 이대로 밀어붙인다!
해주겠어, 이기기 위해서라면!
“링크 소환!”
힘을 다해 외친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아를 쳐다본다.
그녀가 조급한 표정을 짓는다.
“이건...거부 반응! 나나쨩씨가 저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역시 그런가.”
아까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나한테는 무리다.
부모처럼 키워주고 스승처럼 길러주었던 제로.
그를 처음 만날 그날부터, 그 사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믿겠다고 결심했다.
비록 세상을 적으로 돌리게 되더라도 그라면 배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 꼴이다.
내가 그를 믿은 탓에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내가 그를 믿은 탓에 동료들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믿지 못했다.
이제와서 나보고 다른 누군가를 믿으라니...무리다.
더 이상 아무도 믿지 못한다.
하물며 오늘 만났을 뿐이 완전 타인인 그녀를 믿으라고 해도...할 수 없는 것이다.
“나나쨩씨! 어서 링크소환을 하지 않으면...!”
그녀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의 진한 적안이 동요를 보여주고 있었다.
“필요없어.”
“예?”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글해진다.
“링크소환 따위 없어도, 나는 충분히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드론]을 릴리즈해 네 필드에 있는 카드의 수 x 500만큼 에이전트의 공격력을 상승! 네 필드의 카드는 3장, 상승치는 1500! 그리고 [구출]의 효과를 발동, 묘지에서 [드론]을 패에 넣는다.”
[댄디]의 공격력이 3400까지 치솟는다.
“이대로 지옥으로 떨어져라, [댄디]로...!”
순간 망설인다. [검투수 테이머 에디토르]를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 턴 엑스트라덱 몬스터가 또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에디토르]의 처리를 우선시하자니 [검투수 헤라클레이노스]의 효과로 이번턴은 물론 다음 내 턴에도 마함의 발동이 막힌다.
역시 지금 상황이라면...재소환이 힘든 [에디토르]의 처리를 우선시 해야할까.
“[에디토르]를 공격! 녀석을 날려버려라, [댄디]!”
[댄디]가 자신의 장갑을 고쳐끼우고 [에디토르]를 향해 마치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드론]이 모아온 녀석 몬스터들의 약점을 토대로 공격력이 3400까지 상승해있는 상태, 아무리 방어력 3000의 [에디토르]라고 하더라도 버틸 수 있을리 없다!
하지만 [댄디]의 일격이 작렬하려는 순간, [에디토르]의 뒤에서 코뿔소를 닮은 몬스터가 등장해 자신의 몸 주위에 부유해있는 비석 같은걸 [에디토르]의 주위에 펼친다.
[댄디]의 주먹이 그대로 튕겨진다. 중심을 잃은 [댄디]는 공중제비를 한바퀴 돌더니 내 필드로 돌아왔다.
“후후, [디펜시브 텍티스]를 발동한 턴 [검투수] 몬스터는 전투로 파괴되지 않고 내가 받는 데미지는 전부 0이 된다.”
칫...기껏 일격을 먹일 수 있었는데.
“턴 엔드다.”
---Turn 4---[LP 7900/8000]
아직 내 필드에는 공격력 3400의 댄디가 버티고 있다. 녀석도 섣불리 공격해올 수는 없겠지.
“[구출]인가, 그거 거슬린다고...그껏 묘지에 쳐박아놨더니 자꾸 패로 더하고 말야. 박살내주지.”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외쳤다.
“패에서 [검투수의 투기 할버드]를 [검투수 드라가시스]에 장착!”
벽이라도 쪼갤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할버드가 드라가시스의 손에 쥐어지자 그의 갑옷 색깔에 맞춰 붉은색으로 변한다. 마치 피를 원하는 것처럼.
“그대로 공격이다! [드라가시스]로 [댄디]를 공격!”
뭐...라고? 겨우 공격력 2000짜리로...!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
할버드가 1400의 공격력 차이를 커버하는 건가?!
하지만 예상과 달리 [드라가시스]는 공격력 2000의 상태로 공격력 3400 상태의 [댄디]에 달려왔다.
댄디는 망설이지 않고 장갑을 고쳐끼고 드라가시스에게 주먹을 날린다.
붉은색 갑옷을 으깨며 댄디의 올려치기가 녀석의 배에 명중한다.
붉은 갑옷의 파편을 흩날리며 다라가시스는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전투 데미지: -1400, 라이프 8000 -> 6600]
녀석, 설마 실성했나?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만 분명 치명상이었어야 할 일격을 받았음에도 붉은 갑옷의 전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드라가시스]의 효과! [검투수] 몬스터가 공격할 경우, 전투로는 파괴되지 않는다! 그리고...!”
“[검투수의 투기 할버드]의 효과 발동! 이 카드를 장착한 [검투수] 몬스터가 전투를 실행한 데미지 스텝 종료시, 필드 위의 마법 또는 함정카드 1장을 파괴한다!”
공중으로 날려졌던 드라가시스가 날개를 펼쳐 공중에서 중심을 바로 잡고 빠르게 하강하며 할버드를 내 필드에 올려져있는 [구출]에 내리꼿는다.
[구출]이 파괴되어 묘지로 보내진다.
칫...! 이걸로 회수가 힘들어졌다. 물론 묘지로 간 [구출]은 그거대로 비장의 카드가 되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드라가시스의 효과는 분명...
“[드라가시스]의 효과 발동, 전투를 마친 이 카드를 엑스트라덱으로 돌리고 덱에서 [검투수 물미로]와 [검투수 에퀴테]를 필드에 특수소환!”
필드에 생선과 말을 닮은 검투수들이 튀어나온다.
“[검투수 물미로]의 효과 발동, 이 카드가 검투수의 효과로 특수소환 됐을 경우 필드의 몬스터 1장을 파괴한다!”
“이어서 [검투수 에퀴테]의 효과 발동! 묘지의 검투수 카드 1장을 패에 넣는다. 나는 묘지의 [검투수 다리우스]를 선택”
“그리고 [드라가시스]가 엑덱으로 돌아가면서 묘지로 간 [할버드]의 효과 발동, 장착 몬스터가 자신 필드 위에서 덱으로 돌아가는 것에 의해서 이 카드가 묘지로 보내졌을 때, 이 카드를 패로 되돌린다!”
생선과 같이 생긴 검투수가 내뱉은 물대포에 [댄디]가 휘말려 사라진다.
그리고 녀석은 갑자기 패가 2장이 불어났다.
저렇게까지 맘대로 전개를 해놓고 패가 5장이라고...?! 거기다 재활용 가능한 할버드까지 있다.
“필드의 [에퀴테]와 [물미로]로 링크소환! 나와라 [드라가시스]!”
링크소환...! 또 녀석인가...!
하지만 방금전과는 무언가가 다르다. 뭐지, 이 위화감은.
“엑스트라존이 다릅니다...! 설마...”
메아가 듀얼 디스크를 확인하며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크하핫 그대로다. 나는 엑덱으로 돌려보낸 [드라가시스]를 ‘반대편’의 엑스트라존에 특수소환 한 것이다! 이걸로 비어있는 링크앞이 하나...즉...!”
[검투수 테이머 에디토르]...녀석이 온다.
“[에디토르]의 효과 발동, 비어있는 메인 몬스터존에 [검투수 네로키우스]를 소환조건을 무시하고 특수소환!”
가뜩이나 꽉 차있는 녀석의 필드에 마치 박쥐의 모습을 한 두터운 장갑을 입은 검투수가 사뿐히 내려온다.
녀석에게는 절대 전투로 이길 수 없다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마치 "황제"의 위엄이다.
“나는 패에서 몬스터 1체를 세트한 다음 패의 카드 2장을 마/함존에 세트하고 턴 엔드!”
“크하하 어떠냐, 슬슬 다시 무덤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기권 하고 싶음 언제라도 말하라고! 조금만 괴롭히다 바로 죽여줄테니까!”
---Turn 5---[LP 7900/6600]
절망적이다.
필드의 차이가 말로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승산이 없을 것이다.
라이프적으론 아직 우세하니 어떻 게든 한방에 승부를 짓지 않으면...
“나나쨩씨, 이 차이라면 역전은 힘듭니다, 지금이라도 링크소환을...!”
메아가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다.
내게 더 이상 타인을 믿으라는 부탁은 억지이다.
제로라고...? 알고 있어?
그 제로를 믿어서 이 꼴이 났다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 같던 그조차도...
더 이상 누군가를 믿는건 무리다.
이제부터는 내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녀석들을 저쪽 세상에서 볼 면목이 없는 것이다.
“[드론]을 일반소환!”
[검투수 세크톨]을 녀석의 덱 가장 위에 놓는다.
“패의 [댄디]의 효과를 발동, 몬스터를 선언. 특수소환후 필드의 마함 카드를 한장 파괴! 난 오른쪽에 세트된 카드를 지정!”
[댄디]의 효과에 파괴되는 카드를 조바심을 가지고 확인한다.
파괴된 카드는 뭐냐?!
[할버드]다.
안 좋은 느낌이 든다.
굳이 장착카드인 [할버드]를 세트했다는 건...미끼역할인가.
아니면 블러핑...?
아니, 녀석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블러핑이 필요할리가 없다.
어찌됐든 나는 이길 뿐이다!
[드론]을 릴리즈해 효과 발동! [댄디]의 공격력을 상승, 네녀석의 필드에 있는 카드는 총 6장, 공격력은 500 x 6 = 3000 상승해 총 4900!”
“묘지의 [탈출]을 제외하고 발동한다. 묘지의 [SPYRAL] 몬스터 1체를 필드에 특수소환한다. 나는 [드론]을 특수소환!”
골목의 상공에 무음으로 떠다니는 드론이 등장한다.
“[드론]을 릴리즈해 효과 발동, 다시 3000 상승해 [댄디]의 공격력은 7900!”
“크큭, 확실히 적은 공격력은 아니다만 그걸로 어쩔려는 거냐? 가장 공격력이 낮은 [드라가시스]를 공격해도 내 라이프는 남는다고?”
확실히 녀석의 말 대로다. 여기서 끝장을 내지 못하면 다음 턴에 희망은 없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끝내면 되는 간단한 이야기다.
“패에서 [SPYRAL GEAR - 라스트 리조트]를 필드의 [댄디]에게 장착!”
“뭣?! [헤라클레이노스]의 효과로 장착을 막을 수가 없어?!”
트렌치코트가 동요한다.
“당연하지, [라스트 리조트]는 몬스터 카드니까 [헤라클레이노스]의 효과로는 장착을 막을 수가 없다!”
“그리고 패에서 카드를 한장 마법/함정 존에 세트. [라스트 리조트]의 효과 발동! 자신 필드의 카드를 1장 묘지로 보낸 턴, 이 카드가 장착된 몬스터는 직접 공격을 할 수 있다! 나는 세트된 카드를 묘지로 보낸다”
세트되었던 [SPYRAL MISSION - 탈환]이 묘지로 보내진다.
어차피 [헤라클레이노스] 때문에 발동도 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써주마!
“직접...공격...이라고...? 공격력 7900의 몬스터로...?”
트렌치코트가 혼이 빠진 표정을 짓는다.
녀석의 라이프는 6600.
이걸로 끝이다!
모두들...보고 있어줘.
나는 내 힘만으로 제로 녀석을 쓰러뜨리고 너희들에게 용서를 빌테니까...
혼자가 되었지만...그래도 해낸다!
“공격이다!!! [댄디]!!!!”
라스트 리조트라는 최종병기를 장착한 댄디가 트렌치코트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한다.
녀석 필드에 앞면 표시로 존재하는 몬스터 4마리가 차례로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달려든다.
하지만 라스트 리조트를 장착한 [댄디]는 무적이다.
검투수들을 마치 트럭으로 들이받는 마냥 튕겨내며 단 하나의 목표, 트렌치코트를 노리고 그 기계로 강화된 팔을 뻗는다.
7900의 데미지. 듀얼은 이걸로 끝났다.
그래야 했는데...
어째서 녀석의 라이프는 하나도 줄어있지 않는 거지?
“어이, 예수, 나 조금 지린 것 같다고? 위험했다 위험했어 휴우.”
분명 그 어떤 필드의 몬스터도 막지 못했어야할 라스트 리조트의 일격을 마치 표범처럼 생긴 검투수가 거대한 양손으로 받아낸 것이다.
저런 몬스터...필드에는 없었는데...!
“크하핫 미안 미안, 설렜어? [검투수 녹시우스]. 상대 몬스터의 직접 공격시 패에서 필드에 특소 후 대상을 이 카드로 옮겨서 데미지 계산을 실행 가능하지. 그리고 이 카드는 그 전투로는 파괴되지 않는다고.”
“그나저나 방금 전 네 놈의 표정 백만불짜리였다고! 승리에 자신감이 가득찬 거만한 얼굴이 순식간에 똥씹은 표정이 되는 거 말야 카하하핫!”
트렌치코트가 씨익 승리를 확신하는 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그리고 이 카드가 [검투수] 몬스터의 효과로 특수소환에 성공했을 경우 덱에서 [검투수] 몬스터 1체를 보내지. 나는 [검투수 베스트로리]를 묘지로 보내겠다.”
“그리고 전투가 종료됨에 따라 [검투수 녹시우스]를 덱으로 돌리고 덱에서 [검투수 베스트로리]를 특수소환!”
“특수소환된 [베스트로리]의 효과로 필드의 마함을 1장 파괴, 발동할 때는 몬스터카드 라고 해도 마함존에 있는 이상 마함 카드 귀급이다. 네놈의 최종병기, 고철로 만들어주겠어.”
소환된 [베스트로리]의 팔에서 마치 활처럼 발사된 두 개의 창이 내 필드의 [댄디]를 덮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최종병기인 [라스트 리조트]를 포기하고 탈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칫...라스트 리조트는 장착되어있는 몬스터에게 효과/전투 파괴내성과 대장지정 내성을 주는 우수한 방어막이다. 괜히 최종병기가 아닌 것이다, 특히 공격력 7900의 댄디에게 장착 되어있을 경우에는.
이것이 아직 녀석의 턴이 돌아오기도 전에 파괴되어버렸다.
“턴...엔드...”
이번 턴에 끝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아직 이쪽 필드엔 아직 공격력 7900의 댄디가 남아있다.
버틸 수 있지 않을까...하는 헛된 희망을 가져본다.
---Turn 6---[LP 7900/6600]
“어이 어이 예수. 그대로 턴 엔드라고? 너무 김빠지잖아?”
트렌치코트가 도발해온다.
“마함 같은거라도 하나 세트 해보라고. 뭐, [헤라클리오스]가 있는 이상 뭘 해도 무리인가 크하핫”
녀석이 드로우를 하며 씨익 웃었다.
“좋은 패다. 자, 예수, 이제 유다에게 배신당해 십자가에 박힐 차례다. 손발 닦고 잘 기다리고 있으라고!”
“필드의 [베스트로리]와 [네로키우스]를 컨텍트 융합! [검투수 가이재러스]!”
맹금류의 모습을 하고 녹청색의 갑옷을 두른 검투수가 하늘을 가르며 등장했다.
“[가이재러스]의 효과 발동, 필드의 카드를 2장까지 대상으로 하고 파괴한다! 나는 네놈의 [댄디]를 파괴! 자 이걸로 끝이다!”
[가이재러스]의 소환시에 일어난 바람의 파동이 필드를 덮친다.
방심했다!!
녀석이 지금까지 보여준 몬스터 제거는 전투 후 소환되는 물미로 뿐이었다.
설마 메인페이즈 1부터 제거를 해올 줄이야.
이대로라면...[댄디]가! 내 필드는 텅 비어있다. 여기서 댄디를 지키지 못하면 그대로 공격당해 뒤는 없다!
“묘지의 [SPYRAL MISSION - 탈환]을 제거하여 효과 발동, SPYRAL 몬스터의 파괴를 무효로 한다!”
“제길! 어째서 쓰러지길 거부하는 거냐! 네놈에게 승기는 없는 주제에!!”
“뭐 좋아, 어차피 너는 이제 다시 일어서지 못해!!”
“세트 몬스터를 반전소환, [검투수 라크엘]. 그리고 [검투수 라크엘]과 엑스트라존의 [검투수 드라가시스]를 소재로 새로운 [검투수 드라가시스]를 링크소환!”
“그리고 [검투수 드라가시스]로 전투다!”
아무리 물미로를 소환하기 위해서 라고는 해도 공격력 2000의 몬스터로 공격력 7900의 몬스터에게 돌격하다니, 체력은 좀 남겠지만 그래도 무모한 짓이다...!
이 공격이 통할 경우 녀석의 체력은 겨우 600. 이쪽이 엄청 불리해도 충분히 일격만 들어가면 이길만 하다. 가능성이...아직 남아있을지도!
“하핫 멍청한 녀석! 내가 정말 그만큼 체력을 낭비할거라고 생각했냐! 세트카드 발동! [디팬시브 텍틱스]!”
[드라가시스]가 [댄디]와 충돌한다. 하지만 [디팬시브 텍티스]의 효과로 녀석에게 데미지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드라가시스]의 효과 발동, [드라가시스]를 엑덱으로 보내고 덱에서 [검투수 물미로]와 [검투수 티겔]을 특수소환!”
“[검투수 물미로]의 효과로 [댄디]를 파괴, 그리고 [티겔]의 효과 발동! 패에서 [검투수]라는 이름이 붙은 카드 1장을 버리는 것으로 덱에서 [검투수]라는 이름이 붙은 몬스터 1장을 패에 넣는다. 나는 패의 [다리우스]를 버리고 덱에서 [녹시우스]를 패에 넣는다!”
당...했다...
녀석의 패에 다시 한번 [검투수 녹시우스]가 들어갔다.
망연자실한다.
이렇게 아드차이가 벌어진 이상 내게 승기는 어떻 게든 라스트 리조트로 녀석에게 직접 공격을 넣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저 [녹시우스]가 패에 있는 이상은.
“그리고 엑스트라존이 빈 것으로 [에키도르]의 효과 발동, 엑스트라덱에서 [검투수 네로키우스]를 소환 조건을 무시하고 엑스트라존에 수비표시로 특수소환”
“그리고 나는 내 모든 몬스터를 수비표시로 돌리고 턴 엔드다!”
“열심히 발버둥쳐 보라고, 피라미드의 예수. 네게 남은 시간은 1턴이다. 하하하하하”
녀석은 엑스트라존 포함 총 6개의 몬스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필드에 몬스터에는 아무것도 없다.
패도 단 한장.
승기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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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007 [세븐], 작전 위치에 도착. 타겟을 육안으로 확인.”
근처가 훤히 보이는 고지의 언덕에 엎드려 저격의 준비에 들어간다.
“좋아. 5분 후, 랍테프 해에서 접근중인 우리측 잠수함 파르홀론이 타겟을 사정거리 안에 넣는다. 전파방해 때문에 레이더식 조준은 정확도가 떨어지므로 이후 에이전트 세븐의 유도에 따라 신속하게 미사일로 타겟을 괴멸 시킨다. 시, 실슈는...엣헴, 실수는 용서하지 않는다. 무운을.”
우리들의 기지 “리조트”에 있는 K로부터 무선이 들어온다.
긴장하면 혀를 씹는 K의 버릇은 여전하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는 매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휘관으로서는 고치지 않으면 안되지 않을까...하지만 우리 조직의 아무도 지적하진 않았을 것이다. 목숨을 건 임무의 수행 직전, 저런 그녀의 헤픈 모습에 긴장이 풀려 살아남은 적이 많으니까.
이야기를 돌려서, 타겟이란 배신자인 제로가 [피라미드]로의 차원이동을 위해 대기중인 극비리에 지어진 차원이동 기지를 칭한다.
우리들의 정보원이 러시아의 북부에 있는 스크라드라는 변방에 극비리에 건설된 이 차원이동 시설을 발견해냈다.
카이바 사이버네틱으로부터 훔쳐낸 기술로 독자적으로 지어진 차원이동 시설.
저 시설 안에는 녀석...제로가 [피라미드]로의 이동을 위해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다른 차원으로 도망치기 전에 여기서 처리한다.
아니, 처리해야만 한다.
...
어째서?
그는 정말 배신한건가?
K가 그렇게 말했을 뿐, 아무런 확정된 증거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가 러시아 측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에서 이미 이쪽의 기밀정보를 팔아넘겼을 확률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이야기 아닌가. 아마 팔아넘길 수 있는 건 다 팔아먹었을 것이다.
이제와서 그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다른 차원으로 가려고 하는 그를?
우리측 요원이 몇 명 당했다곤 하지만 그건 이쪽이 먼저 습격을 걸어서이다.
죽이기 위해 갔다면 죽을 각오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먼저 그와 대화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안보 이야기가 되면 위험을 최대한 배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우선시하는건 이해하지만
제로, 그와는 이야기를 하면 분명 해결 될 것 같다.
그는 그런 인물이니까.
분명 무언가의 오해가 있을 것이다.
제로가 정말로 우리를 배신했을리 없다...
아군까지 속여야 하는 극비 임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가 틀릴리가 없는 것이다.
미사일의 유도를 위해 엎드려서 조준하고 있던 레이저 저격총을 쥔 손이 떨린다.
임무 수행중에 이렇게 동요한 적이 있을까.
어째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건지 머리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 나는 제로를 죽이는 것이다.
...
임무니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개인의 감정을 임무에 엮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트리거를 다시 잡는다.
“파를로혼, 3분 후에 작전지역에 돌입합니다.”
“리조트”에 설치된 최첨단 AI [다난]이 정보를 전달한다.
3분...제로...나는 당신을...
“여어, 세븐. 건강한가.”
제로의 목소리.
순간 온몸에 전기가 달린다.
즉시 손에 쥐고 있던 레이저 저격총을 내던지고 바닥을 한바퀴 구르며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 M18을 물 흐르듯 꺼내 내 뒤를 조준한다.
하지만 내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건강한 모양이군. 다행이야.”
그제서야 그의 목소리가 그가 내 17살 생일선물로 건네준 펜듈럼 목걸이에서 나는 거라고 눈치 챈다.
“그거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랑 서로 가까이 있으면 통신이 가능한 무전기라서 말이지. 설마 내가 평범한 목걸이 따위를 네 생일 선물로 줄거라 생각했나? 자그마한 엑시즈 크리스탈의 파편을 내장하고 있어서 거의 반 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고?”
마치 크리스마스날 자식한테 큰맘먹고 준비한 선물을 보여주고 반응을 기대하는 들뜬 부모 같은 목소리.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가 와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가 담담히 말한다.
“어째서...당신은...어째서 우리들을 배신한거야.”
겨우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잠시간의 침묵.
“나는 그날 너에게 말했다. 나만큼은 올바른 길을 갈 거라고. 그게 네 친아비를... 셀 수 없는 인간을 죽여온 내 업보다.”
“그래서 한 짓이 배신이냐고!”
손에 쥔 권총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외쳤다.
“...”
침묵이 계속된다.
“파를로혼, 작전 지역인 랍테프 해에 진입. 제 2번 순항미사일의 발사를 확인. 미사일 착지까지 1분. 에이전트 세븐, 미사일의 유도를.”
다난의 알림이다.
화를 억누르고 권총을 허리에 찬 다음 저격총을 고쳐잡는다.
차원이동 시설을 조준에 넣는다.
“...어째서 나를 그냥 두는 거지? 내 위치 쯤은 진작에 파악했을텐데.”
시설 안에 있는 그에게 묻는다.
“네가 나를 죽일 정도라면, 나는 분명 길을 틀린 것일 테니까. 너에게 죽는다면 내게 후회는 없다.”
이를 악문다.
장난치지 말라고. 틀려있는 게 당연하잖아. 배신한 거라고? 우리 조직을.
“30초”
“15초”
다난은 내 감정은 생각도 않는 듯 무심한 목소리로 시간을 알려온다.
마지막으로 그의 뒤죽박죽 기른 수염이 가득한 얼굴이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10초.”
저격총을 치켜들어 시설의 중심부를 노린다.
덜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고정시킨다.
이런 최후의 순간까지 와서도, 나는 내가 하려고 하는 행동에 100% 믿음을 갇지 못하는 건가.
K를, 조직을 의심하고 있는 건가.
마지막 순간, 제로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구나. 너는 네가 믿는 길을 가거라, 세븐.”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뜨거움이 가슴 안에서 폭발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울음 가득찬 괴성을 지르며 조준을 비튼다.
하늘에서 혜성 처럼 떨어진 미사일이 전송기지를 빗겨지나가 근처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다.
그와 동시에 전송기지에서 하늘을 향해 캡슐 하나가 발사된다.
나는 그 캡슐이 하늘 저편으로 사라질 때 까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Turn 7---[LP 7900/6600]
끝났다.
이길 수 없다.
이길 가능성 따윈 없다.
녀석은 필드의 몬스터가 6장. 패의 카드가 2장.
이쪽의 필드는 텅텅 빈데다 패에 카드가 단 1장. 그나마 드로우가 남아있긴 하지만 마함 카드는 발동 조차 못한다.
패배했다. 죽는다.
이곳까지 제로를 쫓아와서 제로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로 꼴사납게 이런 이름도 모르는 녀석에게.
“나나쨩씨...아직 포기하긴 이릅니다. 링크소환이 가능해진다면....”
지겹다, 또 그 소린가.
“말했잖아 무리인건 무리인 거야!”
더 이상 내게 누군가를 믿는 일 따위 불가능하다.
제발 날 그냥 놔둬...
하지만 메아는 포기하지 않고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코웃음이 나온다. 나를 믿는다고? 내가 누군줄 알고? 내가 몇명이나 인간을 죽였는지 알고 있나? 나는 내 동료들조차...
“아무것도...나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잘도 말하는군!”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듯 고함친다.
“아뇨,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의 가득찬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니까...”
“곤란해하는 저를 보고 한입밖에 먹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선뜻 건내주었습니다.”
아, 그거 별로 먹고 싶지도 않았고 맛도 없었으니까.
“분수에서 미행이 붙은 걸 보고 목숨까지 걸고 도와주었습니다.”
몇번이고 후회했다. 직업병 같은 것 때문에 반응적으로 구한 것이다.
“도망치고 나서도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건...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적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추적해왔기 때문이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음 분명 버리고 떠났다.
“그리고...누군가를 믿었던 것을...상처입힌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당신은...그렇게 깊은 상처를 입을 만큼 누군가를 믿는 것이...누군가의 믿음을 얻는 것이 가능한 상냥한 사람입니다”
“...”
“나나쨩씨...저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서로를 믿을 수 있을 거라, ‘링크’ 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싸우고 있어도, 사이버폴리스의 모두와 유토피아국의 모두가 한마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될리가 없다. 지금 그 둘은 전쟁의 직전이다.
한번 시작된 전화의 불씨는 ‘믿음’이나 ‘평화’ 같은 듣기만 좋은 말로는 멈추지 않는다.
‘피’가, ‘죽음’이, 막대한 ‘손해’가 필요한 것이다.
“지구와의 이동이 막힌 직후 발견된 [링크 소환], 저는 이 링크 소환이야 말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뚫을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이 [피라미드]의 모두의 마음이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되길. ‘링크’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무언가]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다.
나는 동료의, 친구의, 애인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도 바보같이 배신자를 믿은 한심한 인간이다.
그런 내가 어떻게, 죽어간 그들에게 무슨 낮짝으로, 다시 타인을 믿을 수 있겠는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 나는 더 이상 타인을 믿지 못”
하지만 내가 말을 끝내기 전에 그녀가 외쳤다.
“당신은 믿지 못하는 게 아니야. 자신이 상처 입을 까봐 두려운 것도 아니야."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두려울 뿐이야.”
그녀가 한걸음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상냥함은, 아직도 그대로 그곳에 있어.”
그녀가 한 손을 내 가슴에 얻는다.
"당신이 상처입힌 사람들도 분명...언젠가 당신 때문에 상처입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분명 당신의 이곳을 보고 믿어보기로 한 거야."
그녀의 마안이 흔들림 없이 나를 올려다본다.
“그들의 믿음을 전면 부정 할 셈이야? 당신을 믿은 건 그들의 실수였다고 당신 멋대로 정할 생각이야?"
한 없이 깨끗한 적안.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더 격렬한 빛을 내고 있었다.
"지금은 이런 한심한 겁쟁이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당신을 믿어온 사람들을, 지금 당신을 믿고 있는 이 나를 믿도록 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이런 표현은 써본적이 잘 없지만, 고결했다.
그렇다. 나는 표현을 잘못 쓰고 있었다.
나는 남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두려운 것이다. 남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을.
한기가 들 정도로 두려운 것이다.
누군가의 믿음을 받는 건 부담스러울 정도의, 걷기 힘들 정도의 의무가 따른다.
그 무게를 나는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는 것이다.
죽기 마지막 순간, K는, 식스는, 에이트는, 나인은, 일레븐은, 포는...나를 어떻게 생각 했을까.
내 멋대로 제로를 믿고 그들을 죽음에 몰아넣은 나
아까 악몽에서 본 것처럼 나를 믿은 걸 후회했을까, 저런 녀석 믿는게 아니었다, 똑같은 배신자라며 저주했을까.
안타깝게도 내게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다.
이대로 도망치는 건 그들의 나에게 걸었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믿음 마저 부정하는 꼴이다.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이미 나는 도망칠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있는 것이다.
눈을 감는 순간, 아까 꿈에서 보았던 인간 형태의 그림자들이 주위에 나타난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그림자에서 검은 먼지들이 조금씩 빠져나가 하얀 빛의 잔상만이 남는다.
"그게 네놈의 선택이냐, 세븐. 뭐, 어쩔 수 없는 녀석인 건 처음부터 알았지만 마지막까지 구제불능이군 하하."
나인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혼잣말을 하였다.
"..."
일레븐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아이스크림을 살짝 미소를 지으며 햝았다.
"럭키걸도 슬슬 여기까진가 보군요! 뭐, 그만큼 운을 썼으면 슬슬 다 할 때도 됐겠죠! 아니면 너무 치트가 아닙니까! 그럼 운빨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러 갈까요!"
에이트가 어설트라이플의 정비를 마치며 기세좋게 전투 채비를 마친다.
"세븐...나는 바보니까 어디로 향해야 좋은 건지 알지 못해. 하지만 네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그 길은 내가 만들어 줄 게."
식스가 특유의 둔한 미소와 함께 핸드건을 장전한다.
“하아...[다난], 나는 지휘관 실격일까나."
K가 한숨을 내쉬며 지휘실의 중앙에 위치한 지휘관용 의자에 쓰러지듯 앉는다.
"긍정."
AI인 [다난]이 조금의 용서 없이 말한다.
"읏! 그렇게 까지 말해지면 좀 열받는데! 하지만 나는...그의 선택을 믿어보고 싶어. 미안하지만 그를 지켜봐줄래?"
K가 긴급피난이 끝난 지휘실에 홀로 앉아 메인 모니터에 속속들이 늘어나는 적군의 표시를 보며 말했다.
"...긍정."
K는 만족스런 미소를 띄우며 AI의 살짝 망설임이 들어간 듯한 대답을 듣는다.
"세븐...우리는..."
그녀다. 이번에야 말로, 이번에야 말로 전한다.
"포...나는 네가... 너희들이 마지막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지 못해. 하지만 더 이상 망설이는 것만은 하지 않아. 언젠가...고개를 들고 너희들을 만나러 갈게."
포의 환영이 미소를 지으며 사라진다.
마음에 쌓여있던 얼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어쩌면 전부 내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망상, 자위, 현실도피 뭐라고 불려도 좋다.
천만분의 하나라도, 그들이 마지막까지 나를 믿어줬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멈춰있을 수는 없다.
그들의 믿음에 답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정신이 좀 들으셨나요, 겁쟁이씨."
눈을 떠보니 메아가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살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나는 터무니 없는 겁쟁이다. 그런 나로 괜찮겠어?"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였을 줄은....추가수당으로 아이스크림을 몇 개 더 받아야겠는데요.”
그녀도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아아, 아이스크림 따위 얼마든 사주마, 우선 저 트렌치코트를 작살내고 나서 말야!”
“어, 방금 그 말 기억할거니까요!”
순간 킬킬킬 거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린다.
“뭐, 어차피 다음 턴에 패배는 확정이니 남은 시간동안 마음껏 떠들라고. 네놈들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말야.
트렌치코트다.
메아와 시선을 주고 받고 외친다.
“드로!”
패가 1장 밖에 없던 상황에서 드로우한 카드는 [원 포 원].
당연히 마법 함정 카드는 녀석의 [헤라클레이노스] 때문에 발동이 막힐 것이다.
“저 녀석 방해인데, 치우도록 하죠.”
메아가 내 옆에 서서 [헤라클레이노스]를 가리킨다.
“나도 그 생각했어.”
단 2장 남은 패의 카드 한장을 쥐고 왼쪽 팔목에서 빛나고 있는 듀얼 디스크를 내리친다.
“패에서 [SPYRAL - 터프니스]를 일반소환!”
“[터프니스]의 효과 발동, 1턴에 1번 카드 종류 1개를 선언하고 상대 덱 맨 위 카드의 종류가 그 종류였을 경우, 상대필드의 카드를 1장 대상으로 하여 파괴할 수 있다!”
“뭣, [댄디] 말고도 다른 녀석이 있던 건가!”
트렌치코트가 당황해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드론]은 다 추락한 모양이군 하하, 네놈이 과연 맞출 수 있을까?”
그렇다. 녀석의 덱 위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틀리면 죽는다. 하지만...
“[터프니스]의 효과를 위해 [몬스터] 카드를 선언합니다.”
메아가 옆에서 외쳤다.
트렌치코트는 살짝 움찔하더니 덱위를 넘긴다.
[검투수 베스트로리]
뭐 당연한 것이다. 녀석의 지금까지의 덱의 구성을 생각해보면 바톤터치를 해야할 검투수의 종류가 많은데다가 필드에 나온 대다수의 [검투수]들은 묘지로 간 게 아니라 메인덱으로 돌아갔다. 즉 메인덱의 [몬스터]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운이 아니라 정보전의 승리다.
“[터프니스]의 효과로 [헤라클레이노스]를 파괴!”
마치 무적같아 보였던 거대한 [헤라클레이노스]가 [터프니스]가 던진 폭탄과 함께 사라진다.
[터프니스]는 내 동료이던 식스와 닮아있다. 항상 긍정적이고 살짝 헤벌레한 성격이라 도저히 요원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핀치에 있어서는 이 녀석보다 든든한 아군은 없겠지.
이걸로...
“마법 함정 카드가 사용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메아가 외쳤다.
하지만 패에는 [원 포 원]이 단 한장. [헤라클레이노스]를 쓰러뜨림으로 겨우 발동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발동 조건은 몬스터 1장을 버리는 것. 이대로는 발동 조건조차 맞추지 못한다.
“책임 진다고 했지? 보여달라고, 이 앞에... 믿음 앞에 열리는 길을...!”
“예!”
메아가 웃는다.
“묘지의 [SPYRAL 드론]의 효과 발동, 이 카드와 묘지의 SPYRAL 카드 1장을 제외하고 묘지의 [SPYRAL 댄디] 한장을 패로 넣습니다. 저는 묘지의 [드론]과 [라스트 리조트]를 제외하고 댄디를 선택합니다!”
메아의 외침과 함께 묘지에서 [댄디]가 우리들의 패에 들어온다.
이걸로 패는 두장이 되었다.
“패에서 [원 포 원]을 발동합니다! 패의 [댄디]를 버리고 덱에서 [SPYRAL - 지니어스]를 특수소환! [지니어스]의 효과 발동! 이 카드가 일반 소환 / 특수 소환에 성공했을 때 덱에서 [SPYRAL GEAR] 카드 1장을 패에 넣습니다! 저는 덱에서 [SPYRAL GEAR - 빅레드]를 선택!”
[지니어스]를 보면 우리 조직에 있던 Q가 생각난다. K의 남동생이기도 하자 무기와 테크 전문 담당이던 그 천재에게 신기술이 잔뜩 들어간 전용차를 준비해달라고 여러가지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했었지...K의 죽음을 듣고서도 그는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었다. 아마 일을 함으로써 슬픔을 잊기 위해서였을까.
“이걸로 필드에 몬스터가 2체 모였습니다!”
필드에 몬스터 2체...패에 방금 서치해온 [빅레드]가 1장. 상대의 필드에 비교해보면 절대적으로 이길 수 없는 불리한 상황이다.
보통의 나라면 절망해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르다. 내 옆에는 그녀가 있다.
메아를 보고 있으면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다. 서로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함께 외친다.
“링크 소환!”
“[SPYRAL - 더 더블헬릭스]!”
[터프니스]와 [지니어스]가 필드에 나타난 게이트에서 뛰어든 이후 사방이 빛에 휩싸인다.
눈을 뜨자 그곳엔 젊은 시절의 [댄디]와 그의 스승이 서로 등을 맞대고 서있었다.
서로의 신뢰가 마치 형상화 되는 것처럼 나선의 빛을 뿜어낸다.
나와 제로에게도 저런 시절이 분명 있었지.
서로를 믿는다는 행위는 저렇게 까지 강력한 힘을 내기도 하는 것이다.
“나나쨩씨! 여기부터입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그녀가 듀얼디스크를 차지 않은 왼손을 내민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 둘의 듀얼디스크가 반응한다.
엑스트라덱이...뜨겁다.
“[더 더블헬릭스]의 효과 발동! 카드의 종류를 선언하고 상대의 덱 맨 위의 카드가 그 종류였을 경우, 자신의 덱/묘지에서 [SPYRAL] 몬스터 1장을 선택해 패에 넣거나 링크 앞이 되는 자신 필드 위에 특수소환한다!”
[터프니스]가 뚫어놓은 그 길을, 지금 [더 더블헬릭스]가 돌파한다!
“몬스터 카드를 선언합니다!”
메아의 외침에 트렌치코트는 언짢은 표정을 하며 덱 위를 보였다. 당연 베스트로리다.
“나는 메인 덱에서 [SPYRAL - 그레이스]를 메인 몬스터존에 특수소환! [SPYRAL - 그레이스]의 효과 발동! 덱에서 [SPYRAL MISSION] 카드 한장을 패에 넣는다! 나는 [SPYRAL MISSION - 구출]을 패에 넣는다!”
나의 외침에 이어 메아가 외쳤다.
“그리고 필드의 [더 더블헬릭스]와 [그레이스]로 추가 링크 소환입니다! [더 더블헬릭스]를 링크 소환!”
좋아, 보통은 쓰기 힘들었던 그레이스의 효과를 이걸로 자연스레 쓸 수 있다.
“묘지로 간 [그레이스]의 효과 발동, 덱에서 [SPYRAL RESORT] 1장과 [그레이스] 이외의 [SPYRAL] 몬스터 1장을 패로 넣는다! 나는 [지니어스]를 선택!”
[SPYRAL RESORT]와 [지니어스]가 패에 들어온다.
K는 우리에게 [그레이스] 정도의 차분한 리더로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K의 유능함은 조직의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나 그녀는 항상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물론 그 부분을 매꾸기 위해 우리들이 조금씩 더 노력을 했지만 말이다. 언젠가 부대원중 누군가가 술자리에서 "어쩌면 그녀는 그걸 노리고 위태로운척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이야기를 던진 적이 있다. 순간의 정적,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질식사할 정도로 웃고 또 웃었다. 무슨 웃음가스 테러라도 당한 줄 알았달까. 아, 물론 문쪽에 서서 얼굴이 쌔빨게져있는 K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없으면 [SPYRAL]이 기능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조직도, K가 없으면 기능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SPYRAL RESORT]를 발동, 또다른 [지니어스]를 패에 추가!”
순식간에 패가 4장이 된다.
“묘지의 [지니어스]의 효과 발동! 패에 카드 1장을 묘지에 버리고 묘지에서 필드에 특수 소환! 나는 패의 [구출]을 버린다! 그리고 특수 소환된 [지니어스]의 효과로 덱에서 [SPYRAL GEAR - 라스트 리조트]를 패에 넣는다!”
“크하하 바보 녀석 이미 네놈의 수단은 다 읽었다! 내 필드의 카드는 전부 수비 표시,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데미지를 줄 수 없지. 하지만 네놈의 그 라스트 리조트, 그걸로 내게 직접 공격을 먹일 생각이겠지. 하지만 네놈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이 바로 전턴에 [검투수 티겔]로 내가 [검투수 녹시우스]를 서치했다는 사실을!!! 네놈이 뭘 하든 네놈은 이기지 못해!!!”
분하지만 녀석의 말 대로다. 용의주도한 녀석은 승리를 확신한 상황에서 조금의 기회도 내주지 않기 위해 몬스터를 전부 수비 표시로 돌렸다.
즉, 불리한 상황에서 이 턴 승부를 보려면 [라스트 리조트]를 이용한 직접공격 밖에 없다.
하지만 녀석의 패에는 전턴에 패에 넣은 [녹시우스]가 있다. 직접 공격을 해도 결국 허무하게 막히고 녹시우스의 효과로 베스트로리가 나와서 이쪽의 필드가 터질 뿐이다.
그렇게 다음턴에 넘어가게 된다면...필드 가득찬 녀석의 물량공세에 그대로 눌려 패배하겠지.
나는 도저히 이 이후의 답에 도달하지 못했다.
[녹시우스]를 돌파할 힘이 내겐 없다.
하지만...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은 둘이면 될때가 있다.
메아를 쳐다본다.
그녀는 웃고 있다.
마치 승리로의 길을 본 것처럼.
“나나쨩씨는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그 믿음에 보답하도록 하죠!”
그녀가 그렇게 선언하며 듀얼디스크에 명령한다.
“묘지의 [탈출]을 제외하고 [그레이스]를 특수 소환, [그레이스]의 효과로 덱에서 3번째 [탈출]을 서치!”
패가 5장이 된다.
그녀가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트렌치코트를 향해 외쳤다
“들리시나요, 이 멜로디가.”
“필드의 [그레이스]와 [지니어스]로 [트로이메어 고블린]을 링크 소환! “
[그레이스]와 [지니어스]가 필드 위에 등장한 게이트에 빨려들어간다.
보통이라면 환히 열려 있어야할 링크 게이트, 그 게이트가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쿵하고 닫혔다.
아니, 완전히 닫히지는 않은 건가. 닫히기 직전, 무언가가 양손을 끼워 넣어서 닫히는걸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손이 게이트를 잡고 힘으로 억지로 열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끼기기기기기익 끼기기기기기익. 게이트가 금속끼리 마찰하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리고 그 게이트의 안에서 마치 진흙과 같은 액체가 쏟아진다.
그 액체의 안에서 마치 태막을 찢고 태어나는 아기처럼 녹색 고블린 한마리가 일어선다.
그 고블린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골목에 기분나쁜 장송곡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밤에 들으면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은 음산한 음악이다.
“히...히익...저게 트로이메어... 하지만 그렇다 한들 이제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거냐! 내 패에 [녹시우스]가 있는 한 나는 무적이라고!!” “
자신의 운명의 전조를 느끼기라도 했는지 트렌치코트가 불안에 떤다.
하지만 그런 녀석을 무시하고 메아는 계속해서 듀얼디스크에 명령했다.
“[트로에미어 고블린]의 효과 발동을 위해 패의 [지니어스]를 묘지로 버립니다!”
“그리고 고블린의 효과로 묘지의 버려진 두번째 [지니어스]를 패의 세번째 [구출]을 버리고 특수소환! 덱에서 [SPYRAL GEAR - 드론]을 서치!”
“아까 [지니어스]를 버린 것으로 인해 [트로이메어 고블린]의 효과로 이 턴, 일반 소환이 추가됩니다! 패의 [드론]을 [고블린]의 링크 앞에 일반소환합니다!”
“마...마녀년, 무엇을 할 생각이냐!! 멋대로 그 힘의 사용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트렌치코트의 절박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메아는 계속해서 외쳤다.
“필드의 [트로이메어 고블린]을 소재로 [트로이메어 머메이드]를 링크 소환!
순간 진흙 비슷한 액체가 필드를 덮으며 인어와 같은 몬스터가 등장한다. 그 인어의 팔과 다리...라고 해야할 꼬리는 고정되어 있어 마치 꼭두각시 인형과 같았다. 얼굴이 가려져있기에 그녀가 고통에 가득찬 얼굴인지까진 알지 못하지만.
“[머메이드]의 효과 발동! 패의 3번째 [지니어스]를 버리고 덱에서 [디스트로이메어 이브리스]를 제 필드에 특수소환합니다!
기분 나쁜 음악이 마치 클라이막스에 돌입하듯 곡조가 빨라진다. 순간 마치 아이돌이라도 되는 마냥 필드의 중앙에 보라색 머리의 창백한 소녀가 올라선다, 악보로 짜여진 날개를 달고서.
슬프면서도 기쁜, 이해할 수 없는 표정 하고 있다.
본적 있다.
아까 본 악몽에서 만난 그녀다.
“[디스트로이메어 이브리스]와 [트로이메어 머메이드]를 소재로 [트로이메어 피닉스]를 링크소환!”
“그리고...묘지로 간 [디스트로이메어 이브리스]의 효과 발동...”
“히, 히익, 그만둬, 그만 두라고!!!”
트렌치코트는 이미 바닥에 나자빠져 뒷걸음질 치고 있다.
“묘지로간 [디스트로이메어 이브리스]를 상대 필드에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합니다!”
[헤라클레이노스]가 서있던 자리에 [이브리스]가 등장한다.
“[이브리스]가 몬스터 존에 존재하는 한, 이 카드의 컨트롤러는 링크 몬스터 밖에 특수 소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녹시우스] 역시 소환이 불가능하죠. 어차피 메인 몬스터 존이 꽉 차서 이 효과와는 별개로 소환이 불가능하지만요.”
메아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트렌치코트에게 말했다.
“그...그런...나의 [녹시우스]가...! 이건 꿈이야...악몽이 분명해!!!”
트렌치코트가 절규한다.
“나나쨩씨, 장애물은 전부 치워드렸습니다. 이제 당신이 내딛는 것 뿐입니다...자신이 믿은 길을 향해.”
그녀의 적안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아, 해주겠어.
“필드의 [드론]의 효과 발동, 네 필드에 있는 카드의 수 x 500 만큼 [더 더블헬릭스]의 공격력을 올린다. 네놈 필드에는 [이브리스]를 포함한 총 6체의 몬스터가 존재, 즉 6 x 500, 3000 올린다!”
[더 더블헬릭스] 의 공격력이 4900이 된다.
“그리고 묘지의 [구출]을 제외하고 [드론]을 묘지에서 특수소환! 또다시 효과를 발동! 공격력을 3000 올린다!”
[더 더블헬릭스] 의 공격력이 7900이 된다.
“그리고 패의 [SPYRAL GEAR - 빅레드]를 발동! 묘지에서 SPYRAL 몬스터 1체를 특수 소환한다. 나는 [드론]을 선택! 특수소환된 [드론]의 효과 발동! [더 더블헬릭스]의 공격력을 3000 올린다!
[더 더블헬릭스] 의 공격력이 10900이 된다.
“묘지의 [드론]과 [빅레드]를 제외하고 묘지에서 [댄디]를 패에 넣는다! 그리고 [댄디]를 버리고 묘지의 [지니어스]를 특수소환, 덱에서 [SPYRAL GEAR - 엑스트라 암즈]를 패에 넣는다!”
“그리고 [엑스트라 암즈]를 [더 더블헬릭스]에 장착!
[엑스트라 암즈]는 [댄디]의 스승의 무기이다. 그 무기를 장착한채 그의 스승과 최후의 대결을 위해 나선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느껴진다. 배신한 스승과 마주하러 가면서도 굳이 그의 스승의 무기를 사용했다는 건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비록 배신 당했더라도, 그가 스승에 품은 믿음을 소중히 했다는 뜻이다.
“자 마지막이다.”
[엑스트라 암즈]의 효과로 [더 더블헬릭스]의 공격력이 1000 올라 11900이 된다.
“패에서 최종병기, [SPYRAL GEAR - 라스트 리조트]를 [더 더블헬릭스]에 장착! 효과로 [SPYRAL RESORT]를 묘지로 보내고 발동, 이 턴 [더 더블헬릭스]는 직접 공격이 가능하게 된다!”
“자 가자, [댄디] 이걸로 마지막이다!”
내 외침과 동시에 [라스트 리조트]와 [엑스트라 암즈]를 장착한 [댄디]의 오른 손에서 사이버폴리스 전체를 밝힐 만큼 거대한 전기가 퍼진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마치 순간이동하듯 트렌치코트를 향해 날았다.
그의 필드에 있는 검투수들이 마치 반응도 하지 못할 속도로 트렌치코트에 접근해
그대로 녀석의 배에 주먹을 쑤셔넣었다.
[배틀 데미지 -11900 / 남은 라이프 6600 -> 0]
---
트렌치코트 녀석이 공중을 날아 골목의 저편에 거꾸로 떨어졌다.
녀석의 듀얼 파트너로 보이는 정장을 입은 부하가 당황한 듯 트렌치 코트에게 달려간다.
나는 순간 달려가 트렌치코트 녀석이 날아가며 떨어뜨린 권총을 집어들어 녀석을 노린다.
숨을 깊게 내쉬며 녀석의 머리를 조준한다.
“나나쨩씨!”
트리거를 당길려는 순간 메아가 나를 뒤에서 안는다.
덕분에 조준이 흔들려 총알이 도망치는 녀석들의 머리 위를 스친다.
“저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건 피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분수에서 봤을 때처럼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나는 권총의 안전장치를 내리고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가득찬 새벽의 골목길을 지켜본다.
그런게 가능할리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지금부터도 잔뜩 죽여야할 것이다.
이 외딴 세계에서 그녀를 지키며 제로와 결말을 지을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앞, 어떤일이 되더라도...다시는 겁쟁이가 되는 것만큼은 하지 않기로 맹새했다.
내 선택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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