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1월 9일 금요일 - 오전 11시 15분
“자, 그럼 4시까지 자유시간입니다. 늦어도 4시 10분까지는 여기에 다시 모여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선생님에게 바로 연락하고요!”
반 학생들은 신참 선생님의 과보호에 ‘저희들이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벌써 17살이라고요!’ 라고 반박 하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의 그룹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아니, 5시간이나 여기서 시간을 때우라는 거야?”
나는 선생님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옆에 있던 내 유일한 친구, 쿄우에게 불만을 토했다.
쿄유는 그런 나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구에서 받은 관광객을 위한 지도를 핸드폰의 솔리드 비전에서 열고 팬으로 열심히 마킹을 하고 있었다.
“너 진심이냐? 이 듀얼리스트의 성지에 와서 그게 할말이냐? 5시간이 아니라 10시간도 부족할 것 같다고!”
녀석이 팬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외쳤다.
“아아 그래, 나는 듀얼이라던가 그런거 별로 흥미 없으니까 말야...”
우리 반은 지금 듀얼리스트 킹덤에 와있다. 고등학교 단체 여행이었다.
지금은 2032년,
프로 듀얼이 세계 제1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은 시대.
대충 듣기로는 역대 인기 듀얼리스트들의 유품이나 역사 같은게 이곳 듀얼리스트 킹덤에 전시되어있는 모양이다.
뭐, 게임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과거의 E스포츠 전설인 Baker가 제1회 세계대회 우승 때 썼던 마우스 같은게 전시되어있는 느낌일까나.
쿄우 녀석은 프로 듀얼에 푹 빠져있으니까 저렇게 흥분하는 것도 이해는 갈지도. 알바를 해서라도 프로의 시합 티켓을 구해 보러가거나 팬싸인회등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모양이다 (특히 여성 프로의 경우).
“어이, 이스트, 뭘 멍하니 있는 거야, 얼른 움직이자고! 지도를 보면 이동 효율상 우선 싱크로의 전당부터 커버하고 이후에 융합의 전당, 그 이후에 엑시즈 전당일까나...솔직히 시대의 움직임상 융합의 전당부터 순서대로 커버하고 싶지만 여긴 시간과 타협해서...”
중얼거리는 녀석을 따라 나는 싱크로..? 의 전당이라는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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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 오후 1시 35분
“크으, 블랙호크 (쿄우의 설명으로는 예전 프로의 별명이라는 것 같다)가 BF로 세계대회를 우승할 때 경기장에 솔리드 비전으로 흩날린 검은 깃털의 원본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전시해둘 줄이야, 역시 듀얼리스트 킹덤은 최고라고! 나는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면 우승 직후 블랙호크의 검은 바이크에서 뿜어져나온 그 깃털은 대회장을 뒤덮었다고 해. 그나저나 싱크로의 전당의 입구에 전시되어있던 코즈믹 블레이저 드레곤과 슈팅퀘이사 드레곤의 1:1 모형 보고 울뻔했어 진짜! 너무 커서 둘다 카메라에 담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아아...만☆족해버릴 수 밖에 없잖아!”
쿄우 녀석은 아까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다.
듀얼이라던가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응 멋지네’ ‘흐응’ ‘아, 그래?’ 라며 대충 맞장구를 쳐주며 걸을 뿐이다.
그렇게 걷기를 약 2시간 우리는 겨우 오늘의 세번째 코스인 엑시즈의 전당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그곳엔 거대한 짐승의 동상들이 여러개 세워져있었다.
“으음...말...쥐...토끼...저건 소인 것 같고...양...뱀....”
그렇게 동상을 대충 둘러보다가 중앙에 위치한 마지막 12번째 동상을 본다.
“응? 마지막 저건 뭐지? 도마뱀?”
“바보야, 용! 주변의 동상들이 12간지인걸 생각하면 아마 십이수 드란시아를 본 딴 동상이네.”
쿄우가 흥분 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게 다 실존하는 동물이니까 저것도 그런줄 알았지. 혼자만 상상속 동물이잖아.”
쿄우는 ‘12간지가 그런거니까 뭐 고대 중국한테 따지던가’ 라고 짜증을 내며 전당의 중앙으로 발을 옮겼다.
“여긴 듀얼계의 전설중 하나인 쥬이치 료의 무덤이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전당이야.“
“흐응? 죽은 거야? 벌써?”
프로 듀얼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테니스 같은 것에 비해 프로 듀얼의 역사는 1990년대 중반. 즉 대부분의 초창기 프로 듀얼리스트들 역시 은퇴는 했기로서니 40대 50대가 일반적인 것이다.
쿄우는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쥬이치 료, 역대 최강의 듀얼리스트의 후보로 항상 거론되는 프로지. 진짜 들어본 적 없는 거야?”
녀석은 내 상식을 의심하는 눈초리로 말을 이었다.
“엑시즈 시대의 후반기인 2015년에 혜성처럼 등장해 프로 자격을 얻자마자 그 해, 순식간에 프로계에 존재하는 7개의 타이틀중 6개를 획득. 대부분 쥬이치 때문에 프로계가 망하는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으로 프로씬을 평정 해버렸어.”
흥분한 듯 그를 설명하던 쿄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하지만 6개의 타이틀을 보유한 그는 마지막 하나 남은 타이틀을 얻기 전에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지...항년 17세.”
“우리랑 같은 나이네?”
나랑 같은 나이대에 이런 동상이 세워질 정도의 업적을 세웠다는 생각에 잠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외질 적인 기분이 들었다.
“근데 그렇게 강해도 결국 타이틀은 하나 부족한거야?”
쿄우는 피식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응. 마지막 남은 타이틀, “용왕”은 결국 쥬이치도 얻지 못했지. 정확히는 7전4승제 타이틀전의 3승 3패의 상황에서 마지막 1전을 남기고 사고를 당했지만.”
“용왕?”
“아아 정말, 매년 뉴스에 이~따시만한 폰트로 나오니까 메인 타이틀 정도는 아는게 상식 아니냐?”
쿄우는 짜증을 버럭 내며 말을 계속했다.
“듀얼 프로계에서 최고로 권위와 전통이 있는 타이틀이라고. 이름대로 정말 듀얼의 신이 선택한 것 마냥 초대 타이틀 홀더부터 현 타이틀 홀더까지 전부 ‘드레곤 족’ 덱을 쓰고 있지. 초대 타이틀 홀더는 백룡덱을 사용했고 17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타이틀 홀더는 정룡을 사용하는...”
“근데 쥬이치인지 뭔지 이 사람은 12간지덱이라면서?”
내 옆에 세워진 양의 동상을 보며 문득 든 감상을 입밖에 내었다.
“12간지가 아니라 십이수! 뭐, 그렇지. 사실 생긴건 다 뱀이니 용이니 해도 전부 야수전사족이라고 저 카드들. 그래서 타이틀전이 치뤄지던 당시에도 전통성이 없는 야수전사족 듀얼리스트에게 “용왕”의 타이틀 만큼은 넘길 수 없다! 라는 보수팬들과 용왕의 “저주” 따위 깨버릴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드레곤족이 해먹냐! 암석족에게도 희망을...등등을 외치는 팬들도 있는 등 여러가지 대립이 있었다고 해.”
“뭐, 쥬이치 본인은 인터뷰에서 ‘드란시아가 용이니까...괜찮지 않을까요? 싸우지 말아주세요.’ 라며 살며시 웃었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근데 그런 어린 천재가 용왕전 마지막 듀얼을 남기고 사고로 죽었다...”
“그래서 생긴게 “용왕의 저주” 라는 거야. 드레곤족의 덱을 쓰지 않는 듀얼리스트가 힘으로 타이틀을 얻을려고 하면 듀얼의 신이 “목숨”을 빼앗아서까지 막아낸다...라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쥬이치의 전당을 돌아보자 살짝 한기가 돌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어, 분명 따낼 수 있었음에도 듀얼의 신에게 살해당한 한을 품은 쥬이치의 망령이 밤에 이 전당에서 떠돌아다닌다는 괴담 말야.”
순간 소름이 이미 돋아있음에도 다시 한 번 몸이 떨렸다.
“으으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하 싸나이가 되가지고 무섭냐? 작년 캠핑 때 담력시험에서 울었던거 나만 알고 있다고? 자, 다음으로 가자. 다음은 텔라나이트 사용자였던... ”
망령인가..그는 억울했을까? 신이 미웠을까?
약 20년 전에 나와 같은 나이였던 그 천재는 마지막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잠깐 생각에 빠져 시간을 잊었다.
“쿄우?”
주위를 둘러봐도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쿄우는 커녕 사람들도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나를 잊고 다음 칸에 열중해있겠지.
듀얼을 정말로 좋아하니까, 녀석.
그렇게 다음 칸으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 드란시아?인지 뭔지 하는 그 용의 동상 앞에 서있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명인’ 이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전통복을 입은 그는 동상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번 타이틀 방어전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전하러 왔네. 올해는 무서운 신인들이 많아 장담할 수 없지만...이게 내가 자네에게...”
순간 지나가던 초등학생 무리의 때에 말려들어 그 이후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겨우 겨우 초등학생 무리로부터 빠져나왔을 때 이미 그 중년은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누구였던 걸까...프로 듀얼리스트?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중년이 서있던 자리, 용의 동상의 앞으로 향했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용의 석상, 그 석상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전 방향에서 목소리가 울리듯이 들려왔다.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방향감각을 잃어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거기의 당신, 제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까?”
하지만 귀를 막았음에도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닥...닥쳐!!”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듀얼의 신이시여...감사합니다...저는 다시 한 번...”
블랙홀에 던져진 마냥 시야가 압축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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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 고스트 바둑왕 + 용왕이 하는 일!을 초!융!합!하면 어떨까 하는 정신나간 발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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