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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지아 (1)
- 프리지아 (2)
- 프리지아 (3)
- 프리지아 (4)
- 프리지아 (5)
- 프리지아 (6)
- 프리지아 (7)
- 에필로그 -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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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뜨고 두 손을 펴고 누워 있었습니다.
꽃처럼 몸 전체를 뒤로 젖힌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맑았으나, 그렇기에 구름 한 점 없는 공허한 하늘이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던 마루는 까닭없이 슬퍼졌습니다.
마음을 뒤흔드는 듯한 그 무엇인가가 자신에게서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과 어찌할 수 없는 마음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내고 싶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바라며 외쳐보려해도, 꽃인 마루에게는 목소리가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도움을 기다리는 것 뿐.
그리고 어느새 내리기 시작한 비에, 마루의 꽃잎은 한 장씩 떨어져 나갔습니다.
「실례합니다.」
루비쨩이 나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나간 걸까요.
귀를 울리는 청명한 목소리가, 턱을 양손에 기댄 상태로 생각에 잠겨 있던 마루를 깨웁니다.
정신을 차리자 고요한 흐름 사이로 누군가가 방에 들어오는 중이었습니다.
「아, 다이아씨.」
찻잔과 주전자가 올라간 쟁반을 들고 들어온 누군가는 다이아씨였습니다.
쟁반에 놓인 차솔을 보며 정식 다과회가 시작될 참인가 싶어, 허겁지겁 무릎을 꿇고 예의를 차려 인사했습니다.
「혼자서 심심하지는 않았나요.」
「...반성하고 있었어요.」
가볍게 마루의 안부를 묻는 다이아씨를 시작으로 짧은 대화가 오갑니다.
「반성...인가요?」
「제가 루비쨩에게 실수하는 바람에.」
「그랬나요.」
다이아씨는 별 것 아닌 말을 주고 받는다는 듯이 전혀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정성스럽게 차를 준비했습니다.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숟가락으로 차가루를 덜어내고 유화를 낼 솔을 고르게 펴낸 뒤, 전통그림이 그려진 잔에 적당히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팔이 길게 뻗은 다이아씨의 목과 하나되어 우아한 형태를 만들자, 흘러나오는 물줄기 또한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습니다.
찻잔에 고정된 다이아씨의 눈꺼풀은 살며시 올라오는 김을 내리덮고 있었습니다.
과정을 지켜보던 마루는 그 고고한 분위기에 압도됩니다.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는 표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마 없겠죠.
정갈한 하나하나의 동작에 결례가 되지 않도록, 찻잔 가득 차를 따라 마루의 앞에 내주는 다이아씨를 향해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허리를 폈습니다.
「정식 다회가 아니니 그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제 앞에서 힘들게 경어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쿠니키다양이 편하게 사투리로 해도 괜찮아요.」
「아, 네. 그럼 지도 편하게 하나마루라고 불러주셔도 괜찮아유.」
「후후. 그럼 그렇게 하죠, 하나마루양.」
굳어 있는 마루를 배려하여 먼저 다이아씨가 공기를 누그러뜨립니다.
겉을 예의로 포장한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다정함의 크기는 언니나 동생이나 똑같다고 마루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루비는 잠깐 다도 선생님께 가 있습니다.
저의 다도 수업이 마침 방금 끝나서,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루비를 인사하고 오라고 보냈죠.
루비와는 많이 이야기했나요?」
「루비쨩이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지 얘기해줬어유.」
「그랬군요.」
말을 마친 다이아씨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조용히 받침 위에 놓습니다.
마치 지나간 마루와 루비쨩의 시간을 음미해보는듯한 느린 동작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마루도 받은 차를 양손으로 들어올려 조금씩 목에 흘려 넣었습니다.
그러자 쌉사름한 다이아씨의 향이 마음 속에서 빠져나갔던 루비쨩의 향을 대신 메웠습니다.
무척 어른스러운 향이었습니다.
「..묻지않으셔유?」
「무엇을 말이죠?」
「루비쨩에게 무슨 실수를 했는지라던가.」
향기가 퍼져나가며 안정을 가져오자, 다이아씨가 들어왔을 때부터 루비의 일로 마음이 켕겼던 마루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천천히 찻솔을 정리하던 다이아씨는 언뜻 무뚝뚝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루를 흘긋 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뭐가 있었다한들, 그건 두 사람 사이의 일입니다. 오히려 제가 끼어들면 하나마루양이나 루비의 입장에서는 싫지 않을까요?
그래도 괜찮다면 듣겠지만.」
동생이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일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아무리 가까운 형제지간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다이아씨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답에, 외동인 마루는 다이아씨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루비도 분명 잘못을 했겠죠. 그 아이는 행동이 진중하지 못하고, 판단을 남에게 미루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정말 언니일까 싶을 정도로 루비쨩에 대한 평가도 거침없는 다이아씨.
마루가 알고 있는 루비쨩과는 많이 다른 객관적인 묘사를 끝으로, 다이아씨는 옆에 놓인 찻솔을 가지런히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해야할 말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된 건 제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죠.」
「다이아씨가유?」
방금 전에 냉랭한 말투로 방관의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다이아씨의 속에서는 동생의 책임을 역시 자신이 져야한다고 여기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생각과 조금 전의 차가운 입장은 굉장히 상반되는 것이지만, 마루는 그런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습니다.
문제와도 부딪혀가며 혼자서 살아나갈 힘을 길러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 동시에 혹여나 잘못되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책임감도 느끼는.
두 가지 모두 동생 루비쨩을 아끼는데에서 나타나는 언니 다이아씨의 일면이겠지요.
「우리 루비는 항상 뭐가 될까, 어딜 향해서 가야할까 하는 걸 잘 모르고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수업들 때문에 생각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다고 할까요.」
손을 얼굴로 가져간 다이아씨가 가볍게 이마를 짚습니다.
손 뒤로 숨은 얼굴은 곱지만 근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루비쨩의 일이라면 얼굴이 이렇게까지 변하는구나 하고 마루는 놀랐습니다.
「쿠로사와 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렸을 적부터 남들보다 습득해야 할 것들도 많았는데, 워낙 소심한 아이라 큰 불평 없었죠. 가끔 울어버리는 일이 있었긴 해도.」
과거로 돌아가는 다이아씨의 눈동자를 따라 마루도 어린 루비쨩을 그려봅니다.
머릿 속에 어른들 앞에서 최대한 의젓한 행동을 보이려 애쓰는 루비쨩이 나타났습니다.
「보이는 롤모델이라고는 저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저 언니가 하니까 따라했겠죠.
그러다보니 루비를 이끌어주어야 할 제가 어느새 루비의 앞을 가로막는 틀이 된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이아씨는 한숨을 쉬듯이 웃음을 짓습니다.
루비쨩의 그것과 꼭 같은 쓴웃음이라, 마루는 자매란 참 닮았구나 생각하면서, 쿠로사와 자매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어졌습니다.
「저기...다이아씨.」
「..네?」
「저, 제가 아는 루비쨩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에유.」
쿠로사와 루비.
긴장을 자주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많지만, 언니와 친구에게 고마움을 그 때 그 때 전할 줄 아는 마음씨가 무척이나 따뜻한 아이.
미움받는 걸 각오하고서라도 친구를 위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줄 아는 아이.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두려워 않고 나아가는 강단마저 갖게 된 아이.
그것이, 마루가 아는 그녀의 진정한 모습.
이처럼 마루가 본 최근의 루비쨩은 다이아씨가 보는 루비쨩과 또 달랐습니다.
선택을 앞두고 1년이나 고민하는 마루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루비쨩은 다이아씨에게 감사하고 있었어유. 틀은 커녕 본보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유.
그러니까 죄책감은 갖지 않으셔두 돼유.」
착실히 성장한 동생의 모습과 그런 동생이 언니에게 갖고 있는 마음의 일부라도 닿기를 기도하며, 마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죄책감을 갖는다면 오히려 다이아씨를 존경하는 루비쨩이 슬퍼질거구먼유. 루비쨩,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줄곧 말하고 있는 걸유.」
「..하나마루양.」
「다이아씨는 훌륭한 분이에유.」
마지막으로 루비쨩의 응원포즈까지 더해서 다이아씨를 위로하자, 비로소 다이아씨의 분위기가 살짝 느슨해집니다.
입가에 자연스레 머금은 다이아씨의 미소를 따라 마루의 마음도 조금 가뿐해졌습니다.
「고마워요.
하나마루양은 루비가 말한 대로의 사람이군요.」
약간 개운해진 느낌과 함께 나온 건 마루의 이름.
'말한 대로'라는 것이 좋은 쪽으로 예상을 벗어나지 않음을 나타내는 표현이었으면 하고 마루가 내심 바라고 있는 사이, 다이아씨가 덧붙입니다.
「하나마루양이 아까 루비에게 무슨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간 루비에게 들어왔던 하나마루 양을 믿고 있습니다.
루비도 잠깐의 실수로 하나마루 양에 대한 평가가 바뀔 아이가 아니니까 걱정 말고 다시 부딪혀 보도록 해요.」
'똑똑'
때마침 루비쨩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이아씨는 노크소리를 신호삼아, 사용했던 찻잔을 그림이 정확하게 앞면이 향하도록 돌려놓으며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아씨를 아직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 세심하면서도 기품 있는 행동은 다이아씨에게 대단히 어울렸습니다.
「저는 하나마루 양이 걸어가는 길이, 우리 루비가 가는 길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친구가 되었으면 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리를 마친 다이아씨가 '그럼'하고 몸을 일으킵니다.
마루도 서둘러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언젠가 또 하나마루양과 얘기할 시간이 나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루비를 잘 부탁합니다.」
유언처럼 느껴지는 말을 마치고 방문을 향하는 다이아씨는 무척이나 언니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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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랑 친구로서 입장은 다르지만 둘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ㅜ | 18.03.19 09:3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