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콧트 마을 뒤편의 언덕에서 서서히 아침해가 떠오를 무렵...
카츠와 테오, 그리고 촌장 할아버지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사냥꾼들의 의뢰건마다 지급되는 기본 장비와 물품을 채우기 위해서 이 곳에서 제법 떨어진 도시의 장터로 떠나는 것이었다.
비록 올 때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와야 하지만 카츠와 테오는 들떠 있었다.
웬지 마을 밖을 벗어나는 것만 해도 둘은 자유로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 길가의 이것 저것들을 괜히 살펴보고 만지는 동안 할아버지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가는 동안 내내 즐거웠다.
몇 개의 산을 넘고 한참을 걸었나 싶더니, 드디어 도시가 나타났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도시에 들르는 이방인들에게 팔기 위해 물건을 잔뜩 늘여다 놓은 장사꾼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 카츠... 테오... 절대 한눈 팔면 안된다. "
도시 입구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가 벌써부터 잔소리를 하실 모양이다.
" 이 곳에서는 잠깐이면 일행을 잃어버리기 쉬우니... 제발 딴짓 하지 말거라. "
" 네! 할아버지... "
" 걱정 마세요. 이렇게 다 컸는데, 미아가 될 일이 있겠어요? 몇 번 오고 나서 가는길도 저희가 다 알아요. "
" ............ "
자신있게 대답하는 카츠와 테오였지만, 할아버지는 그래도 조금은 불안했다.
" 그럼, 이렇게 하려무나. 혹시라도 안에서 누가 길을 잃어 버리면 마을 입구로 나와 있으면 될거다. "
" 네. 물어보기는 자신 있으니 절대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
둘의 막무가내인 자신감에 할아버지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앞서서 시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카츠와 테오는 할아버지를 잃어버릴세라 바짝 따라갔다.
처음 나타난 상가는 처음부터 끝이 보이지 않도록 늘어선 무기상가였다.
사방에는 험악해 보이는 사람들이 각각의 무기를 들고 주인과 흥정을 하는 듯 했고, 몇몇 군데에서는 주먹다짐도 일어나고 있었다.
상가 뒤쪽의 공터 비슷한 곳에서는 대장장이들의 망치 두들기는 소리... 각종 무기들을 수레에 실어 나르고 있는 초식동물을 비롯해서 이름 모를 몬스터의 가죽과 시퍼렇게 날이 선 발톱들이 무기로 가공되어지고 있었으며 수십 종류의 무기가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정말 사냥꾼을 꿈꾸는 두 형제에겐 장관이었다.
" 우와~ 형. 저기 저 빨간 것 좀 봐! "
" 어? 얀쿡머리가 그대로 망치로 만들어졌네!!! "
" 형! 형! 저 대검 좀 봐! 죽인다!!! 용 이빨이랑 발톱이 그대로 장식되어 있다니까? "
" 그것보단 저것 좀 봐! 저 칼,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펑펑 튀긴다!!! "
무기상가 앞에 들어가자 마자 어느새 할아버지는 딴전인듯 카츠와 테오는 완전히 혼을 뺏겨 버렸다.
가끔씩 할아버지에게 일감을 맡으러 오는 다른 사냥꾼들의 무기들도 많이 봐왔었지만, 여기는 말 그대로 별의별 무기들이 다 있는 신촌■ 였던 것이다.
카츠와 테오의 눈길을 돌리며 데려오랴 무기상인과 흥정하랴 한걸음 떼는게 힘들어진 할아버지.
' 허허... 이 놈들 시장 한 번씩 데려 올때마다 내가 10년은 더 늙어지는구나. '
무기시장에서 겨우 카츠와 테오 형제를 끌고 나온 할아버지... 이미 두 형제의 손에는 제법 쓸만해 보이는 칼과 대검자루가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몇 개의 상가를 더 지나고, 그 다음 할아버지가 들른 곳은 간판에 고양이 얼굴이 크고 매우 인상적이게 그려진 골동품 가게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카츠와 테오도 따라 들어갔다.
가게안의 계산대처럼 보이는 곳에는 안경 쓴 회색빛의 늙은 고양이 한마리가 장부를 쓰고 있었다.
" 오랜만일세, 메구르. "
" 냐옹~ "
" 이 친구... 간만에 보니 곧 털갈이 해야 할 듯 싶네. 허허허... "
" 냐아옹~ "
" 그나저나 저번에 부탁해 놓은 마을지역 지도는 다 완성이 됐는가? "
" 냐아아... 오오... 냐아옹. "
" 허허... 큰일일세. 아직 절반밖에 안됐다니... 곧 사냥 시즌이라 많이 필요할텐데... "
" 냐아... 냐아... 야옹. 야옹! 야아~~~ 옹. "
" 오... 정말인가...직접 가져다 준다면 나야 좋네만. 이거 미안해서... 아무튼 염치없지만, 부탁하네... "
" 냐아옹~ "
" 알겠네. 그럼, 바빠서 이만 가보겠네. 친구... 건강하게... 허허허 "
" 냐아.. 냐아옹... "
오랫만에 유쾌한 웃음을 짓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나온 두 사람은 뭔가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카츠가 테오를 불렀다.
" 야... 테오. "
" 왜, 형. "
" 아까 할아버지와 말한 그 고양이, 무슨 이야기 하는지 알겠냐? "
" 글쎄. 내가 듣기엔 다 똑같은 말로 들리던데... "
" 그렇지? "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할아버지를 쫓아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 그럼, 너희는 여기에서 기다리도록 해라. 이 할아버지는 잠깐 만나볼 사람이 있다. "
어느덧 점심때가 조금 지날 무렵... 할아버지는 카츠와 테오를 한 음식점 앞에 데리고 와서 말씀하셨다.
그 소리에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무거운듯 땀을 뻘뻘 흘리던 두 사람은 반가운 듯...
" 네! 할아버지... 그런데, 어디 가시게요? "
" 음... 오랜만에 옛 전우와 할 이야기가 있어 어디 좀 다녀와야 겠다. "
" 그럼, 마을엔 언제 돌아가죠? "
" 아직 해도 한참 남았으니 시간은 넉넉할게야. 짐이 생각보다 많으니 아무래도 메라르족 운반센터에 맡겨두고 홀가분하게 걸어가야 할거 같구나. "
" 그럼, 저희는 여기에서 그냥 밥만 먹고 기다리면 되나요? "
" 그래... 여기 주인과는 오랜 사이니 할아버지의 손자라 이야기 해두고 식사들 하고 기다리려무나. "
" 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
" 오냐... "
할아버지는 약속이 있으신 듯, 어디론가 가버리시고... 잠깐 기다리는 동안 메라르족의 고양이 일꾼들이 시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하나 둘 실고 마을로 떠나는 듯 했다.
할 일이 없어진 카츠와 테오...
"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할아버지 곧 오시겠지... "
" 응... 형. "
카츠와 테오는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끼니때는 아닌지라 식사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테이블엔 맥주잔이 가득 쌓여져 있었다.
여종업원 하나가 와서 주문을 받아가자마자 카츠는 의자에 몸을 늘이빼고 거의 누워 버렸다.
" 휴우... 힘들다... "
" 응... 형, 그런데... "
" 왜 그래? "
" 아무래도 아까 할아버지가 사주신 칼은 그냥 갈 때 들고가면서 만져볼 걸 그랬지? "
오는 내내 대검에 눈길을 빼앗기던 테오였다.
" 이 뜨거운 날 그거 들고 마을까지 걸어갈 생각은 해봤냐? "
" 아냐... 난 그거 들고 가다 쓰러져두 좋다구 생각했어. "
" 참게나... 그 대검은 네가 아니고 다른 사냥감을 쓰러 뜨려야지... "
" 오래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거라구. "
동생 테오의 조바심에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던 카츠...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 한 듯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음료수를 먹던 테오는 그런 형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
" 형... 뭘 그렇게 보고 있는데? "
" ............. "
아무말도 않고 한 곳을 빤히 쳐다보는 카츠... 그러한 형의 모습에 더욱 더 궁금해진 테오였다.
" 카츠형. "
" ... 응...?? "
"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냐구... "
테오의 물음에 카츠가 테오의 머리를 살짝 끌어당기며... 주점 구석에 있는 한 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 테오, 저기 저 여자애 보여? "
" 누구... 지금 물컵 내려놓은 아가씨? "
" 아니, 여종업원 말고, 그 뒤에 혼자 앉은 얼굴에 두건 쓴 아가씨 말야... "
테오와 장난치는것과 사냥밖에는 관심이 없을것 같던 카츠가 여자에 대해 처음으로 말을 하는 듯 했다.
형의 의외의 행동에 도대체 어떤 아가씨이길래... 라는 생각으로 관심있게 지켜보는 테오.
" 음... "
" 어떻게 생각하냐? "
" 글쎄... 갑옷을 입은 걸로 보아하니 주.1)메이드헌터 같은데... 왜... 형, 관심 있어? "
" 아냐... 그런 뜻이 아니라... 머리 색깔을 봐. "
" 머리색이 어땠는데? "
" 이 근처에서 금발은 거의 보기가 힘들거든... 아마 성안에서 지내는 사람이거나, 외국인 일거야. "
" 그럼, 우리의 은발은 어떻게 되는데? "
" 우리야 원래 이 지역 사람이 아닌건 세상이 다 알잖아. "
" 응... 그건 그렇지. "
낯선 외모의 여자애에게 꽤 관심이 가는 듯, 카츠는 테오에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비단 카츠 뿐만이 아니라 주점 안의 대부분 청년들이 그 이국적인 소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외모에서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서 뭔가 끌리는 듯한 매력이 있는 아가씨였다.
" 흠... 얼굴이 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
" 아무래도 형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봐. "
" 왜...? "
" 저기 저 녀석들... 아까부터 저 여자를 보고 쑥덕대더니 지금 한명이 걸어나오고 있잖아. "
사냥꾼 아니면 건달 패거리인 듯한 무리 중 한 명이 천천히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혼자인듯한 그 여자의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의자에 대뜸 앉으며 한 마디를 던지는 듯...
" 이봐, 아가씨... "
그 떠들썩 하던 주점안은 금새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과연 낯선 아가씨가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궁금한지 그 상황을 계속 보고 있었다. 카츠와 테오도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 날씨가 꽤 덮군 그래... "
" .................. "
그 아가씨는 대꾸도 하지 않고 두건에 쌓인 얼굴을 들지도 않은 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 어차피 편하게 쉬러 온 거 같은데, 답답해 보이니 그 갑옷이라도 좀 벗지? "
" ................. "
" 눈매를 보니 제법 귀여운 얼굴 같은데, 두건은 왜 그렇게 걸치고 계시나...? "
" ................ "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였다.
냉담한 반응에 먼저 접근한 그 사냥꾼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지...
" 이봐,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누굴 무시하는거야...? "
" ................ "
" 아... 이거 점점 더 열받게 만드는데? 어이~ 코르도. "
그 사내는 큰 소리로 일행 중의 한 명을 불렀다.
저쪽에선 벌써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자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중에 한 명이 부름에 대답을 해줬다.
" 이 아가씨한테 내가 가장 열받을 때가 언제인지 한 번 설명해 줘봐. "
" ............... "
동료인듯한 무리들 중 대답한 사람 한 명이 천천히 일어났다.
검은 안대를 착용한 애꾸였지만, 다부진 체격에 제법 무거워 보이는 대검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쿵....
그 아가씨의 옆에 대검을 놓으며 의자 하나를 요령껏 빼더니 한발을 턱 걸치고는 말하는 것이었다.
" 이봐... 아가씨. "
" .............. "
" 애써 심심해 보이길래 말을 걸어줬는데, 이딴식으로 성의를 모른체 하면 안되지... "
" ............. "
" 이래뵈도 우리도 꽤 괜찮은 남자들이라고. 단... 이렇게 무시 당할 때 빼고 말야. "
" ............. "
" 엥? 이거 벙어리인가? 아니면 너무 무서워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오나...? 이런 이런... 하하하하."
덩치 큰 그 사람은 먼저 온 사내와 한바탕 크게 웃어보이고는, 얼굴에 인상을 쓰며 말을 했다.
" 이런 곳에서 이왕 쉬려면 함께 노는게 더 즐겁운 법이라구... "
" ....^$% ... ..#$........... "
" 엥? 뭐라고 그랬어? "
" .... %@$#... @#$% "
" 무슨 말이야? 도대체 머라고 쫑알대는 거냐? "
전혀 미동도 하지 않던 그 아가씨가 갑자기 사내의 멱살을 잡고 턱 밑에 주.2)보우건 총구를 들이댔다.
" 여기 말로... 꺼져라는 뜻이다... "
" ... 켁... 콜록... 콜록... "
주점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덩치 큰 사내가 갑자기 작은 아가씨의 손에 멱살이 잡힌체 얼굴엔 총구를 겨냥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아니, 이게!!! "
먼저 왔던 사내가 칼을 빼들고 그 여자에게 칼을 겨누려는 순간.
" 움직이지마! "
날카로운 시선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제압한 그녀는 칼을 빼들려는 사내에게 말을 했다.
" 이 놈 머리에 난 바람구멍을 한 번 보고 싶나? "
" ................. "
칼을 빼든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멱살을 잡힌 체 얼굴에 총구를 겨냥당한 그 덩치 큰 사내는 머리를 오래 치켜들고 있었던 탓인지 침을 삼키지 못하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큭... 큭... "
그 아가씨는 사내가 계속 켁켁대자, 총구를 계속 턱에 겨눈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곤 오른쪽 눈에 있는 검은 안대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는 힘껏 뒤로 빼다가 그대로 놓아 버렸다.
따악~!
" 크악! 아이고!!! 내 눈이야!!! "
사내는 안대가 튕겨져버린 눈을 감싸쥐며 뒤로 나동그라지고 주점안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버렸다.
처음 시비를 걸었던 사람은 눈을 붙잡고 울부짖어대는 동료를 부축하며 두고보자란 말을 연신 내뱉으며 나가버리고 다른 동료인듯한 무리들도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버렸다.
주위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가져 온 음식을 조용히 먹는 그 아가씨를 보며 사람들은 대단한 여걸이 나타났다며 수근 거렸다. 그 모습에 넋을 잃은 듯 지켜보는 카츠와 테오...
음식을 다 먹었는지 두건을 다시 얼굴에 두르고 가져온 장비를 챙기는 영웅 아가씨.
음식값을 테이블에 놓고 벌떡 일어나 나가려던 차에 테오와 눈이 마주쳤다.
" ................ "
" ................ "
그 아가씨가 테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다 갑자기 피식~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영문을 몰라하는 카츠와 테오. 둘에게 가까이 다가온 그 아가씨가 갑자기 테오를 부르는 것이었다.
" 이봐. "
카츠는 놀랐다. 생전 처음보는 영웅 아가씨가 갑자기 다가와서 테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 ... 저... 말입니까...? "
물론 더 놀라보이는 표정을 짓는 테오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 그래... 거기 너. "
할 말을 잃은 듯한 테오에게 영웅아가씨가 한마디 했다.
" 고작 돼지새끼 한마리에 쩔쩔 맬 정도의 실력이라면 숲 근처는 얼씬도 하지마. "
한 마디를 톡 쏘고는 그대로 문 밖으로 걸어나가 버렸다.
영웅 아가씨의 황당한 말에 어이가 없어진 두 사람...
" 돼지 한마리...??? "
갑자기 테오가 뭔가 퍼뜩 생각이 난 듯 벌떡 일어서며 아가씨가 나간 문밖으로 뛰쳐 나갔다.
카츠와 테오, 그리고 촌장 할아버지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사냥꾼들의 의뢰건마다 지급되는 기본 장비와 물품을 채우기 위해서 이 곳에서 제법 떨어진 도시의 장터로 떠나는 것이었다.
비록 올 때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와야 하지만 카츠와 테오는 들떠 있었다.
웬지 마을 밖을 벗어나는 것만 해도 둘은 자유로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 길가의 이것 저것들을 괜히 살펴보고 만지는 동안 할아버지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가는 동안 내내 즐거웠다.
몇 개의 산을 넘고 한참을 걸었나 싶더니, 드디어 도시가 나타났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도시에 들르는 이방인들에게 팔기 위해 물건을 잔뜩 늘여다 놓은 장사꾼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 카츠... 테오... 절대 한눈 팔면 안된다. "
도시 입구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가 벌써부터 잔소리를 하실 모양이다.
" 이 곳에서는 잠깐이면 일행을 잃어버리기 쉬우니... 제발 딴짓 하지 말거라. "
" 네! 할아버지... "
" 걱정 마세요. 이렇게 다 컸는데, 미아가 될 일이 있겠어요? 몇 번 오고 나서 가는길도 저희가 다 알아요. "
" ............ "
자신있게 대답하는 카츠와 테오였지만, 할아버지는 그래도 조금은 불안했다.
" 그럼, 이렇게 하려무나. 혹시라도 안에서 누가 길을 잃어 버리면 마을 입구로 나와 있으면 될거다. "
" 네. 물어보기는 자신 있으니 절대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
둘의 막무가내인 자신감에 할아버지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앞서서 시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카츠와 테오는 할아버지를 잃어버릴세라 바짝 따라갔다.
처음 나타난 상가는 처음부터 끝이 보이지 않도록 늘어선 무기상가였다.
사방에는 험악해 보이는 사람들이 각각의 무기를 들고 주인과 흥정을 하는 듯 했고, 몇몇 군데에서는 주먹다짐도 일어나고 있었다.
상가 뒤쪽의 공터 비슷한 곳에서는 대장장이들의 망치 두들기는 소리... 각종 무기들을 수레에 실어 나르고 있는 초식동물을 비롯해서 이름 모를 몬스터의 가죽과 시퍼렇게 날이 선 발톱들이 무기로 가공되어지고 있었으며 수십 종류의 무기가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정말 사냥꾼을 꿈꾸는 두 형제에겐 장관이었다.
" 우와~ 형. 저기 저 빨간 것 좀 봐! "
" 어? 얀쿡머리가 그대로 망치로 만들어졌네!!! "
" 형! 형! 저 대검 좀 봐! 죽인다!!! 용 이빨이랑 발톱이 그대로 장식되어 있다니까? "
" 그것보단 저것 좀 봐! 저 칼,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펑펑 튀긴다!!! "
무기상가 앞에 들어가자 마자 어느새 할아버지는 딴전인듯 카츠와 테오는 완전히 혼을 뺏겨 버렸다.
가끔씩 할아버지에게 일감을 맡으러 오는 다른 사냥꾼들의 무기들도 많이 봐왔었지만, 여기는 말 그대로 별의별 무기들이 다 있는 신촌■ 였던 것이다.
카츠와 테오의 눈길을 돌리며 데려오랴 무기상인과 흥정하랴 한걸음 떼는게 힘들어진 할아버지.
' 허허... 이 놈들 시장 한 번씩 데려 올때마다 내가 10년은 더 늙어지는구나. '
무기시장에서 겨우 카츠와 테오 형제를 끌고 나온 할아버지... 이미 두 형제의 손에는 제법 쓸만해 보이는 칼과 대검자루가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몇 개의 상가를 더 지나고, 그 다음 할아버지가 들른 곳은 간판에 고양이 얼굴이 크고 매우 인상적이게 그려진 골동품 가게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카츠와 테오도 따라 들어갔다.
가게안의 계산대처럼 보이는 곳에는 안경 쓴 회색빛의 늙은 고양이 한마리가 장부를 쓰고 있었다.
" 오랜만일세, 메구르. "
" 냐옹~ "
" 이 친구... 간만에 보니 곧 털갈이 해야 할 듯 싶네. 허허허... "
" 냐아옹~ "
" 그나저나 저번에 부탁해 놓은 마을지역 지도는 다 완성이 됐는가? "
" 냐아아... 오오... 냐아옹. "
" 허허... 큰일일세. 아직 절반밖에 안됐다니... 곧 사냥 시즌이라 많이 필요할텐데... "
" 냐아... 냐아... 야옹. 야옹! 야아~~~ 옹. "
" 오... 정말인가...직접 가져다 준다면 나야 좋네만. 이거 미안해서... 아무튼 염치없지만, 부탁하네... "
" 냐아옹~ "
" 알겠네. 그럼, 바빠서 이만 가보겠네. 친구... 건강하게... 허허허 "
" 냐아.. 냐아옹... "
오랫만에 유쾌한 웃음을 짓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나온 두 사람은 뭔가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카츠가 테오를 불렀다.
" 야... 테오. "
" 왜, 형. "
" 아까 할아버지와 말한 그 고양이, 무슨 이야기 하는지 알겠냐? "
" 글쎄. 내가 듣기엔 다 똑같은 말로 들리던데... "
" 그렇지? "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할아버지를 쫓아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 그럼, 너희는 여기에서 기다리도록 해라. 이 할아버지는 잠깐 만나볼 사람이 있다. "
어느덧 점심때가 조금 지날 무렵... 할아버지는 카츠와 테오를 한 음식점 앞에 데리고 와서 말씀하셨다.
그 소리에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무거운듯 땀을 뻘뻘 흘리던 두 사람은 반가운 듯...
" 네! 할아버지... 그런데, 어디 가시게요? "
" 음... 오랜만에 옛 전우와 할 이야기가 있어 어디 좀 다녀와야 겠다. "
" 그럼, 마을엔 언제 돌아가죠? "
" 아직 해도 한참 남았으니 시간은 넉넉할게야. 짐이 생각보다 많으니 아무래도 메라르족 운반센터에 맡겨두고 홀가분하게 걸어가야 할거 같구나. "
" 그럼, 저희는 여기에서 그냥 밥만 먹고 기다리면 되나요? "
" 그래... 여기 주인과는 오랜 사이니 할아버지의 손자라 이야기 해두고 식사들 하고 기다리려무나. "
" 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
" 오냐... "
할아버지는 약속이 있으신 듯, 어디론가 가버리시고... 잠깐 기다리는 동안 메라르족의 고양이 일꾼들이 시장에서 사온 물건들을 하나 둘 실고 마을로 떠나는 듯 했다.
할 일이 없어진 카츠와 테오...
"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할아버지 곧 오시겠지... "
" 응... 형. "
카츠와 테오는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끼니때는 아닌지라 식사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의 테이블엔 맥주잔이 가득 쌓여져 있었다.
여종업원 하나가 와서 주문을 받아가자마자 카츠는 의자에 몸을 늘이빼고 거의 누워 버렸다.
" 휴우... 힘들다... "
" 응... 형, 그런데... "
" 왜 그래? "
" 아무래도 아까 할아버지가 사주신 칼은 그냥 갈 때 들고가면서 만져볼 걸 그랬지? "
오는 내내 대검에 눈길을 빼앗기던 테오였다.
" 이 뜨거운 날 그거 들고 마을까지 걸어갈 생각은 해봤냐? "
" 아냐... 난 그거 들고 가다 쓰러져두 좋다구 생각했어. "
" 참게나... 그 대검은 네가 아니고 다른 사냥감을 쓰러 뜨려야지... "
" 오래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거라구. "
동생 테오의 조바심에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던 카츠...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 한 듯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음료수를 먹던 테오는 그런 형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
" 형... 뭘 그렇게 보고 있는데? "
" ............. "
아무말도 않고 한 곳을 빤히 쳐다보는 카츠... 그러한 형의 모습에 더욱 더 궁금해진 테오였다.
" 카츠형. "
" ... 응...?? "
"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냐구... "
테오의 물음에 카츠가 테오의 머리를 살짝 끌어당기며... 주점 구석에 있는 한 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 테오, 저기 저 여자애 보여? "
" 누구... 지금 물컵 내려놓은 아가씨? "
" 아니, 여종업원 말고, 그 뒤에 혼자 앉은 얼굴에 두건 쓴 아가씨 말야... "
테오와 장난치는것과 사냥밖에는 관심이 없을것 같던 카츠가 여자에 대해 처음으로 말을 하는 듯 했다.
형의 의외의 행동에 도대체 어떤 아가씨이길래... 라는 생각으로 관심있게 지켜보는 테오.
" 음... "
" 어떻게 생각하냐? "
" 글쎄... 갑옷을 입은 걸로 보아하니 주.1)메이드헌터 같은데... 왜... 형, 관심 있어? "
" 아냐... 그런 뜻이 아니라... 머리 색깔을 봐. "
" 머리색이 어땠는데? "
" 이 근처에서 금발은 거의 보기가 힘들거든... 아마 성안에서 지내는 사람이거나, 외국인 일거야. "
" 그럼, 우리의 은발은 어떻게 되는데? "
" 우리야 원래 이 지역 사람이 아닌건 세상이 다 알잖아. "
" 응... 그건 그렇지. "
낯선 외모의 여자애에게 꽤 관심이 가는 듯, 카츠는 테오에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비단 카츠 뿐만이 아니라 주점 안의 대부분 청년들이 그 이국적인 소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외모에서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서 뭔가 끌리는 듯한 매력이 있는 아가씨였다.
" 흠... 얼굴이 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
" 아무래도 형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봐. "
" 왜...? "
" 저기 저 녀석들... 아까부터 저 여자를 보고 쑥덕대더니 지금 한명이 걸어나오고 있잖아. "
사냥꾼 아니면 건달 패거리인 듯한 무리 중 한 명이 천천히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혼자인듯한 그 여자의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의자에 대뜸 앉으며 한 마디를 던지는 듯...
" 이봐, 아가씨... "
그 떠들썩 하던 주점안은 금새 조용해지고 사람들은 과연 낯선 아가씨가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궁금한지 그 상황을 계속 보고 있었다. 카츠와 테오도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 날씨가 꽤 덮군 그래... "
" .................. "
그 아가씨는 대꾸도 하지 않고 두건에 쌓인 얼굴을 들지도 않은 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 어차피 편하게 쉬러 온 거 같은데, 답답해 보이니 그 갑옷이라도 좀 벗지? "
" ................. "
" 눈매를 보니 제법 귀여운 얼굴 같은데, 두건은 왜 그렇게 걸치고 계시나...? "
" ................ "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였다.
냉담한 반응에 먼저 접근한 그 사냥꾼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지...
" 이봐,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누굴 무시하는거야...? "
" ................ "
" 아... 이거 점점 더 열받게 만드는데? 어이~ 코르도. "
그 사내는 큰 소리로 일행 중의 한 명을 불렀다.
저쪽에선 벌써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자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중에 한 명이 부름에 대답을 해줬다.
" 이 아가씨한테 내가 가장 열받을 때가 언제인지 한 번 설명해 줘봐. "
" ............... "
동료인듯한 무리들 중 대답한 사람 한 명이 천천히 일어났다.
검은 안대를 착용한 애꾸였지만, 다부진 체격에 제법 무거워 보이는 대검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쿵....
그 아가씨의 옆에 대검을 놓으며 의자 하나를 요령껏 빼더니 한발을 턱 걸치고는 말하는 것이었다.
" 이봐... 아가씨. "
" .............. "
" 애써 심심해 보이길래 말을 걸어줬는데, 이딴식으로 성의를 모른체 하면 안되지... "
" ............. "
" 이래뵈도 우리도 꽤 괜찮은 남자들이라고. 단... 이렇게 무시 당할 때 빼고 말야. "
" ............. "
" 엥? 이거 벙어리인가? 아니면 너무 무서워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오나...? 이런 이런... 하하하하."
덩치 큰 그 사람은 먼저 온 사내와 한바탕 크게 웃어보이고는, 얼굴에 인상을 쓰며 말을 했다.
" 이런 곳에서 이왕 쉬려면 함께 노는게 더 즐겁운 법이라구... "
" ....^$% ... ..#$........... "
" 엥? 뭐라고 그랬어? "
" .... %@$#... @#$% "
" 무슨 말이야? 도대체 머라고 쫑알대는 거냐? "
전혀 미동도 하지 않던 그 아가씨가 갑자기 사내의 멱살을 잡고 턱 밑에 주.2)보우건 총구를 들이댔다.
" 여기 말로... 꺼져라는 뜻이다... "
" ... 켁... 콜록... 콜록... "
주점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덩치 큰 사내가 갑자기 작은 아가씨의 손에 멱살이 잡힌체 얼굴엔 총구를 겨냥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아니, 이게!!! "
먼저 왔던 사내가 칼을 빼들고 그 여자에게 칼을 겨누려는 순간.
" 움직이지마! "
날카로운 시선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제압한 그녀는 칼을 빼들려는 사내에게 말을 했다.
" 이 놈 머리에 난 바람구멍을 한 번 보고 싶나? "
" ................. "
칼을 빼든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멱살을 잡힌 체 얼굴에 총구를 겨냥당한 그 덩치 큰 사내는 머리를 오래 치켜들고 있었던 탓인지 침을 삼키지 못하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큭... 큭... "
그 아가씨는 사내가 계속 켁켁대자, 총구를 계속 턱에 겨눈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곤 오른쪽 눈에 있는 검은 안대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는 힘껏 뒤로 빼다가 그대로 놓아 버렸다.
따악~!
" 크악! 아이고!!! 내 눈이야!!! "
사내는 안대가 튕겨져버린 눈을 감싸쥐며 뒤로 나동그라지고 주점안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버렸다.
처음 시비를 걸었던 사람은 눈을 붙잡고 울부짖어대는 동료를 부축하며 두고보자란 말을 연신 내뱉으며 나가버리고 다른 동료인듯한 무리들도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버렸다.
주위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가져 온 음식을 조용히 먹는 그 아가씨를 보며 사람들은 대단한 여걸이 나타났다며 수근 거렸다. 그 모습에 넋을 잃은 듯 지켜보는 카츠와 테오...
음식을 다 먹었는지 두건을 다시 얼굴에 두르고 가져온 장비를 챙기는 영웅 아가씨.
음식값을 테이블에 놓고 벌떡 일어나 나가려던 차에 테오와 눈이 마주쳤다.
" ................ "
" ................ "
그 아가씨가 테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다 갑자기 피식~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영문을 몰라하는 카츠와 테오. 둘에게 가까이 다가온 그 아가씨가 갑자기 테오를 부르는 것이었다.
" 이봐. "
카츠는 놀랐다. 생전 처음보는 영웅 아가씨가 갑자기 다가와서 테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 ... 저... 말입니까...? "
물론 더 놀라보이는 표정을 짓는 테오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 그래... 거기 너. "
할 말을 잃은 듯한 테오에게 영웅아가씨가 한마디 했다.
" 고작 돼지새끼 한마리에 쩔쩔 맬 정도의 실력이라면 숲 근처는 얼씬도 하지마. "
한 마디를 톡 쏘고는 그대로 문 밖으로 걸어나가 버렸다.
영웅 아가씨의 황당한 말에 어이가 없어진 두 사람...
" 돼지 한마리...??? "
갑자기 테오가 뭔가 퍼뜩 생각이 난 듯 벌떡 일어서며 아가씨가 나간 문밖으로 뛰쳐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