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눈비시게 내리쬐기 시작한 어느 화창한 날.
풀잎의 이슬도 남아있지 않는 파란 잔디의 언덕에는 약간의 봄바람이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 날씨 좋다~! "
" 진짜 간만에 마을 밖으로 나오니 숨이 탁 트이는거 같지? 형 "
정말 오랜만에 코콧트 마을을 벗어나는 것 같았다.
그 동안 할아버지의 손자를 사랑하는 계략? 때문에 마을에서만 묶여 생활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이젠 영영 마을에 갇히나 싶었을 때, 새로 사냥꾼모임에 가입하게 된 반가운 손님 바티스 덕분에 이렇게 인솔가이드 겸 해서 밖으로 나돌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 입구에서 가까운 언덕과 정글쪽에서 버섯만 몇개 채집하고 시간안에 돌아와야 한다. '
... 라는 할아버지의 명령이 있었지만, 이미 카츠와 테오의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혹시라도 비룡 둥지에 알이라도 훔치러 갈까봐, 불안하셨는지 갑옷과 무기는 일체 허락을 하지 않으셔서 맨몸으로 나오긴 했지만 덕분에 마을밖의 공기를 마시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앞에선 뭐가 신이났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테오... 뒤에선 카츠가 바티스와 천천히 걸어다니며 코콧트 마을과 기타 사냥꾼의 정보에 대해 바티스와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 일단 우리가 아까 빠져나올 때 있던 입구의 막사가 바로 사냥꾼들의 지정 캠프야. "
" 음... 여관 아저씨에게 들었네. 일단 지급품 같은 경우엔 마을에서 가져오는게 아니고, 캠프까지 직접 날라다 준다지? "
" 그렇지. 막상 사냥에 들어갈 때 아무래도 최대한의 장비나 무기를 챙겨갈 수 없으니, 그때 그때 필요한 물품을 현지조달해 주거든. "
" 그렇다면, 가져다 준 물품에 대한 지불은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
" 아냐... 그냥 사냥작업에 무상으로 제공되는 지급품일 뿐이라 어차피 일이 처리되고 남는 물품은 그대로 반환하면 되거든. "
" 음... 그렇군. 무상이라... 알겠네. "
" 하하하. 공짜 되게 좋아하나 보네? 덩치는 산만한데... "
" 아닐세. 받는 물품에 대해 정당한 지불이 없다는게 조금 의아해서 말이지. "
둘은 계속 걸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는 바티스를 보며 마음이 흐믓해지는 카츠... 자신도 이제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구나... 라는 자부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첫 제자?이니 한 번 열심히 가르쳐 봐야지. 덩치도 좋고 성격도 시원하고 마음에 드는 친구인걸...?
단지...
' 저 애늙은이 사투리는 어떻게 해야겠군... 자꾸 부담가네...'
언덕을 지나 드디어 고갯길로 접어들고 멀리 정글로 들어가는 숲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 카츠. 나도 하나 묻고 싶은게 있네만... "
" 응. 물어봐... "
" 만약 사냥꾼이 되서 일을 하다가 동료가 없는 상태에서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 땐 어떻게 되는 거지? "
" 응... 그냥 죽어... "
" ............... "
" 하하하, 사실 그냥 죽는다는 건 옛날 이야기고. 요즘은 위험에 대비한 안전요소가 다 있어. "
" ... 음... 좀 더 설명을 부탁하네. "
" 쉽게 이야기 하자면 일종의 보험 같은거지. 혹시 데인져캣 이란 조직에 대해서 들어봤어? "
" 금시초문일세만... "
" 음... 일단, 그 조직원의 구성은 사람이 아니고... 우리 사람들과 굉장히 친화력이 있는 영리한 고양이 조직이라고 들었어. "
" 고양이...? "
" 시내 번화가에서 살기도 하는데... 코콧트 근처에서 사냥이나 약초수집 같은 걸 하다보면 종종 일행을 만나기도 하지. 그런데, 먼저 아는체 할 필요 없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일을 하니까. "
바티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미르의 시골에서 벗어나니 신기한것도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그 고양이 조직이 대체 뭘 어떻게 하는건가...? "
" 응... 그냥 임무 수행중에 위험에 처하게 되거나 죽지는 않고 의식을 잃을 정도가 되면, 데인져캣 조직의 용병부대들이 괴물이나 적들에게서 우리를 구해주는 거지. 안전하게 사냥꾼의 캠프지역까지 데려다 주고 말야. "
" 그렇다면 그들은 매우 용감하고 훌륭한 고양이들이 아닌가... "
" 뭐, 꼭 그렇게 감동받으며 생각할 것까진 없어... "
" ...? ... "
" 일단 공짜가 아니거든. 한 번 구해줄 때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해당보상금의 1/3 이상을 그들에게 지불해야 해. "
" 그렇군... "
" 어차피 상관없어. 그들도 목숨을 걸고 우리 사냥꾼을 구해주니 그만한 값어치는 있다고 생각해. "
" 응... 알겠네. "
카츠에게 사냥꾼의 생활과 기타 정보에 대해 여러가지를 듣게 된 바티스.
나름대로 머리속에서 정리하려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카츠가 낮은 말투로 바티스를 불렀다.
" 바티스... "
" 음... 왜 그러는가... "
" 사냥꾼이란 아주 전설적인 인물이라도 결코 혼자 해결 할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 "
" 그렇겠지... "
" 동료의 힘이나 친구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지... "
" 맞는 말이네... "
" 우리와 이제 친구가 된 이상... 그 애늙은이 같은 말투를 고쳐야 할거야. "
" 음... 알았네. "
" ............. "
" ..... 알았어. 서서히 적응해 보도록 할게. "
" 좋아! "
둘은 천천히 걸어가며 숲속 입구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테오는 벌써 저 멀리에서 부지런히 사냥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 흠... 그런데, 테오는 아까부터 뭘 자꾸 캐는거 같은데? "
" 응? 아... 저거? 약초를 이용해서 치료제를 만들 때 쓰려고 버섯을 캐는 중이야. "
" 아하... 저거 돼지들이 꽤 좋아하는 거잖아. "
" 그렇지. 보통 버섯은 일정한 곳에서 자라는데, 못 찾겠으면 돼지들이 냄새를 맡아서 찾는데를 뒤지면 돼.
" 흠... 그래? 그럼, 저기에도 버섯이 있는 모양이군. 돼지 한마리가 서 있는데? "
" 응... 그렇지... 어??? "
" 제길, 형! 뛰자! "
바티스의 손을 홱 낚아채며 카츠와 테오는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고 같이 뛰어오던 바티스가 물어보았다.
" 뭐, 뭐야... 돼지 한마리 보고 갑자기 왜 도망가는데? "
" 저건 좀 골치 아파. "
" 버섯 좋아하는 돼지 정도야 흔하잖아. 우리 마을 목장 주변에서도 많이 봤었는데. "
" 그건 민둥머리 (주.1) 모스 이야기겠지. 코콧트 마을 근처엔 (주.2) 불팡고가 더 많아. "
" 불팡고는 또 뭐야? "
" 암튼, 뛰어! 저기 높은 벼랑턱으로 일단 올라가자. "
열심히 뛰어가는 카츠와 테오를 쫓아 달리는 바티스. 뒤에서 땅을 진동하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어? 저 돼지가 막 쫓아오는데? "
" 제대로 된 멧돼지야. 뿔에 받히면 좀 아플거다. "
먼저 벼랑에 도착한 테오가 손을 모아 바치고 있었고, 능숙한 솜씨로 카츠가 테오의 손을 집고 위로 뛰어 올랐다. 올라간 카츠는 다시 테오의 손을 붙잡아 끌어올렸지만, 덩치가 커서 조금 느린 바티스는 아직도 뛰어오는 중이었다.
" 뭐해! 바티스. 더 빨리 뛰어!! "
" 헉... 헉... 난 달리기는 잘 못해! "
" 아... 미치겠네. 빨리와서 손을 잡아! "
언덕위에서 손을 뻗치고 기다리던 카츠와 테오... 부지런히 뛰어오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바티스가 불팡고에게 당할 듯 싶었다.
" 그렇지! 바티스! 오다가 돼지가 가까이 붙으면 옆으로 굴러! "
" 헉... 헉... 뭐??? "
" 저녀석들은 거의 일직선밖에 돌진을 못해! 너무 떨어져 있으면 안되지만, 가까이 붙었을 때 옆으로 구르라구! "
" 헉... 헉... 그냥 굴러서... 헉... 헉... 피하면 되는거냐? "
" 그렇지! 확실히 옆으로 구르면 돼! "
" 알았다. 그렇게 해보마! "
" 앗, 잠깐!!! 안돼! 바티스! "
무슨 일인지 테오가 급하게 바티스를 말렸지만, 바티스는 이미 불팡고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굴렀다.
불팡고는 아슬아슬하게 바티스를 비켜 지나가고, 옆으로 구르던 바티스는 일어나서 다시 카츠와 테오에게 뛰어오려던 순간...
'퍽~ '
" 크헉...! "
영문도 모르고 바티스는 등과 허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 옆으로 굴러버렸다.
두 마리였다.
한 마리의 돌진을 피하자마자 멀리서 돌아오던 다른 불팡고에게 등 뒤를 기습 당했던 것이다.
불팡고의 돌진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 한참을 구르던 바티스는 의식을 잃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멀리에서 멈춰있던 첫번째 불팡고는 다시 거친 숨을 내쉬며 앞발을 땅에 긁어대고 쓰러진 바티스에게 돌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 안돼겠다. 테오. 가자! "
" 응! 카츠 형! "
바티스가 위험한 걸 깨달았는지 카츠와 테오는 언덕에서 내려와 불팡고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 한마리는 내가 벼랑 끝으로 유인할테니 테오 너는 입구쪽으로 나가면서 끌고 가. "
" 알았어 형! "
카츠와 테오는 두마리의 불팡고를 향해 달리며 주워온 자갈을 각각 던지기 시작했다.
' 딱~. 딱~ '
자갈은 정확하게 불팡고의 머리에 한마리씩 맞았고 카츠와 테오는 소리를 질렀다.
" 야! 이 멍청한 돼지야! 이쪽이다! "
쓰러져 있는 바티스를 향해 돌진하려던 불팡고는 갑자기 날아온 자갈을 맞고 거친숨을 내쉬며 천천히 두 형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됐다. 각각 한마리씩 맡자. "
" 카츠형도 조심해! "
" 빨리 저기로 뛰어! "
두 마리의 불팡고는 각각 카츠와 테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흥분한 상태에서 도발을 한 형제에게 불팡고는 대단히 화가 났는지 아까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 아, 제길... 무기를 가져오는 건데. '
카츠는 불팡고를 피해 달리면서 테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오 역시 덩치가 커서 느리긴 했지만,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도망치고 있었다.
' 이거 시간 끌면 힘들겠는데... 언덕은 너무 멀고... '
쫓아오는 불팡고를 보면서 도망가는 카츠... 갑자기 앞에서 바티스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 카츠! 엎드려!!! "
무의식중에 바티스의 말을 듣고 앞으로 구르는 카츠.
굴러 넘어진 카츠에게 불팡고가 돌진하며 뿔로 받으려는 순간! 카츠의 몸 위로 휘둘러진 바티스의 거대한 해머가 정통으로 불팡고의 이마를 후려쳐 버렸다.
' 퍼벅~!!! '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통으로 내갈겨진 해머의 위력에 두꺼운 불팡고의 이마뼈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는지 머리쪽은 이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저쪽으로 굴러떨어져 버린 것이다.
' .................. '
해머의 위력에 잠시 말문을 열지 못한 카츠. 어느새 의식을 차렸는지 바티스는 해머자루를 쥐고 땅에 내려 놓은체 허리에 손을 대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 크... 이거 쉽게 낫지는 않을거 같은데... 나무도 별로 없는 정글에 이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
" 바티스, 괜찮아...? "
" 응... 그럭저럭... 아차! 테오는? "
" 참!!! "
카츠와 바티스는 테오를 찾기 시작했다. 나무 정글 저쪽편에서 아직도 불팡고를 떨쳐버리지 못한 테오는 너무나 숨이 차다는 얼굴로 계속 도망다니고 있었다.
" 테오! 빨리 저기에 있는 벼랑으로 올라가! "
" ... 헉... 헉... 혀... 혀엉... "
테오는 이미 말할 기운도 없는듯한 거친 숨소리로 겨우 도망만 다니고 있었다.
" 차라리 이쪽으로 뛰어와. 우리가 곧 갈게! "
" 헉... 헉... 거...거...기까지... 도저히... 헉... 헉... "
" 빨리 앞에있는 언덕까지라도 달려! 지금 간다구! "
너무 오래 뛰며 도망친 탓인지 이미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앞에 있는 작은 언덕이 가물거릴 지경으로 지쳐 있었지만, 오로지 피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벼랑턱으로 끝까지 뛰어갔다. 이제 뛰어 올라갈 기회였는데, 벼랑으로 뛴 순간...
' 너무 높다... '
퍽............
테오는 끝내 벼랑으로 오르지 못해 벽에 부딪혀 쓰러지고 불팡고는 계속 돌진을 하며 테오를 들이 받으려 달려오고 있었다.
" 테오!!! "
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멀리 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서는 불팡고의 커다란 얼굴이 실루엣 처럼 다가오며 이젠 끝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어딘가에서 들리는 한 발의 총성...
' 타앙~ '
가물거리는 시선앞에는 쓰러진 불팡고가 앞으로 나동그라지며 천천히 이쪽으로 구르고 있었다.
' 뭐지... '
'꽤에에엑~~~ '
어디서인지 모르게 들렸던 총성과 함께 쓰러진 불팡고는 괴로운듯 제자리에서 구르며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직까지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 일어나지 못한 테오... 하지만, 불팡고는 다시 정신을 추스렸는지 머리를 털며 일어나 돌진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수풀속에서 튀어나온 바티스가 해머로 불팡고를 날려 버렸다.
' 퍼억~!!! '
이번에도 여지없이 일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불팡고는 저쪽 수풀로 날아가 버렸다.
" 헉... 헉... 괜찮아? "
얼마나 빨리 뛰어왔는지 바티스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 뭐... 뭐야. 그렇게 나보다 잘 뛰면서 아깐 왜 그리 쳐졌어? "
이제서야 수풀속에서 나온듯 카츠가 바티스에게 물었다.
" 헉... 헉... 몰라... 난 원래 남의 일엔 참견을 잘하는 체질이라... "
테오는 겨우 몸을 추스리고 일어났다.
" 고맙다. 바티스... 덕분에 무사한 거 같다. "
" 헉... 헉... 고맙긴... 오히려 내가 할 소리다. "
" 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두지. 동생을 구해줘서... "
" 헉... 헉... 하하하... "
느닷없는 불팡고의 기습 덕분에 한참을 뛰어서인지 세 명 모두 지쳐 있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가슴 속에는 뜨거운 의리감 같은 확신이 생겨났다. 동료애란 가장 위급한 순간에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를 알게 되면 생겨난다고 했던가.
고맙다는 인사도 어색할 것 같은 분위기에 멋적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카츠.
" 이거... 흔적도 안 남아서 제대로 된 전리품도 없겠는데? "
" 그러게... 사냥꾼이 되도 보상품 빼고 제대로 남는게 있을라나 모르겠네. "
" 바티스, 이 기회에 나와 같은 대검을 써보는게 어때? 그 체격이라면 훌륭히 다룰 수 있을거 같은데..."
잘라졌다는 것보단 거의 박살났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불팡고의 시체를 보며 각자 한마디씩 하다가 테오의 말을 듣고 바티스는 자신의 해머를 보았다.
어렸을 적 부터 집안 일손을 도울 때 공룡의 몸에 칼로 너무 많은 흠집을 내버리면 상품성이 떨어지고 가장 고통없이 빠르게 보내 줄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초식공룡의 생고기를 잡기 위해 손에 많이 익혀둔 생활 도구이자 무기였던 것이다. 이제 일류 사냥꾼이 되려는 마당에 이런 해머가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장 위급한 순간에 필요한 무기는 역시 자신에게 익숙한 무기가 최고란 생각이 들었다.
" 아니야... 그래도 역시 나에겐 이 해머가 가장 익숙하고 어울릴 거 같아. "
씨익~ 웃으며 해머를 어깨에 걸치는 바티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며 테오도 두말은 하지 않았다.
정글을 빠져나와 천천히 언덕을 빠져나오는 동안 세명은 유쾌한 기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만, 테오의 마음에 약간 걸리는 듯한 생각 하나는...
' 아까 들렸던 총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
확실한 마무리는 바티스가 지었지만, 가장 위험한 순간에 불팡고에게 충격을 준 것 같은 그 총소리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테오였다.
풀잎의 이슬도 남아있지 않는 파란 잔디의 언덕에는 약간의 봄바람이 시원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 날씨 좋다~! "
" 진짜 간만에 마을 밖으로 나오니 숨이 탁 트이는거 같지? 형 "
정말 오랜만에 코콧트 마을을 벗어나는 것 같았다.
그 동안 할아버지의 손자를 사랑하는 계략? 때문에 마을에서만 묶여 생활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이젠 영영 마을에 갇히나 싶었을 때, 새로 사냥꾼모임에 가입하게 된 반가운 손님 바티스 덕분에 이렇게 인솔가이드 겸 해서 밖으로 나돌아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 입구에서 가까운 언덕과 정글쪽에서 버섯만 몇개 채집하고 시간안에 돌아와야 한다. '
... 라는 할아버지의 명령이 있었지만, 이미 카츠와 테오의 기억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혹시라도 비룡 둥지에 알이라도 훔치러 갈까봐, 불안하셨는지 갑옷과 무기는 일체 허락을 하지 않으셔서 맨몸으로 나오긴 했지만 덕분에 마을밖의 공기를 마시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앞에선 뭐가 신이났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테오... 뒤에선 카츠가 바티스와 천천히 걸어다니며 코콧트 마을과 기타 사냥꾼의 정보에 대해 바티스와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었다.
" 일단 우리가 아까 빠져나올 때 있던 입구의 막사가 바로 사냥꾼들의 지정 캠프야. "
" 음... 여관 아저씨에게 들었네. 일단 지급품 같은 경우엔 마을에서 가져오는게 아니고, 캠프까지 직접 날라다 준다지? "
" 그렇지. 막상 사냥에 들어갈 때 아무래도 최대한의 장비나 무기를 챙겨갈 수 없으니, 그때 그때 필요한 물품을 현지조달해 주거든. "
" 그렇다면, 가져다 준 물품에 대한 지불은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
" 아냐... 그냥 사냥작업에 무상으로 제공되는 지급품일 뿐이라 어차피 일이 처리되고 남는 물품은 그대로 반환하면 되거든. "
" 음... 그렇군. 무상이라... 알겠네. "
" 하하하. 공짜 되게 좋아하나 보네? 덩치는 산만한데... "
" 아닐세. 받는 물품에 대해 정당한 지불이 없다는게 조금 의아해서 말이지. "
둘은 계속 걸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는 바티스를 보며 마음이 흐믓해지는 카츠... 자신도 이제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구나... 라는 자부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첫 제자?이니 한 번 열심히 가르쳐 봐야지. 덩치도 좋고 성격도 시원하고 마음에 드는 친구인걸...?
단지...
' 저 애늙은이 사투리는 어떻게 해야겠군... 자꾸 부담가네...'
언덕을 지나 드디어 고갯길로 접어들고 멀리 정글로 들어가는 숲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 카츠. 나도 하나 묻고 싶은게 있네만... "
" 응. 물어봐... "
" 만약 사냥꾼이 되서 일을 하다가 동료가 없는 상태에서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 땐 어떻게 되는 거지? "
" 응... 그냥 죽어... "
" ............... "
" 하하하, 사실 그냥 죽는다는 건 옛날 이야기고. 요즘은 위험에 대비한 안전요소가 다 있어. "
" ... 음... 좀 더 설명을 부탁하네. "
" 쉽게 이야기 하자면 일종의 보험 같은거지. 혹시 데인져캣 이란 조직에 대해서 들어봤어? "
" 금시초문일세만... "
" 음... 일단, 그 조직원의 구성은 사람이 아니고... 우리 사람들과 굉장히 친화력이 있는 영리한 고양이 조직이라고 들었어. "
" 고양이...? "
" 시내 번화가에서 살기도 하는데... 코콧트 근처에서 사냥이나 약초수집 같은 걸 하다보면 종종 일행을 만나기도 하지. 그런데, 먼저 아는체 할 필요 없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일을 하니까. "
바티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미르의 시골에서 벗어나니 신기한것도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그 고양이 조직이 대체 뭘 어떻게 하는건가...? "
" 응... 그냥 임무 수행중에 위험에 처하게 되거나 죽지는 않고 의식을 잃을 정도가 되면, 데인져캣 조직의 용병부대들이 괴물이나 적들에게서 우리를 구해주는 거지. 안전하게 사냥꾼의 캠프지역까지 데려다 주고 말야. "
" 그렇다면 그들은 매우 용감하고 훌륭한 고양이들이 아닌가... "
" 뭐, 꼭 그렇게 감동받으며 생각할 것까진 없어... "
" ...? ... "
" 일단 공짜가 아니거든. 한 번 구해줄 때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해당보상금의 1/3 이상을 그들에게 지불해야 해. "
" 그렇군... "
" 어차피 상관없어. 그들도 목숨을 걸고 우리 사냥꾼을 구해주니 그만한 값어치는 있다고 생각해. "
" 응... 알겠네. "
카츠에게 사냥꾼의 생활과 기타 정보에 대해 여러가지를 듣게 된 바티스.
나름대로 머리속에서 정리하려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카츠가 낮은 말투로 바티스를 불렀다.
" 바티스... "
" 음... 왜 그러는가... "
" 사냥꾼이란 아주 전설적인 인물이라도 결코 혼자 해결 할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 "
" 그렇겠지... "
" 동료의 힘이나 친구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지... "
" 맞는 말이네... "
" 우리와 이제 친구가 된 이상... 그 애늙은이 같은 말투를 고쳐야 할거야. "
" 음... 알았네. "
" ............. "
" ..... 알았어. 서서히 적응해 보도록 할게. "
" 좋아! "
둘은 천천히 걸어가며 숲속 입구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테오는 벌써 저 멀리에서 부지런히 사냥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 흠... 그런데, 테오는 아까부터 뭘 자꾸 캐는거 같은데? "
" 응? 아... 저거? 약초를 이용해서 치료제를 만들 때 쓰려고 버섯을 캐는 중이야. "
" 아하... 저거 돼지들이 꽤 좋아하는 거잖아. "
" 그렇지. 보통 버섯은 일정한 곳에서 자라는데, 못 찾겠으면 돼지들이 냄새를 맡아서 찾는데를 뒤지면 돼.
" 흠... 그래? 그럼, 저기에도 버섯이 있는 모양이군. 돼지 한마리가 서 있는데? "
" 응... 그렇지... 어??? "
" 제길, 형! 뛰자! "
바티스의 손을 홱 낚아채며 카츠와 테오는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고 같이 뛰어오던 바티스가 물어보았다.
" 뭐, 뭐야... 돼지 한마리 보고 갑자기 왜 도망가는데? "
" 저건 좀 골치 아파. "
" 버섯 좋아하는 돼지 정도야 흔하잖아. 우리 마을 목장 주변에서도 많이 봤었는데. "
" 그건 민둥머리 (주.1) 모스 이야기겠지. 코콧트 마을 근처엔 (주.2) 불팡고가 더 많아. "
" 불팡고는 또 뭐야? "
" 암튼, 뛰어! 저기 높은 벼랑턱으로 일단 올라가자. "
열심히 뛰어가는 카츠와 테오를 쫓아 달리는 바티스. 뒤에서 땅을 진동하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어? 저 돼지가 막 쫓아오는데? "
" 제대로 된 멧돼지야. 뿔에 받히면 좀 아플거다. "
먼저 벼랑에 도착한 테오가 손을 모아 바치고 있었고, 능숙한 솜씨로 카츠가 테오의 손을 집고 위로 뛰어 올랐다. 올라간 카츠는 다시 테오의 손을 붙잡아 끌어올렸지만, 덩치가 커서 조금 느린 바티스는 아직도 뛰어오는 중이었다.
" 뭐해! 바티스. 더 빨리 뛰어!! "
" 헉... 헉... 난 달리기는 잘 못해! "
" 아... 미치겠네. 빨리와서 손을 잡아! "
언덕위에서 손을 뻗치고 기다리던 카츠와 테오... 부지런히 뛰어오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바티스가 불팡고에게 당할 듯 싶었다.
" 그렇지! 바티스! 오다가 돼지가 가까이 붙으면 옆으로 굴러! "
" 헉... 헉... 뭐??? "
" 저녀석들은 거의 일직선밖에 돌진을 못해! 너무 떨어져 있으면 안되지만, 가까이 붙었을 때 옆으로 구르라구! "
" 헉... 헉... 그냥 굴러서... 헉... 헉... 피하면 되는거냐? "
" 그렇지! 확실히 옆으로 구르면 돼! "
" 알았다. 그렇게 해보마! "
" 앗, 잠깐!!! 안돼! 바티스! "
무슨 일인지 테오가 급하게 바티스를 말렸지만, 바티스는 이미 불팡고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굴렀다.
불팡고는 아슬아슬하게 바티스를 비켜 지나가고, 옆으로 구르던 바티스는 일어나서 다시 카츠와 테오에게 뛰어오려던 순간...
'퍽~ '
" 크헉...! "
영문도 모르고 바티스는 등과 허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 옆으로 굴러버렸다.
두 마리였다.
한 마리의 돌진을 피하자마자 멀리서 돌아오던 다른 불팡고에게 등 뒤를 기습 당했던 것이다.
불팡고의 돌진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 한참을 구르던 바티스는 의식을 잃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멀리에서 멈춰있던 첫번째 불팡고는 다시 거친 숨을 내쉬며 앞발을 땅에 긁어대고 쓰러진 바티스에게 돌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 안돼겠다. 테오. 가자! "
" 응! 카츠 형! "
바티스가 위험한 걸 깨달았는지 카츠와 테오는 언덕에서 내려와 불팡고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 한마리는 내가 벼랑 끝으로 유인할테니 테오 너는 입구쪽으로 나가면서 끌고 가. "
" 알았어 형! "
카츠와 테오는 두마리의 불팡고를 향해 달리며 주워온 자갈을 각각 던지기 시작했다.
' 딱~. 딱~ '
자갈은 정확하게 불팡고의 머리에 한마리씩 맞았고 카츠와 테오는 소리를 질렀다.
" 야! 이 멍청한 돼지야! 이쪽이다! "
쓰러져 있는 바티스를 향해 돌진하려던 불팡고는 갑자기 날아온 자갈을 맞고 거친숨을 내쉬며 천천히 두 형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됐다. 각각 한마리씩 맡자. "
" 카츠형도 조심해! "
" 빨리 저기로 뛰어! "
두 마리의 불팡고는 각각 카츠와 테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흥분한 상태에서 도발을 한 형제에게 불팡고는 대단히 화가 났는지 아까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 아, 제길... 무기를 가져오는 건데. '
카츠는 불팡고를 피해 달리면서 테오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테오 역시 덩치가 커서 느리긴 했지만,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도망치고 있었다.
' 이거 시간 끌면 힘들겠는데... 언덕은 너무 멀고... '
쫓아오는 불팡고를 보면서 도망가는 카츠... 갑자기 앞에서 바티스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 카츠! 엎드려!!! "
무의식중에 바티스의 말을 듣고 앞으로 구르는 카츠.
굴러 넘어진 카츠에게 불팡고가 돌진하며 뿔로 받으려는 순간! 카츠의 몸 위로 휘둘러진 바티스의 거대한 해머가 정통으로 불팡고의 이마를 후려쳐 버렸다.
' 퍼벅~!!! '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통으로 내갈겨진 해머의 위력에 두꺼운 불팡고의 이마뼈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는지 머리쪽은 이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져 저쪽으로 굴러떨어져 버린 것이다.
' .................. '
해머의 위력에 잠시 말문을 열지 못한 카츠. 어느새 의식을 차렸는지 바티스는 해머자루를 쥐고 땅에 내려 놓은체 허리에 손을 대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 크... 이거 쉽게 낫지는 않을거 같은데... 나무도 별로 없는 정글에 이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
" 바티스, 괜찮아...? "
" 응... 그럭저럭... 아차! 테오는? "
" 참!!! "
카츠와 바티스는 테오를 찾기 시작했다. 나무 정글 저쪽편에서 아직도 불팡고를 떨쳐버리지 못한 테오는 너무나 숨이 차다는 얼굴로 계속 도망다니고 있었다.
" 테오! 빨리 저기에 있는 벼랑으로 올라가! "
" ... 헉... 헉... 혀... 혀엉... "
테오는 이미 말할 기운도 없는듯한 거친 숨소리로 겨우 도망만 다니고 있었다.
" 차라리 이쪽으로 뛰어와. 우리가 곧 갈게! "
" 헉... 헉... 거...거...기까지... 도저히... 헉... 헉... "
" 빨리 앞에있는 언덕까지라도 달려! 지금 간다구! "
너무 오래 뛰며 도망친 탓인지 이미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앞에 있는 작은 언덕이 가물거릴 지경으로 지쳐 있었지만, 오로지 피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벼랑턱으로 끝까지 뛰어갔다. 이제 뛰어 올라갈 기회였는데, 벼랑으로 뛴 순간...
' 너무 높다... '
퍽............
테오는 끝내 벼랑으로 오르지 못해 벽에 부딪혀 쓰러지고 불팡고는 계속 돌진을 하며 테오를 들이 받으려 달려오고 있었다.
" 테오!!! "
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멀리 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서는 불팡고의 커다란 얼굴이 실루엣 처럼 다가오며 이젠 끝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어딘가에서 들리는 한 발의 총성...
' 타앙~ '
가물거리는 시선앞에는 쓰러진 불팡고가 앞으로 나동그라지며 천천히 이쪽으로 구르고 있었다.
' 뭐지... '
'꽤에에엑~~~ '
어디서인지 모르게 들렸던 총성과 함께 쓰러진 불팡고는 괴로운듯 제자리에서 구르며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직까지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 일어나지 못한 테오... 하지만, 불팡고는 다시 정신을 추스렸는지 머리를 털며 일어나 돌진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수풀속에서 튀어나온 바티스가 해머로 불팡고를 날려 버렸다.
' 퍼억~!!! '
이번에도 여지없이 일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불팡고는 저쪽 수풀로 날아가 버렸다.
" 헉... 헉... 괜찮아? "
얼마나 빨리 뛰어왔는지 바티스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 뭐... 뭐야. 그렇게 나보다 잘 뛰면서 아깐 왜 그리 쳐졌어? "
이제서야 수풀속에서 나온듯 카츠가 바티스에게 물었다.
" 헉... 헉... 몰라... 난 원래 남의 일엔 참견을 잘하는 체질이라... "
테오는 겨우 몸을 추스리고 일어났다.
" 고맙다. 바티스... 덕분에 무사한 거 같다. "
" 헉... 헉... 고맙긴... 오히려 내가 할 소리다. "
" 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두지. 동생을 구해줘서... "
" 헉... 헉... 하하하... "
느닷없는 불팡고의 기습 덕분에 한참을 뛰어서인지 세 명 모두 지쳐 있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가슴 속에는 뜨거운 의리감 같은 확신이 생겨났다. 동료애란 가장 위급한 순간에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를 알게 되면 생겨난다고 했던가.
고맙다는 인사도 어색할 것 같은 분위기에 멋적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카츠.
" 이거... 흔적도 안 남아서 제대로 된 전리품도 없겠는데? "
" 그러게... 사냥꾼이 되도 보상품 빼고 제대로 남는게 있을라나 모르겠네. "
" 바티스, 이 기회에 나와 같은 대검을 써보는게 어때? 그 체격이라면 훌륭히 다룰 수 있을거 같은데..."
잘라졌다는 것보단 거의 박살났다는 표현이 들어맞는 불팡고의 시체를 보며 각자 한마디씩 하다가 테오의 말을 듣고 바티스는 자신의 해머를 보았다.
어렸을 적 부터 집안 일손을 도울 때 공룡의 몸에 칼로 너무 많은 흠집을 내버리면 상품성이 떨어지고 가장 고통없이 빠르게 보내 줄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초식공룡의 생고기를 잡기 위해 손에 많이 익혀둔 생활 도구이자 무기였던 것이다. 이제 일류 사냥꾼이 되려는 마당에 이런 해머가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장 위급한 순간에 필요한 무기는 역시 자신에게 익숙한 무기가 최고란 생각이 들었다.
" 아니야... 그래도 역시 나에겐 이 해머가 가장 익숙하고 어울릴 거 같아. "
씨익~ 웃으며 해머를 어깨에 걸치는 바티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며 테오도 두말은 하지 않았다.
정글을 빠져나와 천천히 언덕을 빠져나오는 동안 세명은 유쾌한 기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만, 테오의 마음에 약간 걸리는 듯한 생각 하나는...
' 아까 들렸던 총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
확실한 마무리는 바티스가 지었지만, 가장 위험한 순간에 불팡고에게 충격을 준 것 같은 그 총소리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테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