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기사 게일. 아가씨의 그림을 위하여 스스로를 어둠에 던진 비운의 반영웅.
예전에 프롬뇌를 써가며 http://bbs.ruliweb.com/game/ps/83787/board/read/9450340?search_type=name&search_key=%EC%A6%89%ED%9D%A5&page=1 이런 글을 쓴 적도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작중 게일의 행적을 다른 면에서 한번 관찰해보기로 하겠습니다.
게일의 장비들 중에서 본편에서 먼저 입수가 가능했던 장비는 바로 이 처형자의 대검입니다. 작중에서는 타락한 처형인의 검이라는 이야기밖에 없지만, 본래 참수검, 엑서큐셔너 소드라는 도검은 실존하는 검입니다. 무겁고 폭넓은 날로 죄인의 목을 깨끗하게 쳐주기 위한 처형용의 검이죠. 최대한 고통받지 않도록 단번에 목을 베기 위해 더 무겁고, 더 예리하게 만들기 위해 그 폭도 넓습니다. (어째서인지 다크 소울에서는 참격, 하다못해 표준도 아니고 타격속성을 지니게 되었지만요....)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검신 중앙에 글자가 새겨져있습니다. 인게임에서 확인해보니 룬 문자처럼 보입니다만, 현실의 참수검에 대입해보면 아마 아래와 비슷한 뜻일겁니다.
Wan Ich Das Schwert thue Auffheben - So Wünsch Ich Dem Sünder Das Ewige Leben
(나는 이 검을 들어올릴 때마다 죄인에게 영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Cast in the name of god, ye not guilty
(신의 이름으로 주조했으니, 그대는 죄 없도다)
즉, 이 검을 드는 자와 이 검에 죽게 될 이의 죄를 사해주는 의미를 품습니다. 그렇다면 이 '죄'는 무엇일까요.
다크 소울 시리즈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Sin)와 아주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네, 다크 소울, 인간이 품은 인간성 그 자체입니다. 그윈이 불의 시대를 연 이래, 함께 최초의 불에서 태어났지만 반대 속성을 지닌 다크 소울은 시대에 역행하는 죄악입니다.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어둠을 품고 있기에 이는 말 그대로 원죄, 벗어날 수 없는 죄악이죠. 지금 당장 불의 따스함 속에 살아가더라도, 언젠가 다가올 어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겁니다.
그런데, 노예기사의 갑주를 보면 뜻밖에도 명예로운 직위로 대접받았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또한 불사자만이 노예기사가 되었다는 말도 있고, 그들이 끝없이 싸워야했다는 것도 언급되죠. 단순히 적대세력과 싸우거나 데몬 퇴치는 일반 기사들이 행하면 충분한 일입니다. 따라서 노예기사란 불사자가 불사자를 상대하기 위한 직위라는 것을, 나아가 노예기사가 망자들을 상대해왔음을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미친 사냥꾼을 징벌하는 까마귀 사냥꾼처럼요.
결국 노예기사가 사용했을 참수검은 '다크 소울을 품은 것은 (너의) 죄가 아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예기사는 이 검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의무가 바로 망자가 된 이들의 죄를 사하는 일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검을 놓는다는 것은 그 직무를 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즉 망자가 되었을 때일테니까요. 즉, 타락한 처형인이라는 의미는 사실 '망자가 되어버린 처형인'이겠지요.
하지만 게일에 있어서는 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게일의 대검은 처형인의 대검이었던 검이 망가진 물건입니다. 예전에 사기사의 장비들에 대한 잡설을 쓸 때도 말했듯, 과거 갑주와 무구는 기사로서의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특히 무기는 더더욱 그랬죠. 검을 놓지 않는다, 이는 기사로서의 자신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주목할 사실은, 본래 참수검이 죄인 뿐만아니라 처형인의 죄까지 사해주는 물건이라는거죠.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난쟁이의 왕들을 모두 참살하고, 그들의 메마른 몸에 남아있던 다크 소울을 모조리 긁어모았습니다. 이는 다크 소울을 가진 그들의 원죄를 사하기 위함이며, 아가씨가 그리는 회화의 완성을 위함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게일 자신의 죄책감을 이겨내기 위한 검. 그러나 그 모든 죄를 감당해주기는 어려웠던 걸까요. 검이 기사의 생명이라면, 부러진 검은 이미 그 의미를 잃습니다.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던 검은 결국 부러졌으나, 집착에 가깝게 쥐고 휘두르는 모습. 망자가 된 처형인은 참수검을 놓는다. 역으로, 참수검을 잃은 처형인은 망자가 된다. 죄를 사하기 위한 글귀마저 피와 녹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결코 존재하지 않아야 할 '찌르는 날'이 생긴 이상, 게일의 대검은 더이상 참수검이 아닙니다. 남은 것은 타락해버린 처형인 뿐.
물론 게일이 검을 잃었다고 1페이즈에서 미쳐날뛰는 것은 아닐테죠. 하지만, 처형인의 검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어느 정도의 상징성은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ps. 1페이즈 게일이 휘두르는 칼은 왜 그렇게나 긴걸까요. 2페이즈때 부러져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검 상태도 1페이즈가 훨씬 안좋은데....
pps. 사실 게일대검은 만들어놓고도 한 번도 안써봤습니다. 1편부터 아르토리우스의 대검이 부식된 모습, 2편에서도 그레이트소드에 이가 빠진 모습 등이 굉장히 거슬렸던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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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즈부터는 망자판정이 들어가는건 몰랐네요 :) 사실 인간의 본질(인간성)이 다크소울의 작은 파편이기에, 이전에 쓴 글에서도 게일이 '인간의 화신'이 되었다 칭했었죠. 1페이즈에서는 단지 소울에 휩쓸리기에, 오히려 1페이즈가 다크소울(=본능) 자체가 아닐까도 합니다. 이지를 되찾고 검기를 되찾아 불(이성) 또한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다크소울의 대행체가 아닌 망자이자 인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코어 다크 소울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가설입니다!) | 17.10.04 00: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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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소울이 인간성의 근원인데, 이 게임의 제목이 다크 소울Dark Souls인 것은 꽤 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선 플레이어의 인간성을 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꺽인 전사에게 덤비는 것일까요? ㅎㅎ | 17.10.04 0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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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간만에 무명왕님좀 배알하러 봐야겠군요! | 17.10.04 00: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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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영어라... 어쩌면 글귀 자체는 라틴어 원문에서 따왔을지도 모르겠군요:) | 18.06.13 09: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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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더 찾아보니 룬 문자가 맞는 것 같네요. https://www.reddit.com/r/darksouls3/comments/64c9i2/spoilers_dlc2_lore_i_attempted_to_translate_the/?st=jice8xuk&sh=a37b6f6f 레딧에 추측글이 있는데, 함정이 첫번째 글자가 태양을 의미하는 룬 문자를 좌우반전 시킨 것 같다는 것이군요. 레딧의 작성작 분은 그래서 그 문자를 달 혹은 어둠을 의미한다고 추측하셨네요. | 18.06.13 10: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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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의 추측글 기반으로 한번 정리해보아야겠군요 ㅎ | 18.06.13 10: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