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가난했던 예전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글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생각보다 많은 위안이 되어 이번에도 이렇게 글을 씁니다.)
누군가는 무조건 질 것이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누군가는 네가 얻는게 무엇이냐. 누군가는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상대의 편을 들기도 했다.
개인의 기업을 상대로 한 대립. 너무도 부당했고 그 부당해위의 가운데에서 30중반이 다 되어가는 사람에게
기업의 일부 악인들은 모난 돌인 나를 향해 ‘불필요한 인간’, ‘부당한 행위는 우리가 하지만 그만두고 말고는 네 의지’, ‘니가 신고할테면 해봐라 그래 봤자지’와
같은 모욕적인 발언과 욕설, 다수대 1의 물리적인 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겪었다.
치밀하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왔지만 돌발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뎌지는지...
‘서명’이라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지금까지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화해를 유도했지만 일방통행은 지속되었고,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며 잠들지 못하는 밤이 지속되었다.
새벽까지 공부한 여러 가지 법률을 중얼 중얼 거리고, 자료를 모으고, 코멘트 한 단어, 문장에 대해서도 수십, 수백번을 생각하며
오직 의지의 관철에 대해서 만을 생각하며 하루를 살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위통이 생기고 수면의 질은 최악에 가까웠으며, 그 시간을 대신하는 새벽거리로의 여행은 점점 늘어만 갔다.
퍼센트로 따지면 10퍼센트나 될까.
확률상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상대적인 강자라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멋대로 주무르는 것도 싫었고
내 나이, 현실만을 보고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패배자가 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면 살지 말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정의’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라면 차라리 내가 존재할필요가 없지 않을까.
업무와 대립을 동시에 진행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득문득 정신적이나 신체적인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었고, 마치 경조사의 느낌처럼 전혀 오지 않을 것 같은 지인이 와서 감동을 받을 때가 있는가하면 누구보다도 나를 지지할 것 같던 사람의 던진 한마디에 멘탈이 하루종일 흔들릴 때도 있었다.
얽히고 섥혀있는 사건들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나비효과가 되어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아직도 그 순간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종류의 전율이었다.
일방통행에서 양방통행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나는 그 긴 암흑의 터널에서 저 멀리 빛을 발견했다.
그 빛까지 도달할지 멈춰서 터널 안에 영원히 갇힐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 해도 보람을 느낀다.
이후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여러 가지 부정적인 시간들을 거치며 어느순간 20대의 ‘야망’,‘간절함’ 같은 단어는 없어지고 ‘편안함’ 만을 추구하는 최근의 몇 년이었다.
이번의 사건에서 누구보다 간절하게 나의 승리를 원했고 모든 것을 걸고 부딪히고 부딪히고 또 부딪혀서 결국 이렇게 까지 상황이 바뀌어 나가는 것을 보며
인생이라는게 ‘간절함이 있으면 통하긴 통하는 구나‘ 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행하지 못하는 그런 이론을 직접 겪어 나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내 마음의 잠시나마 안정이 깃들기를 바라고 추후에 모든 일이 끝난다면 다시 긍정적인 내용의 글을 적기를 바란다. 오늘은 제대로 잠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