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혹자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늑대인간의 저주가 실은 골드린의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이에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 중 길니아스인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강인한 힘과 체력을 지니고 살기를 감지하는 날카로운 감을 가진다고 -
이 빌어먹을 굴레가 축복일리 없었다.
“크윽!”
척추를 시작으로 전신의 뼈가 완전히 빠졌다가 다시 맞춰지는 익숙해지기 힘든 변화가 일어나면서 아랫배에서부터 검은 털이 전신을 뒤덮었다.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었지만 척추와 아랫배로부터 시작된 신체의 변화가 얼굴까지 집어 삼키자 인간의 형상은 온데간데없이 그 자리에는 2m에 육박하는 늑대 괴물이 서있었다.
물론 내 의식은 총명했다. 뜨거운 심장은 이성이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고,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애달프게 전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러면 되겠습니까?”
나는 훌쩍 키가 커버린 탓에 코우 부대장을 내려다봤다.
코우 부대장은 눈을 크게 뜨면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대기실의 경비병들이 병장기를 빼들면서 나를 향해 공격 태세를 가다듬었다.
“부, 부대장님! 천천히! 천천히 물러나십시오!”
대기실의 병사들이 무기를 뽑아드는 소란이 바깥까지 전달되자 ‘경비 대기실에 늑대인간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통로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것 참 곤란하군.
그래서 나는 손을 올렸다. 비어있는 양손을 들어 평화와 화친을 의미하는 자세를 취해보였지만 문득 내 손톱이 흉흉하기 짝이 없는 흉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악! 놈이! 놈이!”
이건 별로 효과가 없겠군.
그렇다고 주먹을 쥐자니 싸우자는 것 같아서 당장이라도 병사들이 달려들 것 같았다. 그때 처음 보는 남자가 경비병 대기실로 불쑥 들어섰다.
그는 대기실 내부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대뜸 보급 상자에 쳐박혀있는 검을 뽑아 철문을 마구 두드리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야! 시간이 남아돌지? 어디서 느긋하게 환담이나 나누고 자빠졌어! 당장 담당 구역으로 돌아가! 어서!”
“하, 하지만 소장님! 저 괴물이!”
“저 괴물이? 뭐?”
소장이라 불린 남자는 병사들을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와 코우 부대장을 쿡 찔렀다.
“부대장! 저 늑대인간은 누군가?”
“네? 아, 그러니까… 아르웨인 경의 조력자입니다.”
“조력자? 늑대인간이 지원 온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는데?”
“거기에는 바다보다 깊은 사정이….”
소장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코우 부대장이 쓸데없이 긴 설명을 늘어놓자 소장이 코우 부대장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만! 흰소리는 그만하고 지금 즉시 전 병력은 담당 구역으로 복귀한다. 서둘러!”
“알겠습니다!”
소장의 일갈에 코우 부대장이 경례하며 병사들을 인솔하자 대기실은 순식간에 허전한 공간으로 변했다. 소장은 병사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곁눈질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흠. 당신이 그 불법침입자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곳의 책임자인 교도소장 델워터라하오. 레이나 분대장에게 개략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설마 늑대인간일 줄은 몰랐소.”
이야기를 늘어놓던 델워터는 갑자기 불쑥 손을 내밀었다.
“감사 인사가 늦었소. 듣기로는 내 부하를 구해줬다던데. 보답은 꼭 하겠소.”
“아닙니다. 그보다 일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홀랜드 분대장님?”
내가 쇠창살을 가리키자 레이나는 델워터의 허락에 따라 철창의 문을 열었고, 낡은 경첩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려 퍼지자 레이나는 델워터의 뒤로 걸음을 물렸다.
돌바닥에는 여전히 덩치 큰 늑대인간이 혀를 빼물고 잠들어 있었다. 약효의 문제인지 체력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소란스러운데도 잘도 자는군.
“소장님? 이리오시죠.”
“아니. 난 괜찮네. 홀랜드 분대장? 자네가 가보지.”
“네? 제, 제가요?”
내 손짓에 델워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레이나의 등을 떠밀었지만 조금 전까지 자신의 목을 비틀어 죽이려던 괴물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보죠.”
델워터와 레이나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머뭇거리는 사이 드레나이 여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차피 모두가 알아야하니 짐짓 목소리를 높이며 설명했다.
“보이십니까? 털이 검은색이라 잘 안보이겠지만 유심히 보시면 피부 안쪽에 문신이 새겨져있는 것이 보일 겁니다.”
나는 드레나이 여자가 잘 볼 수 있도록 쓰러진 늑대인간을 뒤집어 가슴팍을 헤쳐 피부 아래를 보여주었다. 과연 늑대인간의 피부에는 기괴한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군요. 마치 지네가 몸을 말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인데,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건가요?”
“이 자는 해적입니다.”
“해적?”
델워터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가 늑대인간이 깨어날까 봐 황급히 입을 닫았다.
“네. 소장님께서는 혹시 ‘난폭파도 해적단’이라는 작자들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델워터는 고민했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어본 적 없소. 스톰윈드 연안에는 해적이 다니지 않으니까. 유명한 해적단이오?”
“혹시 소장님께서 알고 계시는 해적단이 있으십니까?”
“어디보자… 무법항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검은 바다 해적단과 대륙 남부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붉은 해적단이 떠오르는군요.”
“그렇군요. 난폭파도 해적단은 동부 왕국의 중북부를 오가는 해적들입니다. 대륙 남부는 검은 바다 해적다니 틀어쥐고 있으니 영역 싸움에서 밀리고, 미치지 않고서야 스톰윈드 항구를 노리지 않을 테니 이놈들이 선택한 약탈 지역은 대륙의 중북부, 즉 길니아스 연안입니다.”
델워터는 동부왕국의 지리를 따져가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난폭파도 해적단은 길니아스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늑대인간의 저주에 노출되었고, 그중 인간의 이성을 부여잡은 상태로 스톰윈드 령에 들어오는 놈들도 있다고 합니다. 길니아스가 다시 연합에 돌아온 지금 이놈처럼 늑대인간의 저주를 숨기고 감옥에 들어오는 놈들이 있을 테니 주의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허면 이놈들에게 눈에 띌만한 특징이 있겠소? 아! 문신이 있댔지?”
“그렇습니다. 지네가 몸을 몇 바퀴 말고 있는가에 따라서 급이 결정되는데 보아하니 이놈은 갑판 청소원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델워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세상에! 감격할만한 정보로군요. 앞으로 수감되는 놈들에 대해서 조사 기준을 추가하겠습니다. 조력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소탕 작전을 서두르고 싶습니다만….”
철창을 빠져나온 후 레이나가 문을 잠그는 사이 델워터 소장은 불편한 기침을 하며 주변을 살피다가 레이나를 불렀다.
“자네. 잠시 나가있게.”
“네?”
“문을 닫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엄중히 감시하게.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델워터의 지시가 약간 미묘했기에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의 지시대로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델워터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보급 상자를 의자삼아 걸터앉았다.
<37>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는 기밀에 부쳐주십시오.”
“이유가 뭐죠?”
“현재 지하 감옥에서 벌어진 사건에 제 치부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델워터는 음울한 얼굴로 말을 아꼈다. 뭔가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듣게 될 사정 청취의 내용은 무덤까지 가져가죠.”
드레나이 여자가 말끝에 나를 바라보자 나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국왕 전하의 이름을 걸고 함구하리라 맹세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설명하죠.”
델워터는 헛기침을 하며 보급 상자에서 일어났다.
“얼마 전, 대륙 전체를 휩쓸었던 대지진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죠. 노스렌드를 제외한 동부왕국과 칼림도어 대륙 곳곳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하면서 지진, 낙석, 화산, 홍수로 인한 침수 때문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었죠.”
드레나이 여자는 대륙 곳곳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는지 한동안 기기묘묘한 지역과 지형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각지의 피해를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역시 엑소다르의 대사는 모르시는 것이 없군요. 말씀하신 각지의 피해 중 스톰윈드의 지하 감옥도 포함되었습니다. 바로 정령들이 폭주하는 사태가 벌어진거죠.”
“정령? 폭주?”
“네. 지하에 잠들어있던 불의 정령들이 강제로 깨어나면서 지상으로 솟구쳤는데, 그 과정에서 간수가 살해되면서 죄수들이 모두 풀려나는 불상사로 이어졌습니다.”
“초기 진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렇게까지 사태가 확대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내 질문에 델워터는 오른쪽 눈이 있었던 자리를 손으로 덮으며 이를 갈았다.
“코우 부대장의 요청으로 현장에 도착한 저는 곧바로 진압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수감되어있던 놀의 왕 ‘들창코’에게 오른쪽 눈을 내어주고 후퇴해야했죠.”
“들창코?”
드레나이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델워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웃기는 이름이군요. 강한 놈입니까?”
“적어도 엘윈 숲에 서식하는 놀의 왕으로 군림하던 놈이었으니까요. 얕보시면 곤란합니다.”
델워터는 돌 벽에 지하 감옥의 지도를 그리며 이후의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했지만 굳이 장황하게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불의 정령과 인간 죄수, 놀의 왕이 풀려나면서 간수들은 수세에 몰렸고 결국 지금과 같은 대치 상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타격 목표가 뭔가요?”
“복도를 일직선으로 따라가면 첫 번째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차로에서 오른쪽 끝방으로 가면 불의 정령이 자리하고 있죠. 그리고 교차로에서 왼쪽 끝방으로 가면 놀의 왕 들창코가 버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해결해주실 목표는 불의 정령과 들창코입니다.”
“그럼 첫 번째 목표는 뭐죠?”
“교차로에서 직진하면 만날 수 있는 방에는 란돌프 몰로크라는 자가 있습니다. 귀족 평의회 인물로 인간 죄수들의 잠정적 리더를 맡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자의 처리는 제게 맡겨주시죠.”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타격하실 계획이시군요?”
델워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계획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나와 드레나이 여자가 들창코와 불의 정령을 무력화 시키는 사이 델워터 소장과 간수들은 란돌프 몰로크를 그의 동생으로 ‘바꿔치기’한다는 것이었다.
“란돌프의 동생 모티머는 형과 사이가 좋지 않고, 무엇보다 우리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번 작전을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두 분께서 놀과 정령을 처리해주시면 이후는 인간대 인간의 문제이니 모티머가 잘 처리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타격 목표를 정해봅시다.”
나는 등에 지고 있던 양손도끼를 잡아 좌우로 크게 휘두르며 이를 갈았다.
“괜찮다면 들창코의 목을 따는 일을 제가 하고 싶습니다.”
“의욕적이라 좋네요. 그럼 저는 불의 정령을 억제하러 가겠습니다.”
드레나이 여자가 손가락을 모아 휘파람을 불자 그녀의 뒤에서 반투명의 푸르스름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마주쳤던 푸른빛으로 빛나던 영롱한 맹수였다.
“그 짐승은 뭡니까? 아니, 짐승이 맞긴 한가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반투명한 호랑이의 눈빛이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아 살기를 가다듬었다. 흐릿한 형상이라곤 낮게 으르렁거리는 맹수의 울림은 사실적이었다. 드레나이 여자가 맹수의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아제로스에는 야수 정령이라는 신비로운 존재가 실제 한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마그리아. 안카와 함께 하이잘에 자리 잡은 야수 정령이죠.”
야수 정령이라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봤던 어떤 서책에서도 아제로스의 신비로운 동물에 대해서 적혀있는 글귀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마그리아의 신비로운 자태에 현혹되고 말았다.
“야수 정령이라… 신비로운 존재로군요.”
“괜찮으시면 이곳의 문제가 일단락 되는대로 마법사 지구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시지 않으시겠어요? 아제로스의 신비로운 이야기로 식사 자리가 풍족해 질 것 같군요.”
“초대해주신다면 언제든 찾아뵙겠습니다.”
“이곳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말입니다.”
대화의 말미에 델워터가 불쑥 끼어들어 이야기를 갈라버리자 드레나이 여자는 마그리아를 대동하고 대기실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모티머 몰로크 씨는 준비됐나요?”
“물론이죠! 언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델워터 소장이 손뼉을 치며 드레나이 여자의 뒤를 따라 나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작전의 시작을 알렸고, 나는 그녀의 곁에 서서 통로 안쪽을 따라 걸어갔다.
“이것도 인연인데 자기소개가 너무 늦었군요.”
갈림길 앞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려던 드레나이 여자가 몸을 돌리며 빙긋이 웃었다.
“저는 엑소다르의 대사로서 아제로스를 유랑하는 브라체 아르웨인이라고 합니다. 어떤 길목에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이후 잘 부탁드립니다.”
브라체의 신비로운 미소를 똑바로 바라보던 나는 어떻게 소개를 할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는 길니아스 역사 기록관 가문의 적자이자 리암 그레이메인 왕자님을 보필했던 제3근위병단 소속의 병사 타리베 홀스타인입니다. 이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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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 다음 회차에서 다시 만나요. | 18.07.22 00: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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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추 ㅋㅋㅋ 감사합니다. ^_^ | 18.07.23 08: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