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https://bbs.ruliweb.com/family/3094/board/181035/read/9504108
※ 조선시대는 아니고 그냥 뭔가 조선시대 느낌이 나는 현대와 과거가 엉망으로 섞인(?) 희한한 세계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날에도 나의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으면 자꾸만 어제 보았던 그 공연과, 엄청난 열기가 떠올라서 절로 가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가르침에 집중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집에 갈 시간이 됐는데도 멍하게 있는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온 아유무(娥柳霧)가 속삭였다.
"얘, 뭘 그렇게 멍하니 있니? 혹시 어디 아파? 오늘은 다른데 안 들리고 그냥 바로 집에 갈까?"
"아유무(娥柳霧)... 나 오늘은 좀 늦게 갈 테니까 먼저 가"
"뭐? 무슨 일 있어? 내가 도와줄까?"
"아니, 그건 아니고... 어제 본 공연 때문에..."
"아하, 어제는 정말 감동적이었어"
"그래서 우리 학당에도 학당 우상이 있는지 찾아 보려고"
내 말을 들은 아유무(娥柳霧)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풉 하고 웃었다.
"후훗.. 어제 네 모습을 보고 분명 뭔가 시작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어"
"예, 예상했었다고?!"
"그럼,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왠지 그럴 것 같더라. 근데 난 그쪽에 대해선 잘 몰라서... 미안"
미안함 가득한 표정을 짓는 아유무(娥柳霧)의 손을 잡고서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학당에 학당 우상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한 번 찾아볼래!"
"우리 학당은 꽤 큰 학당이니까 있을지도 모르겠네"
"응!"
"나도 같이 가줄까?"
"아니, 혼자 찾아볼게. 어땠는지는 내일 말해줄테니까 못 찾으면 위로해줘"
"알았어, 꼭 찾길 바라!"
아유무(娥柳霧)의 응원을 받으면서 학당 우상을 찾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홍소(虹咲)학당은 이 지역에 있는 학당 중에서 제일 큰 곳이다. 그렇기에 건물이 넓어도 너무 넓어서 도대체 어디부터 가봐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학당 우상은 대체 어디서 모일까?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것은 뜻이 맞는 아이들끼리 수업이 끝난 뒤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방들이 많이 있다는 별관 건물이었다. 그곳이라면 왠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지만 별관 건물에서도 학당 우상이 모여있는 곳을 찾기는 힘들었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한참을 걷던 내가 마지막으로 가본 곳은 2층 끝이었다. 눈에 띈 파란 문에 붙어 있는 것은 '학당 우상 모임'이라고 적힌 명패였다. 나는 얼굴 가득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서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방 안에 혼자 있던 소녀가 이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누구세요? 여긴 관계자 외 출입금지예요"
"저기, 저는... 그러니까... 찾으러..."
"도보 여행 모임쪽 사람인가요?"
"도보 여행 모임?"
무슨 말인가 싶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째릿 노려보면서 소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붙였다.
"질리지도 않고 또 이 방을 넘기라는 얘기를 하러 왔네요. 학당 우상 모임이 없어지는 건 이번 달 말이에요. 여긴 아직 우리 거라고요!"
"어, 저기..."
"그런데도 굳이 빼앗으러 오다니, 가수미(嘉秀美)는 슬퍼서 눈물이 나려고 해요~ 으아앙~"
입을 빼죽 내밀고 우는 척을 하는 가수미(嘉秀美) 때문에 잔뜩 당황한 나는 오해를 풀기위해 허둥지둥 말을 꺼냈다.
"우, 울지 마세요! 전 학당 우상을 찾고 있었어요. 제대로 찾아온 거 맞죠?"
"어라, 그럼... 도보 여행 모임 쪽 사람이 아닌가요?"
"아니에요!"
드디어 오해가 풀렸고, 가수미(嘉秀美)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랬구나~ 가수미(嘉秀美)가 지레짐작으로 실례했네요~ 에헷~"
"하하하..."
"저기, 그럼 학당 우상 모임에 용건이 있는 거죠? 가입하러 온 거예요? 대환영이에요!!!"
쏟아지는 저 반짝거리는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아뇨, 가입하고 싶어서 온 건 아니고 그냥 우리 학당에도 있나 찾아본 건데요..."
"쳇, 그럼 왜 찾으신 거예요?"
"그건 깊은 사연이 있어서... 아니, 그렇게 깊지는 않구나. 우리 학당에도 학당 우상이 있으면 응원하고 싶어서요"
이유를 밝히던 도중, 아까 들은 말 속에 신경이 쓰이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근데 아까 이번 달 말에 없어진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내 질문을 들은 가수미(嘉秀美)의 안빛이 어두워졌다.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 가수미(嘉秀美)는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이에요... 무서운 학당회장이 직접 말했다구요. 사람들도 다 나가 버렸고, 별다른 성과도 없으니까 없앤다고..."
"그럴 수가... 겨우 찾았는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가수미(嘉秀美)가 기가 막히다는 듯 나를 다시 한 번 째려봤다.
"방법이 있다면 제가 더 알고 싶어요! 인원이 적다고 해도 학당 우상은 혼자서도 활동할 수 있고, 가수미(嘉秀美)는 예전부터 꼭 학당 우상이 되고 싶었단 말이에요!"
투덜거림을 마구 내뱉던 그녀는 또 갑작스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으로 모임이 사라지는 건 싫어요... 으앙!"
"우, 울지 마세요~"
"학당에 와서 드디어 학당 우상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게 어딨어요!"
가수미(嘉秀美)의 눈에서 둥글둥글한 눈물 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니 내 마음이 다 아파왔다. 나는 조용히 곁으로 다가가 가수미(嘉秀美)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가수미(嘉秀美)한테는 학당 우상이 전부인데... 예쁜 옷을 입고 열심히 노래하고 춤춰서 사람들에게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저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거라면 열심히 할테니까 모임을 없애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히끅... 네?"
"혼자 얘기하기 불안하다면 저도 같이 가 줄게요"
위로를 건네자 돌아온 건 뜻밖의 말이었다.
"가수미(嘉秀美)의 시중을 들겠다는 건가요?"
"네? 시중...까지는 아니겠지만... 제가 학당 우상에게 힘을 받았으니, 반대로 힘을 주고 싶어져서요"
"아, 어쩜 좋지~ 가수미(嘉秀美)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 생겼어요~"
"아니, 그러니까 시중이 아니라요-"
막무가내에 난처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가수미(嘉秀美)는 그걸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내게 찰싹 붙어 쫑알쫑알댔다.
"하지만 당신도 학당 우상 모임이 사라지는 건 싫죠? 가수미(嘉秀美)랑 같은 생각인 거죠?"
"네..."
"그럼 도와주세요! 가수미(嘉秀美)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당 우상으로 남고 싶어요!"
"알겠어요. 저도 모임이 사라지는 건 싫어요"
만족스러운 답을 들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수미(嘉秀美)는 헤헷 웃으며 귀여워 보이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당당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에헤헤, 그럼 같이 힘내자구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1학년인 가수미(嘉秀美)라고 해요!"
"아, 난 2학년이야. 가수미(嘉秀美)라고 부르면 될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선배, 잘 부탁드려요!"
이렇게 해서 홍소(虹咲)학당 학당 우상 모임을 지키기 위한 나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한동안 방에서 가수미(嘉秀美)와 작전 회의를 하다가, 결의를 다지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학당회장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학당회장실까지 안내해준 가수미(嘉秀美)는 불안해하는 나에게 실없는 말로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득한 긴장으로 인해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세요" 라는 짧은 한마디가 들려왔다.
"들어오라는데 어쩌지, 가수미(嘉秀美)?"
"들어오라고 했으니 들어가야죠! 힘내요, 선배!"
가수미(嘉秀美)의 응원을 받으며 문을 벌컥 열자 차가운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학당회장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기가 반쯤 죽은 나는 조심스럽게 회장님께 부탁이 있다며 말을 붙여 보았다. 학당회장은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꺼냈다.
"당신은 아마 2학년인..."
"어? 어떻게 아세요?"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만난적 없는 사이인데 어떻게 신상을 아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꼭 붙어 있던 가수미(嘉秀美)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학당회장 말이죠, 모든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우고 있어요"
"대단하다..."
"가수미(嘉秀美)는 오히려 그런 점이 거북하지만요. 서역에서 유행한다는 로보투(勞補透) 같다고나 할까..."
평소 불만이 많이 쌓였는지, 대놓고 험담을 내뱉는 가수미(嘉秀美) 옆으로 소리 없이 다가간 학당회장은 차디 찬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학당회장인 나나(娜娜)라고 합니다. 그래서, 로보투(勞補透) 같은 제게 무슨 용건으로 오셨죠?"
가수미(嘉秀美)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 마냥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용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 저희는 학당 우상 모임에서 왔습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인가요? 그 모임에 당신 같은 사람은 없었을 텐데요"
"저는 학당 우상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학당 우상 모임을 없애려는 결정을 취소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을 들은 학당회장은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그 뒤에는 어쩐지 슬픈 표정을 짓다가, 끝에는 엄하고 단호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유가 뭐죠? 사람은 적지만, 그래도 학당 우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이 있는데-"
"우리 학당은 학당 우상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고, 학당 우상 활동을 희망하는 다른 학당 학생의 편입도 허락했습니다. 학당 차원에서 그렇게 했으니 초창기의 모임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됐겠죠"
이때다 싶었는지 가수미(嘉秀美)가 끼어들었다.
"맞아요! 실제로 세추나(勢趨娜) 선배의 활약은 대단했잖아요!"
"네, 좋은 결과를 보여준 학생도... 있었죠"
세추나(勢趨娜)라는 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학당회장은 몸을 반대로 돌렸다. 왜 저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것보다도 세추나(勢趨娜)라는 사람이 학당 우상으로서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세추나(勢趨娜)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주면 해결될 일이 아닌가요?"
"저기, 선배... 그 얘기는 좀..."
"가서 부탁해보자, 가수미(嘉秀美)!"
안절부절 못하는 가수미(嘉秀美)가 대체 왜 저러는지 몰라 답답하던 순간, 학당회장의 얼음 같이 차가운 말이 내게 날아와 꽂혔다.
"당신이 말하는 세추나(勢趨娜)가 바로 모임을 분열시킨 장본인이랍니다"
"네?!"
학당회장의 말을 듣자마자 가수미(嘉秀美)가 회장의 등을 죽어라고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분을 못 견뎠는지 울먹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아니에요! 분열 같은 건 없어요! 아무도 화내지 않았는 걸요!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마세요!"
"가수미(嘉秀美)..."
"지금은 다들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고요! 모두 돌아올... 거예요!"
엉엉 울기 직전의 가수미(嘉秀美)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학당회장은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가수미(嘉秀美)의 가슴을 찔렀다.
"그게 대체 언제죠? 가수미(嘉秀美) 양. 홍소(虹咲)학당에는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방이 비는 곳을 기다리는 곳도 있죠. 사람도 없고 활동도 하지 않는 모임 대신 성실하게 활동하는 이들에게 방을 배정하는 게 잘못된 건가요?
"그, 그렇지만... 우린 아직..."
이 상황을 뒤집을 뭔가가 없을까 고민하던 나는 순간 떠오른 한마디를 얼른 꺼냈다.
"아직 탈퇴한 사람은 없는 거지?"
"맞아요!"
"탈퇴하지 않았다면-"
"그건 궤변이 아닌가요?"
바로 탈출구를 막아 버리는 학당회장에게 통할 확률은 적을 것 같지만, 그래도 시도 해 볼 가치는 있는 방법을 써보았다.
"저기, 인원수도 충분하고 활동도 다시 시작하면 모임을 없애는 걸 취소해 주실 건가요?"
당연히 바로 거절 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전혀 예상 밖의 태도를 취했다. 학당회장은 난데 없이 빙긋 웃더니 그야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그 태도에 희망을 얻어 그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럼 방 사용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사람들을 모을게요! 그러면 되겠죠?"
"..."
"모임을 없애지 말아 주세요!"
내 애원을 듣고서 잠시 곰곰히 생각에 빠져 있던 학당회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뭔가요?"
"열 명. 사람을 열 명 모으면 모임을 없애지 않겠습니다"
"네에?! 원래 다섯 명만 모이면 모임으로 인정해주잖아요! 왜 열 명인가요!"
따져드는 가수미(嘉秀美)를 학당회장은 단 한마디로 눌러 버렸다.
"맞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섯 명이 한 명으로 줄었으니까요.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죠"
"으윽..."
"열 명쯤 있으면 같은 일이 일어나도 남은 다섯 명이 활동해서 유지가 되겠죠. 안 그런가요?"
"으으... 아무리 그래도..."
따지고 싶지만 더 이상은 어찌 말해야 될지 몰랐는지 씩씩거리기만 하는 가수미(嘉秀美)를 제지하고, 나는 학당회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열 명을 모으고 말겠어요!"
"서, 선배!"
"가수미(嘉秀美), 한 번 해보자!"
"...알겠어요! 까짓것 한 번 모아 보자고요!"
이런 우리를 쳐다보는 나나(娜娜)의 얼굴이 아까 전과 달리 부드러워졌다는 걸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다.
어찌저찌 담판을 짓고 방으로 돌아와 의자에 털썩 앉자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가수미(嘉秀美) 역시 끊임 없이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러더니 조금 뜬금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아.. 한숨 쉬는 가수미(嘉秀美)도 귀엽다는게 제일 난감하네요..."
"아, 아하하..."
"지금 가수미(嘉秀美)를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셨죠?"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했기에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가수미(嘉秀美)처럼 자기 매력에 자신감을 갖는 것도 학당 우상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하거든"
"..."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으니까"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움직여 천장만 바라보던 가수미(嘉秀美)는 잠시 후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선배는 참 특이하네요"
"어? 그런가?"
"네, 특이해요. 지금까지 가수미(嘉秀美)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럼 우린 둘 다 특이한 사람이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버린 가수미(嘉秀美)는 다시 밝은 얼굴을 되찾고는 얼른 작전 회의를 하자며 서둘렀다. 나도 얼른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작전 회의에서 내가 알게 된 건 바로 이것들이다. 학당 우상 모임은 다섯 명이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다섯 명은 각각 가수미(嘉秀美)와 세추나(勢趨娜), 그리고 다른 학당에서 전학 온 가나타(可懶朶), 시주구(是珠具), 에마(恚麻)라는 것. 딱히 싸우거나 갈등이 있던 건 아닌데, 언젠가부터 어색해졌다는 것. 세추나(勢趨娜)의 조언에서 나타나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방향성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는 것. 각자의 색깔이 다르고 하고 싶은게 너무 제각각이라 결론이 나질 않았다는 것까지.
사정을 다 듣자, 일단 기존에 있던 사람들을 설득해 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일단 그 전에 먼저 든든한 아군 한 명을 만들기 위해 그 다음 날, 나는 가수미(嘉秀美)와 함께 교실로 갔다.
"뭐?! 내, 내가 학당 우상 모임에?!"
"부탁해! 믿을 사람은 아유무(娥柳霧) 밖에 없어!!!"
"난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는 건 못 해! 사는 세계가 다른 것 같고-"
엄청나게 당황해서 얼굴이 시뻘개진 아유무(娥柳霧)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열렬히 부탁하고 있자, 빤히 쳐다보고 있던 가수미(嘉秀美)가 쿡쿡 찌르며 무언가를 물어봤다.
"선배, 이 사람은 누군가요?"
"아, 얘는 아유무(娥柳霧)야. 어릴 때부터 친했던 막역한 친우야"
"네에? 아... 음, 선배랑 저 분은 오래된 사이군요"
"응. 아유무(娥柳霧)는 옛날부터 아무리 힘든 일이더라도 끝까지 열심히 하는 애라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아유무(娥柳霧)가 함께해주면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야"
내 발언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는지 살짝 얼굴을 구긴 가수미(嘉秀美)는 자신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가수미(嘉秀美)가 노력가라는 건 그녀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기에, 순순히 맞다고 인정해주었다. 그러자 가수미(嘉秀美)는 삽시간에 낯빛을 정반대로 뒤집고는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어때, 아유무(娥柳霧)? 나랑 같이 학당 우상을 하자!"
"아하하, 정말 넌 대단하다니까. 굉장한 행동력이야"
"어, 그런가?"
"응. 학당 우상을 찾으러 간다더니 학당 우상 모임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바로 사람을 모으러 다니고..."
거기서 한 번 말을 끊고 눈을 크게 깜빡거리던 아유무(娥柳霧)는 다시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어제 처음 만난 후배가 이렇게나 믿고 따르는 것도 대단해!"
"후배라면 가수미(嘉秀美)를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선배랑 전 이미 엄청 친한 사이랍니다~"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가수미(嘉秀美)의 말이 갑작스레 튀어나오자, 아유무(娥柳霧)도 난데없이 옛날에 우리 둘이서 함께 했던 일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 애들이 나와서 재롱 떠는 잔치에 노래랑 춤추러 나가는 게 부끄러워 싫다는 아유무(娥柳霧)을 내가 설득하고 응원해서 나가게 했던 때의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적도 있었지. 그리운 옛 이야기에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가자 아유무(娥柳霧)는 내가 있어줘서 항상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해주며, 학당 우상을 하겠다고 말해줬다. 그러고는 가수미(嘉秀美)와 호칭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온 별명이라는게-
"으음... 가수가수?"
"으아악?! 어떻게 옛날 별명을 아시는 거예요? 가수가수는 안 돼요! 금지, 금지!"
그냥 가수미(嘉秀美)라고 불러주는 게 나을 것 같아. 가수가수라는 말에 질색을 하는 가수미(嘉秀美)를 도와주면서 나는 하하하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며칠 뒤, 우리 세 사람은 연극 모임이 연극을 선보이는 곳에 있었다. 요 며칠 동안 여기 와서 줄창 연극 모임의 연극만 본게 이상했는지 가수미(嘉秀美)는 이래도 되나며 의문을 내비쳤지만, 연극에 흠뻑 빠진 아유무(娥柳霧)는 그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훌쩍거리고 있었다.
"시주구(是珠具)는 정말 대단해... 몇 번을 봐도 아까 그 장면에선 눈물이 나거든. 넋 놓고 보게 되는 연기력이야"
"시주구(是珠具)는 연극계에서 일하는게 장래희망이었으니까요. 학당 우상도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는 거라고 했고요"
"그래서 이렇게 잘 하는 거구나"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는 동안 나는 연극을 마친 시주구(是珠具)를 찾아가 그녀를 두 사람 앞으로 데려왔다. 이 상황이 조금 어색한지 쭈뼛대며 시주구(是珠具)가 자기소개를 했다.
"저, 저기... 안녕하세요. 시주구(是珠具)라고 해요"
"미안해. 피곤할 텐데 귀찮게 해서"
"아뇨, 괜찮아요. 그나저나 가수미(嘉秀美), 오랜만... 아니, 미안해요... 정말..."
일행 중 가수미(嘉秀美)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미안하다는 기색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시주구(是珠具)에게 아유무(娥柳霧)는 연기에 대한 칭찬부터 먼저 해줬지만, 한참을 뜸을 들이던 가수미(嘉秀美)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구를 던져 버렸다.
"시주구(是珠具), 모임에 안 오게 된 이유가 뭐야?"
"...사실 제대로 얘기했어야 됐는데 너무 늦었죠..."
미안함과 슬픔이 한데 섞인 표정을 지은 시주구(是珠具)는 지금껏 감춰뒀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시주구(是珠具)는 연기만큼 학당 우상도 동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학당에 편입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학당 우상 모임에 들어가서 활동하게 되었고, 각자 하고 싶은 게 달랐지만 그것마저도 재밌었다. 그러나 세추나(勢趨娜)가 제시하는 방향에 자신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고, 표현력을 더 키우기 위해 여기서 훈련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 가수미(嘉秀美)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여유가 없어서... 미안해요"
"잠깐, 그럼 시주구(是珠具)는 결국 학당 우상 활동을 위해 임시로 연극 모임에 들어온 거야?"
"네, 맞아요"
나는 속으로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시주구(是珠具)는 학당 우상 활동에 열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가수미(嘉秀美)와 나는 학당 우상 모임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렸고, 시주구(是珠具)는 흔쾌히 돌아오겠다고 했다. 이렇게 또 한 사람이 늘어났다.
"실은 내가 생각해 둔 사람이 있어"
시주구(是珠具)가 합류하고 나서 얼마가 지난 후, 아유무(娥柳霧)는 생각해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아유무(娥柳霧)가 말한 사람은 바로 아이(我而)였다. 확실히 아이(我而)는 우리 학년 중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다. 성격이 밝고, 붙임성이 좋아 누구와 있더라도 금방 친해지는 아이였다. 그녀라면 학당 우상도 정말 잘 해낼 것 같았다.
"좋아, 아이(我而)에게 말해보러 가자"
우리들은 아이(我而)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녀에게 학당 우상 해 볼 생각 없냐는 제안을 했다. 예고 없이 갑자기 받은 제안에 그녀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내가 학당 우상을? 아하하, 말도 안 돼. 나랑 안 어울려~"
"이, 이렇게 부탁해도?"
"미안. 난 모임은 안 들어가기로 했거든"
아이(我而)의 '난 모임에 안 들어가겠다' 라는 선언에 그 이유가 궁금해진 가수미(嘉秀美)가 물어보자, 아이(我而)는 자기는 다양하고 재밌는 걸 잔뜩 해 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급하게 외쳤다.
"그럼 꼭 학당 우상이 돼야 해! 학당 우상은 보는 이들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어!"
"어? 그래?"
"일단 한 번 체험해 보면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둘 정도죠"
"으음..."
"맞아요! 무대에서 보이는 광경을 상상해 보세요!"
"아이(我而)라면 사람들을 잘 끌어들일 수 있을 거야!"
모두들 내 주장에 힘을 보태주었다. 용기를 얻은 나는 더욱 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설득을 이어갔다.
"학당 우상은 아이(我而)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최고의 순간을 선사해 줄 게 분명해. 처음 보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물론 좋은 일 뿐만 아니라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걸 넘어선 곳에 있는 즐거움은 더욱 특별하지 않을까?"
아유무(娥柳霧)가 뒤를 이어 학당 우상의 굉장함을 더 설명해 주었고, 나는 학당 우상이 된 아이(我而)의 모습이 보고 싶다며 마구 구슬렸다. 결국 아이(我而)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다면서 학당 우상 모임의 일원이 되는 것을 허락했다.
"그래서 모임 활동은 언제부터야?"
"저기... 사실은 지금 모임이 없어질 위기라서..."
"열 명 모으지 못 하면 없어질거야..."
"뭐어엇?!"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잠시 마음 정리를 하던 아이(我而)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활짝 미소 지었다. 해보자고. 성격상 그런 도전을 받으면 도망치는 건 못 한다고. 주먹을 꽉 쥐고 힘차게 말하던 아이(我而)의 입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짧은 말은 날 주저앉혔다.
"망신살 안 당하려면 도망 안 가야지! 아, 이건 도망의 망을 이용한 농담인데-"
"흡.......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我而), 너 정말 재밌는 애구나!!!"
주저앉아 폭소하는 나와 달리, 다른 아이들은 정색하며 나를 전혀 이해 못 하겠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유무(娥柳霧)가 중간에 얘는 예전부터 이런 유치한 개그를 좋아했다고 말한 것 같긴 한데, 잘못 들은거겠지?
"아이(我而)의 농담을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럼 이 아이(我而)씨가 인재를 한 명 데려올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론가 달려간 아이(我而)가 잠시 후 데려온 것은 얼굴을 종이로 가린 자그마한 소녀였다.
그냥 단발 개그로 쓰기 시작한건데, 생각보다 너무 길어지는데요 이거(...)
(IP보기클릭)220.116.***.***
(IP보기클릭)2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