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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1), (2), (3), (4), (5), (完)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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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후, 나는 아와시마의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전등을 찔러 넣고, 목에는 적당한 배율의 천체용 쌍안경 하나를 걸고 손에는 비노홀더라 불리는 작은 쌍안경용 삼각대만을 어깨에 멘 채로 다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천체망원경이나 별자리판을 갖고 나오지 않은 건 비단 급해서만은 아니었다.
집에 다다를 때까지만 해도 인지하지 못했던 달이, 너무 환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어서 오히려 큰 구경의 렌즈가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거기에, 간만에 다시 동쪽의 여름하늘에 나타날 오리온자리와 나만이 알고 있는 별을 올려다 볼 때에는 그렇게까지 높은 배율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와시마 신사는 늘 별을 관측하던 곳이라 계절별로 어느 위치에 어떠한 별이 올 지 알고 있었기에 별자리판의 존재감 또한 미미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양팔을 흔들며 계단을 올랐다.
흔들흔들 리듬을 타는 다리.
안그래도 빈 손인데다가 몸에 지닌 도구마저 적당히 가벼워 여느때보다 계단을 올라가기가 쉬웠다.
조금은 신이 나 있는 상태였던 것도 있어서, 산 정상까지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달리기 경주라도 하는 것 마냥 발을 굴렸다.
반딧불이가 희미하게 주변을 날며 나를 응원했다.
반딧불이의 노란 빛덩어리가 메우지 못하는 캄캄한 바닥은 달과 별이 사이좋게 비추었다. 벌레가 내는 다양한 소리들도 한데 뒤섞여 돌계단을 구름처럼 녹였다.
중앙에 있는 난간을 향해서 손을 뻗는 대신, 습한 여름의 공기와 달아오른 체온을 좇기 위해 얼굴에 부채질을 하려고 하니 벌써 정상이었다.
여름의 어둠 속에서 도착한 신사는 고요가 감돌았다.
함께 올라온 벌레들의 소리는 커녕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아우성마저 들리지 않았다.
달도 점차 구름에 가려져 가고 있어 적당한 환경이 조성됐다.
그렇다면 이제 곧. 곧이다.
앞으로 조금 후면 오직 별만을 올려다 볼 수 있을 터.
두근두근한 심장소리를 숨기며 별과 만날 준비를 한다.
어깨에 둘러 멘 삼각대를 신사 앞 쪽 공터에 내려놓자 갑각을 두른 상태로 주변을 메우던 작은 구경꾼들도 매너 좋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이어서 재빠르게 삼각대를 설치한다.
반딧불이와 달을 포함해서 주변의 빛이 사라지는 바람에 역으로 불빛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지만,
여기서 불을 켜면 또다시 눈이 어둠에 적응할 시간이 길어질테니 손의 감각만에 의존해 삼각대의 다리를 늘려 고정시킨다.
이 다음은 쌍안경을 삼각대의 끝에 올려 고정시키고, 충분한 암순응을 기다리고 나면 홀로 머리 위로 쏟아질 빛을 마주하는 일만이 남게 될 것이다.
머릿 속에 그런 식으로 목표를 떠올린 덕분인지, 삼각대 다리의 나사를 조이는 손의 움직임이 더욱 기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심코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점차 높아져가는 기대감을 숨길 수 없던 그 때, 시야에 무언가가 반짝하고 빛났다.
늘 시선을 올리던 동쪽 밤하늘에 무언가가 빠르게 호를 그리고 있었다.
투명한 밤하늘에 빗금이 새겨지는 풍경이 비치며 '아' 하고 저절로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별이 그리는 아름다운 자국에 대한 경탄과 그 뒤로 남겨지는 뒤숭숭한 산란함이 담긴 한마디가 바람을 타고 함께 사라졌다.
한숨의 담긴 의미를 되짚어 볼 겨를도 없이, 정확히 그 빛이 뭐였는지도 모르는 채 아직 제대로 된 암순응을 거치지 않은 안구로 뒤늦게 궤적을 좇았다.
그러자 올려다본 하늘로부터 약하디 약한 빛의 부스러기가 어렵게나마 망막에 투영되었다.
그리고 금새 꺼졌다.
눈동자 뒤로 사라져가는 흔적 앞에, 내가 매일 올려다보던 별이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감이 빠르게 덮쳐왔다.
풀어낼 수 없는 궁금증이 머리를 마비시켜오는 것 같았다.
어딘지 어수선하고 혼란해진 마음에는 안타깝게도, 확신을 가지고 불안을 쳐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달빛과 반딧불이에 익숙해진 눈이 별을 볼 수 있는 정도의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별 다른 방도가 없어, 일단 침착하게 자신을 다잡고 5분 정도를 가만히 기다려보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이틀도 견뎌냈는데 이쯤이야 하고 만만하게 여기고 눈을 감았다.
하나, 둘.
초를 센다.
하루 중에 가장 바라왔던 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수를 헤아린다.
일곱, 여덟.
마리가 우치우라에 전학 온지도 벌써 7년이 지났다.
'벌써' 라고 표현할만큼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서른, 서른 하나.
이제 그 아이가 이곳을 떠난지 약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오늘이 꼬박 30일에서 31일로 넘어가는 밤이었던 것 같은데.
구십, 백.
어둠 속에서 꼼짝도 않고 버텨내는 것은 꽤 고되다.
시간이 천천히 옆을 지나가는 감각이 무척이나 길고도 허무하게 느껴진다.
백오십, 백오십일.
손등이 가렵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백사십이. 이백사십삼.
이마에서는 땀이 굴러 내려오고, 머릿 속에는 별에 별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삼백이라는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마음 만은 잦아들고 있었다.
이백구십팔. 이백구십구..
눈이 별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의 어둠에 적응되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늘 바라보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아까의 '아'하는 감탄과는 다른 분위기로 급격히 자신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시야의 끝에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었던 속마음과는 반대로, 맨눈으로도 어렴풋하게는 보여야 할 그 별이 원래 있던 자리에 없었다.
대신이라고 해야할지, 추적추적한 이슬비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몸이 젖어들며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지만 그렇다고해서 포기하기는 일렀다.
배율 높은 쌍안경을 눈에 갖다대기만 하면, 분명 보이지 않던 빛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막상 손은 주저하고 있었다. 가슴께에 걸려있는 쌍안경의 플라스틱 몸체까지 팔이 올라왔다가도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이게 끝일까. 이대로 만날 수 없는 걸까.
몇 번이나 그런 답답함에 가만히 손만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보처럼 한 동작만을 되풀이했다.
공허하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항상 올려다 본 별이 졌는지 어땠는지 확인하기가 점점 망설여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팔이 아픔을 호소할 때가 되어서야, 지친 마음을 땅바닥에 놓아두고 가만히 웅크렸다.
아직 거기에 있는지 재확인 할 것도 없이 별을 떠나보내는게 좋다는 생각이 마음을 차츰 좀먹어왔다.
그런데 만일 떠나보낸다고 한다면,
이미 별만을 들여다보기 위해 주변의 어둠에 익숙해진,
암순응을 거친 내 눈이 별 없이 살아갈 수 있기는 한 걸까.
애초에 보내주는게 옳은 판단이긴 한 걸까.
우리는 이렇게나 닮았는데.
바닷가 위 동떨어진 섬에 사는 나나, 밤하늘에 홀로 떠있는 별인 너나 다를 바가 없는데.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떠오르는 질문들을 무시하려 애쓴다.
의미없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나도, 그리고 별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별이 이런 작은 섬에 머무를 때가 아니라, 하늘을 한창 가로지르고 있어야 할 별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그렇게, 그녀가 작은 세계를 넘어 자유롭게 그녀 자신의 색으로 우주를 덧칠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별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작은 빛의 흔적이라도 감사히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별이 남기고 간 빛은 원래부터 나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 조그마한 빛의 부스러기조차 내게는 너무나 눈부셔서.
나로서는 빛이 내 안에 낳은 그림자에 삼켜지지 않도록 발버둥 치는 것이 고작일테니까.
혼자만의 납득 속에서 어둠을 충분히 꿰뚫어 볼 수 있게된 눈을 감았다.
망막에는 별의 마지막 궤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더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건,
그 빛이 이미 먼 과거에서부터 오는 빛이기 때문일까.
거듭된 자문을 지워가며 암흑 속에 가만히 손을 뻗는다.
손에는 계속해서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억지로 다른 무언가를 움켜쥐려, 방황하던 손을 주머니 안에 찔러 넣었다.
너를 배웅할 때 쓰던 손전등이 손등에 부딪혔지만, 이번만큼은 쥐지 않았다. 쥘 생각이 없었다.
홀로 침묵하는 나의 곁에, 목덜미를 스쳐가는 서늘한 바람과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만이 남아 여름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뜨거웠던 계절이 저물어가는 시간을 시작으로, 별이 내 안에 남긴 최후의 끄트머리마저 사라져 간다.
유성을 닮은 눈물자국이 뒤를 따라 서투르게 흐른다.
그 배후를 좇아, 언젠가는 멀리서 오는 별빛을 올려다보는게 아니라 직접 머나먼 은하를 가로질러 별을 마중하러 갈 수 있기를 하고 미숙하게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시간이 전부 내 눈에서부터 벗겨졌을 때,
별은 여전히 내 마음보다 앞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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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시차'에 이어서 헤어진 뒤 3학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카난의 이야기가 오늘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진행에 있어서 마리의 나레이션보다 조금 더 덤덤하고 남성적인 어조로 흘러가도록 하기도 했고, 옛날 이야기를 통해서 개연성을 부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이전보다 지루하게 많이 길어진 글임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카난, 별(星, 別)'은 별(星)을 보는 취미를 가진 카난과 이별(離別)에서의 별(別)이라는 두 가지 글자를 가지고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하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비가 내리는 날을 창가에 앉아 지루하게 버티던 카난. 그런 카난은 섬에 찾아오는 별의 소중함을 자기도 모르게 마리에게 대입해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겨우 비가 그쳐 매일 들여다보던 자신의 별을 보러 갔을 때 마침 별은 져버렸고, 별이 자신만을 찾아와주는게 아니라 드넓은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게 옳다고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정말 소중하게 여기던 마리를 떠나보냈다는 내용입니다. 별똥별의 자국처럼 흘러내린 카난의 눈물은 그걸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요
거기서 드러나는 이중적인 마음이 제목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다음 작품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다이아와, '쿠로사와 다이아' 자신의 이야기가 됩니다
시간이 다시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완성되려면 조금 걸리겠지만, 또 써 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든지 편하게 피드백이나 감상을 남겨주시면 감사히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