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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 마리, 시차(時差, 視差) - (1), (2), (3), (完)
- 카난, 별(星, 別) - (1), (2), (3), (4), (5), (完)
- 다이아, 우로 (雨露, 愚魯) -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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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리를 찾아가기로 했던 그 다음날은 마침 주말이어서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와시마 호텔의 요트도 아침에 항구를 빠져나간 흔적이 없어서 시기적으로 완벽한 날이었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전날까지 내렸던 비도 그쳐서 날씨가 방해하는 일 조차도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부두에 나가 쉬이 다이아를 맞이하고, 함께 아와시마 호텔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이 날에 우습게도 우리는 호텔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고 반나절을 헤맸는데,
처음에는 다이아가 쿠로사와가에서 준비한 선물을 두고 왔다는 이유로.
두번째로는 숙박객도 아닌데 호텔에 그냥 찾아가서는 안된다는, 그야말로 그 또래의 아이들이 생각할 법한 나름의 이유였다.
다이아가 다시 집에 다녀왔을 무렵에는 나도 다이아도 완전히 맥이 빠져있었다.
거기에, 잠시 쉬어간답시고 아와시마를 삥 둘러보며 마리는 어떤 아이일까하고 각자 상상 속의 그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우리의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노닥거림에 가까워서, 그 날은 그냥 다이아가 아와시마에 하루 놀러온 것으로 끝날 뻔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산만하게 아무런 소득없이 흘려보내던 우리지만, 도중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용기를 내어 호텔로 향했다.
당시는 아직 둘 다 키가 다 자라지 않아 지금에 비해 보폭이 무척 좁았음을 감안하더라도, 아와시마가 워낙 작은 크기의 섬이었기 때문에 호텔까지는 금방이었다.
끝내 도착한 바닷가 배경의 6층짜리 리조트.
유럽 풍의 아와시마 호텔에 다다른 나는 답지 않게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나 맛집이라도 집 근처 가까이에 있다면 오히려 잘 가지 않게 되는 것처럼, 내가 아와시마 호텔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갔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기에 더 그랬다.
가까이서 접한 베이지색 외벽의 건물은 멀리 떨어진 아와시마 부두에서 봐왔던 것보다 훨씬 더 커보였고, 왠지 모를 위압감을 내뿜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기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다이아와 누가 앞장설 것인지 같은 쓸데없는 다툼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다이아와 내가 양쪽 모두 양보해서, 호텔로 바로 직행하기보다 호텔의 정황을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정원에 먼저 가 보기로 결정했을 때는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시기가 되는 게 타당한 수순이었다.
겨우 발을 내딛은 정원은 꽤나 이국적인 정취를 간직한 장소였다.
발밑으로 새하얀 돌이 번쩍였고, 분수대를 둘러싼 키작은 나무들 사이로는 배부른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서 도저히 일본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었다.
늘 봐왔던 푸른 바다 너머로는 여전히 후지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풍경이 지어내는 냄새가 많이 달랐다.
길 양옆으로 오손도손 민들레가 피어 어딘가 신비하기까지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그 나이대의 소녀로서 손쉽게 눈을 뗄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음에도 우리의 감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갈팡질팡 끝에 간신히 들어온 정원은 건물이 잘 들여다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것도 가릴 것 없이 탁 트여 있어서, 분수대 뒤를 제외하고는 숨을 곳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다음 갈 장소를 정하지 않는 이상 분수대 뒤에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았기에, 다이아와 나는 분수대 옆 대리석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 호텔 건물의 창문마다 마리가 보이지는 않는지, 혹은 마리가 사용한다면 어느 방이 적합할지 등을 우선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동안은 작은 분수대 앞에 불편하게 쭈그리고 앉는 형태로 밖에 있을 수 없어서 계속 거기에 있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호텔방의 갯수가 많았던 만큼 우리끼리의 토론은 앞서 상상 속의 마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더욱 열기를 띠었다.
어느새 숨어 들어왔다는 사실도 잊고 큰소리로 떠들만큼 다이아와 나는 몰두하고 있었다.
토론의 논객으로서는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을 다이아와 기나긴 주장의 교환을 마치고 마침내 '맨 윗층에 테라스가 있는 방이 마리의 방이다'(정답은 맨아래층이었다) 는 결론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을 즘에는, 슬슬 노을이 지려 하고 있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의 우리는 크게 한 일도 없이 지쳐 있어서, 둘 다 절반쯤 포기한 심정이었다.
나는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다음을 기약하고 다이아를 선착장에 데려다 줄 준비나 하고 있었고, 다이아도 근시일내에 다시 오자며 바로 내일의 일정을 얘기했다.
하지만 꽤 긴 시간동안 계속되었던 대화 덕분일까.
그 시점에서 우리는 호텔 안에 있던 마리에게 아주 확실하게 존재를 들킨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구두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아무런 발소리가 나지 않아야 할 정원에 규칙적인 기척이 메아리쳤다.
나는 그게 영락없이 다이아가 내는 잡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닥에서 일어나 바지의 흙을 터느라 신경을 쓰는 사이에 다이아가 먼저 일어났으니까, 다이아 쪽에서 신발을 고쳐 신으며 내는 소리라고만 여겼다.
그렇지만 내가 다이아를 쳐다봤을 때 다이아는 놀란 표정으로 내 어깨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고,
그제까지 한 번도 본적 없었던 다이아의 당황함에 물든 모습에 의아해진 나는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끝난 곳에는 우리가 찾던 소녀가 있었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아가씨와 같이 고급스러우면서도 단정하게 차려입은 마리가 다가오는 중이었다.
마리는 처음으로 항상 이끌고 다니던 구름을 벗어나 샛별처럼 이쪽으로 날아 들었다.
쭈뼛쭈뼛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부드럽게 내려오는 노을 빛이 호텔 외벽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잔상으로 인해, 건물을 뒤로하고 걸어오는 마리는 사라질 듯 어렴풋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다이아가 헉하고 내뿜는 호흡이 느껴졌다.
나는 다이아의 눈길을 따라 다시 마리를 바라보았다.
마리는 이제 분수대 바로 건너편에 다다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멈춰있었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마리가 나지막하게 도와달라고 속삭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아무 근거도 없이, 우리 셋이 곧 같은 미래를 공유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뜻밖의 재회에서 오는 그 기묘한 인상은, 별을 올려다 볼 때 그 별이 나만을 지켜봐주고 있다고 느껴지는 감각과 닮은 막연한 착각일 것임에도,
또렷하게 가슴 안쪽에서 앞으로 오래도록 잠들지 않을 고동을 일으켰다.
아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먼 시간의 흐름이 분명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에게서부터 피어오른 그 예감은 금새 미약해져가기 시작해서, 나는 이윽고 마리 주변에 흩날리는 빛이라도 잡아보려 최대한 양팔을 길게 뻗었다.
그러자 내 손에 의해 오히려 그 미래의 빛이 점점 퇴색해 지워져가는 것 같았다.
저녁 노을을 따라 기울던 빛이 완전히 소멸하려는 찰나에 별은 가까스로 나를 향해 안겨들었다.
마리에게서 전해지는 따스함이 심장의 리듬에 박차를 가하며 어느새 분수대에 가득찬 꿈같은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켰다.
가장 중심에 놓여있던 빛은 어떻게든 바람을 피해 숨어든 불씨처럼 다행히 금새 품 속에서 되살아났다.
다만 왜인지 팔 안쪽에 담긴 별은 더 이상 찬란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별을 품었다.
머리에 직접 쏟아질 듯 보여도 실은 섬 위 멀리서만 뱅글뱅글 돌던 별에 겨우 만났다.
더불어, 미래라고 여겨졌던 것을 쥐었다.
그것이 언제라도 부서져 금방 손에서 빠져나가게 될 가냘픈 관계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우리가 공유하던 시간.
모든 걸 함께하던 공간.
한마음으로 바라봤던 방향.
한 때 거기에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던 가능성을, 지금의 나는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 스스로 놓아버린 것일까.
비가 내려 별을 올려다 볼 수 없는 밤이 될 때,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했던 그 모든 행동에 대해 과연 옳은 판단이었던 건지 가끔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