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다
- 리코, 어린왕자(상편)
- 리코, 어린왕자(하편)
- 에필로그 : hom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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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서 나와 함께 놀아요.」
타천사가 제의했다.
「난 당신과 함께 놀 수 없습니다.」
전학생이 말했다.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으니까요.」
어린왕자
1
들켰다.
아아, 어떡하지. 이런 모습을 들켜버리고 말다니,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거야.
지금의 자신은 안뜰에 있는 현관에서 홀로 벽에 걸린 그림에게 인사를 하는,
말 그대로 '벽성애자'라고 오해받아도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평소처럼 이른 아침, 홀에 걸려있는 작은 벽화 속 천사가 귀여워서.
'오늘도 힘내'라며 방긋 미소를 지어주는 것 같은 그 그림이 좋아서, 늘 하듯 반갑게 손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살짝 옆을 보니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하나.
그리고 그 시선에 당황하여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얘기이다.
굳이 따지자면 공공장소에서 보통사람들이 하지 않는 행위(?)를 했으니 자업자득이지만.
그래도 이런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가 올 거라고는.
(...어딘가에 쥐구멍이라도 없을까.)
천사의 응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일 하는 일종의 의식에 오히려 힘이 빠진지 오래였다.
나무 뒤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그 아이는, 나름 배려를 하려고 들키지 않게 숨어있는 듯 했지만
머리의 일부인 경단이 밖으로 삐져나왔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것이겠지.
경단이 아닌 평범한 헤어스타일을 했다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관찰되어지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면 이렇게 부끄럽지 않았을지도.
「읏...음, 그럼 오늘도 힘내볼까.」
민망함으로 쳐질대로 쳐진 어깨를 이끌고 정신을 차려 복도 뒤로 몸을 옮겼다.
부디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던 그 아이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슬쩍 돌아보니.
그녀는 노란색의 세일러가 뒤집혀진 것도 모른채 궁금증 가득한 와인색 눈동자를 전방으로 유지하며
총총걸음으로 어느새 내가 서있던 자리로 건너와.
(...??)
천사벽화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매우 수상한 미소를 지었다.
2
그 아이와 재회하게 된 건 며칠 후 부실에서였다.
Aqours의 첫 라이브가 가까스로 성공을 거두고 신이 난 이사장님의 가호 아래 부실도 쉽게 확보.
뒤이어 1학년의 미소녀 둘이 동시에 합류한다는 경사스러운 일이 연속적으로 있던 봄의 끝자락.
열린 창문 틈새로 바닷내음이 바람에 넘실대던 그 날은 다음 곡의 컨셉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날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먼저 와 있었어유.」
부실 문을 연 그 곳에는 이미 도착한 루비쨩과 하나마루쨩과 경단머리가....경단??
(켁...)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는 익숙한 뒷모습에 당황하여, 무심코 소리가 새어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막았다.
그 아이는 내가 그 날 아침 그녀에게 발견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걸 모르는데, 이쪽에서 먼저 눈치채면 더 창피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 분명해 나온 행동이었다.
「아, 안녕? 수업은 일찍 끝났나 보네? 저, 이 아이는?」
「같은 반의 요시코쨩이에유.」
「그래? 혹시 두 사람처럼 스쿨아이돌활동을 체험해보려 온거야?」
「아니어유. 그게 아니라..」
문 앞에 쭈그린 상태로 길고 가는 손가락을 구부려 몇 번이나 땅을 콕콕 두드리는 니삭스의 1학년생.
며칠 전 어딘가의 도쿄전학생의 부끄러운 모습을 주욱 지켜봤던 그 아이는
반 학생들 앞에서 중2병적인 자기소개를 했던 것을 계기로 등교거부를 해온 츠시마 요시코쨩으로
남몰래 학교에 찾아온 것을 하나마루쨩이 발견하여 그녀의 용기를 북돋아 학교적응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오늘, 반에서 또 본능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
어쩔 줄 몰라 그대로 석고상이 되어버린 것을 두 사람이 주워왔다고 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이런 형태로 마주하게 될 거라고는...)
땅 쪽으로 시선을 향한 채 '끝났어. 이젠 진짜 끝이라구'라고 내뱉는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그 날의 내 것과 비슷한 축 처진 어깨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2학년 선배 두 분은 잠깐 언니, 아, 학생회장님께 갔다 온다고 하셔서 마루쨩과 함께 요시코짱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어요.」
「으응, 그래? 어떤?」
「요시코쨩은 중학교 시절부터 줄곧 자기를 타천사라고 믿고 있었던 모양이어유.」
「타...타천사?」
학교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야릇한 단어에, 당황하고 있는 나를 뒤로하고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냈다는 하나마루쨩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쥬...」
평범한 여고생을 연기하려 했던 중2병의 소녀. 촛불과 기이한 문양이 그려진 검은색 보자기를 들고 다니는 그녀의 이야기.
이제는 개성이 된 그녀만의 취미(?)이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재기불능에 빠지는 그 이야기에, 어느정도 흥미를 느꼈다.
물론, 흥미있다고 해서 따라할 마음 같은 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수수한 자신과 달리 특별한 꿈을 꾸는 것 같았고.
정말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이 느껴지기도해서 하나마루쨩의 말에 '그렇구나' 하고 공감해준다.
꺼림칙하긴 하지만 내가 조금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니 치카쨩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도 몰라. 분명 같이 스쿨아이돌을 하자고 하겠지.
그리고 대체로 귤색의 아가씨가 그런 마음을 먹으면 좀처럼 멈출 수가 없다는 걸, 나뿐만 아니라 부실에 있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치카쨩이 땅바닥에 주저앉은 하급생에게 손을 내밀며 멋진 얼굴로 권유를 하는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찰나.
「오, 리코쨩! 와 있었네.」
「다녀왔어요-소로!」
지켜 보고 있는 사람의 텐션마저 올려버리는 사이좋은 콤비가 도착했다.
그리고.
「이거다!」
역시나.
3
그렇게 자연스레 요시코쨩이 Aqours에 들어오며 접점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아이와의 인연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계속되었다한들 학년이 다르고 관심사도 서로 달라 딱히 친해지는 것도 없었고
첫만남에 대한 기억이 다소 부끄러웠던지라 내 쪽에서 의도적으로 둘 만 있게 되는 상황을 만들려 하지 않았기에,
어쩌다가 같이 있게 되면 조금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만약 단체 사진을 찍는다면 서로 가장자리에 서서, 제일 먼 위치에 있을 것 같은 우리.
졸업식이나 되서야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될 것 같은.
단지 같은 동아리의 선,후배 관계일 뿐인 그 관계성에.
어느 봄날의 아침, 학교현관에서의 일도 점차 잊어져 가는 듯 했다.
「요시코쨩이 리코쨩에 대해서 물어왔어.」
그런데 이건 뭐람.
내가 '타천사'라는 컨셉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을 즈음, 같이 점심을 먹던 요우짱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해왔다.
「켁..콜록 콜록.」
「앗, 리코쨩 괜찮아? 여기 물 좀 마셔.」
「괘, 괜찮아. 갑자기 사례가 들렸나봐.」
탐정놀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나에 대해서 질문을? 그것도 본인에게 하는게 아니라 요우쨩을 통해서?
다소 멀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불편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간접적으로 물어봤다는 것이 이상했다.
「요시코짱이 미술실에 찾아가지 않았어? 리코쨩?」
「본 적 없어, 전혀.」
「그래? 눈이 당장에라도 갈 기세였는데.」
...??
평소에도 대화가 많이 오가는 편은 아닌데 갑자기 미술실에 방문을 하려 했다는게 의심스럽다.
이제와서 약점이라도 잡아내려는건가.
혼자 있을 때 찾아와서 '그 때 그건 뭐였어요?' 하며 확인사살을 한다거나.
아니면 '아항? 리코선배도 안쓰러운 사람이었군요.'하고 놀려먹는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큭큭큭, 제 방송에 리틀데몬으로서 함께 해주셔야 겠어요.'하고 코스프레를 시킨 후 이상한 포즈를 강요한다거나.
어느 쪽도 싫어서 저절로 고개가 세차게 저어진다.
미술실은 당분간 무리!
「저기 리코쨩, 나한테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기억해?」
무심코 고개를 좌우로 흔든 모습을 '하하'하고 짧게 웃으며 지켜본 요우짱이 말을 이어나간다.
「응? 어린왕자? 무슨 이야기였었지?」
「내가 '누마즈가 도쿄와는 어떻게 달라?' 하고 물어봤을 때. 도쿄와는 전혀 다른, 별들이 수없이 흘러가는 밤하늘에 대해서 얘기해 준 것 말이야.」
「아아..그..」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 요우짱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떠올린 순간 말이 겹쳐졌다.
아름다운 누마즈의 밤하늘은 이곳에 와서 내가 가장 놀란 것이었고, 치카짱 요우짱과 분명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런데 그걸 왜 지금.
「리코쨩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 않아?」
「.....」
놓치고 있다고?
「...자, 그럼 내가 어리숙한 전학생에게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것은 여기까지.」
「요, 요우짱. 나 딱히 아무 말도 안했는데. 그보다 이거 뭐에 대한 어드바이스?」
「그건 스스로 생각해봐. 리코쨩은 내가 처음 사귄 도쿄사람이니까 특별히 서비스 하는 거라구.」
그렇게 말하며 짓는 그녀의 미소에는 봄향기가 나는 것 같은 푸근함이 있었다.
계절은 이미 여름인데도 분위기를 바꾸어버리는 그 표정에.
상쾌함과는 다른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으니.
「도시사람들은 '관계를 만드는 방법'에 익숙지 않은 것 같으니까.」
뻗은 손을 악수하듯 움켜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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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것은 리코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지난 번 요시코의 내용 뒷부분에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요시코SS와 같은, 평행한 시간대에서 리코의 입장을 다루었습니다
요우짱이 양쪽 SS에서 계속 등장하는데
실은 이것이 지난 요우짱의 SS, '거리' 와도 같은 시간대를 공유하는 것이어서 그렇게 되었네요
'거리'의 앞부분에서 요시코짱이 요우의 집에 자주 찾아오는 듯한 뉘앙스나
치카가「그러고 보면,최근, 리코쨩이 무턱대고 요시코쨩을 적대하는 것 같아」라는 대사
그리고 강당 뒤에서 이루어지는 요시코와 요우의 대화의 부분들이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요우짱 SS, '거리'와 짝이 되는 치카의 이야기도 구상 중입니다ㅋ
이번 SS에서 마지막의 요우와 리코의 별하늘 대화는
지난 요시코의 SS글에서 맨 앞에 언급된 g's magazine의 리코 인터뷰의 첫번째 질문내용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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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 본인도 뜨끔하겠죠ㅋㅋ | 17.06.23 00: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