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
- 프롤로그 : 마리, Scrap - Zero에서 쓰는 시
- 다이아, 빛이 있으라
- 에필로그 : 서투른 꿈을 다시(가제)
만약 이 목소리가 전해진다면
시간과 공간과 마음의 울타리를 넘어서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그 사람에게 다짐하고 싶어
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고
두 사람과 소중하게 여기던 이 곳을
지켜내보겠노라고
빛이 있으라
1
「어, 언니...?」
「무슨 일인가요 루비?」
「으..으응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 잘 자.」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 짧게 한숨.
2년 전 그 날 이후로 루비는 가끔 이렇게 찾아와 뜸을 들인다.
언니로서 여동생에게 무슨 일인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묻고 내용에 따라서 상담을 해 줄 수도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
루비가 찾아오는 그 이유를 일찍이 알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하나뿐인 소중한 여동생과 거리가 멀어질 각오를 하면서까지 입장을 고수한다.
사실은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건만.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뮤즈의 이야기, 에리치카와 하나요짱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고 싶건만.
「저도 정말 무르군요. 이래서야 언제까지고 어린애인걸까요.」
미안한 감정과 죄책감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벽장 속 숨겨놓았던 스쿨아이돌 잡지들에 시선이 갔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도 루비에게 보여줄 수 없는 물품들이자 갖고 있는 것만으로 조금은 괴로운 기분이 되는 과거의 조각들.
수십 번을 정독했어도 다시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손을 뻗다가, 대신에 그 옆에 놓여져 있던 학생수첩을 꺼내기로 한다.
그리고 내일 있을 입학식을 위해 학생수첩에 적어 놓았던 계획들을 다시 한 번 체크.
「그래요.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쿠로사와가의 장녀이자, 우라노호시의 학생회장으로서 전력을 다해야 할 때이다.
2
'따르르르릉'
전화벨소리를 닮은 단순한 알람소리에 맞추어 몸을 일으킨다. 깨어난 곳이 방바닥이 아닌 책상이었던 것으로 보아, 오늘의 일정을 준비 하던 중에 깜빡 잠든 모양이다.
조금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책상을 정리. 환기를 위해 창을 열면 어느새 개화한 벚꾳이 아름답게 흩날렸다.
「입학식의 계절답군요. 어제만 해도 이 정도로 피어있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흐드러지는 그 풍경에 취할 새도 없이 또 져버리고 말겠지. 미쳐 제대로 흩날려보지도 못한 우리의 꽃처럼.
피었으므로, 진다. 그 찬란한 무상감에 마음이 저려온다 한들 마냥 감상에 젖어있을 수는 없다.
앞으로 1년. 1년 안에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나의 어렸을 적 모습을 닮아 더 애착이 가는 여동생이 학생으로서 추억을 쌓을 그 곳이 없어져 버리고 말기에.
「우선은, 등교를 하도록 하죠.」
미리 준비해 둔 원고를 가방에 넣는다.
단순한 동작을 이어나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떨어지는 꽃잎이 아쉬워 자주 밖을 돌아봤다.
열린 창 틈새로 불어오는 봄바람에도 머리가 환기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3
「검도부입니다!」
「발레, 같이 해보지 않으실래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몸단장 중인 루비를 뒤로 하고 먼저 발걸음을 옮긴 학교에는 이런저런 준비가 한창이었다.
'우라노호시 여학원 입학식'이라는 입간판을 뒤로, 새로 이곳에 교복을 입게 되어 마음이 들뜬 학생들과
그런 자녀들을 축복하기 위해 정장이나 전통복장을 차려입고 함께한 학부모들.
멀리 보이는 동아리모집 활동에 여념인 상급생들까지. 그야말로 'The 봄'이라는 풍경에 나마저도 두근두근한 느낌이 된다.
신입생이 늘어나지 않을까, 다른 지역에서 찾아와주지는 않을까. 그러한 기대감에 여기저기 둘러보니, 아쉽게도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얼굴들.
그래도 그들의 미소에서 나오는 시작의 향기가 좋았다.
행복한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니 부디 지금을 즐겨주시길. 그렇게 스쳐가는 신입생들에게 마음 속으로 행운을 빌어주고 학생회실로 향하려던 찰나,
「스쿨아이돌부입니다~~! 봄부터 시작하는! 스쿨아이돌부!」
어디선가 들려오는 활기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2학년으로 보이는 학생 두 사람이 스쿨아이돌부 홍보를 하고 있었다.
'스쿨아이돌부는 더 이상 우라노호시에 없습니다만...'
그래도 스쿨아이돌인가.
스쿨아이돌, 가슴을 울리는 단어. 다섯글자에 불과한데 많은 기억들이 담겨있는 단어다.
Aqours의 스쿨아이돌 활동은 반년도 채 안되었지만 그 짧은 기간은 하루하루가 충실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청춘이라고 부를 만한 시간이 주변에도 즐겁게 보였었던것인지 작년에도 스쿨아이돌 부활동을 만들겠다고 하급생들이 찾아왔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모습을 따라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그 말에, 그리우면서도 약간은 언짢은 감정이 들었던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지원해줄 목적으로 그녀들을 조금 떠 보았는데 고작 그것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단지 학생회장으로서 허가를 내리기 전에, '뮤즈'를 너무나 좋아하고 'Aqours'로 활동했던 쿠로사와 다이아로서 진심을 확인해 보려고 했던 것 뿐인데.
이 곳에서 활동하는 그 악조건들을 넘어서 정말 좋아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뿐인데.
저 아이들은 다를까하는 의문에 얼굴을 노려보다가
'...아니, 얼마 안 가 흥미가 없어져 버리겠죠. 처음부터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렇다면 굳이 나서서 정정해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기세 좋게 외쳐대는 귤색 머리의 학생을 무시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4
「쿠로사와 있니? 아, 다행이다. 여기 전에 네가 말한 마을 홍보건인데.」
「아, 일부러 여기까지...감사합니다, 선생님. 혹시 문제가 있나요?」
「아무래도 여학교라 학교 개방시간은 늘릴 수 없고, 주말에는 선생님들도 항시 근무할 수는 없어서 말이야.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여러모로 신경쓰이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괜찮단다. 쿠로사와가 우라노호시에 쏟는 애정은 이미 잘 알고있는걸.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테마는 아닌 것 같지만 힘내보렴.」
「네, 감사합니다.」
입학식 환영사의 일로 머리가 복잡해 교무실에 다녀온다는 걸 잊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역으로 학생을 찾아오시게 만들다니, 학생회장으로서 실격.
선생님이 나가시자 한숨을 푹푹 내쉬며 받아 든 보고서에 가위표를 추가한다.
-우라노호시고교 및 누마즈 인근 지역 활성화에 관하여-
이 보고서는 학교를 박물관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경우를 상정했던 것으로
학교에 가까운 해안가 쪽 외벽들에 그림을 그려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뱃사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과 고서들을
교실과 복도에 배치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을 늘린다는 게 주된 골자였다.
「여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는...인가요.」
분명 그랬다. 이 주변의 역사나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일은 여고생이 갖기에는 다소 고풍스러운 취미이니까.
마카롱이나 쿠키 등의 스위트와 차를 접대하는 까페 같은 걸 운영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것도 입학생 수를 늘리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다른 방법이 또 없을까. 이럴 때는 역시 외부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눈을 감으니.
'oh~! 다이아는 너무 생각이 굳어있어~ very hard!'
'마리! 아무리 다이아라도 머리가 돌맹이 같다고 하면 상처받을거라구?'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말을 끼워 넣는 건가요, 카난씨.'
사고가 유연해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레몬색 눈과 늘 푸근한 느낌의 처진 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하지만 한쪽은 이제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을 뿐더러 다른 한쪽도 휴학 중, 게다가 이런 일이라면 더욱 더 상담할 수 없음에 고개를 내젓는다.
「...주말에 부모님께 여쭤보도록 할까요.」
오늘은 사랑하는 여동생의 입학식이니까. 언니로서 모범을 그리고 학생회장으로서 신입생 루비를 환영하러 가는 것에 집중하자.
언제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두 사람 없는 학생회실을 뒤로하며 홀로 강당으로 향했다.
5
강당은 봄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싹이 푸릇푸릇하게 올라오는 나무에게서 느껴지는 듯한 그 아우라는 분명 계절의 요정이 선사하는 마법.
싹을 틔우는 신학기의 마법이다.
이 행복한 마법은 걸린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여느때보다 부드러운 인상을 짓게하는 듯 했다.
그렇게 누구 하나 빠짐없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채, 광이 날 것처럼 평소보다 정성스러운 복장을 한 모습.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그 모습에 자연스럽게 동생의 모습이 겹쳐졌다.
어디있는 걸까 궁금해서 지역 유지의 아가씨로서 몸가짐에 신경쓰며 고개만 살짝 들어 줄을 살피니, 쓰다듬고 싶은 붉은 색의 양갈래 머리가 금새 눈에 들어온다.
'루비, 또 불안해 하고 있는 건가요. 그런 모습은 닮지 않았으면 했는데 말이죠. 물론, 그 부분이 귀여운 거지만.'
멀리 있지만 속으로 '간바루비!'하며 루비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다가, 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온 한 마리 양처럼 주위를 둘러보던 그 눈과 무심코 마주쳤다.
하지만 환하게 웃는 그 얼굴에 기쁘게 화답해주지는 못할 망정, 속마음이 들키는 것이 두려워 딱딱한 얼굴을 하고 만다.
'...저질러버렸습니다.'
예상 못한 반응에 풀죽었는지 루비의 몸이 움츠러든게 느껴졌지만 다가갈 수도 없다. 후회가 되어서 다른 생각을 하고자 준비해 두었던 원고를 다시 점검해보기로 한다.
'제법 공을 들였습니다만.'
새하얀 첫 페이지 뒤로 비치는 활자들. 문장을 고르고 골라 이틀이나 걸려서 완성한 글.
동생에게 평소에 전하지 못한 말들을 생각하며 많이 써왔지만 사실 이것도 여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게다가 교장선생님의 말씀마냥 길어지는 환영인사에 괴로워 할 신입생 루비의 모습이 눈에 선해 즉석에서 말을 준비해 가다듬기로 했다.
리모콘을 사용한 것처럼 원거리에서 혼난 그 아이에게 또 긴 설교를 하기는 미안하니까 여기서는 언니의 책임을 다하는 걸로.
「계속해서 학생회장의 인사말이 있겠습니다. 학생회장, 부탁드립니다.」
청중을 바라보며 마이크 앞에 선다.
짧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자 시선 너머, 미래의 꽃들 사이로 2년 전에 내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1학년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러분, 평안하신가요. 학생회장 쿠로사와 다이아가 재학생을 대표하여 인사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여러분들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까?」
어느샌가 스쿨아이돌을 좋아하게 되었다.
「무언가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냈습니까?」
학교가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직접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등학교 3년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해나가기에도 굉장히 짧은 시간입니다.」
3년은 커녕 1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이곳에서 3년은 여러분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 짧지만 의미 있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들을 말하지 못한 채 그렇게 헤어진 사람이 있었다.
「아직 알지 못하는 두근거림을 찾고 싶다면, 만남의 의미를 찾고 싶다면
우라노호시는 여러분께 다양한 클럽활동과 활발한 지역간의 교류를 통해 '꿈의 문'을 여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과의 추억 그리고 함께 열었던 '꿈의 문'을 아직도 소중히 여기고 있다.
루비에게도, 여동생 같은 다른 신입생들에게도 그런 시간들을 쌓아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미래에 관한 어려운 고민들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 해도, 푸르른 하늘과 넓은 바다를 품은 이 우라노호시가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고민들을 그만두고, 수 없이 흘러 넘치는 그 기억 하나하나를 다시 한 번 셋이서 처음부터 마중하고 싶다. 그 날 두고 온 나를 찾으러 가고 싶다.
「아직 서투른 것이 많을지라도, 저희 상급생들이 항상 이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서투르다 해도 두 사람과 항상 함께하고 싶다. 언젠가 다시 그 따스함을 안고 걸어가고 싶다.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 청춘의 프롤로그를 여는 설레임의 열쇠를 찾아 여러분들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눈부신 라이트를 받으며 많은 청중들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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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도 상,중,하로 나눴는데 이전보다 양이 길어졌네요
아직 아무도 만나지 못한 다이아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다소 시리어스하게 느껴져서
중간중간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나 혼잣말을 섞었습니다
가끔 보여주는 폰코츠가 또 하나의 매력인 다이아인데 1기 앞부분이라
그런 부분은 별로 보여주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대신의 학생회장 그리고 동생바보로서의 매력을 느껴주셨으면 좋겠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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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사합니다 aqours에 재합류하기 전에 치카에게 뮤즈를 전도하는 모습이나 합류 후에 루비를 격하게 쓰다듬는 걸 보고 다이아가 어떻게 포커페이스를 애니메이션 초반부 내내 유지했을까 하는 점이 굉장히 신경쓰였습니다 아마 폐교를 앞둔 학교에, 입학하는 동생이 있는 언니로서의 책임감이나 그 학교의 학생회장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주문을 많이 걸었지 않았을까 했어요 그렇게 브레이크를 걸어도 괴로운 점은 변함없었을 걸 생각하니 새삼 어른이구나 싶었습니다ㅠ | 17.05.01 00:3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