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현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한 지 어느새 1년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가 언제 나와 같은 자세로 상에 앉아 계신다. 어두운 곳에서도 불을 켜지 않고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계신다. 그 어두운 곳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안광이 너무나 소름 끼친다. 상과 연결된 기둥에는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컴퓨터와 모니터가 2대 보인다.
집 안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거 같다. 익숙하지 않아, 너무 불편해.
“왔니?”
“엄마 해가 지면 불 좀 켜라고 말씀 말씀드렸잖아요.”
어머니는 내 짜증에 히히 웃으며 대답한다.
“아아. 하얀 등이 너무 밝아서… 눈이 아파서 그래. 그나저나 저녁 또 안 먹었지? 늦었지만 밥 좀 차려줄까?”
난 가방을 바닥에 툭 떨구듯 내려놓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요, 배 안 고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곧장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싸구려 재질이라 이미 오래전 내려앉은 침대는 내 피곤한 몸을 받쳐주었다.
옷은 벗고 자야 되는데… 구겨지면 다른 옷 꺼내 입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너무 힘들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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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푸른 등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내게로 달려온다. 구급대원은 쓰러진 어머니를 침대에 눕히고 병원의 안으로 들어섰다.
의사가 내 옆으로 다가와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거 같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마른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속도에 맞춰 뛰었다.
“엄마!! 엄마…!! 일어나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보호자!!”
경직된 얼굴의 의사가 수술실의 앞에서 나를 멈춰 세우고 진정시켰다.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알려줄 테니 앞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옆의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병원 전체를 비추는 푸른 등이 너무 불편하고 기분 나쁘다. 손에 인공관절이 훤히 보이는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너무 흉측해.
눈물이 앞을 가리고 허벅지에 뚝뚝 떨어졌다. 콧물이 흘러 입의 위로 지저분하게 흐른다. 입을 닫고 있으면 괜찮아 들어가지 않으니까. 공기가 나쁘면 마스크를 쓰면 돼.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오면 마시는 약을 섭취하면 되니깐 괜찮아. 내심 나도 알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살 만한 곳이 아닌 버려진 도시에서 마스크나 정화된 물을 마시며 인간인 채로 버티는 행동은 무의미하다는 걸.
회사의 박 과장도 건물 내부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고집하다 뇌졸중으로 몇 번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다. 그도 똑같이 버티고 버티다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끝없이 퀴퀴한 생각에 빠져 괴로워질 때 누군가 옆에 다가와 앉았다.
새하얀 간호사 복장에 노란색 금발, 푸른 눈의 서구적인 외모가 돋보였다. 명찰에 적힌 이름은 아비에게일, 그녀는 손에 하얀색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속이 비쳐 보이지가 않는 재질이었다.
나는 눈물 콧물로 지저분해진 얼굴로 그녀를 힐끗 올려다봤다.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옆에 검은 손수건을 두고 일어나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생각 없이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닦고 입 주변과 코를 닦았다.
시간이 지나고 아까의 금발 간호사와 의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이제 시술이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이 시기가 지나면 치료비가 늘고, 시술 시에 가져갈 수 있는 장점도 줄어들 것이라 설명했다.
“하… 하지만…”
나는 아직 어머니의 치료에 필요한 돈이 없다. 기계를 몸에 들이지 않는 방법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무책임 한 일을 벌이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내가 1년만… 아니 6개월만 더 일찍 회사에 취업했다면… 그랬으면 지금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됐을까?
뒤쪽에서 커다란 카트가 윙 거리며 오고 있다. 카트는 내 바로 뒤에 서 멈추고 냉기를 뿜으며 선반들을 올려내 보였다. 카트의 내부에는 큰 주사기와 여러 기계 장기들이 보인다.
“거부감이 드는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지금 시술을 받지 않으면 꼭 더 좋지 않은 환경에서 시술을 받게 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눈을 뜨니 하얗고 약간 노란 빛의 조명과 몇 번은 본 천장이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아비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
“컥…”
나는 오른손으로 호흡기를 때고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도 가슴의 통증이 다 지워지지 않았다.
“몸은 어때?”
그녀는 평소 꼭 끼고 다니던 장갑도 벗은 채, 내 손을 꼭 놓은 채 물었다.
“내가 1인실은 부담스럽다고 잡지 말라고 했잖아… 콜록!! 콜록!”
거친 기침 소리에 그녀는 바로 일어나 뒤의 작은 탁상에 놓인 컵을 갖다 주었다. 컵에는 따뜻하고 맑은 물이 담겨있었다. 내가 자연스레 받아먹는 이 물 한 컵은 얼마나 비쌀까?
“하지만 여기가 아니면 제대로 몸을 쉬게 할 수가 없는걸…”
나는 내 몸을 약하게 누르려는 그녀의 손을 쥐어박고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래간만에 닿는 타인의 살결은 따뜻하고 필요 이상으로 부드럽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며 다시 옆의 의자에 앉았다.
“이 약이 마지막이야. 더는 암세포를 더디게 할 약은 없어. 이 약도 오래 먹을만한 순한 약은 아니고… 이제 정말 치료를 받아야 해.”
“나는 남에게 이런 식으로 기대고 싶지 않아.”
그녀는 나와 만나는 이후로 내게 빠져 계속해서 돈을 빌려줄 테니 치료를 서둘러 받으라고 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 내 힘으로 돈을 지급할 수 있어서 받지 않았다. 내가 거절할 때마다 그녀는 슬퍼했지만 내 힘으로 일어선 나를 보면, 그녀도 나를 위해 기뻐해 주겠지.
문 너머 복도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소리가 가까워지기 전 일어나 환자복의 상의를 벗었다. 아비는 급히 옷을 벗는 나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커튼을 쳐 나를 가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를 입고 벨트를 채우고 셔츠를 펼쳐 보인다. 이전에 묻어있던 핏자국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밖으로 나가려는 아비에게 물었다.
“이거 빤 거야? 아니면 내가 입는 거랑 같은 새 거??”
“새 옷이야. 인터넷으로 주문했어. 피가 지워지지 않아서.”
커튼을 걷고 일어나 전신 거울의 앞에 섰다. 아직까진 봐줄 만하지만 몸이 점점 왜소해지는 게 보인다. 피부는 검게 착색되고 핏기를 잃어가고 있다. 확실히 한 박자라도 어긋나면 급사해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친다.
“여 아비 우리 이 대리는 어때?”
드디어 병실을 찾아온 친구는 방공호에 들어가는 전쟁영화 주인공 마냥 양손 가득 간식거리를 싸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음, 조금 상태가 좋지 않았나 봐.”
그녀는 싱긋 웃으며 병실에서 나갔다. 나는 휴대폰을 켜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3800만 원… 1달만 어떻게든 버티면 수술비가 마련될 거 같다.
“어이. 몸은 괜찮으냐? 네 애인이 저리 슬프게 웃는 거보니 몸 상태가 아주 구린가 보지?”
나는 소매 부분을 팔뚝까지 걷어 올리고 단추를 잠갔다.
“마음대로 그런거 읽지 말아 줄래?”
선반에서 신고 온 구두를 신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는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지금 집에 가려고?? 조금은 쉬고 가지? 회사에 병가 내면 되잖아. 월급도 그대로 나온다고.”
나는 기침을 큼 하고 밀어내 참고, 친구의 만류를 무시했다.
“회사에 할 일이 있어.”
병실 침대 반대쪽 끝 문이 있는 곳에 깨끗한 세면대로 갔다. 물을 트니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정수기에 천원은 넣어야 물 한 컵을 마실 수 있는데 , 이곳의 수도관에는 정수기능이 딸려있다. 사치스럽지 않다고 할 수가 없는 병실이다. 아비는 직원 할인제도가 있다며 나를 안심시키지만 이런 호텔에 견줄만한 병실이 고작 직원 할인으로 저렴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맑은 물로 얼굴을 적시고 머리를 넘겼다. 진통제 덕인지 먹먹한 게, 물의 냉기가 제대로 피부 속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세수하는 사이에 과자봉지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온 친구는 내 옆으로 와 물었다.
“너 혹시 돈 때문에 그러냐?”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문을 열고 병실에서 나왔다. 내가 나온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그는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난 검은 마스크를 얼굴에 달고 병원의 밖으로 나갔다. 눈을 최대한 작게 뜨고 바삐 걸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병원에서 먹기 싫어도 끼니는 꼭 챙겨 먹으라는 아비의 말이 기억나 큰 자판기의 앞에 섰다.
샌드위치 햄버거 같은 빵들과 커피 음료수들도 보인다. 구석에는 티슈나 콘돔 같은 물건도 있다.
휴대폰을 단말기에 찍고 종류도 보지 않고 아무 빵 쪽의 버튼을 눌러 뽑았다. 계속음으로 간이 된 달걀 샌드위치가 나왔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함량을 높인 이 과하게 누런색의 식빵은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되는 맛이다.
입은 텁텁하고 달걀은 물컹거리는 게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속으로 씹어 넘겼다.
해가 뜨고 거리가 아주 밝아지고 어두울 때는 보이지 않던 쓰레기봉투와 약간 녹색을 띠는 누리끼리한 하늘이 보인다. 집 문에 있는 잠금장치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문을 열었다.
찻잔이 딸그락거리는게 어머니가 거실에 있는 거 같다.
신발을 벗고 넥타이를 미리 느슨히 풀자 어머니가 문을 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앞에 바짝 붙어 섰다.
“어쩌다가 이리 늦게 온 거니… 또 기절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니에요 그냥 약이 떨어져서……”
그녀는 그의 소매와 목덜미에 지워지지 않던 때가 사라진 것을 보고 새 옷임을 짐작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한 아들은 바로 바닥에 가방을 내던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조용히 닫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며 침대에 풀썩 누웠다. 누운 채로 밍기적 걸려 셔츠를 벗고 강하게 당겨 옷을 펴고 접자 속에서 거북한 느낌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윽…”
침대에서 떨어지듯 바닥으로 엎어져 화장실로 향했다. 그대로 변기에 얼굴을 묻고 아까 먹은 샌드위치를 그대로 게워냈다.
“웩…!! 웩!!”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일어나 코를 풀고 입을 물로 헹궜다. 난 토한 것을 의식해 보지도 않고 그대로 변기 물을 내렸다. 토사물에 피가 섞여 있을까 확인하는 게 두렵다. 더는 몸이 파괴되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아. 나는 벽에 달린 레일에 대고 힘없이 말했다.
“엄마 물 좀 줘…”
문을 닫고 침대 위에 앉아있자 곧 벽의 레일을 타고 온 선반이 내 옆에 딱 멈춰 섰다.
선반에는 물이 보기 좋게 담겨있는 컵이 올려져 있다. 나는 물로 목을 씻어내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오늘 밤은 친구나 엄마가 꿈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쨍그랑!!
현관의 유리가 깨지고 경보음이 울린다. 거실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자마자 바로 벽에 튀어나온 곳에 뒤에 숨었지만, 어차피 두어 발 만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장소에 숨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평소에 외출도 즐기지 않고, 친구도 없는 그녀는 튀어나오며 괴한들을 공격해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약했다.
“꺄아아악!!!”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검은 정장의 침입자들을 밀치고, 저항했지만 이내 얼굴에 뿌려진 분무기 몇 방에 쉽게 기절했다.
오후 8시 휴대폰과 무선으로 연결된 집 전체에서 설정해놓은 음향이 울렸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뻑뻑한 눈을 뜬 나는 침대에서 신음하며 이불을 발로 차 밀었다.
“엄마 물…”
나는 침대에 앉아서 레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선반은 오지 않았다.
“엄마?!!”
나는 팬티만 입은 채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조금 어지럽혀져 있고 왜인지 창문이 깨져있다.
“쿨럭!!”
나는 비틀거리며 받아져 있는 물을 컵에 따라 방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이 시간에 웬일로 외출을 나갔지? 나는 티브이 앞에 세워둔 약병에서 약을 두 알을 꺼내 입에 넣고 물과 함께 삼켰다.
“흐으으…”
-띵!
휴대폰에서 문자 알림 음이 들린다. 박씨의 문자다. 회사는 병가 처리를 냈으니 알아서 쉬다 오란다. 뭐 이틀 정도면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천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전등의 주황색이 칙칙한 회색을 예쁘게 덮었다.
“쿨럭!”
울컥하니 기분 나쁜 게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입을 틀어막았다.
“캑… 캑…!! 우륵…”
나는 1시간에 걸쳐 2번을 토하고, 토해낸 약이 변기에 내려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근데 수술을 받으면 건강을 되찾는 동안의 비용은 어떻게 처리하지? 아비에게 빌려야 하나? 집에 월세나 관리비는? 엄마 시비할 돈……. 나는 앉아서 웅크리고 있다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기절하고 말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이름으로도 불리지 않는 이 구역 외 지역에 유일한 관리시스템 중 하나인 인공적인 호우다. 비는 아주 잠깐이지만 먼지들을 씻어내리고 환한 하늘을 열어준다. 다른 반 인들도 그 시기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는 않은지 자연적인 비 내림이 아닌 날에는 모두 회사와 일터에서 뛰쳐나와 마시고 먹고, 살을 비비기에 바쁘다.
잠에서 깨고 2시간 토하고, 해롱거리다 다시 13시간 내리 기절. 병원에서 집까지 가는 잠깐을 빼면 거의 이틀은 잔 것 같다. 아니지 내가 병원에서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군.
멍하니 앉아서 정신을 차리고 나는 다시 침대에 다리를 내리고 앉았다.
“엄마?? 물 좀 줄래요?”
반응이 없다. 어제도 없었던 것 같은데? 거실로 나가니 여전히 조금 어지럽혀진 채로 방치되어있다. 유리창은 왜 깨져있지?? 평소에 외출이 잦은 어머니가 아닌데 오래간만에 한바탕 쏟아질 걸 예상하고 밖으로 나가셨나?
간만의 큰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오랫동안 내렸다.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개운히 일어난 나는 자연스럽게 정복을 입고 시간을 검사했다. 레인지 위에 올려진 토마토맛 안나는 토마토 수프와 수분기가 말라 딱딱해진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집을 나왔다. 왜 그 출근길에서 3일째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