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사라진 주위는 난장판이었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똥과 피가 튀며 살육전을 펼치고 화살이 날아 오갔다.
매복했던 숨은 적이 나타나거나 제3의 새로운 적들이 기습한 것도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서 있던 자유 해방단원들과 늑대 기사단원들이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 해방단이나 기사단끼리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편이 아닌 적이 되어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이, 이런 정신 나간 놈들! 당장 그만두지 못해?”
막심은 경악하며 그들을 말리려하지만, 전사들과 기사들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를 지르는 막심에게 적의를 비쳤다.
“히, 히이익!”
막심은 잔뜩 겁을 먹고 옆에 있는 하운드의 뒤로 숨었다.
“…….”
자신의 뒤로 숨어드는 막심을 슬그머니 보던 하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충직한 부하다.
하운드는 막심을 보호해주기 위해 그의 앞에 서서 날뛰는 부하들을 막았다.
하운드에 의해 권속이 되어 명령을 따라야하는 이들은 막심뿐만 아니라 주인인 하운드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쉬이이익!
미쳐버린 자유 해방단원들은 하운드를 향해 화살을 쏘았고 기사단들은 사방에서 무기를 든 채 달려왔다.
어떠한 전사도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늑대 기사단의 부단장 하워드조차 검들은 막아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까지는 막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었다.
하지만 이방인인 하운드는 달랐다.
“……따분.”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적들의 공격을 하운드는 허무하리만치 가볍게 막았다.
화살들은 살랑거리는 거대한 꼬리로 튕겨 내고 쇄도하는 검날들은 앞발로 쳐냈다.
어린아이가 장난감 가지고 놀 듯이 전사들과 기사들의 공격은 하운드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공격은 들어가지 않아도 하운드 입장에서는 모기가 무는 거 마냥 짜증나고 귀찮은 공격들이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 하운드는 앞발을 높게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크르르, 하찮은, 죽인다.”
하운드가 덤벼드는 인간들을 죽이려는 찰나, 막심이 뜯어말렸다,
“하, 하운드님! 죽이시면 안 됩니다, 귀중한 전력입니다!”
“크르르르, 그럼, 해결, 당장.”
“아, 알겠습니다!”
막심은 다급하게 말하며 머리를 굴렸다.
막심에게 이 상황은 낯설지가 않았다.
짐꾼들을 하운드를 바칠 때를 잠시 떠올렸다.
자신을 호위하던 두 자유 해방단원들이 날뛰었던 그때와 같았다.
같은 상황, 그러면 이 상황을 만든 원인 또한 같을 것이다.
두 자유 해방단원들에게 흥분제가 담긴 음료를 마시게 하고 미치게 만든 그 꼬마의 짓임이 분명했다.
“서, 설마, 또 그 놈이? 크, 크으윽.”
막심은 돌연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느끼며 주저앉고 말았다.
몸이 뜨겁고 두근거렸다.
눈보라에 섞인 흥분제의 효력은 부하들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그 영향을 끼쳤다.
다른 부하들과 다르게 바로 미쳐버리지는 않았지만, 얼마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만큼 막심은 서둘렀다.
“빠, 빨리 그 꼬마 놈을 찾아야한다!”
아무것도 없었던 눈밭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흥분제가 섞인 눈보라가 휘몰아쳐 부하들을 미치게 했다.
분명 이 근처에 꼬마가 숨어들어 벌인 일이었다.
그 놈을 찾아야 해결 할 수 있다.
막심은 눈을 번뜩이며 샅샅이 주위를 살펴보았다.
둘러보던 막심의 시야에 가장 먼저 잡힌 건 주인인 하운드였다.
눈보라에 섞인 흥분제는 하운드에게 효력이 없었는지 그는 건재한 모습으로 기사와 전사들을 상대로 한 치의 밀림도 없이 압도하고 있었다.
이미 열 명이 넘는 부하들이 하운드의 앞발에 짓눌려 꼼짝도 못하거나 꼬리에 묶여 무력화가 되었다.
수십 명의 정예 병력들을 가지고 노는 하운드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아,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막심은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샅샅히 뒤지던 막심의 눈에 낯선 무언가가 보였다.
자유 해방단들과 기사단원들이 싸우고 있는 눈밭 위로 작은 보라색의 물건이 눈 위로 삐쭉 튀어나와있었다.
목도리의 일부처럼 보이는 보라색 천, 기사단들이나 자유 해방단들이 가지고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저 보라색 조각 밑으로 꼬마 놈이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막심은 확신하고는 하운드에게 목청껏 외쳤다.
“하운드님! 저기 입니다!”
“크르르르.”
하운드는 붙잡고 있던 부하들을 전부 두고선 막심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한방, 죽인다!”
높게 뛴 하운드는 보라색 목도리가 보이는 눈밭을 향해 거대한 앞발로 그 자리를 내리쳤다.
콰아아앙!
고작 앞발을 휘둘렀을 뿐이지만,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하운드의 앞발이 눈밭에 닿기도 전에 그 풍압만으로도 거대한 눈보라를 일으키고 엄청난 충격파와 더불어 주위에 있던 자유 해방단원들과 기사단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날아가 버렸다.
막심 또한 마찬가지였다.
“으어아아아악!”
십 여 미터를 날아가 눈밭에 쳐 박힌 막심은 겨우 정신을 차리곤 일어섰다.
“으윽, 꼬마 하나 죽이는 데 무슨 힘을 저렇게 쓰는 거야.”
자신이 모시는 이방인 하운드, 지금껏 그를 모시며 그의 활약을 봐왔지만, 저렇게 격한 공격은 처음 보았다.
이름 난 자유 해방단원들과 늑대 기사단원들을 상대할 때도 최대한 힘을 조절했던 게 하운드였다.
심히 과하게 힘을 쓴 거 같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방금 일격에 꼬마는 눌린 쥐포처럼 찌그려져 죽었을 것이다.
다른 이도 아닌 이방인 하운드가 작정하고 날린 일격이다.
그걸 맞고도 멀쩡할 리가 없다.
쿠구구구구!
하운드가 내리친 자리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다 못해 그 땅까지 뒤집혀졌다.
그렇게 높게 쌓여있던 눈들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움푹 파여진 땅 위에 사뿐히 놓인 하운드의 거대한 앞발.
그 앞발에는 갈기갈기 찢겨나간 보라색 목도리만이 있을 뿐, 막심이 확신했던 꼬마의 시체는 없었다.
있어야 할 꼬마의 시체가 없자 막심은 당황했다.
“어어? 그 꼬마 놈의 시체는 어디 있는 거야? 분명 저기 있어야 하는 데.”
“크르르?”
막심도 당황하고 하운드도 처음으로 표정에 당혹스러움을 보였다.
잠깐, 정말 잠깐 생긴 빈틈, 그 틈을 가온은 놓치지 않았다.
푸확!
하운드가 내리친 지면 바로 옆, 눈 속에 줄곧 숨으며 기회를 보고 있던 가온이 나타났다.
눈발이 흩날리며 나타난 가온은 죽기 살기로 하운드에게 몸을 던졌다.
가온의 손에 든 건 늑대를 죽였던 단검, 그 단검이 향하는 곳은 하운드의 목덜미였다.
하운드는 옆에서 튀어나온 가온을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반응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가온의 모습을 본 막심이 외쳐보았다.
“하, 하운드님! 피하십쇼!”
외쳐보지만, 이미 늦었다.
미리 대처를 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어떤 전사도 기사도 무방비 상태인 채로 코앞까지 닥친 불의의 기습을 막지는 못한다.
가온의 단검은 이미 하운드의 목덜미의 털끝까지 닿았다.
아무리 빠르고 강한 짐승이라 해도 짐승은 짐승이다.
설령 이방인이라 해도 무적은 아니다.
가온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최강이라고 지껄이던 불을 쓰던 남자도 방심했다가 자신에게 한 방 먹었다.
짧은 순간 가온은 확신했다.
‘내가 이겼다.’
1센티만 더 움직이면 단검은 연약한 하운드의 살을 파고들고 놈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숨통만 끊긴다면 이방인을 잡는 건 자신이 된다.
승패는 결정 났다.
푹!
한때 짐꾼들을 부하로 부려먹던 감독관.
그러나 힘없는 실세라는 게 들키고서 감독관은 찬밥신세가 되었고 겨우 만난 두 동료 짐꾼에게 두들겨 맞은 채 버려졌다.
두 짐꾼이 떠나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감독관은 죽은 듯이 눈밭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끄으으으으, 제길,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야.”
감독관은 온 몸에서 쑤셔오는 통증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마, 망할 새끼, 아주 사람 죽기 전까지 팼어, 퉷!”
감독관은 잔뜩 욕설을 내뱉으며 피 섞인 침을 뱉었다.
공중에 떠 오른 피 섞인 침은 중력에 의해 다시 떨어져 드러누운 감독관의 얼굴에 또 다시 떨어졌다.
아까 짐꾼이 뱉었던 침과 자신이 뱉은 침으로 얼굴이 피와 침 범벅이 되었다.
스며드는 비릿한 냄새에 감독관은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흐흐흐흐.”
모든 게 엉망이었다.
적당히 짐꾼들을 부리면 조용히 원정이 끝날 줄 알았는데 모든 게 함정이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짐꾼들 외의 자유 해방단원들이나 기사단원들은 이미 한통속이다.
그들에게 가봤자 도움을 받기는커녕 겨우 부지한 목숨만 잃을 게 분명했다.
감독관은 여러 복잡한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전부 끝이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감독관이라는 얄팍한 지위도 부하로 부려먹을 수 있던 짐꾼들도 모두 잃어버렸다.
이대로 도망쳤다간 하룬 가에선 도망친 자신을 받아주기는커녕 도망친 겁쟁이로 취급하고 목을 잘라 본보기로 보이겠지.
모든 걸 잃어버린 감독관은 웃으며 좋을 대로 지껄였다.
“크, 크크크크큭, 머저리들, 기껏 알려줬는데 무시하다니, 그래서 사니깐 항상 당하는 거다 멍청이들, 아, 이젠 볼 일도 없겠네, 하하하하핫!”
자신이고 망할 짐꾼들이고 전부 끝이다.
광기에 가득 찬 웃음소리를 제 좋을 대로 내뱉던 감독관.
그때 어디선가 무언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휘우우우웅!
광소하던 감독관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에 바로 겁을 먹고 움츠려들었다.
“허, 허억?”
눈 속에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피던 도중 자신의 머리 위로 작은 뭔가가 날아갔다.
후우우웅!
쏜살같이 지나간 무언가는 감독관을 지나치고 한참 날아갔다.
쾅!
눈밭에 떨어진 무언가는 눈에 쳐 박히고서 한참을 구르더니 겨우 멈췄다.
감독관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날아온 물체를 확인했다.
“뭐, 뭐야, 네, 네가 왜?”
감독관은 날아온 물체를 확인하고는 할 말을 잃었다
포탄이 발사된 것보다 빠르게 날아온 건 다름 아닌 감독관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꼬맹이이었다.
분명 감독관을 두고 하운드를 잡겠다며 나섰던 꼬마, 그 꼬마가 피투성이가 된 채 되돌아왔다.
감독관은 가온에게 다가가며 불러보았다.
“야, 야? 꼬맹아, 너 괜찮은 거냐?”
감독관이 불러보아도 가온은 대답이 없었다.
설마 죽은 걸까.
감독관은 더 다가가기를 주저했다.
“제, 젠장, 어차피 죽었을 거야, 그 속도로 날아가 쳐 박혔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지.”
어쩌다 날아갔는지는 몰라도 이 자리에 더 있어서 좋을 게 없었다.
감독관은 가온을 두고 그대로 도망치려했다.
“…….”
도망가려 하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떼어지지가 않는다.
감독관은 가온을 두고 갈 때 희미하게나마 들었다.
가온의 숨소리를.
항상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