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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워크래프트3]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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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지막 모습을 잘 봐줘 내 목숨을 앗아간 자를 기억해줘 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요즘들어 똑같은 꿈을꾼다. 우리 동족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자들을 수감하는 지하감옥

 

그곳의 감시자가 되어 셀수도 없는 시간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간간히 편지로만 소식을 접했던 내 언니가 가쁜 숨을 내쉬며, 그 맑은 눈동자가 생기를 잃어가며,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자가 누군지 기억해달라는 꿈이였다. 

 

나는 이 꿈을 개꿈으로 취급할 수 밖에 없었다. 언니의 입에서 나온건 다름아닌

 

엘룬의 대여사제, 티란데 위스퍼윈드였기때문이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언니가 생기를 잃어가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막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점차 눈동자에 생기를 잃어가는 그런 상상도하기싫은 상황이 반복해서 나오는건, 내겐 이젠 개꿈이 아닌 악몽이 되었다. 

 

"이 꿈을 꾼 날은 하루종일 찝찝하던데.."

 

쪽창문을 들어 밖을 보니 이미 달이 하늘에 걸려있었다. 팔자 좋게도 뻗어있었구나 푸념섞인 손짓으로 집안을 정리하고 나와보니, 사람들이 게시판을 두르고 뭉쳐있었다. 

 

"내일 달이 이 곳에 걸릴때쯤, 대드루이드와 대여사제가 이 마을에 행차하신다는군"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저주받은 아키몬드를 칼림도어에서 격퇴하고, 마을 곳곳에 물든 악마의 영향을 정화하기위해 대여사제일행에 이 마을에 들린다는 모양이였다. 

 

방금 그런 꿈을 꾼 탓이였을까, 대여사제 티란데, 그녀의 이름을 듣기만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며, 온몸의 피가 요동치는듯했다.심호흡을 한번 한뒤 하늘을 올려보았다.

 

오늘 달빛은.. 막 깨어나 눈이 아직 흐린 탓일까 유난히도 흐려보였다.

 

"대여사제 티란데님과 대드루이드 말퓨리온님 일행 행차이시오!"

 

한 드루이드의 우렁찬 외침이 마을 전체를 깨웠고, 어느샌가 잠들었던 나또한 깨어났다. 오늘은 그 꿈을 꾸진 않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심장에 화살이 박혀 가뿐숨을 내쉬던 언니의 모습이 기억 한구석에서 떠나질않았다. 

 

티란데, 그녀의 이름을 들을수록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고, 언니가 흘린 시뻘건 피가 강이되어 날 삼키고 요동치는듯 했다. 

 

심호흡을 하며 하늘을 보니, 오늘 달빛은 빌어먹게도 밝았다. 내 생에 본 어느 달빛보다 말이다. 아마 달의 여신 엘룬의 총애를 받는다는 대여사제가 지척이라서 그러나보다. 

 

"저 여자는 매일 이런 달빛만보고사는건가?"  

 

똑같은 하늘일터인데, 내가생각해도 멍청한 질문을 곱씹으며 영웅 일행을 맞이하러 나갈 준비를 했다.

 

대여사제 티란데 그녀는, 마을에서 나온 사람들 한명 한명의 안색을 살피며, 엘룬의 말을 전하고 전쟁으로 상처입은자들을 치유해나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덕을 칭송했다. 하지만 난 그녀를 하릴없이 노려보며, 이유도 없고 갈곳도 없는 증오심만을 불태우고있었다.  

 

왜 이러는걸까? 혹시 모르는 사이 이 땅에 스며든 악마의 기운이 내게 스며든걸까?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를 증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녀가 마을사람들을 한명씩 보며 내 쪽으로 점차 다가왔다. 표정이 보이고 글레이브를 던진다면 확실하게 죽여버릴 수 있는거리. 그때였다. 무거운 밤 공기보다 낮게 깔려오는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린건

 

"저기! 나무 뒤! 악마의 영향을 받은 펄볼그입니다!"

 

그 저주받을 오크마냥 초록피부를 가진 펄볼그는 구강에서 역겨운  이물질을 흘리며 마을사람들에게 다가오고있었다. 티란데는 민첩하게 등을 돌리며 활을 빼들었고, 일격에 그 마물의 심장에 화살을 박아넣었다.

 

비정한 옆모습.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칭송하며 떠들어댔지만, 난 그 펄볼그가 뿜는 선혈과, 그녀의 비정한 표정을보며 정신이 아득해져만 갔다. 

 

감시자로 동족에게 봉사하던 언니에게, 면회휴가가 주어졌다. 난 이 날을 손꼽아만 기다려왔고, 온갓 마물들이 가득한 지하감옥 근처로 올 수 있는 안전한 길이 표시된 약도를 받고, 언니를 볼 날 만 기다리고있었다. 

 

지하감옥을 방문한 내가 본건 빨간색 뿐이였다 그리고 마주친 대여사제와 언니의 모습, 빨간색이 언니를 뒤덮었다. 쓰러지는 순간 나를 알아차리곤 무언가 말하는언니, 구석에 숨어 벌벌떠는 나 

 

화살에 맞아 쓰러진 펄볼그에서 언니가 겹쳐보였다. 그 빌어쳐먹을 무표정,지옥의 불길마냥 불타던 화살촉, 증오스러운 활솜씨 모든것이 기억났다. 내가 꿈으로 생각했던건 그 자리에서 언니의 복수를 하지못한, 구석에서 벌벌떨던 나약한 내가 만든 허상이였던것이다.

 

허리춤에 있던 소형 글레이브를 빼들어 그녀의 목을 향해 던지려는 찰나, 대드루이드의 마법이 날 속박 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복수심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고, 목이 미어져 말이 나오지않았다.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대드루이드는 속박 마법의 강도를 높이며 내게 재차 물으려던 찰나, 그녀가 나섰다.

 

"말퓨리온 내 사랑, 잠시 사정을 들어보도록 하죠."

 

그녀는 속박 마법이 풀린 내게 치유마법을 걸어주며 물었다.

 

"자매여, 제게 살의를 품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난 그 뻔뻔한 면상에 침을 뱉고 미어터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넌 학살자야. 우리동족을 무참히 도륙한 학살자! 네가 우리 동족을 위해 봉사하던 감시자들을 모조리 죽였고, 그 중엔 내 언니도 있었어! 대사제라는 탈을 쓰고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엘룬이라는 망할 자칭 신은 당신같은 사람에게 천벌을 내리지도 않는건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소매로 침을닦고, 나를 잠시바라보았다. 군중들이 술렁였지만, 그녀가 그쪽을 향해 웃어보이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정적이 찾아오자, 그녀가 입을열었다. 

 

"그 지하감옥에 있던 감시자들은, 지하에 오래있던 탓에 악마의 영향을 너무 짙게 받았었습니다.  전 대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있던 전사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그들은 저를 마주치자마자 무기를 휘두르며 살의를 표출했습니다. 지금 자매님처럼말이죠."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하는 그녀, 군중들은 대부분 납득하는 분위기였고 내게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언니보러 간 날부터 밖으로 잘 나오지도않고..좀 이상해지긴했지.." "혹시 쟤도 악마의 영향을 받은거 아닌가?" "감히 대전쟁의 영웅이신 대여사제님을 의심하다니..." "악마의 화신이다! 죽여라!"

 

점점 분위기가 난폭해졌고, 난 이 자리에서 화형을 당해도 이상하지않을 분위기까지 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녀는 사람들에게 웃어보이고, 운을 땠다.

 

"이 자매님께 악마의 영향이 끼친건 사실이지만, 매우 경미합니다. 우리가 함께 '교정'한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요."

 

그녀는 나를 향해서도 싱긋 웃어보이며, 달을 한번 보곤 다시 말했다.

 

"엘룬님을 모독한것은 제게 용서하기 힘든 일이긴하지만, 달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비추는 법이니까요. 지하감옥에서 500년동안만, 우리 동족을 위한게 어떤것인지 생각하며 보낸다면 어쩌면 자매님도 엘룬의 사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일이지요 그럼, 감시관님 부탁드립니다."

 

티란데의 목이 떨어질 법 한 순간에도 아무행동을 하지 않고있던 철의 가면을 쓴 여인이 날 단단하게 속박했다. 뼈가 뒤틀릴정도의 아픔을 느낄만한 구속이였지만 난 고통보단 그녀의 마지막말만을 끊임없이 곱씹었다. 

 

'달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비춘다고? 웃기지마.. 당신은 빛을 볼 수 없어야해. 지하감옥에서 평생썩어야해...'

 

티란데를 향한 증오만을 불태우며, 감시관과 단 둘이 지하감옥으로 가는 숲속에서, 이젠 생각할 기력마저 없어 눈앞에 달빛과 감시관의 발끝만을 보며 끌려가던 찰나 감시관이 갑자기 내 구속을 풀고, 입에 음식을 넣어주었다. 

 

이게 무엇인지 판단할 겨를도없이, 감시관은 날 바위에 정성스럽게 눕히고 접힌근육을 마사지해주었다.

 

철장갑을 낀 손임에도, 따스하다고 느꼈다. 바위머리에 비추는 달빛이 눈을 감겼다. 철의 여인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달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비추지. 죄지은자이건, 무고한자이건 평등하게."

 

그 증오스럽고 가증스러운 년이 한 말이지만, 이 감시관이 하는말은 뭔가 달랐다. 심금을 울리는 말이였다. 내 눈으로 비추던 아름다운 달빛때문일까 언니를 닮은 아늑한 손길때문일까 나는 조용히 흐느끼기시작했다. 감시관은 철의 손을 내 이마에 올리고 계속말했다.

 

"그대의 자매는 훌륭한 감시자였다. 우린 수많은 임무를 같이했고, 샐수없는 밤을 동족을 위협하는 범죄자들을 감시하며 지냈다. 우린 가족이였다."

 

감시관은 어느샌가 내가 누워있는 바위에 걸터앉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가족을 잃은 그대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이해한다. 나 또한 가족을 잃은것같으니까. 티란데는 일리단을 해방시키고, 감시자들을 학살한 대가를 치뤄야해."

 

말을 마친 감시관은 철의 가면을 벗고, 계속해서 흐느끼는 날 일으켜세웠다. 

 

"달빛은 죄지은 자이건, 무고한자이건, 평등하게 비추지. 난 그래서 달빛이 싫다. 나와함께 감시자로서 가족의 복수를, 유지를 이어가겠는가?"

 

난 오열하며 감시관에게 껴안겼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마이에브라고한다. 그대의 이름은 뭔가?"

 

 

 

 

"나이샤.. 나이샤라고합니다."

 

 

 

나이샤에게.

지하감옥은 달빛한점 비추지않는단다. 하지만 난 달빛이 그립지않단다. 왜 인줄 아니? 너라는 달빛을 지켜주는게, 내 사명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란다. 나이샤 내 동생, 언니를 위한 달빛이 되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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