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철아-!"
"상병김민철!"
숲이었다. 우거지진 않았고 적당히 풀이 있었고 적당히 나무가 있었다. 드문드문 타이어 대가리가 보였다. 진지공사중이었다. 땅은 축축하고 푸석하기도 했다.
암 슬레이브가 앉아있었다. 무릎앉아였다. 주변엔 병사들도 있었다. 회색 작업복과 전투복 하의를 입고있었다. 귀찮게 땅을파고있었다. 길다란 참호였다.
몇가지 지시를 받았다.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간부가 암 슬레이브[이하 as]를 가리켰다. 방금 불려간 병사가 쏜살같이 달려가 탑승했다. 철덩이가 일어섰다.
소음은 없었다. 팔라듐 리액터의 정숙하고 힘있는 출력 덕분이었다. 우악한 육손이 허리 골반쪽에 거치된 작업삽을 뽑아들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참 쓸모없었다.
사기가 바닥을 기던 일개미들이 환호했다. 연료비보다 못한 취급을 받긴 해도 배터리보다는 나은 취급을 받던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육중한 거인이 작업을 시작했다.
최신예 기술이 집약된 워머신이 나라시를 깟다. 늘어진 일벌레들보다 나았다. 인간보다 섬세한 작업이 가능한 머슬 패키지가 수백킬로의 흙을 퍼날랐다. 참 없어보였다.
춘계 진지공사는 예정보다 빨리 마무리됬다. 단순 노동이었고 작전행동도 아니었다. 고장은 없었다. 애초에 as는 전쟁용 살육 머신이다. 삽질가지고 고장날리 만무했다.
철혈의 영웅 덕분에 오침도 했겠다, 오전보다 힘찬 병사들이 하산했다. 조악하게 박힌 계단에 엇박자섞인 군화소리가 두들긴다. 나뭇가지 사이의 햇살은 아직 쨍쨍했다.
작업의 주인공은 가장 마지막에 내려왔다. 고성능 감시장비에 연병장에서 장비와 인원 검수를 마친 중대원들이 보였다. 점심식사를 위해 막사로 뛰고있는것 같았다.
콕피트 내부는 쾌적했지만 오퍼레이터는 전혀 상쾌하지 않았다. 작업복도 깨끗했지만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무슨 짓인가 싶었다. 쌍자음섞인 한숨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하..X발.."
"김민철 상뱅- 행보관님이 중대장실로 오람다!"
외눈박힌 금속 대가리가 살짝 아래를 향했다. 1년 가까히 함께한 맞후임이 화면에 드러났다. 뭐가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닫혀있던 콕피트가 열렸다. 욕지거리가 나왔다.
녀석 욕은 아니었다. 미운털 잔뜩 박혀도 온갖 짜증과 정비는 다 받아주던 착한 놈이다, 탓하고 싶은건 행보관이었다. 딸딸이[AS]조금 몰줄 안다고 별걸 다시키는 노인네.
정비와 장비 청소는 후임에게 부탁했다. 가끔씩은 같이 하자는 핀잔을 들었지만 고추 차라는 말만 남겼다. 계급은 깡패다. 하지만 그건 본인한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중대장실은 들어가기 싫었다. PX 사지방 점호때 빼곤 이곳에 들어가는건 보통 일정이 꼬인다는걸 의미했다. 더구나 오늘은 평일이었고 월요일이었다. 경례하기 싫었다.
마지못해 이마를 스친 손과 헛발음의 관등성명이 끝나고 목구녕에서 나올지 말지 망설이는 용무를 끄집어냈다. 정말 반갑게 맞아주는 중대장의 미소가 행보관실을 가리켰다.
듣기로는 진급 직전이었던가, 후방 중대로 발령나서 재수없게 윗물길 막힌 사람이라고 들었었다. 곧 전역하는 rotc 출신 중대장과는 사뭇 다른 환경일거라 생각했다.
조악한 철문이 열렸다. 커피향이 진동했다. 종이컵 두잔이 무릎 높이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이야기 길어지겠다..쓴웃음을 감출수 없었다. 싸구려 소파에 구릿빛 노안이 보였다.
과한 제스쳐가 맞이했다. 우리 중대의 에이스 파일럿, 작업은 힘들지 않았냐, 군생활은 어떠냐, 작문시험보면 0점에 수렴할 명문장들이 술술 지어졌다. 용무나 알고싶었다.
자연스럽게 서랍장에서 종이 한장이 꺼내졌다. 아뿔싸, 테이블에 마음의 편지가 안착했다. 누가 썻는지 알고있었다. 미간에 감출수 없는 주름이 생겨났다. 몸에 힘이 풀렸다.
"야 민철아.."
노란 포장의 담배각이 나왔다. 한까치, 불붙은 꼬다리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쫙 찢어진 반달눈이 병사 하나를 꼬나봤다.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무겁긴 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두어번 눈동자가 굴렀다. 또박또박 쓰여진 글씨체가 참 익숙했다. 칼같이 대답하는 맞은편 일개미에게 비보를 전달받은 기분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에게 진급은 중요했다.
"상병 김민철!"
"우리 국군의 AS가 얼마나 뛰어난지 아니?"
몰랐다. 알바가 아니다. 정비성 좋지만 만져줄게 많고 툭하면 사단, 연대, 대대 지시사항이 바뀌니 맘대로 조종하지도 못했다. 저번 RCT때는 사단 지시로 점프를 못했다.
조종기도 엿가락같이 섬세해서 살짝만 건드려도 재앙이 일어났다. 덕분에 특전사를 포함한 국내 AS조종사는 특급전사가 없었다. 이대로면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팔굽혀펴기만 해도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6톤짜리 쇳덩이로 저딴 규정을 달아놓고 뭘 하라는것 자체가 문제였다. 당연히 입밖으로 내진 않았다. 군대에선 불만을 삼켜야했다.
"..."
"..자 봐라잉?..우리 as5가 알고보면 엄청 대단한 as야, 미군 m9보다 1미터 작고 무게는 4톤이나 가볍고, 20mm가 딸려있는 기체가 어딧냐."
"..그렇습니다."
"긍께..소원수리에 m6 태워달라고 한거 농담으로 알테니까, 우리 잘해보자, 응?"
"..."
"야 그래도 니가 지금 우리군에서 최초로 as가지고 특급전사 딴 병사라니까? 이거 특전사도 못했어 임마..니 우리군의 자랑이야 자랑."
"....예슴다.."
"지금 대대장님도 너 엄청 좋게 봐주시고 연대장님도 사단장님한테 휴가증도 받아서 너 언제줄지 눈치보신덴다 임마."
"...예씀다.."
"그래! 야 남자가 되가지고 이런걸로 풀죽으면 되겠냐, 커피한잔 마시고. 근취 시켜줄게! 이번에 53진지 가서 고생했잖아."
"야 , 행보관이 임마 작업도 좀 빼주고, 연대쪽에서 부품도 빠방하게 얻어올게! 야 너네 소대 정비 문제 없게 해줄테니까, 이 삼촌 진급좀 시켜주라!"
발걸음이 무거웠다.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당하는것도 기분나빳다. AS 조종 잘한다고 이렇게까지 군생활이 꼬일줄을 몰랐다. 휴가증 몇장에 넘어가는게 아니었다.
파릇파릇 일병때가 생각났다. 뭣모르고 대대장 눈에 띈게 실수였다. 지금은 전역한 전 중대장이 원망스러웠다. 작업중 장난으로 시킨 나라시가 재앙의 시작이었다.
중대 훈련의 중책으로 시작해서, 대대 훈련의 중책, 연대 훈련의 중책, 사단 훈련의 중책, 작년엔 한미 훈련가서 미군한테 AS 조종법을 가르쳤다. 휴가증은 받았다.
물론 소용없었다. 쓸려면 어디가서 AS좀 타봐라, 어디 연대장이 너 타는거 보고싶댄다, 어디 방송에서 너 타는거 취재하러 왔단다 하면서 방해했다. 한장도 못썻다.
부모님 얼굴이 가물했다. 피방가서 롤좀 하고싶었다. 복도에 후임들이 보였다. 점심 차례가 된 모양이었다. 정렬시키는 맞후임이 돌아봤다. 뭐가 좋은지 또 웃는다.
"김민철 상뱅? 또 사단에 찔럿습니까?"
"시발진짜...좀쓰면 말년인데 군생활 조까치 돌아간다.."
"아 그러니까 무슨 마편에다가 그런거씁니까~행보관이 다 짬시키는거 아시잖슴까?"
"X발 니가 딸딸이(as)타고 나라시까봐..내가 차타고 나라시깔라고 여기온줄 아냐.."
"아 그래도 진지공사때 대대장 표창도 받지 않으셨습니까~ 대대장이 군생활 30년하면서 딸딸이타고 나라시까는 병사 첨본다고!~"
"닌 시발 맞선임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웃기냐..아 모르겠다. 나 근취때리라니까 알아서 애들 식사조 짜서 밥멕여라."
"와..또 까심까?"
"조까~ 잘거야.."
하루가 엄청나게 길었다. 퀘퀘한 냄새가 났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불꺼놓은 실내는 어째좀 쌀쌀했다. 모포덮인 매트리스를 그대로 펼쳤다. 침낭안에 들어갔다.
땀흘린 일은 없었다. AS 안은 시원했다.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당연히 목욕은 귀찮았다. 저녁까지는 아무도 안건들길 바랬다. 달달한 곰팡내가 자장가를 불렀다.
설계사:동산 정밀,금성 일렉트로닉스
전고:7.49m
중량:6.25t
동력원:금성 PUS-1995a 팔라듐 리액터
출력:1385.25kw
최대작전행동시간:140.9시간
최대자주속도:200.5km/h
최고도약높이:20.5m
고정무장:k21구룡 20mm 기관포 1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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