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
“네.”
대로를 걸으며 태훈은 티유에게 물었다. 양 쪽 볼이 빨개진 티유는 자신의 뺨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알고지낸 언니예요.”
“신관이라.”
티유의 말에 태훈은 잠시 생각했다. 확실히 신관이란 존재는 힐러로서 나쁘지 않은 존재였다. 어떤 신을 섬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게임이나 소설에서 신관들은 기본적으로 치유는 믿고 들어가는 직종이었다. 다만 티유가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게 조금 걸리기는 했다.
‘그래도 이 녀석보다는 정상인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티유를 힐끔 봤다. 그녀는 태훈의 시선을 알아채지도 못 한 채 여전히 자신의 뺨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신관은 어디에 있는데?”
“아마 이 시간이면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을 거예요.”
그 말에 태훈의 머릿속에는 독실한 신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저기 언덕 보이시죠? 신전은 거기에 있어요.”
“엄청 머네.”
“네. 그래서 지금부터 마차를 타고 갈 거예요.”
티유는 그렇게 말한 뒤 방향을 꺾어 한 건물로 들어갔다. 앞만 보고 걷던 태훈은 당황하며 다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로 들어서자 커다란 웃음소리와 고기가 익는 냄새가 풍겨왔다.
건물은 식당이라도 되는 건지 테이블이 즐비했고, 그 앞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잔을 가득 채운 술을 비우고 있었다. 그리고 여종업원들은 바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태훈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정말 다른 세상에 왔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안태훈 씨, 여기예요!”
소란스러운 곳에서도 티유는 용케 크게 소리치며 태훈을 불렀다. 건물 내부를 둘러보던 태훈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티유는 까치발을 들며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바 뒤에 들어가 있는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와 얘기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이 하는 얘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주인장, 마차 좀 주세요. 신전까지 갈 일이 있으니까, 좀 빨리요.”
“알겠습니다.”
콧수염 사내, 아무래도 주인장인 것 같은 사내는 티유의 요청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뒤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
“아, 맞다. 안태훈 씨, 배 안 고프세요?”
“안 고프겠냐.”
태훈은 아침 말고는 먹은 게 없었다.
“집에 가서 늦은 점심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불려왔다고.”
“아, 그건 죄송합니다.”
태훈의 말에 티유는 즉시 사과의 말을 올렸다. 몇 번 혼나고 났더니 태훈의 뒤 끝에 대응하게 되었다. 태훈은 한숨을 쉰 뒤 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러면 여기서 뭐 좀 먹고 갈까요? 마차가 오려면 시간 좀 걸릴 거고요.”
“어? 그래도 되냐?”
“사실 저도 배가 고파서요.”
“아, 그런 거였냐.”
티유의 대답에 태훈은 한숨을 쉬면서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티유를 바라보았다.
“뭔가요, 그 시선은. 뭔가 기분 나쁜데요.”
“아니, 아무 것도 아냐.”
“뭔가 엄청 불합리한 시선인 것 같은데요.”
태훈의 시선에 티유는 살짝 기분나빠하면서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도 의자에 앉아서 여종업원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종업원은 메뉴판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음, 볼까요. 으음……. 아, 여기 ‘전투조류’로 2인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뭔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메뉴명인데?’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며 태훈은 어째서인지 주인장의 센스에 경악하고 있었다.
“여기는 닭요리가 유명하거든요. 특히 투계로 만든 요리가 참 괜찮죠. 그래서 전투조류라고 불러요.”
“그게 그 뜻이었냐.”
태훈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티유를 바라보았다.
“그 외에도 저 같은 마법사들이 자주 찾는 ‘매지션즈 레드’나, 기사들이 자주 찾는 ‘실버 채리옷’도 잘 팔려요.”
“왜 이름들이 다 그 모양 그 꼴인지는 모르겠다만, 맛은 있는 거겠지?”
“네. 한 입만 먹어도 궁극의 생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맛있어요.”
“……난 모르겠다.”
티유의 말에 태훈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인지 골이 아파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진짜 맛있다니까요? 한 번 먹어보세요!”
“알겠어. 알겠으니까 바로 옆에서 소리치지 마.”
태훈은 인상을 쓰며 그렇게 말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주방에서 주인장이 나왔다.
“주문하신 전투조류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차도 불렀습니다. 다 드셨을 때쯤에 올 겁니다.”
“아, 감사해요. 드셔보세요, 안태훈 씨.”
티유는 주인장에게 인사한 뒤 문제의 메뉴, 전투조류를 태훈에게 권했다. 태훈은 약간 떨떠름해 하면서도 음식을 봤다. 무언가 신경 쓰이는 이름과 다르게 음식은 의외로 평범했다. 오븐에 닭을 구운 건지 겉은 꽤나 노릇하게 구워져 있었다. 기름기도 없어보이고 나쁘지 않아 보였다.
“다리에 살이 통통하니까, 그거 드세요!”
“알겠으니까 옆에서 소리치지 말랬지.”
태훈은 불평하면서도 손으로 닭다리를 몸통에서 뜯어냈다.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리가 뜯어지며 고깃결이 늘어지며 뜯어졌다. 그 모습을 보자 태훈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잘 먹겠습니다.”
작게 중얼거린 뒤 태훈은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다?”
꽤나 평범한 맛에 태훈은 저도 모르게 놀랐다. 하기야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평범한 맛인 게 당연했다.
“어떠신가요, 제가 대접해드리는 전투조류의 맛은! 맛있죠?”
“의외로 수수한 맛이라 더 놀랐다.”
어쩌면 자신은 여기에 대해 깊은 오해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태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때문에 당황하긴 했지만 괜찮은 맛이었다.
“후후, 하지만 놀라긴 이르다고요? 여기에 양념을 발라먹으면 더 맛있다고요.”
“그렇겠지.”
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어? 왜 안 놀라죠?”
“그게 놀랄 일이었냐.”
티유의 반응에 태훈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고기를 뜯었다.
“아뇨, 좀 놀라주세요. 처음에 소환했을 때 이후로는 놀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요. 이러면 뭔가, 재미가 없는데요.”
티유는 솔직하게 말하며 반대쪽 다리를 뜯었다.
◇
“여기가 신전이에요.”
티유를 따라 마차에서 내린 태훈은 앞을 바라봤다. 마부는 티유에게 인사한 뒤 천천히 마차를 몰며 산에서 내려갔다.
“너 꽤나 대접받는 것 같은데.”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내려가는 마부를 힐끗 봤다. 아까 식당 주인도 그렇고, 그들을 이곳까지 데리고 와 준 마부도 그렇고 어째서인지 티유에게 몹시 공손했다.
“그야 뭐, 저는 높으신 분이니까요.”
“네가?”
티유의 말에 태훈은 영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뭔가요, 그 눈은. 왜 안 믿어 주시는 건가요?”
“그야, 뭐.”
태훈의 생략된 말에 티유는 스스로도 할 말이 없긴 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근데 왜 마차를 타고 온 거냐?”
“신전 근처에서 마법을 쓰는 건 금지거든요. 신관들과 마법사들 사이의 조약 같은 거라서요.”
“흐음.”
“하지만 신전의 허가만 있으면 마법을 쓸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난 그것보다 네 실력이 더 걱정인데.”
태훈의 말에 이번에도 입을 다무는 티유였다.
“아, 아무튼 들어가시죠.”
티유는 황급히 화제를 돌리며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태훈은 그런 티유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 뒤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서자 태훈은 예전에 갔었던 교회가 떠올랐다. 양쪽으로 의자가 늘어서 있었고, 중간 복도를 따라 가니 하얀 제단이 있었다. 제단 앞에는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한테는 어떻게 반응하셔도 신경 안 쓰겠지만, 저 분한테는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저래 뵈도 이 나라의 최고 사제세요.”
“아무렴 너한테 하는 것처럼 행동할까.”
태훈의 말에 티유는 중간에 멈춰서서 태훈을 바라봤다.
“됐어요. 안태훈 씨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응?”
“뭔가 기분이 상했어요. 어차피 알고 지낸지도 오래됐는데 저 혼자 가서 얘기하고 올게요.”
“뭐, 그러던가.”
티유의 시선이 뭔가 걸리긴 했지만 태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충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그리고 티유는 돌아서서 제단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태훈은 자기가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티유와 같이 있으면서 계속 퉁명스럽게 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태훈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록 자신의 인생 계획을 망친 주범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과도 했고 하니 조금은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티유가 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최고 사제라고 부른 노인에게 다가간 티유는 들고 있던 완드를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자 최고 사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티유의 말이 태훈이 있는 곳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요청하는 듯했고 최고사제는 연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뭔가 대화가 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태훈의 위치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티유의 표정도 뭔가 분노에 차는 것만 같았다.
“어…….”
태훈이 당황하고 있자니 티유가 완드를 높이 들어올려서.
최고 사제의 머리에 휘둘렀다.
“야?!”
그 모습을 본 태훈은 놀라 소리치며 전력을 다해 티유에게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미친놈아!”
“이거 놔요! 이 영감탱이가, 진짜! 왜 계속 안 된다고만 하냐고요! 아니면 안 들린다고만 하고! 그 귀를 고쳐드려요?! 네?! 아, 놓으라니까요!”
“너 같으면 이 상황에 놓을 수 있겠냐! 함부로 행동하지 말하고 했던 게 누군데!”
“이거 놓으라고요! 이딴 영감탱이, 제가 친히 여신님의 곁으로 보내드리겠어요! 제 위대한 마법으로 보내드리죠!”
“신전에서 마법은 안 된다며!?”
태훈은 필사적으로 티유를 말리며 신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끌려 나가면서도 티유는 소리를 지르며 완드를 붕붕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죄송했습니다!”
결국 태훈은 억지로 티유를 끌고 신전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으으, 무시당했어요. 최고 사제한테 무시당했어요.”
“나한테는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정작 네가 그렇게 화를 내면 어쩌잔 건데.”
“우으으.”
티유는 태훈의 말에 작게 신음을 내며 주저앉았다.
“그 노친네, 다음에는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정중하게 대해야 되는 거 아니었냐?”
“알게 뭐예요, 그딴 거! 언젠가 최고 사제의 뚝배기를 깨겠어요! 두고 보세요! 그딴 노친네, 제가 저 세상에서 여신을 만나게 해줄 거니까요!”
그런 티유의 모습을 보며 태훈은 그녀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철회했다. 이 녀석은 친절하게 대할 수가 없는 녀석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태훈이었다.
“에잇, 일단 치료사 말고 또 누가 필요하다고 했었죠? 그 사람부터 섭외하러 가죠!”
티유는 화를 내며 그렇게 소리치며 태훈을 바라봤다.
“전사, 가 필요하긴 한데.”
“그러면 왕궁으로 가죠! 이렇게 된 거, 왕궁에서 최고 사제를 엿먹이고, 치료사를 데려가겠어요! 공권력의 무서움을 보여드리죠!”
티유는 그렇게 결심하며 완드를 들어올렸다.
“야, 잠깐만. 너 신전 근처에서 마법을 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
“알 게 뭐예요! 절 무시하는 노친네인데 그거 안 지킨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겠죠.”
그런 티유의 모습을 보며 태훈은 어쩌면 그 최고 사제라는 노인이 티유를 무시하는 이유가 이런 점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자니 조금 그랬다.
“네가 이러니까 그런 취급 당하는 거 아니냐.”
그러나 물론, 조금 그런 건 단순히 넘어가면 그만인 일이었다. 태훈의 발언에 완드를 높이 치켜들었던 티유는 굳은 표정으로 태훈을 돌아보았다. 마치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나…….’
티유의 반응을 보며 태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여자애는 멍청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무튼 가시죠.”
“너 왕궁 가서도 무시당하는 거 아니냐?”
“그럴 일은 없어요!”
티유는 화를 내며 완드를 다시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낮게 무언가를 읊조렸다. 그러자 빛이 티유와 태훈을 감싸더니 붕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오?”
신기해하며 바닥을 내려 보자 태훈은 정말 자신의 몸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이!”
티유의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태훈은 엄청난 속도감과 동시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 자칫 했다가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
그리고 태훈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씨. 안…… 씨! 안태훈 씨!”
“허억?!”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와 양 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을 떠보니 티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을 잃었었네요. 너무 빨리 왔었나요?”
티유는 몸을 일으킨 태훈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으, 머리야…….”
“생각보다 약한 몸뚱아리네요.”
티유는 어째서인지 고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태훈을 보고 말했다. 그런 티유의 표정을 본 태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양 뺨을 문질렀다. 아직까지 얼얼한 게 아마 뺨을 때렸나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태훈은 한숨을 쉰 뒤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넌 좀 혼나야겠다.”
그리고는 티유의 양 뺨을 잡아당겼다.
“으아앙, 어, 어애어혀?!”
“양 뺨이 아직까지도 얼얼하잖아, 이 멍청아!”
태훈은 소리치며 티유의 뺨을 사정없이 잡아 늘렸다. 티유의 고통에 가득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