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신기하네.”
태훈은 거리를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만화나 영화로만 봤던 중세 거리를 직접 걷는다는 건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외국 쪽으로 간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살던 나라에서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근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그야 당연히 마왕을 잡으러 가는 거죠!”
“지금?”
“당연하죠! 안태훈 씨도 빨리 돌아가고 싶으시죠? 그러면 마왕을 잡아야죠!”
그 말에 태훈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섰다.
“어라? 안태훈 씨?”
“지금 당장?”
“네, 지금 당장.”
티유의 대답에 태훈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뒤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나가는 곳은 이쪽인데!”
“미친 거 아니야? 미친 거 아니냐고!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마왕을 어떻게 잡아!?”
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티유가 붙잡으려 했지만 어떻게든 무시했다.
“아무 준비도 안 할 리가 없잖아요! 지금부터, 지금부터 준비를 할 거예요!”
어떻게든 태훈을 따라잡은 티유는 태훈의 후드티 모자를 붙잡아 늘어지며 말했다.
“적어도 포션은 준비할 거라고요!”
“미쳤냐?! 그걸로 해결될 것 같아?!”
태훈은 몸부림치며 티유의 손을 뿌리쳤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용사님이 다 해결해주실 건데!”
“넌 마왕을 잡을 속셈이냐, 아니면 용사를 잡을 속셈이냐.”
티유의 말에 태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용사님이잖아요! 강하잖아요! 수능이라는 괴물도 쓰러뜨릴 수 있는 분이잖아요!”
“웃기지 마! 싸울 줄도 모르는데 나보고 달랑 포션 하나만 들고 마왕이랑 싸우란 거냐?!”
날 죽일 셈이냐, 하고 소리친 뒤 태훈은 티유를 노려보았다.
“싸, 싸울 줄 모른다고요?”
“내가 말 한 것 같은데.”
“드, 들은 것 같긴 하지만. 그거, 사실이었나요.”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냐.”
“으으, 그럼 틀려먹은 거잖아요! 최악! 정말 최악이에요! 용사로 소환해도 이런 사람을 소환하다니!”
티유는 태훈의 말에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그 행동에 태훈은 자신의 신경 어딘가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이 계집애가……. 누군들 소환당하고 싶어서 소환당했냐! 지가 멋대로 소환해놓고 그딴 소리나 내뱉냐? 그딴 소리를 내뱉는 건 이 입이냐? 엉? 이 입이냐고!”
“아, 아하여~!”
그리고는 티유의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양쪽으로 잡아 당겼다.
“나는 누구 때문에 인생을 통째로 날리게 생겼는데, 최악이라고 지껄이네? 응? 요 입을 꼬매주랴?!”
“애, 애엉애여! 애엉애여! 아, 안 으얼에여! 영어애으에여!”
태훈의 분노에 티유는 눈물을 글썽이며 거듭 사과했다. 그녀의 사과에 태훈은 한숨을 쉰 뒤, 한 번 더 세게 잡아 늘린 후 놓아주었다.
“으으, 사과했는데 한 번 더 잡아 늘리는 건 뭔가요.”
“한 번만 더 지껄이면 그때는 얄짤 없다.”
“…….”
노려보는 태훈의 시선에 눌려 티유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난 싸움 못 하니까, 포션 하나만 믿고 나설 수는 없어. 물론 필수 아이템이긴 하겠지만.”
“그, 그러면 동료! 동료가 있으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 말에 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기본적인 판타지 소설로 생각하면, 일단 힐러와 탱커가 필요하겠네.”
“그렇군요. 그 판타지 소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치료사라면 제가 아는 곳이 있어요!”
“호.”
“용사님이 동료를 찾을지도 모르니까 미리 다 섭외해놨다구요?”
“……정말이냐.”
티유의 말에 태훈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 시선에 티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 정말이에요.”
“화 안 낼 테니까, 솔직히 말해보렴.”
“죄송합니다.”
“죽는다.”
“화, 화 안 내신다면서요!”
“그걸 믿냐!”
태훈의 분노는 티유가 무릎을 꿇고 빌 때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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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렸던 부분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분량이 길어서 어쩔 수 없이 잘랐는데 애매하게 잘라버린 것 같네요. 그 다음편은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