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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래로부터의 혁명] '오랜 연인' 7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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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화('오랜 연인' 6화): http://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read/30559744?search_type=member_srl&search_key=4836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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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 형법, 민법, 세법... 법조문의 공세가 시작되니 대령님은 그것을 자장가 삼아 잠에 빠지셨다.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던 것 같긴 한데, 집중하다 보니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것을 눈치 챈 건 한참 뒤에 한숨을 돌릴 때의 일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나쁜 꿈을 꾸고 계시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생각대로, 아스트라는 본인이 신뢰하는 두 아이를 곁에 둔 탓인지 평소에 자주 꾸던 악몽이 아닌 평범한 꿈을 꾸며 오래간만의 편안한 단잠을 즐기고 있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연령대의 우리 형제는 이 뒤로도 방에서 대령님을 뒤로하고 공부하거나, 문서작업을 하거나, 바깥에서 사람들 간의 땅 경계 싸움을 말리고 다녔다. (다만, 땅 경계 싸움 말리기는 전보다 더 적게 다니면서 내게 원한을 품은 이들과 마주치지 않게 알아서 조심했다.)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된 것은 그 무렵의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공부 아니면 문서작업뿐인 삶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면 고등고시에는 언제 응시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손아귀에 주어진 교재들을 몇 년간 지겹도록 본 뒤에 시험을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조용한 걸 보니 이 방이 맞는 것 같은데. 이렇게 조용한 건 빈방 아니면 글쟁이들이 들어있는 방이란 뜻이지."

 

 

  처음 보는 동양인- 나이는 20대에서 3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무슨 볼일이신지 노크까지 하며 들어오신다. 글쟁이라, 공부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건 아는데, 좋은 뜻으로 말한 건지, 나쁜 뜻으로 그런 건지는 모른다.

 

 

  "여기는 무슨 일로..."

 

 

  "너에 대한 소문을 몇 개 듣고 흥미가 생겨서 와봤어. 여기에 무려 땅 경계 싸움을 몇 번 말려본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들 말이야. 사람들 싸움 중에 가장 말리기 힘든 게 으레 재산이 걸린 싸움인데. 사실이야?" (그렇게 적대적인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게 뭐 어디 제 능력인가요. 이곳의 분쟁은 작기도 작고 토질도 나쁜 땅을 두고 일어나는 건데... 어떻게든 혀를 굴려서 화해하게 하는 거죠."

그 말솜씨도 진작 깨쳤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간수 일을 맡아가지고 몇몇의 원한을 사게 되었으니, 가지고 있어봐야 큰 도움은 안 되는 재능이다.

 

 

  "실은 내가 변호사 일에 관심이 있는데, 여기 환경이 워낙 안 좋아서 힘들더라. 책을 구하기 힘든 건 기본이고, 1년 내내 이 날씨라서..."

 

 

  가우스 아저씨(고시 출신은 아니지만, 9급 서기보 시험에 합격하신, 뇌 주름이 깊은 아저씨다)를 비롯해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통사정해서 그것을 빌려서 공부하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게 뭔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네요. 그러니까 제게 도와달라는 거죠?"

 

 

  "처음 보는 아저씨한테 보여줘도 돼?" 동생이 걱정스럽게 물어온다.

 

 

  "이런 곳에선 서로 돕고 살아야지." 여기까지 굳이 찾아온 사람보고 그냥 가보라고는 못한다.

 

 

  "이야, 고마워. 그건 그렇고, 저기에 누워있는 분은 연대장님 아니던가? 그럼 그 소문까지 사실이었네."

 

 

  도대체 무슨 소문이 떠돌고 있느냐 물어보니, 방에 처박혀서 공부만 하는 기계 같은 인간이 있는데, 대령과 정식으로 양어머니-양아들 관계는 맺지 않았다지만 친분이 깊어 이런저런 특혜를 많이 받고 다닌다는... 예상대로 좋은 소문은 아니다. 거기서 듣기를 멈춘다.

 

 

  "말했지만 난 너에 대한 좋은 소문들도 들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몰라도, 땅 경계에 관한 부분은 전부 사실인 거지?"

 

 

  "그게... 정확히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몰라도 그건 확실합니다."

 

 

  나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는 입장인데, 이 아저씨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곳에 온 본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책상 위에 펼쳐놓은 종이들을 읽어본다. 어떻게 하면 동생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며 고민하던 참이다.

 

 

  "무슨 소리지... 칼, 누가 들어왔어?"

 

 

  "아, 대령님. 어떤 아저씨가 찾아오셨는데, 이분도 공부 얘기로 찾아오신 모양이니 그냥 더 주무셔도 돼요."

 

 

  소란이 인 탓에 단잠에서 깨셨나 보다. 그런데 다시 잠에 드시는 속도 역시 빠르다. 그것을 목격한 아저씨가 평소에 생각해온 연대장의 모습과 실제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이 모습을 보게 되면 비슷한 반응이지 않을까.

 

 

  "난 어쩌다 보니 바깥의 이야기를 듣게 되어 변호사 일에 구미가 당기게 되었는데, 너희들은...?"

 

 

  대령님이 눈꺼풀을 감자마자 물어오는데, 이 아저씨도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 이왕이면 도시 행성에 나가 크게 성공해보겠다는 심산이고, 굳이 변호사를 고른 건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밑에 깔린 것이 아닐까.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나, 여기에 쌓여 있는 종이들이나, 모두 저와 같은 나이의 친구가 준 선물이에요."

 

 

  이야기는 길고도 길지만 오늘 처음 본 아저씨 앞에서 그 친구가 어머니 대신 분유를 태워 먹여주던 시절부터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이것저것 배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니, 대령님의 실제 모습을 본 일이나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것보다도 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하긴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가 가르쳐줘야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지.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적으니 네 말을 믿는 수밖에."

 

 

  그러더니 다시 종잇장을 넘기는 데 집중하신다. 자료의 양에 대한 감탄과, 자신이 들은 풍문이 사실로 밝혀진 데 대한 충격이 얼굴 위에서 교차한다. 거기에 동생과 나까지 가세해 어느 샌가 셋이서 법조문을 가지고 토론 아닌 토론을 하게 됐다.

 

 

  이야기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깊숙한 말을 나눌 수 있었는데, 아저씨는 10살 연상, 그러니까 25살(외모에 비해서는 의외로 적은 나이다)에 이름은 한권인데, 사실 원래 이름은 따로 있지만 권세 권자를 따와 스스로 이름을 바꾸셨다나...

 

 

  "형은 변호사가 꿈이라더니, 공부 많이 했나 보네."

 

 

  "설마하니 도시에서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만 하겠냐?"

 

 

  "형설지공이라는 말도 있는데, 여기는 일 년 내내 폭설에 백야니 형은 성공해도 아주 크게 성공할 거야." 금세 말을 놓는 사이가 됐는데, 내 장래희망이 판사, 동생은 검사, 자기는 변호사, 합해서 법조삼륜이 완성됐다는 여유까지 부린다.

 

 

  “두 아우님은 법관이 꿈이라니 부디 이 미천한 변호사에게 선처를 베풀어주시기를. 법조삼륜 좋네, 좋아. 두 아우님들은 어느 정도 성적을 목표로 했는지 모르겠네?”

 

 

  “그거야 말하면 잔소리 아니야? 당연히 수석 합격이지. 차석부터는 불합격이나 마찬가지야.”

 

 

  “큰 아우님의 포부는 잘 알겠어. 그렇다면 작은 아우님께서는?”

 

 

  “저도 할 수만 있다면 수석이 목표죠.”

 

 

  셋 다 수석 합격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만있자, 수석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여기 셋뿐일 리는 없고, 지금도 어디선가 공부하는 경쟁자들이 수두룩하게 있는데, 아는 사람 셋이서 1등으로 시험에 붙으려면 어느 정도 시험을 거둬야 하나?

 

 

  “그런데 우리 세 명이 전부 수석으로 합격할 수 있을까요?” 마침 동생이 반문한다.

 

 

  “작은 아우님께서는 걱정도 많으시군. 1차 객관식 시험, 2차 서술 시험, 3차 면접까지 전부 만점을 받으면 어디선가 강한 경쟁자가 나와도 문제가 없지 않겠어?”

 

 

  “그 생각을 못 했네요. 고시고 뭐고 만점만 받으면 1등은 걱정 없는 일인걸.”

 

 

  동생이 혼자서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3명이 만점으로 수석 합격,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실제로 해낼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면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그 고시도 매번 합격자가 나오는 시험 아니야?

 

 

  “그때까지는 저기에 누워 계시는 연대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겠네. 아우님들 말대로라면 저 기특한 난로도 연대장님이 구해다 주신 거라고 하니까. 뭔가 저분과 친해질 비결 같은 거라도 있어?”

 

 

  “비결 같은 건 딱히 없는데. 해줄 만한 경고라면 외모에 대한 칭찬은 삼가라는 것 정도...?”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하지 말라... 참 오묘한 경고로세.”

 

 

  경국지색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외모를 가진 여인의 운명은 보통 두 가지일 것이다. 그 외모 덕분에 아주 높은 곳까지 가거나, 괴로운 삶을 살거나. 연대장님이 전자에 해당하는 분이셨다면, 이곳에 오시는 일도 없었으리라. 형에게 해준 경고는 이런 추측에 바탕을 둔 경고다.

 

 

  “하지만 나보다 오랫동안 연대장님과 알고 지내 온 아우님의 말이니 따라야지, 안 따르고 어쩌겠어?” 다행히도 대강은 알아들은 눈치다. 그렇지 않았다면 변호사 공부를 마치기도 전에 피곤한 일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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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주 쉬고 오니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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