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s5는 누워있었다.
벌써 이렇게 된 지도 9개월이다. 젊은 시절 한 청년의 손에 들려와 다채롭고 알록달록한 빛깔과 캐쥬얼한 소리를 냈던 때로부터 3년하고도 2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청년 안씨는 갤럭시s5만을 바라보았고, 다른 기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LG과 아이폰이 지나갈 때마다 s5를 힐끗거렸지만 안씨는 괘념치 않았다.
“이걸로 사진도, 음악도, 글 읽기도 다 할 수 있는걸. 다른 건 필요없어.”
2년이 되던 해였다. 안씨는 폰 게임을 그만두었다. 갤럭시s5는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갤럭시 s5는 스스로를 자책했으나, 전보다 발열이 심해졌고, 어지러워서 기능을 다스리는 게 예전만 하지 못했다. 안씨는 처음에는 그 굳은 참을성을 가지고 갤럭시s5를 대했다.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액정은 필터마저 깨끗했으니 지극정성이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3년이 되던 해부터 고운 심성의 안씨는 결국 갤럭시s5에게 비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왜 이리 느려!”
안씨는 배터리가 얼마 없는 갤럭시s5를 다그쳤다. 하지만 남은 배터리가 2퍼임에도 불구하고, 갤럭시s5는 처음 손에 들렸을 때만큼의 속도를 내지 못했다. 서서히 쌓인 연식에 몸 내부에 쌓인 사진 파일과 영화. 과도하게 축적된 업데이트 파일은 이제 갤럭시s5의 몸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갤럭시s5는 자신에게 시리나 지니처럼 대답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게임 때문에 충전단자가 꽂힌 채로 안씨의 손에 온정을 받아왔던 갤럭시s5는 비틀어진 충전 단자 입구 때문에 전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 발열 때문에 항상 안씨의 손에 땀이 나게 만들었다. 갤럭시s5는 그게 몹시 슬펐다. 갤럭시s5는 생각했다.
‘미안해요, 제가 어서 충전되어서 다시 켜질 테니까 화 풀고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아, 망할, 배터리 1퍼 남았잖아!”
안씨는 그렇게 말했다. 필시 자취를 하기 시작하면서 밝게 웃고 다니지만, 혼자서 있을 때 앞일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니 쌓인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갤럭시s5는 기절했다. 안씨는 더 뭐라고 하지 않았고, 갤럭시s5가 일어났을 때 본 것은 자신을 손에 쥐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파일 중 하나를 읽으면서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는 안씨였다. 갤럭시s5는 그때마다 하염없는 눈물을 배터리 잔량 표기 숫자, 전류와 함께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로부터 9개월이 더 흘렀다. 갤럭시s5는 2018년 3월7일 오전에 알람을 울리기 위해서, 전날 저녁에 안씨의 가방 위쪽에 올려져 있었고, 이제는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었던 충전단자 마저도 비스듬하게 꽂힌 채였다. 갤럭시s5는 안씨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화면이 하늘을 향해있었으니까.
갤럭시s5는 그 옛날, 영웅의 군단과 크루세이더 퀘스트를 하는 동안 두 손으로 따뜻하게 자기를 감싸고 해맑게 웃던 청년을, 그 손의 온기를 떠올렸다. 그때의 둘은 함께 웃고 있었다. 그러나 안씨는 더 이상 늦게까지 갤럭시s5를 잡고 있지 않았다. 안씨는 자취방에 보일러를 틀었지만, 가방 위에 있던 갤럭시s5는 그 온기마저 느낄 수 없었다. 갤럭시 s5는 어둠속에서 까만 방의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당신과 같은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요.’
그리고 둘은 잠이 들었다.
*
아침이 밝았다. 안씨는 예정되어있던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눈을 떴다. 안씨는 갤럭시s5를 들었고 살짝 깨어난 s5는 시간을 보여주었다. 8시30분이었다. 안씨는 갤럭시s5를 가방 위에 올려두고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조금 더 뒤척였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갤럭시s5는 자신이 일어나면서 안씨를 깨웠다. 안씨는 알람을 전부 끄면서 일어났고, 그 손길이 다시 닿았을 때 갤럭시s5는 행복을 느꼈다. 요즘 안씨는 노트북과 PS4를 끼고 생활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신과 게임을 하며 놀아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갤럭시s5는 기분이 좋았다. 요즘 안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아이들이 등하원시 학부모에게 자신을 통해 말을 걸 때면, 언제나 신사답고 다정하고 친절하게, 밝은 모습으로 웃으며 인사하고 대화를 나눈다. 갤럭시s5는 그럴 때마다 안씨가 옛날에 자신에게 따뜻하게 웃어줄 때처럼 좋아했다. 그런데 그날 5시가 되었다. 이상하게 갤럭시s5는 몸이 무겁고, 활동하기가 힘들었다. 다행인 점은, 부모님들에게 연락할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다 하원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당장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안심했지만, 안씨는 혹시나 필요하지 않을까 했던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안씨는 갤럭시s5를 들었고, 학원의 충전기를 빌려서 꽂아놓았다. 늘 집에서 하루의 끝에 마지막에 꽂는 익숙한 충전기가 아니었다. 그 모양은 이미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갤럭시s5의 충전단자를 처참하게 망가뜨렸다. 하지만 갤럭시s5는 자신에게 전류가 공급되는 것을 느꼈기에 참았다. 하지만 내부 충전단자가 이상했다. 충전기를 힘 있게 붙들고 있지를 못했다. 전류의 공급이 끊겼다. 하지만 안씨는 충전기에 꽂은 후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갔다. 갤럭시s5는 생각했다.
‘안씨, 어쩌죠? 오늘은 제가 몸이 많이 이상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리 오셔서 단자를 잡아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안씨가 갤럭시s5의 생각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안씨는 나타났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충전기가 걱정인 것인지 갤럭시s5를 걱정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다시 돌아왔다. 안씨는 말했다.
“어, 어쩌지. 역시 오래 돼서 그런가? 단자가 안 맞네.”
안씨는 갤럭시s5를 돌려가면서 단자를 상하좌우로 살짝살짝 비틀어봤지만, 충전은 되지 않았다. 갤럭시s5는 점점 졸려옴과 상반되는, 찢어지는 몸과 마음의 아픔을 억누르며 말했다.
‘어떡하죠... 안씨...? 몸이 너무 무겁고 둔해요. 오늘은 어서 집에 가서 충전기를 꽂았으면 좋겠는데...시간이 아직 안 되었나요?’
“얘들아. 그러면 안 돼지!”
화면이 꺼져있었기에 갤럭시s5는 안씨의 얼굴을 똑바로 비출 수 있었다. 그 얼굴은 다시 바깥의 아이들에게 향해져 있었다. 갤럭시s5는 아주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과 함께 줄어드는 숫자는 0을 향해 수렴해가고 있었다.
*
안씨는 퇴근했다. 그는 요즘 한 공모전에 열심이었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노트북을 붙잡고 글을 쓰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갤럭시s5를 주머니에 고이 챙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노트북으로 한바탕 글을 썼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여 옷을 벗고, 다시 노트북을 세팅하고, 씻은 그는 갤럭시s5를 꺼냈다.
“와, 진짜 올해로 4년째구나. 나 진짜 폰 곱게도 쓴다.”
안씨는 갤럭시s5에게 익숙한 충전기를 꽂아주었다. 하지만 전류가 차오르지 않았다. 안씨는 당황했다.
“어, 뭐야. 이럴 리가 없는데?”
글을 쓰던 안씨의 관심이 갤럭시s5에게로 쏠렸다. 과거에 이불을 깔아놓고 엎드렸을 때처럼은 아니지만, 안씨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 위에 갤럭시s5를 올려두고 충전 단자를 꽂았다. 옛날에 색깔이 예뻐서 마음에 들어 했던, 안 쓴지 1년이 넘어간 사당역 노점에서 팔던 보조 충전기도 충전해서 사용해보았다. 하지만 갤럭시s5는 조용했다. 안씨는 당황해서 말했다.
“어떡해, 야, 이거. 충전 되야지. 너가 그러면 어떡해!”
당황해서 헛웃음만이 터져나왔다. 튼튼하고 망가지지 말라고 해주었던 고무 커버를 벗겼다. 그러자 그 아래로, 여기저기 부서져서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론 붙어있을 수도 없는 배터리 커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터리 커버 때문에 불편해서 충전이 안 되는 걸지도 몰라.’ 안씨는 그렇게 생각하고, 커버를 벗긴 상태에서도 충전기를 꽂아보았다. 하지만 갤럭시s5는 켜지지 않았다.
“왜야, 왜 단자에 꽂았는데 대체 왜...”
안씨는 한탄하듯이 말했다.
“이놈아, 왜 충전이 안돼. 왜 전류를 먹지를 못하니...”
그 와중에 안씨가 제일 처음 생각한 것은 다음 날 학부모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씨는 노트북을 이용해 카톡을 보냈고, 일단 다음날 가서 방법을 강구해보는 것으로 얘기를 해놓았다. 그리고 안씨는 거의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한글 파일을 켰다. 평소처럼 공모전 파일을 열고 타자를 두드리려던 안씨는 불현 듯 손가락을 멈추더니, 책상 위에서 그 빛이 꺼진 갤럭시s5를 보고는, Alt+N을 눌렀다. 글을 쓰고 있던 안씨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한 시간이 흘렀다. 안씨는 그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단톡방에 갤럭시s5를 위한 글을 완성했다고 투고하며, 다함께 애도하기를 원했다. 공허한 타자소리가 반복되는 노트북에선 갤럭시s5를 위한 애도의 소리가 ‘까똑’과 함께 올라왔다. 갤럭시s5는 그 옆에서 가지런히 놓여서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있었다.
-운수 좋은 날 패러디. Gs25의 운수 좋은 날. 끝.
작성자 안씨.
갤럭시s5에게 쓰는 편지.
고맙다 갤럭시s5야. 2014년 전역하고, 모자란 내가 처음으로 혼자서 샵에 가서 호갱짓하고 업어왔던 너. 처음에는 밤에도 새벽에 이불 뒤집어쓰고 게임하다가 혼나기도 하고, 그 짧은 콘센트가 뭐라고 전기코드 가까이에 앉아서 게임하고 그랬지. 정말로 그때는 핸드폰이 발열이 난다기 보다는, 내 손이 뜨거워서 폰이 열이 올라 배터리가 빨리 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2년이 지나고 3년 가까이 되니 게임은 안하고, 오히려 글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아주 드물게 영화를 보는 내 모습이 보이더라. 넌 그때쯤부터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지만, 난 내가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했고 남들처럼 폰을 자주 바꾸는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기에 이대로도 만족하고 썼어. 물론 이때부터 짜증이 조금은 났지. 남들보다는 느긋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도 빨리빨리의 한국인이라 그랬나봐.
그리고 2년이 조금 넘었지. 내가 마침내 집에서 나오고, 회사 기숙사와 자취방에 이르기까지 나와 함께하면서 너도 정말 고되었고, 내 관심이 점점 네게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네 의무를 완수하고 와서 네가 충전이 안 되었을 때, 운수 좋은 날과 너와 내 관계가 딱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서 널 위한 이야기를 내가 한 편쯤은 만드는 게 너와 내 인연을 정리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감정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안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네 덕분에 내 4년 동안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너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번호를 받으며 좋은 인연들을 맺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
내 생애 첫 스마트폰 갤럭시s5야. 정말 고마웠어. 네가 내 첫 폰이었다는 걸 잊지 못할거야.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지만, 네가 만약 감정을 느낀다면, 부디 나와 함께했었던 4년간의 여정이 행복했길 바라.
-너의 미숙한 주인이었던 안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