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동대륙에 갔다왔단다.
서대륙의 검이 폭(爆)을 추구한다면 거기는 쾌(快)를 추구했단다.
청자에 하얀 색 학이 수백마리 새겨진걸 봤느냐?, 탐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둘다 합쳐진 결정체가 무엇이냐면 나는 두말 말고 저걸 가리킬거란다.
동양의 현(絃)의 악기는 일일이 하나 씩 손으로 연주를 하지만 하나 하나가 나뭇잎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단다. 밤에 술잔을 달에 비추면서 먹으니 이만한 흥취(興趣)가 없구나.
이시드는 살라딘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인다.
4년만에 본 살라딘은 자신이 여행하면서 얻은 기념품을 보여주며 그동안 자신이 여행한 유람기를 이시드의 가족 앞에서 펼친다. 이야기는 사공을 넘는거같았고 발을 건너는 기분이었다. 이시드는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워한다.
아아 자신은 왜 모험을 못 하는 걸까. 자신은 왜 이딴 도시에서 빵이나 만들어야 하는가. 그는 여기에 말뚝 박기는 싫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라도 읽은 걸까 살라딘은 그에게 묻는다.
“어때?, 너도 가고싶지 않으냐?”
가고싶다. 당연히 가고싶다. 천번 물으면 천번 가고싶다고 말할정도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 입고있는 앞치마를 벗고 가게를 나가서 한 마리의 새가 되고싶었다. 그러나 라자의 등쌀 때문에 입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입에 머금은 이시드였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무리네요.”
아아 아깝다.
이 감정은 살라딘과 이시드 둘다 느끼고있었다. 아쉬워하는 이시드와 달리 살라딘은 씨익 하고 웃는다. 그에겐 ‘비장의 카드’란게 남아있으니까. 그는 괜찮다며 다독인다.
“하하, 걱정하지마라 내가 잘 말해놓을테니. 그나저나 잠깐 부모님하고 할 얘기가 있는데 비켜주면 안 되겠느냐?!”
어른들의 이야기구나.
이시드는 비단으로 만든 옷을 만지작거리고있는 리제를 붙잡아 문을 나간다. 이제 방에는 라자,듄,살라딘만 남았다. 라자는 그를 보며 으르렁된다.
“기여코왔군.”
“아아,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나도 신이기 전에는 인간이였다네.”
그리고 자신은 인간으로 살았을 때 ‘꼭 해야할 일’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저 소년이 필요하다. 듄은 옆에 자신이 끌인 홍차를 한잔 마시고는 말한다.
“질질 끌이지 말고 오늘 끝을 보세나.”
“내가 바라던 바일세.”
‘그 사건’ 이후로 4년이나 지났다. 이날이 오기까자 기다리는 자신도 지쳤고 슬슬 저 아이도 ‘한계’라는게 조금씩 느껴진다. 듄은 밖에 있는 이시드를 부른다. 그러자 달려오는 아들네미가 보인다.
“저 무슨 일이신가요. 아빠?!”
올해 18살 먹은 아들네미는 끝까지 아버지라고 안 부른다. 물론 그도 그런 칭호는 부담스럽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자신들이 무덤까지 끌고가야할 이야기였다. 이시드가 자리에 앉은 걸 보자 듄은 이시드에게 말한다.
“후.., 지금부터 잘 들어라. 이시드.”
담배라도 피우고 싶었지만 그는 아쉽게도 비흡연자였다. 멀뚱이 바라만 보는 아들을 보자니 가슴을 찢어질것만 같았다. 그러나 말해야한다. 듄은 어렵사리 입을 뗀다.
“너는 인간이 아니다.”
“예?!”
아아, 어디서부터 말해야할까. 어디서부터 꼬인걸까. 그러나 그런 자신의 마음과 달리 아들네미란 녀석은...
“제가 인간이 아니라고요?”
“그래.”
“아니 아빠, 제가 아무리 저라도 인간이 안 된건 아는데 그걸 꼭 말하면 어떻합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네미 가슴 아프다고요.”
북을 쿵 쳤는데 멍하고 받아 먹는다.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살라딘은 배를 부여잡고 웃고앉아있다. 북받아치고있던 슬픈 감정이 분노로 변한다. 듄은 재차 말한다.
“그게 아니고.”
“그러면요?”
“너는 종족부터가 인간이 아니다.”
“예..?!.., 예...”
놀라워하는 얼굴이 아니다. 마치 알고있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듄은 라자에게 얼굴을 돌리니 놀랍게도 그녀는 무덤덤하다. 거목처럼 앉아있지만 입은 바늘보다 작았다.
“아들.”
“...”
이시드는 말을 하지앉는다. 그저 바닥만 보고있었다. 라자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그녀는 그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않았다. 그저 다가가 그를 뒤에서 안았다. 포근하고 익숙한 냄새가 그녀와 그를 가득채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그녀는 그에게 속삭인다.
“엄마가 미안해.”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이런 몸 물려줘서.”
어릴 적에는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라고 배웠다.
근데 왜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은 당당하지 못하는 걸까?
눈물이 올라온다. 하지만 울고싶진 않았다.
“잘 들어, 아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자신이 어떻게 괴물이 됬으며 어떻게 아빠를 만났는지 그리고 너를 만났는지. 마지막으로 너는 이제 너는 어떻게 될건지.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저는 엄마의 육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이제 곧 ‘수련’ 비슷한게 온다는 거에요?”
“맞아.”
잠깐 머리에 돌을 맞았다라는 느낌을 들었다. 아니 지금 눈앞에 돌이 날라와서 자신의 정수리를 때려도 이시드는 아무런 감각이 없을것같았지만 일단 정신을 차려서 자신이 어디에있는지 알기위해선 요약부터 해야한다. 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시드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 그 ‘수련’을 통과하면 되지않나요?”
정확한 명칭도 없고 뭐라 말하기 어려운 ‘수련’은 아주 간단했다.
자신의 안에 있는 ‘무언가’와 싸워 이길 것.
이시드 그도 자신의 ‘무언가’를 알고 있다. 어제도 꿈에서 보았는지 않았는가. 자신의 눈에 비친 ‘자기자신’을 즉 나와 싸워서 이기라는 흔한 전개다.
“하지만 실패하면?”
라자가 말을 끊는다.
내안에 있는 무언가와 싸워서 지면 자신은 그안에서 죽게된다. 주인 없는 빈 육체를 무언가가 차지한다. 물론 자신이 움직이기 쉽게 육체를 개조한다. 손톱이 자라나고 입이 쭈욱 늘어난다. 피부는 비늘이 돋아나고 뿔이 자란다. 그야말로 ‘괴물’이라 부르는 제 3의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그녀는 그렇게 된자들을 수두룩하게 보았다. 그리고 초점잃은 그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죽였고 고삐 풀린 기차처럼 달리는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베었다.
반대로 성공을 하게되면 반인반마라고 부르는 괴수의 육체를 자유롭게 다루고 그들의 마력을 다룰수있게된다. 괴수의 힘과 자신의 힘을 합해 자신이 이식한 괴수보다 더욱 강해진다. 그녀는 그 신체를 얻어 괴수들을 도륙해 그녀는 영웅과 함께 용왕이라는 뜻의 ‘나가라자(Nagaraja)’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되는 사례는 무척이나 적었다. 적었을뿐더러 제국은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으며 덕분에 성공한 그들도 괴수들에 의해 죽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3명 정도인가. 그러나 눈앞의 아들은 그 수련을 만만하게 본다.
“이시드, 너는 죽을 거야.”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한다. 그녀는 눈앞의 아들이 죽을거란걸 알기에 그의 성장을 두려워했다. 그녀에 비해 이시드는 머리를 긁적인다.
“저.., 저도 그 무언가랑 자주 얘기했었거든요? 별로 안 쌔보이던데.”
“너 정말..., 잘못 알고있구나...”
여기까지 얘기는 안 했구나 하긴 자신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싸우는 무언가는 그게 아니다.
“너 처음에 무언가랑 만나기전에 뭐가 제일 먼저 보였니?”
“뭐가 먼저 보였나...?”
보이는걸 말하기도 애매했다. 어두워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잠깐 생각하는 이시드에 라자가 말한다.
“너가 제일 먼저 본 것은 ‘아무것도 없는 깜깜함’이거였을 거야.”
“아 그거에요?”
말하기도 부르기도 애매하다. 라자는 그의 눈을 보면서 말한다.
“그리고 너가 싸울 상대이기도 해.”
세상이 소드 마스터라 부르는 대륙에 열몇명 없는 이들도 그 무언가에 당했다. 그런데 오러는커녕 마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 눈앞의 남자가 과연 이길수 있을까?
제로다. 어떠한 기대를 걸을수도 없다. 그냥 보여진 답지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그 무언가를 싸우기위해 도와주는 거 나 그 무언가를 없애기 위해 온거지.”
잠자코 듣고있던 살라딘이 입을 꺼냈다.
“자아, 선택해라 소년.”
너는 그 무언가와 싸울것이냐.
도망칠것이냐.
저울대에 높여진 그의 운명은 오직 눈앞의 신만이 답을 알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