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비중
음악 : 노력 21%, 재능 79%
게임 : 노력 26%, 재능 74%
스포츠 : 노력 18%, 재능 82%
교육 : 노력 4%, 재능 96%
- 노력보다 재능 – 이라는 ZTN 기사에 첨부된 그래프다.
그래프가 걸린 게시물은 모 게임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현실에서도 발리더니 게임에서도 발려서 기분 드럽다.노력 따윈 다 허사]
라는 내용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징징글일 뿐이었고 다른 댓글들도 [ㅋㅋㅋㅋ]나 [공부 노잼 게임 예스잼] 같이 가벼운 반응들이었다.
여느 때라면 그냥 지나쳤을 그런 게시물이었지만 현준은 눈쌀을 찌푸렸다.
바로 댓글을 달았다.
[댓글 : 기준이 뭐냐? 천재 중에서? 평범한 사람 중에서?]
애당초 재능과 노력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없지 않나.
있는 그대로 비판없이 그래프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결국에는 의문은 남는다.
기준이 뭐냐?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양손으로 댓글을 달고 난 현준은 스마트폰을 던지듯 옆으로 치워버렸다.
별 의미는 없었다.
자신이 단 댓글은 [공부 노잼 게임 예스잼] 이랑 별반 다를 것도 없는 댓글이다.
기껏해야 할 일 없는 놈들이 댓글의 댓글을 달던가 아니면 그냥 묻히겠지.
그 순간 삐링- 하고 알람이 폰으로부터 울렸다.
댓글에 댓글이 달린 모양이었다.
[기레기들이 지 입맛대로 기사 쓰려고 만든 자료 같네요]
[애초에 이런 논의는 저런 쓰레기 같은 통계 자료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그런 댓글들이 주를 이루었고 게시글 작성자도 마찬가지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그냥 스쳐지나가나 했다.
그런데 댓글이 하나 더 달렸다.
[http://adfasdfasfd.asdfasdfasdf.asdfasdfasddf 에 쓴 것처럼 노력이 쓸모없을 리가 없잖아 노력이나 재능에 관한 논문들이 얼마나 많은데 읽어는 봤냐]
어디선가 달려온 선비가 선비질을 하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닉네임이었다.
현준은 금새 예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어떤 놈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고백하는 게시물에 [이불킥 각이네] 하고 댓글을 단 적이 있다.
그저 웃자고 단 댓글.
그런데 게시글 작성자에게 이래저래 선비질을 하던 놈이 현준의 댓글에다 대고 [사람 조롱하면 안됨] 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현준은 내 댓글이 조롱인지 아닌지 증명해보라고 반박했고 몇 번의 댓글이 오간 끝에 말도 안되는 트집이라 결론이 났다.
[오지랖도 정도껏 하시죠. 직업병이신가?]
[ㅇㅇ. 직업병맞음]
선비의 지난 글들을 보니 교사였다.
애들이나 오는 게임 커뮤니티에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면서 선비질을 하는 교사.
걸작이었다.
심지어 수업 장면을 찍은 사진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교사란걸 인증까지 한 게시물을 보면 제정신인가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땐 그렇게 넘어갔는데 왜 여기와서 또 이런 선비질을 하는 거지?
현준은 댓글에 달린 링크를 따라가보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현준이 댓글 단 노력/재능 게시물의 그 이전 페이지에 선비교사가 어린 애들 노오오오력해야한다고 선비질을 하는 게시물이 있었다.
게시판의 글을 다 보는 게 아니라서 몰랐는데 현준이 댓글 단 게시물의 작성자는 그걸 보고 짜증나서 그런 글을 올린 셈이었다.
그걸 또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선비가 따라와서 댓글을 달았다.
무시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 알람이 울렸다.
작성자와 선비가 하필이면 자신의 댓글에 대고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학생인 것처럼 보이는 작성자는 토론을 하려는 자세인데 비해 선비는 그저 상대를 까는 것에 집중하는 모양세였다.
어이가 없었다.
본인의 입으로 [나 너랑 토론할 생각 없고 지금 너 둘러서 까고 있는거 모르겠냐?] 라고 자랑스레 댓글을 달 지경이니 말 다했다.
현준은 커뮤니티 앱의 설정을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댓글 알람을 막는 기능은 없었다.
결국 무음 설정으로 알람 소리를 죽일 수 밖에 없었지만 치열하게 이어지는 댓글들은 계속해서 신규 메시지 알림을 화면 상단에 뿌려댔다.
현준은 피식, 하고 한 번 웃은 다음 댓글을 처넣었다.
[선비 몸 달았나 봄 선생이랍시고 이런데 와서 맨날 선비질이네
내가 저 사람 학생이면 이런데서 뻘글 싸대고 게임하고 이러는 거 시간 조사해서 근무시간에 뻘짓한다고
교육부든 학교든 학부모회든 찔러버린다 학부모회가 가장 강력하게 나올 거라 예상]
바로 댓글이 달렸다.
[찔러보든가 화제 될 일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거든]
[뭐든 화제가 되면 그 쪽만 x되는거지 게다가 분명히 근무시간에 뻘짓한 것도 남아있을거고]
현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논점은 그게 아니다.
선생이랍시고 선비질하는게 얼마나 부끄러운가가 논점이지.
이 자식은 그게 아니라 오히려 뒷부분에 반응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약점이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현준은 뜸을 들였다.
다시 길게 이어지는 작성자와 선비의 소모적인 댓글이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
[현실에서 얼마나 학생들한테 존경을 못 받으면 이런데 와서 맨날 선비질 자기 입으로 애들 깐다고 실토까지 하면서 가관이네
뭐 화제될 것도 없다는 거 보니 자신이 보잘 것 없다는 주제파악은 하는 모양인데 화제가 될지 안될지 한번 해볼까 당신이 썼던 글들 자료 다 긁어놨는데
적당히 나대세요]
자료를 실제로 긁었다고 선비가 착각할 만큼의 뜸을 들인 다음 현준은 댓글을 다시 올렸다.
그러자 좀 전처럼 바로 선비의 댓글이 달렸다.
[웃기네 교육부? 학부모회? 아무 것도 모르네 검색 좀 해보면 알게 될 것을 논리로 안되니 협박?]
현준은 다시 실소를 흘렸다.
판에 박은 듯한 정신 승리 패턴.
논리?
너 노력이나 재능에 관해 논리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던 거였어?
그냥 애들 까는 걸로 밖에 안 보이는데?
그리고 난 너랑 논리적으로 이야기 시작한 적도 없어.
협박이란 걸 알긴 아나본데.
이런데서 몇 달 후에 겨우 고등학교 들어가는 애한테 협박이나 당하고 있는 니 자신이 서글프지 않아?
현준은 선비의 댓글을 무시했다.
[근데 쟤 왜 저럼?]
선비의 댓글도 그게 끝이었다.
왜 그러긴.
니가 맘에 안드니까 그러지.
내 기분 별로일 때 잘못 걸린 셈 쳐라.
현준은 그대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눈 위에 팔을 올렸다.
“쓰레기 같은 새끼.”
절로 그런 말이 나왔다.
게임 커뮤니티의 어린 애들은 대부분 뻘글을 싸댄다.
하지만 그네들이 전부 다 쓰레기는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현준의 기준으로 쓰레기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이다.
매너가 인간을 사람답게 만든다.
예절은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저런 놈은 평생을 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눈 위에 팔을 얹은 채 현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해버렸네.
현준은 금새 그렇게 후회했다.
재능이고 나발이고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데서 진지해져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현준은 잘 알고 있었다.
나이대가 어린 커뮤니티라 그런 소재일 뿐이다.
유저 나이대가 높은 게임의 커뮤니티라면 주식이 어떻고 저떻고 그런 식으로 형태만 다른 징징글이 올라왔겠지.
항상 있는 일이다.
그런데서 뻘글 싸지를 필요는 없다.
실제로 그 게임을 플레이한다거나 혹은 좋아해서 든 커뮤니티도 아니었다.
게임 기획자로서 요즘 뜨는 게임들이 어떤가 살펴보려고 든 커뮤니티였고 글이라고는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
아주 가끔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웃자고 하는 댓글을 몇 번 달았을 뿐.
방금 단 댓글도 딱히 쓰레기가 교훈을 얻길 바라며 단 댓글은 아니었다.
그저 그 뿐인 댓글.
그래도 그 정도라도 후회스럽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방금 단 댓글은 사실 후안무치한 쓰레기가 어떻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심기가 그리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협박을 댓글로 달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도 참 유치하긴.
작성자도 선비가 말이 통하질 않는 상대라는 걸 그제서야 눈치챘는 지 더는 알람이 뜨지 않았다.
박현준은 눈을 누르고 있던 팔을 허공을 향해 주욱 앞으로 뻗었다.
활짝 편 손등이 빛에 울긋불긋 물들었다.
양 옆으로 가득 놓인 서버 장비에서 나는 빛이었다.
팬 돌아가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HDD라곤 전혀 없다.
서버 모두 SSD를 쓰는 고급사양들이다.
하긴 저질 장비를 썼다가 컨테스트가 엉망이라도 되면 큰일이지.
현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팀에서 사용하는 서버의 확인은 끝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원격이 아니라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도 빈틈이 없었다.
왠만한 소규모 IDC(인터넷 데이터 센터)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현준은 솔직히 감탄했다.
게임쇼 같은 행사는 그저 돈만 많이 들인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올해부터 개최된 청산게임쇼(CGS)는 기존의 다른 게임쇼에서 하던 행사들만 하는 것도 아니라 준비할 것들이 더욱 많았을 것이다.
특히나 스스로도 참가중인 인디게임 컨테스트는 국내에선 최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본선 입상작들을 게임쇼 일정중에 일반에 공개하고 일반 투표와 심사위원 채점을 통해 등위를 가린다.
이런 상황이니 만전을 기할 수 밖에 없다.
행여라도 장비트러블로 게임플레이가 중단되어 버리면 상위 입상은 물 건너 가버릴테니까.
장비 트러블이든 뭐든 유저들은 그런거 따지지 않는다.
게임 뻗었네? 개망작이네.
그걸로 끝이다.
어쨋건 적어도 장비 쪽으론 문제가 없을 듯 했다.
실제로 개장 전 리허설 때는 아무 사고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유저들의 반응 뿐.
거기에만 집중하자.
좀 있으면 홀에 나가서 체험 유저들에게 가이드를 해야한다.
아버지가 오지 않았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최우수상을 타서 투자 지원 대상에 뽑히지 않는 한 거들떠도 안 보겠지.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조금은 서운하다.
현준은 불현듯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 개자식이 아버지를 교묘하게 막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무래도 좋다.
빈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등을 주욱 펴 스트레칭을 한바탕 한 다음, 현준은 발 곁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그 때였다.
서버실과 붙어있는 옆 창고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너네 A팀 클라이언트가 크래쉬(Crash)했다고?”
“네. 형이 시킨대로 했죠.”
“정말이야?”
“어제 탈락 확정 통보 왔어요. 수작 좀 부리느라 고생했는데... ”
서버실 문의 손잡이에 손을 얹던 현준은 그대로 몸을 굳혔다.
A팀? 예원이가 있는 팀이잖아.
형이라고 불린 사람의 목소리는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경상도 특유의 억양에 더해 오만함이 가득 묻어있는 말투.
바로 자신이 속한 D팀의 메인 프로그래머, 김선재였다.
크래쉬(Crash) : 게임 앱이나 프로그램이 멈추어버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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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테스트 우승 후보팀에 속한 엄친아 박현준은 한예원네 팀이 탈락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듣게 되는데...... 그는 못들은 척 할 것인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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