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강하지만 악했던 노스인 발달슈를 피터지는 사투 끝에 죽인 오렌족 소년의 이야기. 소년의 이름은 타누스라 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온지 몰랐던, 그러나 붉은 빛을 띠는 눈동자와 어두운 살구색 피부. 그리고 칠흑처럼 까만 머리카락. 노스인과 피교해서 턱 없이 작은 체구였지만 그 붉은 눈동자는 물러서질 않았다.
혹자는 으레 오렌족은 그렇다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신비한 힘을 품고와서 이 땅을 도와주기도 때로는 괴롭히기도 한다고 했다. 혹자는 오렌족 아이 타누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소년은 어릴 때 부터 옳지 않은 일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했다. 또 다른 자들은 그렇게도 이야기 했다. 어차피 사람은 똑같으니 타누스도 권력의 맛을 알게 되면 변하리라고. 하지만 타누스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악을 처단하며 강자에겐 강하게, 약자에겐 약하게 살았다. 언제나 낡은 망토를 하고 가장 평범한 검을 들고서 '내가 바로 그대들의 검이고 내가 바로 그대들의 깃발이다.'라고 외쳤다. 타누스는 살아있는 전설, 살아있기에 더욱 추앙받는 전설이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 누구에게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영웅이란, 갑자기 나타난 만큼 갑자기 사라지는 법. 많은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실종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날 동안 나타나지 않는 그를 이제는 누구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타누스는 죽은 것이다. 알렌은 그렇게 말하며 모닥불에 마른 나뭇잎을 한 움큼 집어 던졌다. 피투는 그런 알렌에 말에 풀이 죽은 듯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 모아 안으며 웅크렸다.
“그러면 알렌은 왜 날 따라온거야?”
“네가 걱정되니까 그런거지.”
피투의 볼멘소리에 알렌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피투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 속상함을 알렌은 결코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자.”
결국 예정되었던 말을 건넨 알렌은 조용히 피투를 바라보았다. 피투는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알렌을 노려보았다.
“갈 테면 혼자 가면 되잖아! 난 돌아가지 않을 꺼야!”
알렌은 더 무슨 말을 하려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피투의 표정에 다시 모닥불을 응시했다. 알렌이라고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곳이 아니라면 아직 어린 소년인 알렌과 피투는 보호받지 못하고 굶어죽거나 얼어 죽거나 야생동물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도망쳐 나온 피투나 그걸 알면서도 따라나선 알렌이나 모두 멍청하긴 매 한가지다.
“그러면 피투. 정말 타누스가 살아 있다고 하면 어디에 있을 것 같아?”
알렌의 조용한 물음에 피투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부터 찾으면 좋을까?”
알렌은 피투의 마음을 열기 위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피투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자냐.”
알렌은 피투의 작은 목소리에 순간 멈칫하다가 긴 한숨을 쉬었다.
“알자냐? 알.자.냐! 얼마나 먼지 알고 대답하는거야?”
“알아!”
피투는 알렌의 잔소리가 지긋지긋한지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이며 소리를 질렀다. 알자냐라면 여기서 걸어서 두 달은 더 걸릴 거리다. 그 거리를 혼자 가겠다고 뛰쳐나온 것이다. 이 근방에 투스카타 마을이야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 이후로 알자냐까지 어떤 마을이 있고 어느정도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얼마나 노숙을 해야하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알자냐에 가겠단 말인가?
“너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애초에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아니, 정확히는 죽었다고 생각하는 타누스라는 놈을 찾으려고 그 먼 길을 간다는게 말이 된단 말인가?
“거기가면 있냐? 타누스가 있냐고!”
피투의 황망한 생각이 들어보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어 알렌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너는...돌아가면 되잖아...”
결국 피투는 울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울보면서 어떻게 알자냐까지 갈 용기가 생긴걸까? 알렌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피투의 행동에 사고회로가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이대로 땅이 꺼져서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싫어......난 거기 죽어도 돌아가지 않을거야....”
그래. 어차피 넌 거기 돌아가기 전에 죽을거니까. 라는 말을 꾹꾹 눌러 담으며 알렌은 우선 자신의 감정부터 추스르기로 했다. 하지만 감정을 정리할 것도, 생각을 정리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피투는 알렌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굳이 알렌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지금 쯤 어딘가에서 혼자 쭈그리고앉아 공포에 몸을 떨며 울었겠지. 알렌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투스카타 마을까지 가자.”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알자냐지방 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 동안 그를 설득한다면 잘하면 좋은 탈출담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아직 그곳에 있는 친구나 동생들에게 미안한 일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들도 도와줄 것이다. 다만 지금은 피투의 마음을 다잡는게 우선이다. 알렌은 조용히 피투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