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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위로부터의 해방] 인물전: 에리트리히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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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눈 내리는 행성의 땅을 파헤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었다. 이런 곳에 뭐 대단한 게 있다고 파는 속도보다 눈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땅을 판단 말인가? 위에서 시킨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하긴 하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중장비 없이 손으로 눈을 파는 것도 힘든데, 자꾸 눈보라가 시야를 가리니 더욱 힘들었다. 그는 삽으로 눈을 퍼내면서 이번 일이 끝나면 약속된 보상을 챙기고 외산 보드카를 자기 자신에게 선물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이고, 지친다. 꽤 많이 판 것 같은데, 아무리 파도 끝이 없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여기에 뭐가 묻혀있을 것 같은가?” 한숨 돌릴 겸 허리를 펴며 말을 건넸다. 눈보라 때문에 어지간한 크기로 말해서는 묻혀버리니,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모르지. 대감께서 시키신 일이니까 하는 거지. 이런 곳에 보물이 묻혀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거기 두 사람. 떠들 힘이 남아있으면 어서 눈이나 파라고.”

 

 

  잠시 숨을 돌리나 싶었더니, 누군가가 초를 쳐서 머쓱해지고 말았다. 뿅뿅... 지나 나나 다 같은 입장 아닌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진짜로 보물이라도 나오면 일단 네놈부터 눕히고 달아나 주마.

 

 

  “그런데 우리가 타고 온 우주선에 정말 중장비는 없었어?”

 

 

  “그 질문, 이미 억 번은 한 것 같은데. 내가 눈이나 파라고 했지. 중장비는 얼어 죽을, 드릴이 우리가 가진 전부지, 뭐.”

 

 

  시발 놈 새끼... 대화가 끊기자 눈보라 소리와 눈을 파헤치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얼음 행성답게 쌓이는 눈이 굳어 얼음이 되어 드릴은 필수였다. 드릴마저 없이 맨손으로 이미 두꺼운 얼음이 되어버린 눈을 파야 했다면... 드릴을 챙겨줄 인심이 있다면 우주선에 중장비도 같이 실어서 보내줄 것이지.

 

 

  “빌뇌브! 뿅뿅! 뿅뿅!”

 

 

  노래를 부르면 더 나을까 싶어서 노동요 삼아 욕설을 뱉어냈다. 가사라곤 두 단어의 반복이었지만, 3음절이었기에 리듬을 타기도 쉬웠고 분노를 실어 삽질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총리대신이고 나발이고 보는 놈 없는 데선 알게 뭔가. 어느새 다들 따라 한다. 여기에 비밀경찰 같은 게 숨어들지 않은 이상은, 다 같이 운명을 공유하는 것이다.

 

 

  계속 파 내려가다 보니 금속에 부딪혀 깡 하는 소리가 울렸다. 얼음이라면 아무리 단단해도 뚫릴 텐데, 밑에 뭐가 있는지 금속끼리 부딪칠 때 나는 불꽃이 막 일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꽤 많이 내려온 것 같았다.

 

 

  “다 온 모양이군. 이게 뭔지는 좀 더 파봐야 알겠지만, 이제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마찰로 인한 불꽃을 피해 조심스럽게 눈을 걷어내니 웬 우주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 국군 육군 마크가 찍혀 있는... 그 정체는 워프 수송선이었다. 어떤 멍청한 군바리가 이런 곳까지 우주선을 몰았단 말인가. 뇌가 장식이 아닌 이상...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행성 칼디르. 칼디르 형벌부대. 군용 수송선이 여기에 추락해있다는 것은, 이 수송선이 죄수 수송선이었고 군인을 싣던 도중 안에서 폭동이 일어나 통제를 잃고 추락했다거나, 워프 수송선을 몰 줄 모르는 탈영병이 불시착했다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마지막 힘을 짜낸 결과, 우주선에 이어 꽁꽁 언 시체 한 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 죽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하도 추운 행성이다 보니 부패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발견되고 말았으니 안식을 취하기는 다 그른 것이다.

 

 

  “고장 난 수송선 하고 시체 한 구... 고작 이게 우리가 여기까지 수송선을 타고 온 이유란 말이야?”

 

 

  “빨리 우리가 타고 온 수송선에 묶어. 대감께서 기다리시는 화성까지 단숨에 워프한다. 저 시체는 네가 엎고 와.”

 

 

  ‘가우스 에리트리히’, 시신의 이름. 이것이 수송선 안에서 찾은 시체에 관한 유일한 정보였다. 군복풍의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7년 전쟁의 여파로 군복이 많이 풀렸으니 이것만으로는 군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시체가 더 있나 주변을 훑어봐도 더 이상의 시체는 없으니 죄수 수송선도 아닌 것 같고... 설령 죄수들이 도망쳤다고 해도 얼마 못 가고 얼어 죽었을 것이었다.

 

 

  가우스라는 이름의 시체는 곧장 화성의 모 병원까지 옮겨져 해동되었다. 가슴팍에 난 총상으로 보아 형벌 부대원의 총에 맞아 죽은 모양이었지만, 사실상 냉동 보관되다시피 하여 여태 거의 썩지 않고 보존된 것 같았다.

 

 

  가우스의 옆자리에는 아테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호적상 둘은 생전에 부부였던 것으로 되어있었다. 미처 사망 신고를 할 사람이 없어서 호적상으로는 살아있는 사람들로 분류되어있었지만, 틀림없었다. 가우스 에리트리히, 아테나 에리트리히.

 

 

  부검을 맡은 의사가 부검 결과를 빌뇌브에게 전하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우스 쪽은 총에 맞아 죽은 것이 확실하고, 진작 시신을 회수하여 보존하고 있던 아테나는 출산 도중 사망한 것이 분명했다.

 

 

  의사는 그의 반응을 기다리며 고뇌했다. 총리대신씩이나 되는 사람이 무슨 연유로 한낱 농민의 시체 두 구를 찾는단 말인가. 의병 참가자?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것뿐이었지만, 총리대신이 직접 찾아 나설 정도라면 엄청난 전과가 있다는 뜻이 되는데 여태 그 정도의 활동을 보인 의병에 관한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수고했네. 오늘의 일이 비밀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 밖에서 약속한 보상을 받아가게나.”

 

 

  별 탈 없이 일을 끝낸 의사는 보상금을 챙겨 들고 기분 좋게 퇴근할 수 있었다. 뒤이어 행성 칼디르에 건너갔다 돌아온 일행 중 한 명이 들어와 고발하듯 말했다.

 

 

  “대감께서 시키신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 명단 중에서 이름 앞에 붉은 점을 찍은 놈들이 다 대감을 욕보인 자들입니다.”

 

 

  사람이 몇 명 모이면 그중에 한 명은 반드시 스파이인 법이다. 아무려면, 높으신 분들이 아랫것들이 모이게 놔두면 소동을 일으킬까 봐서 곳곳에 스파이를 심어놨는데 그걸 모르고 떠들어댔으니, 이제 죽을 일만 남은 것이다.

 

 

  “적당히 처리하게.”

 

 

  빌뇌브는 한마디로 그를 내보낸 다음 시체 두 구가 놓인 영안실에 혼자 남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생전에 강력한 사이오닉 능력자였다면 죽은 다음에라도 상당량의 잔류 에너지가 검출될 터, 하지만 잔류 사이오닉 에너지 탐지기의 수치는 0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이오닉 능력자가 아니었다는 말이 되는데... 비 능력자 부모 사이에서 능력자 자식이 태어날 수도 있다지만, 이건 너무 뜻밖의 결과였다.

 

 

  가우스, 아테나. 이 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하나. 당시에 수술이 행해진 수술실에서는 엄청난 양의 잔류 에너지가 검출되었었는데, 부모는 비 능력자고 자식만 강력한 사이오닉 능력자라니... 이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부모 말고 가까운 사람 중에 강력한 사이오닉 능력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부모가 비 능력자라면, 조부모는 또 모르는 일. 빌뇌브는 자신의 의문을 없애기 위해 이 두 부부가 살았다는 집으로 사람들을 보냈다.

 

 

  관리인은 처음에는 그들의 진입을 거부했지만, 총리대신의 명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황급히 자리를 떠버렸다. 그들은 주인을 잃은 집에서 몇 가지 단서를 수거하여 빌뇌브에게 바쳤다. 가우스의 친아버지에 관한 정보... 또 사람을 보내야 하는 건가.

 

 

  “집주인 있나? 이 근처에 에리트리히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데. 혹시 알고 있는 것 없나?”

 

 

  이번에는 가우스의 친아버지가 산다는 곳으로 사람들이 보내졌다. 그들은 말끝에, “총리대신께서 시키신 일이다.”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했다 하면 굳게 닫힌 문이 스르르 열리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아니, 소위 마법이라는 것에는 예외라도 있지, 총리대신의 명에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황제 아틀란티스 2세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총리대신 빌뇌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황명이라면 따르는 사람들이 적을지 몰라도, 총리대신의 명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사람들은 많았다.

 

 

  “그 집안이라면 우리 옆집에 살았었는데요. 혹시 그 집안이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이거 혹시 이웃까지 멸하라는 명이라도 떨어진 건 아니겠... 총리대신 만세!” 불안스러운 눈빛을 하고 문을 열고 나온 집 주인은 갑자기 만세삼창 했다.

 

 

  “안심해라. 피를 봐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 그저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면 된다. 옆집에 에리트리히 일가가 살았었다고 했지? 혹시 가우스 에리트리히, 아테나 에리트리히라는 사람도 있었나?”

 

 

  “잘 알지요. 가우스라면 지난번 전쟁 때 끌려갔다가 어떻게 돌아와서 높으신 분들(루시드 인)이 세운 회사에 취직했던 걸로 아는데. 아테나는 성격 착한 아가씨였습니다. 시집을 잘못 온 거지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됐고. 그 외에 같이 살던 사람들은 없나?”

 

 

  “있습죠. 가우스는 외동아들인데, 그 아버지는 높으신 분들이 부르면 가서 노래를 불러주고 술이나 받아먹던 딴따라였습니다. 그러다가 사고를 쳐서 가우스를 낳았다나요.”

 

 

  “뭣이. 딴따라?”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총리대신께서 가주로 계신 페르세포네 가에서도 자주 불렀습니다. 본업은 소작농이지만, 게을러서 가는 곳마다 쫓겨 다니다가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합니다. 덕분에 술은 자주 얻어먹었죠.”

 

 

  “혹시 사이오닉 능력자였나?”

 

 

  “사이오닉... 그게 뭐 죽은 거지요?”

 

 

  민간인이 사이오닉 에너지의 세세한 사항까지 알 턱이 없으니,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질뇌브가 보낸 사람들은 에리트리히 일가가 살았었다는 집을 수색하는 것으로 조사를 끝마쳤다. 그 이상 조사를 이어나갈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가까운 사람 중에서 강력한 사이오닉 능력자는 없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강력한 사이오닉 능력자다. 모든 단서를 모으면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되는데...

 

 

  빌뇌브는 화성에서 조사를 벌이기 전에 행성 칼디르의 요새에 사단 간부 몰살사건 조사팀을 보내 수집한 자료를 펼쳐보았다. 칼디르 아스트라, 네놈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란 말이냐? 내게 이 능력이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을... 그는 입맛을 다셨다.

 

 

  이미 벼슬이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정1품 총리대신에 이르렀고, 엄청난 재산과 명예까지 얻었거늘, 거기에다가 사이오닉 능력까지 바라는 것은 이기심의 발로였다. 설령 그것을 손아귀에 들어온다고 해도 그가 실질적으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무릇 사내대장부로서 갖춰야 할 권력, 재산, 돈, 여자까지 완벽한데 더 얻어서 무엇하랴. 그래도 얻고 싶은 게 인간의 이기심이다.

 

 

  칼디르 요새에서 가져온 자료에는 사진이 없었으므로 당사자가 직접 이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려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가릴 수밖에 없었다. 아군이라면 아쉬운 대로 사이오닉 능력을 갖는 셈이 되지만, 만약 적군이라면... 음...

 

 

  어느덧 그 나이가 110살을 넘어 120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심각하게 고뇌하는 중임에도 그의 얼굴에는 조그마한 구김살도 가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완전한 20대의 얼굴이었다. 그게 다 일반 국민은 혜택을 볼 수 없는 의학의 힘이었다.

 

====

에리트리히는 주인공의 진짜 성씨입니다. 그러니까 본명이라는 칼디르 아스트라와, 가명인 케인스 도플러 모두 엄밀히 말하면 모두 가명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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