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나의 폐부를 찌른다.
스읍.. 하..
황량한 이곳의 거친 공기는 내 몸을 감싸며 나에게 공포라는 감각을 일깨워주고 있다.
괴암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둥지는 필시 잔악무도한 괴물이 살고 있으리라.
저주받은 붉은 용.
과거 대재앙 때 나타난 성질 드러운 용이 세상을 파괴하니
7명의 용사가 용을 이곳에 봉인하여 마족을 감시하라 했다는데..
흠.. 아무튼
하늘에 떠 있는 저 흉성이 우리의 운명을 짐작하니.
이 거대한 운명의 데스니티
소용돌이 치는 허리케인
마주하는 죽음의 데쓰
앞으로 나는 과연 어찌해야 되는 것인가.
"소리안님 차 한잔 하세요?"
아.. 분위기 깨네. 진짜. 저것들은 여기까지 와서 티타임을 해야되나.
키나는 이미 알록달록 꽃무늬 돗자리를 깔고 쿤과 함께 티타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쩝. 나는 어기적거리며 돗자리에 주저 앉았다.
"매운 차라면 안마신다."
"후훗~ 차 맛을 모르시는군요. 암튼 이건 소리안님 입맛에 딱 맞는 차에요. 드셔보세용 홍홍"
못 이기는 척 찻잔을 받아들고 한모금 마셔본다.
으흠? 이건 꽤나 좋은데? 첫 맛은 씁슬하지만 이내 입안을 달달한 내음으로 가득 채우고
뜨뜻한 차가 목으로 넘어갈 때 뒷 맛이 상큼한 것이 아주 기가막히네.
"이건 딱 내 스타일이네."
"그렇죠?"
"그건 그렇고. 어떡할거야. 저주받은 용인가 뭐시긴가. 대체 무슨 수로 용을 이길거야?"
"후훗. 걱정마세요. 천하제일 초절정 섹시 마녀인 키나가 있잖아요."
헐.. 막말하는 거 아니다.
"그래서 니가 해치울 거야? 무슨 대단한 마법이라도 있는건가? 그건 그렇고 마왕결장전이라니.
그런건 좀 미리미리 말해줘야 되는거아냐? 이게 무슨 뜬금없는 전개냐. 시차 적응도 안된 사람을
마왕 결장전이라니. 대체 이 대회의 정확한 의도가 뭐야?"
"궁금한게 많은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설명을 드려야 겠군요."
궁금한게 많은게 아니고 내가 여기 있는 거 자체가 미스테리다 이 아가씨야.
"빨리 말해봐. 그 성깔드러운 용인지 뭔지 나타나기 전에"
"우선 마왕결장전은 마계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에요. 8개의 마계 섹터에서 각 후보자들을 출전시켜
마왕을 뽑는 대회죠. 각 후보자들은 전대 마왕의 힘이나 특징을 가지고 마계의 령에서 태어나는 자들이에요.
마왕결장전에서 마왕이 되면 그 섹터에는 어마어마한 발전이나 특혜가 주어지고 마왕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마계를 통치하게 되죠. 이번 마왕결장전은 푸코성의 위대한 마왕께서 지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서둘러
진행된거에요. 마계는 마왕이 있어야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마왕이라는 자리가 공석이면 마계는 점점
사라지고 우리 모두 흔적도 없이 지워지게 되요. 결국 이 커다란 세상은 그들에게 삼켜지고 말겠죠."
"그들??"
"네? 제가 뭔 소리를?"
"아니 방금 그들이라고.."
"누구요?"
이게.. 진짜 누굴 바보로 아나.
"암튼 알겠고. 그럼 서로 마왕이 되기 위해서 뭘 해야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포츠.. 아니 운동 경기 같은 걸로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운동 경기라뇨. 이 마왕 결장전은 마왕이 되기 위해서 서로의 힘을 뺏앗아 진정한 마계의 군주가 되는 성스러운
의식이에요.
"그..그럼 탈락하면 어떻게 되는거야?"
"탈락한다는건 마왕의 힘을 빼앗기고 죽는거죠."
아...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즉, 죽음의 서바이벌이라는 거네.
아니 그럼 나는 시발 이런 듣도 보던 못한 곳에서 얌전히 뒤지라는 건가.
엄청난 분노가 밀려오네 이거.
나는 나도 모르게 화난 목소리로 키나에게 대뜸 소리쳤다.
"아니! 그럼 지금 나는 그쪽에게 실수로 불려져와서 이런 황당한 대회에 어거지로 참여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나보고 이 짓거리를 계속하라고? 나는 여기서 그만 둘꺼니까. 둘이서 알아서 해."
진심 그랬다. 진짜 계속 듣자니까 너무하다는 생각.
이런 낯선 곳에 영문도 모른체 실수로 끌려와서 목숨을 내놓고 뭔가를 해야된다니.
내가 왜?
맨날 죽기살기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겨우겨우 살았는데, 아예 지옥 끝자락까지 몰아세우네.
나는 벌떡 일어나 어딘지도 모르지만 아무데나 가서 마음을 다스려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근데 키나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포기하시면 영원히 되돌아 올 수 없는 곳에서 영혼이 불타는 고통을 견뎌내며 살아야되요.
우리 모두..."
와... 뭐 어쩌라는건가.
내가 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니.
머릿속은 계속 혼란스럽고, 어떤 선택을 해야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말에 발걸음을 멈칫하고 뒤를 돌아서 그녀와 쿤을 쳐다봤다.
뭔가 나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그 표정.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가지 뿐이고.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희안하게도 내 마음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제길... 엄청 짜증나고 엄청 황당하고 왜 하필 내가 이러고 있냐고!! 젠장!!!! 그런데 그런데!!
까짓거 한번 해보자.
"쳇.. 근데 나한테 기대하지는 마."
나는 키나와 쿤에게 그렇게 내 맘을 둘러 말하고 털썩 앉아서 다시 찻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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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제목 넘버링이 먼가 애로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