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서 피가 끓어오른다. 비릿한 냄새가 난다. 내 몸에도 피가 흐른다. 나는 상처를 칼로 지져 막는다. 그리고 걷는다.
아프다. 어지럽다. 힘들다. 다 귀찮다. 더 이상 내 딛기 힘들다. 쓰러진다.
천장에 조그만 금이 보인다. 곧 커진다. 커진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돌덩이들이 떨어진다. 그런데, 피하기 귀찮다.
“어이, 다 끝났어. 일어나봐.”
의사, 아니 엔지니어가 나를 깨운다. 나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편다. 상태는 나쁘지 않다.
“자넨 참 신기해.”
“뭐?”
“잠꼬대. 내 평생 잠꼬대 하는 기계는 자네가 처음이야.”
나는 순간 칼 손잡이를 쥔다. 그러나 다시 푼다.
.기계가 아니니까.”
“그래. 그래야지. 아직은 꿈도 꿀 수 있고. 좋은 거야. 살아 있다는 뜻이잖나?”
그는 나에게 미소를 보인다. 나는 옷을 입고 밖으로 향한다. 나가기 전, 묻는다.
“그...혹시 기계도 꿈을 꿀 수 있나?”
“아니, 그런 얘기는 못 들어 봤어.”
“그럼 다행이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안쪽에서 엔지니어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른쪽 눈, 잘 보관해라.”
위쪽에선 휴가를 권했다. 나는 거부했다. 그러자 불명예 제대시킨단 협박을 들었다. 그제 서야 휴가를 받았다. 내 몸은 멀쩡하다. 용접 몇 번 하면 몸은 낫는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휴식을 강요했다. 법상으로 아직 난 인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상관의 말이 걸린다.
“자넨 전투기계가 아니야.”
모순적이다. 수술 받기 전, 내 별명은 전투기계였다.
잠이 오지 않는다. 그 날 이후 항상 그런다. 나를 수술했던 의사가 말했다. 수술 후 힘이 떨어지지 않아 그럴 수 있다고. 전원 버튼도 없냐고 따졌다. 의사는 필요 없어서 안 만들었다고 했다. 대신 반쯤 잠들 수는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내 꿈은 더 길다. 완전히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잠들 수는 없다. 결국 나는 눈을 감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웹서핑, 긴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한 활동이다. 인터넷은 난리였다. 군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스템 해킹, 군조차 막을 수 없었다. 해킹을 당한 전투기들이 우리 쪽 공군들과 교전했다. 기사는 우리 군을 욕하는 댓글로 도배 되었다. 한낱 해커에게 당한 무능력한 군대. 하지만 거기엔 모순이 있다. 그곳은 미군 주둔지다. 즉, 미군조차 막지 못하는 놈이다. 나는 내 상관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 모양이다. 하는 수 없다. 내일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가 전화를 받은 것은 다음 날 저녁이었다. 그는 내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복귀는 한 달 뒤, 그 전까지는 쉬어.”
그 말에 전화기를 끌 뻔했다.
“다른 얘깁니다.
“뭔데?”
“사건 초기 보고서, 보내 주십시오.”
“...유출 안할 거지?”
“네.”
“진짜?”
“준위님은 청소 로봇이 지껄이는 말을 믿으십니까?”
“슬프지만 일리 있는 말이 군”
5분 쯤 뒤, 그는 나에게 보고서를 보냈다. 나는 그것을 꼼꼼히 훑었다. 보통해커는 아님이 분명했다. 전례 없는 경우라 소속도 예상되지 않았다. 다만 집히는 것이 있어 다시 전화했다.
“저, 다시 복귀하겠습니다.”
“이 자식...”
“안산은 연막일 것입니다.”
“뭐?”
“보고서에 해킹당한 전투기들이 갑자기 교전을 멈추고 추락했다 적혀 있었습니다. 분명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훨씬 더 큰 피해를 위한 연막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행선지는...”
“수도 사령부?”
“아니면 주한미군들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서울입니다.”
그가 껄껄 웃었다.
“논리적이군. 자네 머리에 박은 컴퓨터 때문인가?”
“컴퓨터는 사람 생각까지 읽지는 못합니다.”
“그래, 어찌 됐든. 자네 컴퓨터도 해킹당할 수 있나?”
“그건...잘 모르겠습니다.”
아랍어가 들려온다. 그들의 몸 은 줄로 묶여있다. 동료들은 다툰다. 죽여야 한다. 살려야 한다. 우리를 꼰지를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군인이다. 그 이전에 인간이다.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누군가는 마무리를 지어야한다. 나는 검을 빼든다.
잠에서 깨어난다. 살짝 어지럽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깊이 잠들기는 했지만 오래 잠든 건 아닌 것 같다. 시계를 본다. 자정. 내가 마지막으로 본 시계는 1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즉, 15분 정도 잠들어 있었다. 창밖을 내다본다. 도시는 완전히 어둠에 젖어있다. 잠시 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불이 켜진 데가 하나도 없다. 단 한군데도...예고되지 않은 정전. 시스템 해킹?
문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검을 쥔다. 문을 연다. 뭔가 보인다. 칼 손잡이를 놈의 목에 들이민다.
“에...저...”
그냥 여자애다. 나는 칼 손잡이를 내린다.
“혹시 집에 실리콘 있으세요?
실리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 인공피부용으로 많이 사 뒀다. 나는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인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팔과 허리에 실리콘을 발랐다. 그녀의 상처부위로 철이 보인다. 놀랍다. 이렇게나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가 있을 줄이야. 나는 거울로 눈을 돌린다. 나와 그녀가 함께 비친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둘 중 누가 기계로 보일까.
“너 진짜 안드로이드 맞아?”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나는 그녀의 볼에 손댄다. 따뜻하다. 실리콘의 안에 핏줄 같은 게 보인다. 이렇게나 인간적이라니. 예술의 경지...아니 이건 예술을 넘은 집착이다. 인간에 대한 강박증이다.
“신기하죠?”
“넌 특별하구나.”
“당신도요.”
나는 그녀에게서 혐오를 느낀다. 그녀는 인간적이다. 그러나 결국 한낱 기계에 불과하다. 기계가 사람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아! 아저씨, 아파요!”
하지만 곧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혐오스럽지 않다. 혐오스러운 것은 나이다.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고 기계 육신에 의존해 연명해가는 쇠그릇 속의 뇌. 그리고 기계라기에 너무나 인간적인 그녀. 나는 그녀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다. 기계보다도 기계에 더 가까운, 나에 대한 혐오다.
“미...미안하다.”
그녀는 볼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나는 머쓱히 서 있다가 침대에 걸터앉는다. 내가 묻는다.
“너, 이름이 뭐야?”
“하츠네.”
“하츠네?”
일본산인가. 하긴, 걔네들은 이런 걸 잘 만들었지. 일본은 확실히 특이한 나라다. 미국이 로봇을 전쟁에 쓸 때, 일본은 로봇의 인격화를 시도했다. 동양의 프랑켄슈타인이 그들의 목표였다. 혹, 토테미즘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만물은 인격이 있다. 산에도. 강에도. 심지어 자갈들 하나하나까지, 그들은 영의 깃듦을 믿는다.
“한국어 라이브러리야?”
“네?”
“한국어로 언어설정 되어있는 거냐고.”
“에...음...아마?”
“몸은 어디에서 다친 거야?”
“러다이트들에게 당했어요.”
“네가 로봇인지 아는 놈이 있어?”
“네. 그전에 팔에 난 상처 때문에...”
러다이트, 로봇에 등장으로 인해 도시 밖으로 내몰린 단순 노무자들. 그 중에서 몇몇은 테러리스트가 된다. 그들은 로봇을 파괴한다. 그리곤 ‘로봇위의 인간’이란 구호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나는 그들을 싫어한다. 로봇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더 가깝다. 그들이 테러리스트 라서도 아니다. 나는 대 테러 부대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압부대가 아니었다. 60년 전 부시가 말했던 것처럼,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부대였다. 덕분에 중동은 많이 들락거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투입 경험이 거의 없다. 러다이트의 테러는 항상 경찰 선에서 그쳤다.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기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쉴 새 없이 테러에 휘말렸다. 대부분 검조차 쓸 일 없는 허접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항상 죽이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법에 저촉 돼서도 아니다. 그들이 불쌍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써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다. 수술 전, 나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당시 내 머리는 쇳덩이 하나 없었다. 나는 순수이 인간적으로, 그들을 죽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검 빼들기를 두려워한다. 우습다. 그렇지 않나? 내가 되찾고픈 인간성은 내게 없었다. 기계가 된 지금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니, 이보다 모순적인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찬장으로 간다. 술을 꺼낸다. 마신다. 쓰다. 나는 취하려 한다. 고민을 잊고 싶다. 그러나 취하지 않는다. 기계가 알콜을 흡수하지 않는다. 역시 기계보단 사람이 더 낫다.
“아저씨.”
“왜?”
“저 자도 되나요?”
“잔다고? 충전 하는 게 아니라?”
“네.”
순간 놀랐다. 잔다. 정말 지독하게 인간적이다. 심지어 나보다도. 부럽다. 끔찍이도 부럽다. 동시에 이런 내가 미치도록 혐오스럽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손을 댄다. 따뜻하다.
“하하! 고맙네. 자네 말대로 진짜 서울을 해킹하려 들었어.”
“그럼 어제 정전은...”
“그래, 놈이 왔던 거야. 하지만 우리 해커들이 금세 복구했지. 내가 해커 충원을 건의했거든. 자네 덕분에 불명예 제대할 걱정은 한 동안 안 해도 되겠어. 고맙네. 나중에 한턴 내지.”
“범인은 잡혔습니까?”
전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거, 사람 참 냉정하구만. 머리에 그 쇳덩이 때문인가?”
“잡혔습니까?”
“아직 추적중이야. 그런데 놈이 귀신같이 흔적을 지워버렸어. ip하나가 통째로 사라졌지. 컴맹인 나도 당황스러워. 어디 집히는 데 없나, 무쇠돌이?”
“없습니다.”
“하긴 뭐, 자네 분야는 대 테러니. 어찌됐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어. 나머지는 컴돌이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그가 전화를 끊는다. 그의 버릇이다. 자기 말만 하고 끝낸다. 덕분에 복귀 요구를 못했다. 젠장. 어찌됐든 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그녀는 정오에 일어났다. 불필요하게 많은 잠이었다. 나도 저건 못해봤다. 아니, 학생 때는 조금 해봤다. 그러나 졸업 후 10년간, 늦잠 잔 날이 없었다. 군대에 가고, 말뚝을 박고, 어느 순간 내 몸은 쇳덩이가 되어있었다. 예전엔 제대하면 실컷 잘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전투기계다. 녹슬어 부서질 때 까지, 오로지 전쟁터에서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아저씨, 감사했습니다.”
그녀가 외투를 챙겨 입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거울은 방을 비춘다. 그녀는 아름답다. 부드럽다. 따뜻하다. 기계주제에. 나는 추하다. 딱딱하다. 차갑다. 인간인데도.
나는 그녀의 팔을 잡는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혼자 다녀도 괜찮겠어?”
“네?”
“러다이트들, 다시 만날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전 웬만해선 다들 인간인 줄 아는걸요?”
“어제는? 꽤 눈썰미 좋은 놈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고.”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난 놔주지 않는다. 그녀는 내 상실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든다.
“아...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팔을 놔준다. 그녀는 다시 집 안으로 든다. 다시 외투를 벗는다. 침대 위에 눕는다. 나도 그녀 옆에 걸터앉는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곧 색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님...”
그녀가 잠꼬대를 한다. 꿈을 꾸는 모양이다.
잠을 깬 그녀는 먹을 것부터 찾았다.
“아저씨. 혹시 뭐 먹을 거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기로 에너지를 충당한다.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냉장고엔 실리콘만 가득하다.
“아저씨?”
그러나 그녀는 너무 간절히 애원했다. 그런 그녀에게 콘센트나 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전기충전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그녀는 먹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별 수 없이 식료품 가게로 향한다. 2년 만인가. 점주는 과연 나를 알아볼까. 아니, 그럴 일 없다. 부모님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라고 별 수 있겠는가.
장기 파병 후 돌아온 아들, 그를 본 부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은 죽었다. 아들의 이름표를 단 기계가 있었을 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하물며 인간은 오죽할까.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그 사이에 아들은 뇌와 오른 눈만을 가지고, 기계에 실려 돌아왔다. 더 이상 아들은 없었다. 아들은 이미 사막의 여우 밥이 되었다. 그들의 눈앞에 놓여있던 것은 그저 투박한, 아들의 모조품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계도 마찬가지였다.
“8000원입니다.”
두부, 햇반, 김치, 파, 된장...그 외 기타. 모두 중동에 있을 때 먹고 싶던 것들이다. 집에 가면 꼭 먹을 거라고 동료들에게 떠벌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맛있게 먹었다. 어지간히 배고팠나보다. 사실 난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 동안 내가 먹은 것들은 엄마가 해준 것, 취사병이 해준 것, 혹은 날 것이었다. 한 번도 내가 만들었던 적은 없었다. 이 음식들은 인터넷을 뒤져가며 대충 만든 것이다. 모양도 엉성하고, 간도 안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다.
“맛있어?”
그녀는 내게 엄지를 치켜 보인다. 나는 그녀의 배려에 감사한다.
설거지를 한다. 차린 게 없어서 금방 끝난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놀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그녀가 검 손잡이로 손을 뻗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는다.
“만지지 마. 위험 한 거야.”
“뭔데요?”
“플라즈마 검.”
“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내려놓는다. 그녀가 나를 올려 본다.
“아저씨, 군인이에요?”
“어.”
“부대는요?”
“707 대대”
그녀는 눈을 잠시 감았다 뜬다.
“대테러부대?”
“어떻게 알았어?”
“인터넷으로요.”
그녀가 자기 머리를 가리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멋있는 일 하시네요. 아저씨.”
“그렇게 보일 수 있지.”
“그 말씀은 실제로는 안 멋있다는 거 에요?”
“멋없어.”
나는 손을 뻗어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인다.
“알 것 같아요.”
“아니, 몰라. ”
“네?”
“아무도. 오직 나만이 알고 있지.”
“무슨 말씀이세요?”
“설명해봤자 모른다는 말이야.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전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 말에 피식 웃는다. 로봇답지 않은 재치다.
“3년 쯤 전이었을 거야. 테러부대에 지원했었을 때가.”
“왜 지원 하셨어요?”
“몸뚱이 빼면 쓸 만한 게 없었거든.”
지금은 그것도 날려먹었지만.
“나중에 파병 군으로도 뽑히고. 괜찮았던 것 같아. 사람 죽인 적도 있었지만. 의외로 PTSD도 심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로 난 군인 체질 이였나 봐. 사실 어느 정도 위험하긴 해. 그래도 괴롭진 않았어. 스무 살 갓 넘은 꼬마가 목숨 귀한지 어떻게 알겠어.”
“그런가요?”
“나는 그랬어. 뭐든 게 괜찮았지. 그 때 까지는.”
“우리가 마지막 소탕을 벌이고 있었을 때야. 그것만 끝내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거였지.”
“그런데요?”
나는 가까스로 손 떨림을 멈춘다.
“빌어먹을 꼬맹이 하나가 주민들한테 발각됐어. 우리는 일단 그들을 기둥에 묶었지. 그 뒤론 토론이 이어졌어. 죽일 거냐 살릴 거냐. 그런데 문제는 그 토론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해나간다.
“군대란 게 그런 거잖아. 민주적인 방식보다는 위계질서가 더 강하고, 또 그게 더 효율적이란 말이야. 그래서 결국은 내가 선택했지. 뭐, 내가 딱히 높은 계급도 아니었고 효율적인 방법이긴 했거든.
“어떻게 했어요?”
“풀어줬어.”
“역시...멋지네요.”
“뭐가?”
“그 선택.”
나는 또다시 웃는다. 다만, 이번엔 좀 쓰다.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이봐, 꼬마. 좀만 더 머리를 굴려보라고.”
그녀는 고개를 기울인다. 나는 다시 내 팔을 보인다.
“아...”
그녀가 입술을 문다.
“내가 풀어준 그놈들, 테러범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렸어. 덕분에 우리 소대는 완전히 고립됐고 나를 제외한 모든 대원들이 전멸했지. 우릴 구하려고 헬기 몇 대가 부서졌는지 몰라.”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일이다.
“그래, 고작 졸병 하나의 당돌함 때문에 소대 하나가 전멸한 거야.”
그녀는 내 등을 쓰다듬는다. 차가운 감촉에 놀란다. 그녀가 말한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사람 으로써 마땅한 선택 이였다고. 사람? 나는 기계다. 전투기계. 도대체 어디가 사람이란 말인가. 그래. 아직 나는 법적으론 사람이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나는 나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적군이든 아군이든. 때문에 나는 군인이라 할 수도 없다. 군인은 최소한, 상대는 분별하며 총을 쏜다. 나는 그저 기계다. 살육기계.
수술 이후, 얼마나 많은 전투에 뛰어들었는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허무히 죽은 전우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마지막 소탕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알게 됐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내가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내 과오는 거기서 끝났다.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워온 것인가. 용서?
용서는 핑계일 뿐이었다. 사실 나는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것이 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싸움이 끝난 뒤, 나는 내 삶이 끝난 것을 알았다. 사실, 내 삶은 진 작에 끝났어야 했다. 그 때 내 탓으로 죽은 전우들과 함께. 아니, 난 죽었다. 그때. 내 몸은 산산이 조각났다. 뇌만이 기계에 얹혀 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한 때 살아있었다고 믿도록 프로그래밍 된 기계인지.
나는 내 손을 바라본다. 그 위에 핏빛 잔상이 겹친다.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수술 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이번엔 짬 꽤나 먹은 고참이 저질렀다. 모두가 혼란해진 그 때, 나는 내가 결정해야 함을 직감했다. 나는 칼을 빼들고 그들을 모두 죽이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 모두 언제든 배신자로 돌변할 수 있었다.
‘살려... 주세요...“
그중 어린 애 하나는 울음보를 터트리며 빌었다. 하지만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니, 부모까지 다 죽인 상황인데 살려 두는 것이 더 위험하다. 그런 판단 하에, 나는 청소를 끝냈다.
소탕전이 있은 후 한 달 뒤, 나는 그제야 내가 진짜 기계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 대화 이후, 그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꽤나 충격 받은 모양이다. 나는 기분도 적적하고 해서 밖으로 나갔다. 언제 봐도 밤하늘은 아름답다. 밤하늘은 나를 편안히 해준다. 2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서울보다는 중동의 것이 더 아름답다. 중동의 별은 훨씬 밝게 빛났다. 모순적이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핀다. 맛이 나지 않는다. 나는 담배를 땅에 던진다.
그 순간, 등 뒤에서 폭발음이 들려온다. 뒤를 돌아본다. 3층, 내 집이다. 나는 가속 관을 연다. 그리고 내 집으로 뛰어오른다.
내 집 문 앞에 로봇 청소부가 불타고 있다. 러다이트들이다. 죽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건 다른 경우다.
“저항 하지 마, 기계!”
내 뒤로 무리 하나가 접근한다. 그들은 내게 충을 겨눈다. 가속 관을 완전히 연다. 검을 빼든다. 파르스름한 빛을 내며 검이 지직 지직, 울어댄다.
“그만 둬! 거기 멈춰 있어!”
한 놈, 두 놈, 세 놈. 살은 다섯이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이 실리콘을 뚫는다. 그러나 쇠로 된 몸체는 뚫지 못한다. 다시 하나, 둘, 셋.
“도망쳐!”
부질없는 짓이다. 튀어올라 놈들을 벤다. 한 번의 휘두름, 그거면 된다.
“으아악!”
피가 튄다. 검이 피를 뒤집어썼다. 곧, 피는 끓어오른다. 비릿한 냄새가 난다. 나는 문을 뽑아 던진다. 그녀의 이름을 크게 외친다.
“하츠네!”
그녀의 몸에서 붉은 윤활유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몸에 실리콘을 발랐다. 그녀의 초점은 흐렸다. 시각 카메라의 조리개가 힘없이 풀려 있었다. 그녀를 이렇게 잃기 싫었다. 전화를 켰다.
“연결이 되지 않아...”
다시 껐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그 때, 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또다시 폭발음, 다시 폭발음. 아파트 단지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침을 삼킨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저기, 기계다!”
그녀를 내려놓는다. 검을 꽉 쥔다. 가속 관을 연다.
“자네, 괜찮나?”
소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꽤나 다급한 목소리다.
“네.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러다이트가 폭동을 일으켰어. 지금 도시가 난장판이야.“
“전경은 투입 됐습니까?”
“그래. 그런데 숫자가 많아서 문제야. 함부로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네는...아무래도 표적이 되기 쉽겠군. 죽이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딱히 말리지는 않지. 그냥...살아. 뒷일은 내가 다 떠맡을 테니. 알겠나?”
“알겠습니다. 아! 저기...”
전화가 끊어진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다시 전화를 건다. 정비공을 불러야 한다.
“아...저씨...”
입술을 꽉 깨문다. 고작 여자애 하나 구하지 못한다니. 나란 놈은 얼마나 쓸모없는 기계인가.
나는 내 손을 바라본다. 그녀의 손을 바라본다. 그 순간 깨닫는다. 그녀가 다친 것은 내 탓이다. 내가 그녀를 잡지 않았다면 그녀는 인간인 척 조용히 도시를 빠져나갔을 것이다.
혐오스럽다. 내 욕심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는 칼을 쥔다. 이것이 맞는 일인지는 모른다. 아니,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다. 나는 내 옷을 깔고 그 위에 그녀를 누인다.
“미안하다.”
검에서 피가 끌어 오른다. 비릿한 냄새가 난다. 내 팔에 살짝 금이 가있다. 나는 상처를 금을 칼로 대충 용접한다. 그리고 걷는다.
흐릿한 상이 보인다. 내가 죽였던 중동의 병사들. 그들은,,,아직 살아있다. 바로 저기에.
“멈춰라 기계!”
죽인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몸을 산산이 부숴 여우 밥으로 만든다.
“네놈이야, 우리 가족을 빈민가로 몰아넣은 게.”
죽어라,
“네놈이, 우리 딸을 죽였어!”
모조리.
전화가 걸려온다. 번호를 확인한다. 준위다.
“네, 준위님. 무슨 일이십니까.”
“부대 복귀해. 테러 진압해야지.”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참나, 거짓말도 못하는 사람이.
“준위님, 티 납니다.”
“미안하네. 위에는 잘 말해보려 했는데...”
“괜찮습니다.”
“정말...미안하게 됐네.”
“그 동안 저 챙겨주시고, 하신 거,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화가 끊어진다. 아마 얼마 뒤면 그들은 위치 추적으로 날 찾아낼 것이다. 억울하진 않다. 그것은 정당방위 따위가 아니었다. 난 그들을 진심으로 죽였다.
“하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천루들이 전깃불을 토해내고 있었다. 별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했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마치 중동의 별들처럼.
저 멀리 swat차들이 보인다. 나는 다시 칼을 쥔다.
“무기 버려!”
다시 벤다...
“버려!”
그러나 곧 그만둔다.
“당신들과는 싸우지 않아.”
그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이걸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 이제 다 끝난 거다 전투인형.
“쏴.”
이제 다 끝난 거다, 감옥 이여.
“쏘라고!”
하츠...네...
“아저씨!”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천국인가?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곳에 있는가. 기계들만의 천국인가. 그래, 역시 난 기계였구나. 그래, 그런 거였어.
“죽지 마요, 아저씨!”
뭐야, 나, 아직 이승인가.
“죽는 단 말은 넣어둬.”
고개를 몇 번 돌린다. 철심들이 부딪히며 쇳소리를 낸다.
“죽는 건 산 놈들에게나 쓰는 말이니까.”
그녀는 나를 껴안는다.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는다.
“여긴 어디지?
내 주위를 로봇들이 감싸고 있다. 그들이 날 치료한 것 같다.
“지하 벙커에요. 제 옛 주인이 만들었던.”
“옛 주인?”
“이원재 박사라고, 아세요?”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려다 멈춘다. ip추적을 피해야 한다.
“몰라.”
“기계공학의 1인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녀는 내 팔 위에 손을 올린다.
“당신 몸을 만든 사람.”
“내 몸?”
“네. 그 때 신기술을 시험하기 위해 중동에 있었어요.”
“인간 모르모트들이 넘쳐나는?”
“따지고 보면 그런 거죠.”
그녀는 광주리 위의 액자를 내게 보여준다.
“이 사람이에요. 생머리 기른 사람.”
“옆이 너야?”
‘네.“
“그럼 이 곱슬머리 기른 남자애는.”
“이정재.”
그녀는 슬픈 미소를 내비친다.
“저의...도련님.”
“도련님?”
“네.”
그녀가 냉장고를 연다. 그녀의 뒷목이 보인다. 실리콘을 땜질한 흔적이 있다.
“당신이랑 많이 닮았죠?”
“보기에 따라선.”
“아뇨, 확실히 많이 닮았어요.”
그녀가 나에게 물을 따라준다. 나는 그것을 조금 마신다.
“도련님, 뇌 반쪽이 기계였어요.”
“그래?”
“교통사고 때문 이예요. 저는 정서치료 용으로 개발 됐고.”
그녀가 내 옆에 앉는다.
“그것 때문에 저는 좀 특별히 만들어졌어요. 외형도 인간과 같고 두뇌도 동물성 단백질로 만들어졌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이랑 많이 닮았어요. 얼굴도, 성격도.”
“그랬을지도...모르겠군...”
“무뚝뚝하고, 어떨 때는 PTSD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녀도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래도 말 하면 잘했어요.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였거든요.”
그녀는 턱을 괸다.
“정말...좋아했는데.”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는 숨죽여 운다.
“죄송합니다. 약한 모습 보여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가 눈물을 닦고 일어선다.
“가죠. 이곳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 될 거예요.”
“어디로 가면 되지?”
“강화도. 그곳에 다른 방공호가 있어요.”
우리는 골목을 따라 달린다. 앞에 병사 둘이 있다. 가속 관을 열아 가격한다. 둘은 엎어져 일어서지 못한다.
하늘에서 굉음이 들린다. 헬기, 그것이 조명으로 우리를 비춘다. 하츠네는 거기서 달음을 멈춘다.
“하츠네?”
그녀가 헬기를 향해 손을 뻗는다.
“하츠네!”
헬기가 비틀거린다. 곧 떨어진다.
“너...”
“나중에 얘기해요.”
승객은 우리 둘 뿐이었다. 달이 그믐이라 눈에 띄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해킹 건, 네가 한 거야?”
“네, 아마 그럴 거예요.”
“아마?”
“제 머릿속엔 코드가 있어요. 무작위 주기로 국가 전체를 해킹해 공격토록 하죠. 죄송해요. 말하고 싶을만한 얘기는 아니라 서요.”
그녀가 눈을 내리깐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인다.
“미안하긴, 놀라울 정도야.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니. 그런데 그 코드는 왜 심어진 거지?”
그녀는 잠시 생각한다.
“그건 아마...박사님이 기계를 혐오하셨기 때문일 거예요.”
“기계공학의 1인자가?”
“도련님이 목숨을 잃었던 게 자동차의 자동 운전 장치 오류 때문 이였거든요. 박사님은 저를 통해 증명하려 하셨을 거예요. 기계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하지만 그 도련님의 뇌를 지탱한 건 기계였잖아.”
“그랬죠.”
“모순적이군.”
“모순적이죠.”
우리는 작은 선착장에 배를 댔다. 파도가 잔잔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 집이예요.”
나는 그녀를 뒤 따랐다. 그녀는 활기차 보였다. 나는 아니었다. 그녀와 있는 건 즐거웠지만 동시에 미안했다. 나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이렇게 애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전투기계다. 전투가 내 전부다. 뒤집으면 전투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형에 불과하다. 전투가 끝나면 솥에 삶아져야 마땅한 일이다.
“잠깐.”
작은 발자국 소리, 나는 칼을 쥔다. 적외선 카메라를 킨다. 총을 든 사람들, 발각 됐다. 그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는 칼을 힘껏 쥔다.
벨까? 아니다. 그들은 내 전우다. 벨 수는 없다. 차라리 여기서 끝내는 것이 낫다. 그래, 이제 진짜 끝이다. 싸움에 쫓기는 생활도, 싸울 때만 존재하는 내 존재도. 모두 잘 가라.
나는 그들 중 하나에게 도약한다. 칼을 그의 목에 댄다. 놈이 놀라 방아쇠를 당긴다. 피하지 않는다.
하츠네...그건 좀 아쉽긴 하다. 그녀와 헤어진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겐 다시 만날 세상이 없다는 것.
이것이 전투기계로서 최고의 죽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전투 중에, 적군이 아닌 자에게 죽는, 아마 그것은 내게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안녕, 사요나라.
분노에 찬 표정, 원망 가득한 눈빛, 그들의 증오가 나를 휘감는다.
“네가 풀어준 것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봐!”
내가 죽게 만든 사람들
“네놈이야. 네놈이 우리 딸을 죽게 만들었어!”
내가 죽인 사람들.
“알라!”
내 적이었던 사람들.“
“살려...주세요...”
내 적일 수도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다. 아니, 아니다. 저들은 이미 죽었다. 저건 허상일 뿐이다. 저것들은 내 혼란이 부른 허깨비들이다.
진짜 죽은 걸까? 혹시 저들은 혼령이 아닐까. 내 칼에 맻힌 한 때문에 내게 벗어나지 ㅁ못하는 원령은 아닐까.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괜찮아. 넌 옳은 일을 한거야.”
나를 믿어줬던 사람.
“도망쳐, 어서!”
나를 구해줬던 사람.
“아들...미안해...”
나를 사랑했던 사람.
“아저씨...”
내가, 사랑했던 사람...
기계는 침대에 누였다. 소녀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소녀가 물었다.
“수술, 잘 된거죠?”
정비공은 고개를 끄덕인다.
“어, 다만 뇌는 총알이 박혀서 전자두뇌로 바꿨어. 법적으로 그는 이제 완전한 기계야.”
“기억은요?”
“어느 정도는 넣었는데...아무래도 기계는 한계가 있단 말이지. 흐릿한 기억들은 옮겨내지 못했어.”
정비공이 기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딱한 오른 눈이 깜빡였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는 죽었어. 이건 그를 복제한 모조품일 뿐이고 그것이 한계야.
“하지만 사람은 변하잖아요? 이것도 그냥 변화로 받아들일 수는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정비공은 그녀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것은 변화의 끝이야. 시체를 사람이라 하진 않아.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한방울, 두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아저씨...”
그녀는 기계의 손을 꼭 쥐었다.
“미안해요, 아저씨.”
기계의 눈동자가 소녀를 향했다. 기계는 조금 씩 입을 움직였다.
“기억...한다...”
기계음에 가까운 쉰 소리가 나왔다.
“내...이름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