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말이 끝난 순간, 기자회견 현장에 모여있던 기자들은 다들 숨이 멎은 듯 창백하게 안색을 굳혔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밝힌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앞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의 뇌리속에는 직업정신에서 생겨난 한 단어만이 더 크게 떠올라 다른 모든 생각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건 특종이었다. 그것도, 평생 하나 건질까 말까 한. 다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침묵은 어느새 깨지고 서로 다투며 부딪치는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의 소란법석만이 장내를 차지하였다. 너도나도 조금이라도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려고 아우성이었다.
그 중 유난히 덩치가 좋고, 힘 꽤나 쓰게 생긴 기자 한 명이 손쉽게 인파를 뚫고 남자의 몇 보 앞까지 다가섰다. 자신은 이제 특종을 건진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남자를 찍기 위해 눈 앞까지 카메라를 가져가는 순간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그가 들고 있던 카메라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카메라는 마치 누군가가 정성들여 하루 종일 분해라도 한 듯 가장 작은 부품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분해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는 카메라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치 산산조각이 난 기계 부스러기들을 놀란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덩치 큰 기자에게, 단상 위에 있던 남자가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위험했군요. 더 가까이 오시면 곤란합니다. 전자 두뇌 이식 받으셨죠? 그것도 분해될 수가 있거든요."
"그게 무슨..."
멍청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기자에게, 남자는 슬쩍 미소지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카메라의 잔해를 가리켰다. 순간 잔디밭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카메라의 부품들이 들썩거리더니, 이윽고 조금씩 절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카메라의 원 주인인 기자는 이 본 적도 없는 현상에 기겁했다. 놀라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사이에, 부품들은 한데 모여 이윽고 조금씩 형태를 이루더니, 급기야는 부서지기 전의 원래 카메라로 돌아와버렸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실에라도 조종되는 것처럼 허공을 유유히 날아와 아직도 하얗게 뜬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손에 다시 들어왔다. 엉겁결에 카메라를 쥐기는 했지만, 덩치 큰 기자는 자신의 카메라가 스스로 조립되어서 자신의 손으로 날아 온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덜덜거리며 카메라를 쥐고 있는 그의 뒤로, 간신히 인파를 뚫은 또 다른 기자들이 그 광경을 보고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굳은 채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그들의 눈 앞에 벌어진 장면으로 인해, 남자를 향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껴 어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눈 앞의 남자는 정체가 무어란 말인가. 남자는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입 앞에 가져가, 헛기침을 하였다. 모여서 아웅다웅 다투던 군중들도 그 소리에 다들 남자를 쳐다보며 멈춰섰다.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제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머신들이 퍼져 있습니다. 대략 3~4미터 반경 정도죠. 금속이나, 기계와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분해됩니다. 기본적으로는 제 의지에 따라 조절 가능합니다만, 그래도 위험하니 너무 가까이 오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방금 전의 그 광경을 못 본 기자들에게 시범이라도 보여줄 요량인지,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가볍게 허공으로 던졌다. 허공에 던져진 마이크는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반으로, 다시 그 반의 반 크기로 줄어들더니 종래에는 간신히 마이크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만한 부속 몇 개를 남기고 산산히 흩어졌다. 방금 전 눈앞에서 카메라가 분해되었다 조립되는 과정을 본 이들을 제외한 다른 기자들이, 그 광경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실험실에서나 제한적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나노머신이 그들의 눈 앞에서는 이미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기기묘묘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다들 할 말을 잊은채 기다리는 동안, 남자는 다시 말했다.
"제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전자두뇌나, 개조를 받으신 분들은 가까이 안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은 다들 몇 걸음씩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사실상, 전자두뇌의 압도적인 효용성으로 인해 순수한 인간의 몸을 지닌 이들은 천에 한명, 아니 만에 한명 꼴로도 있을까 말까 한 게 요즘 세태였다. 당연히 여기 있는 기자들도 모두들 전자두뇌 개조시술을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싶어지자, 남자는 다시 한 번 기자 한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질문을 받겠다는 의미였다. 지목된 기자는 머릿속에서 조심스럽게 질문 몇 개를 추려서, 말을 꺼냈다.
"그게.. 지금 정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편하게 질문하세요. 뭐든지 괜찮습니다."
웃음까지 지으며 대답하는 남자의 표정은 실로 여유있는 승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꺼질락말락한 직업정신을 간신히 되살려 질문 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 안드로이드라고 하셨는데, 목에 바코드가 없군요. 제작사는..."
"그런 건 없습니다. 저는 개인이 만들어냈거든요."
"실례가 안 된다면,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말씀드려도 모를 겁니다. 역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서요."
"민간이 생산한 사제품이로군요. 생산 연도는요?"
"그건 잠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가지고 계신 물건이나 그.. 나노머신. 이런 건 지금 인류의 기술력이나, 인가된 몇몇 과학 분야 안드로이드들이 제한 구역에서 연구하는 것보다도 더 최신 기술을 갖춘 것 같은데, 출처가 어떻게 됩니까."
"제가 만들었습니다."
남자의 답변에 술렁거림이 이어졌다. 개인이 만들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선 그 물건들이, 그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라니. 술렁거림이 잦아들 무렵 기자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남자 개인에 대한 질문이 아닌, 이번 일 전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기자들이 기다렸던 질문이기도 했다.
"이번 인류해방전선의 봉기도 다 스스로 계획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돌아가신 경찰이나 인류해방전선의 인간 분들, 그리고 몇몇 파괴된 안드로이드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불가피한 희생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인류해방전선에서는 철저히 안드로이드나 개조인간을 배척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저는 안드로이드이기는 하나, 몸 속에는 아무런 기계 부품도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과 동일하게 유기체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자두뇌도 없죠."
남자의 발언에 다시 기자들이 놀랄 무렵, 그는 말을 덧붙였다.
"여러분의 두뇌나 장기와 방식은 동일하지만 효율은 수백 배, 수천 배..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두뇌 덕에, 인류해방전선의 말단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지금 그들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마치 저 멀리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과도 같았다. 이해 불가능한 능력, 이해 불가능한 배경.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련의 사건들을 벌였다는 것 뿐이었다. 기자가 좀 더 과감한 질문을 던졌다.
"이런 식으로 질문을 하다간 끝이 없을 것 같군요. 이번 사건을 일으킨 계기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기자의 당돌한 요구에, 남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눈을 떴다. 그리고는 사전에 대본이라도 읽어본것처럼 차분한 말투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인류와 안드로이드, 둘 다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인류해방전선이 오늘 벌인 일들은, 스스로의 아집에 매달려 시대를 거스르는 이들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죠. 기계와 안드로이드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면서, 그들이 그 증오를 표출한 곳은 결국 같은 인류였습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부분적인 교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라도 이 방송을 본다면 서로 교전을 중지하길 바랍니다. 실로 무의미한 일이니까요."
"사상자 집계가 아직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오늘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습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저 역시 결단을 내리기 괴로웠지만, 작은 반목에서 시작된 불화가 어떤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후회 없는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요. 또한 이는 안드로이드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오늘 인류해방전선의 봉기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안드로이드 사냥도 있었다던데, 그것 또한 결국 이 일로 인해 촉발된 것이 아닙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제가 기자분들에게 묻고 싶군요. 한 번 봐 주시죠."
남자가 말을 끝내자, 아까 바닥에 던져놓았던 입체 홀로그램 기기에서 다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구한 것인지, 영상 속에는 인류해방전선의 인물들이 안드로이드들을 끔찍한 고문과 구타 속에 파괴하는 수많은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여자 안드로이드가 기둥에 묶인 채 살려달라고 두 손을 빌다가, 자동차에 달린 크레인으로 목이 잘려 떨어져나가는 장면. 하지가 뜯어진 채 간신히 기어가는 남자 안드로이드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 뒤, 그 비명과 발버둥을 쳐다보며 낄낄거리는 사람들. 기자들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 광경을 넋놓고 쳐다보았다. 몇몇은 구역질을 간신히 삼켜가며 카메라로 그 장면을 연달아 찍었다. 그러나 억지로 영상을 쳐다보던 기자들도, 장애 아동들의 재활을 위한 시설에서 일하는 어린이형 안드로이드가 군화발에 짓이겨 죽어가는 장면에서는 다들 눈을 돌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같은 인류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구역질나는 존재였다. 조용해진 장내에서, 남자가 말을 이었다.
"안드로이드가 죽어가는 장면에서 다들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이제 그들이 인간과 같은 감수성과 능력을 지닌 이상, 그들의 윤리와 권리 또한 보호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나마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인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말에, 저는 긍정하는 바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량을 보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인류와 안드로이드는 서로 대립하거나 복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공존하며 서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만일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반목한다면,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거나, 그 반대로 더욱 발전한 안드로이드가 인류를 사냥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안드로이드를 향한 인간들의 증오를 이용해, 저 혼자서도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또 안 나오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분 있습니까."
남자는 말을 마친 후 단상 위에 가만히 서서 기자들의 반응을 기다리는 듯 했다. 차분한 말투로 시작해, 섬뜩한 경고로 끝난 남자의 말에 누구 하나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인류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게 되리라는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