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춥다. 등골 사이로 오싹한 냉기가 흘렀다. 몸을 일으켜 세우자 허리가 욱신거렸다. 가볍게 몸을 움직여보았다. 허리와 골반으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역시 삼일은 무리였나?”
멍하니 소파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당신이 누워있던 소파. 벌써 3일째 이곳에서 잠들었다. 소파에서 일어나자 거짓말처럼 놈이 내게 달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했는데 소파에서 내려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으르르르릉. 왈!왈!
골든 리트리버는 온순하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빨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사냥개 같았다.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놈은 경계를 푸는 일이 없었다. 하다 못해 볼일을 보는 와중에도 내게 이빨을 들어냈다. 같이 지낸 게 3일이나 됐는데 아직도 놈은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대했다.
“야. 이제는 나랑 살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그럴 거냐?”
하지만 마냥 놈을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놈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진으로는 많이 봤다. 시도 때도 없이 당신이 보내는 사진들에는 항상 놈이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놈의 사진을 보았다. 놈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사진이다. 사진 속 놈은 작은 강아지였다. 눈도 못 뜨고 젖병을 빠는 모습이 가엽게만 보였다. 문득 그때 당신이 내게 해줬던 얘기가 떠오른다.
“이번에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거든. 시간되면 와서 봐라. 어찌나 놈이 귀여운지.”
“죄송해요. 제가 요즘 바빠서요.”
그때 여기와 놈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놈은 지금쯤 나를 맞이해줬을까? 내 곁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을까? 아니 적어도 이빨을 내밀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알 수 없다. 그때 나는 이곳에 없었으니까.
핸드폰을 내려놓고 놈을 쳐다보았다. 더 이상은 작은 강아지가 아니었다. 어느새 이렇게 커졌는지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자 놈이 나를 따라오며 짖어댔다.
“야야, 조용히 좀 해라.”
부엌에 가서 봉투 하나를 집었다. 살짝 접혀 있는 집게를 풀고는 그릇에 놈의 밥을 부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우유를 붓고는 놈을 보았다. 놈은 여전히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언제까지 저럴까? 알 수 없었다. 놈이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쩌면 놈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신 곁에 없었던 나를, 언제나 떨어져 있던 나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에휴. 밥이나 먹어라. 너도 그래야 살지.”
밥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자 놈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는지 게걸스럽게 먹었다. 우유를 입에 묻히고는 정신 없이 먹으면서도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를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빵이다. 각종 빵이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부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뿐이었다. 이미 수 차례 보았지만 여전히 낯선 모습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당신은 빵을 먹지 않았다. 입에 빵을 달고 사는 나와는 다르게 밥을 좋아했었다. 천천히 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빵들은 하나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다.
냉장고를 닫고 냄비 하나를 집었다. 제대로 된 반찬이 없었기에 라면 하나를 집었다. 다행히도 찬장에는 라면이 한 가득 있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를 켜보았다. 딸깍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살살 올라왔다. 라면 봉지를 찢고 라면을 반으로 부셨다. 뽀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보니 당신이 해준 라면을 먹는 것이 언제였더라? 예전에는 곧장 같이 먹곤 했다. 물을 받고 라면을 끓이는 뒷모습을 보면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당신과 함께 라면 한끼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라면을 끓이고 냄비를 소파 앞의 책상에 놔두었다. 젓가락을 하나 챙기고 자리에 앉는 순간 ‘띠링’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켜보았다. 각종 전화와 문자 때문에 핸드폰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 중에 당신에게 온 것은 없었다.
알림을 무시하고 당신의 전화번호를 눌러 전화했다. 뚜르르. 신호음은 가나 반응은 없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신호음에 집중했다. 혹시나 당신이 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기다린다면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럼 그렇지. 고개를 젓고는 다 불은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먹고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짐도 정리해야 했고 직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좀처럼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마음조차 없었다. 언제나 당신이 누워있던 소파에 몸을 맡겼다.
소파에 누워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은 언제나 이 소파 위에 누워있었다. 집으로 찾아올 때면 소파에서 잠든 채 나를 맞이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작은 소파는 누워있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것이 덕분에 허리랑 골반에 통증만 느껴졌다. 이곳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왈!왈!
밥을 다 먹는 놈이 현관 앞쪽에서 짖어댔다. 자연스레 눈길이 그쪽으로 갔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창문 밖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보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기다리는 그 모습이, 그리고 잠이 드는 그 모습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날 밤. 늦은 새벽에 눈이 떴다. 차가운 냉기도, 허리의 통증 때문도 아니었다. 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끼잉, 끼잉.’거리며 짖고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놈이 당신이 자던 침대에 있었다. 코에는 웬 양말에 박고는 신음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다.
놈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보았다. 슬며시 안아주며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놈이 조용해졌다. 놈이 코를 박던 양말을 보았다. 당신이 신던 양말이었다.
조심스레 양말을 들어보았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흔히들 말하는 발꼬랑내가 진동했다. 순식간에 미간 사이가 좁혀지고 혀를 내둘렀다. 당신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당신의 냄새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매번 지독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끼잉, 끼잉……”
놈이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양말을 놈의 코로 가져갔다. 그러자 놈이 조용해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래. 너도 냄새가 지독하다고 생각하지? 나도 그래.”
눈가가 뜨거워졌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움에 놈을 끌어안았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우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단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