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ister님의 아이디어와 여러분의 의견이 결합해 드디어 이 단편이 탄생했습니다!
본격 미쿠 원수 갚아주는 단편!
<미쿠 어벤지>
“달링, 화장 잘 된 것 같나요?”
“음, 이쪽이 살짝 번졌는데... 이제 됐어.”
시도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이자요이 미쿠의 화장을 고쳐 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스바루 씨는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야...”
시도가 말하는 스바루 씨는 다름아닌 이자요이 미쿠의 매니저였는데, 오늘 있을 큰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쉬지 않고 뛰다가 결국 과로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다행히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매니저는 지난번에 대리 매니저를 해 주었던 시도를 기억해 내어 전화로 내일의 콘서트에서 하루 동안만 미쿠의 매니저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거니와 미쿠가 눈을 크게 뜨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에 넘어가 버린 시도는 결국 지금 미쿠의 공연을 보조하기 위해 바삐 뛰고 있었던 것이다.
“달링, 이 의상 잘 어울리나요?”
“음, 잘 어울리는데...”
순간, 시도는 말을 멈추었다.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린 의상 자체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으나, 미쿠의 가슴 부분의 단추 두 개가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저기, 가슴단추가 열렸어. 무대에 갈 때는 잠그고 가야 할 거야.”
미쿠가 매혹적인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오늘은 달링이 매니저니까, 달링이 잠가 줘요.”
“스스로 잠그면 안 되는 건가?”
미쿠가 일어서서 풍만한 가슴을 시도의 얼굴에 닿을 정도로 내밀며 애교를 부렸다.
“달링~ 잠가 줘요~”
만일 이 상황에서 이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도는 아마 그 사람을 평생 존경할 것이리라.
“알았어, 잠가 줄게.”
시도는 손이 미쿠의 가슴에 스치지 않게 온 정신을 집중해 단추를 채웠지만, 미쿠가 몸을 움직이면서 손가락 끝이 닿은 모양이었다.
“아잉, 달링도 차암, 벼언태~”
“이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그리고 단추 다시 풀지 마!”
“달링이 또 잠가 주면 되는데... 치잇.”
시도는 자기가 방금 잠근 단추를 다시 풀려는 미쿠를 말리고 나서 복도로 나왔다.
“후아, 이 양복 꽤나 덥네. 주스나 한 잔 마실까.”
시도는 주머니의 동전으로 로비의 자판기에서 주스를 하나 뽑았다. 그러나 막 대기실로 돌아가려고 한 발을 뗀 순간, 귀의 인캠에서 귀청을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코토리, 무슨 일이야?”
“바보탱이 오빠, 미쿠의 정신상태가 지금 급격히 하락했어. 무슨 못된 장난이라도 친 거야?”
“아니, 지금 옆에 없는데...”
시도는 바로 발길을 돌려 대기실로 뛰어들어갔다. 왜인지 미쿠는 창백한 얼굴로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문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미쿠, 무슨 일이야?”
미쿠가 시도의 팔을 절벽에서 생명줄에라도 매달리는 양 꽉 부여잡았다.
“다...달링, 밖에 그 사람이...”
시도는 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가슴에 금빛 명찰을 단 오십대 후반의 남자가 시도가 입구에서 만났던 직원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직원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남자의 말을 받아적더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뛰어가 버렸다.
“저 사람? 저 사람이 누군데?”
여전히 창백한 안색의 미쿠는 시도의 팔을 꽉 움켜쥔 채로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전에... 전에, 요이마치 츠키노였을 때... 그... 친하게... 지내라던...”
“에엑?”
그렇다. 지금의 미쿠가 있기 전에 미쿠는 요이마치 츠키노라는 가수였지만, 한 프로듀서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거부한 탓에 악질 루머가 퍼져 결국에는 ■■까지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프로듀서가 지금 열 보도 되지 않는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그 프로듀서가 몸을 돌려 시도와 미쿠가 있는 대기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도는 재빨리 다시 문 안으로 들어왔다.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
“히익...!”
“괜찮아, 미쿠. 내가 있잖아. 우선 여기 앉고, 이거 마시면서 가만히 침착하게 있어.”
시도는 미쿠를 소파에 앉힌 뒤 손에 아까 뽑아 온 주스 캔을 쥐어 주었다.
“아, 여기 출연자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갑자기 아까 본 프로듀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기 말로는 몰랐다지만, 시도가 직접 문에 붙인 미쿠의 이름이 쓰인 종이를 못 봤을 리는 없을 것이다. 시도는 이 사람이 모르고 들어왔다는 핑계로 다른 가수들의 탈의 장면을 훔쳐본 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애써 무시하고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자요이 미쿠의 임시 매니저, 이츠카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이츠카 군. CVEX 프로덕션의 스고우 타쿠로입니다."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복부에 살짝 살집이 있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의 느낌과 비슷했지만 마치 방 안의 두 사람을 스캔하고 있는 것처럼 눈빛에서 무언가 음흉한 느낌이 들었다.
“아, 말로만 듣던 미쿠 양이군요! 역시 최고의 아이돌다운 모습이네요. 미쿠 양은 지금 일본 내에서 인기가 상당하지요?”
“아, 네에...”
미쿠는 사색이 되어 간신히 대답했지만 타쿠로 씨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쿠 양은 혹시 세계무대에 서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미쿠는 주스 캔을 움켜잡고 타쿠로 씨의 질문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여, 여건이 된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타쿠로 씨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아, 물론 미쿠 양의 지금 실적대로만 해도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저와 조금, 음, 친하게 지낼 의향만 있으시다면 저희 CVEX 프로덕션이 미쿠 양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해 드릴 수도 있는데 말이죠. CVEX에는 미쿠 양을 세계적 스타로 키워 내는 데 필요한 자금이나 인맥이 아주 풍부하거든요.”
미쿠가 어깨를 움츠렸다.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시도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친하게 지낸다는 거죠?”
“별거 아닙니다, 시도 씨. 그저 미쿠 양과 저녁식사 한 번 정도 하고, 서로에 대해 자~알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거죠. 괜찮죠, 미쿠 양?”
타쿠로 씨의 손이 어깨에 닿자 미쿠는 얼음이라도 갖다댄 것처럼 흠칫 놀라며 더욱 어깨를 움츠렸다.
“아하하, 하하, 타쿠로 씨, 지금 미쿠의 공연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긴장했나 봅니다. 제가 미쿠와 상의해 보고 나중에 연락드리지요.”
“아, 그런가요?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할 거라고 믿어요, 미쿠 양. 이 바닥에서 친한 사람 하나 없으면 아이돌 활동하기 정말 힘들어지거든요.”
최대한 공손하게 타쿠로 씨를 대기실 밖으로 안내한 시도는 영하의 추위 속에 있는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미쿠 옆에 앉아 양팔로 미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미쿠. 이제 갔어.”
“달링...”
평소의 활기찬 모습은 간데없이 두려움에 떠는 미쿠를 다독여 주며 시도는 그저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때 미쿠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이제, 제가 노래할 차례가 다 돼 가니까...”
“괜찮은 거야?”
“달링도 참, 저 그렇게 약한 아이는 아니라구요?”
말은 힘차게 했지만 미쿠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공연 잘 할 수 있겠어?”
“제가 천하의 이자요이 미쿠인데, 이정도 가지고는 기 죽지 않아요.”
미쿠는 대기실 문을 열고 나가 백스테이지 쪽으로 사라졌다. 인캠에서 코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은 대처를 아주 잘 했어.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일단 지금 미쿠의 상태가 꽤 회복되서 공연 정도는 무리없이 할 수 있겠어. 그런데 들어 보니 저 사람은 그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나 보네.”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대놓고 거절하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그렇다고 승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두 사람은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시도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외쳤다.
“코토리, 너 내가 하는 말을 프락시너스에서 항상 듣고 있다고 했지?”
“당연하지. 그런데 그게 뭐?”
“내가 가는 거야.”
코토리는 이해가 안 된 모양인지, 시도에게 되물었다.
“뭐?”
시도는 확신이 선 투로 대꾸했다.
“저 사람, 한 번이라도 걸리면 지금까지 해 온 게 쭉 드러날 거 아냐.”
“그렇...겠지?”
“내가 [하니엘]의 능력을 쓸 수 있으니까, 내가 미쿠의 모습을 하고 저 사람을 만나는 거야.”
“흐음, 괜찮네. 여장하고 데이트를 통해 속내를 공개하다니, 오랜만에 쓸데있는 생각을 했네, 오빠. 그럼 미쿠 핸드폰으로 그 사람한테 문자 한 통 날려. 장소랑 시간은 무간극락호텔 레스토랑 메인 홀, 시간은 오후 여섯 시 반.”
“알았어. 그런데 그 전에 제발 이걸 데이트라고 하지 말아 줄래? 웨스트코트랑 식사하러 가는 기분이라고.”
코토리는 시도의 마지막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시도,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지?”
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토리가 인캠에 대고 외쳤다.
“자, 그럼 우리들의 데이트[전쟁]을 시작하자!”
“그럼, 부탁할게, 나츠미—”
시도의 몸에서 순간 빛이 나더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긴 자감색 머리카락에 나이에 비해 큰 가슴, 몸에 걸친 노란빛의 무대의상까지 미쿠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 시도는 봉인한 나츠미의 영력을 이용해 [하니엘]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으으, 또 이런 짓을 하다니...”
부끄러워하며 웅얼거리는 시도의 목소리도 더 이상 남자의 목소리가 아닌 아름다운 선율의 아이돌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호오, 미쿠 모습도 잘 어울리네, 오빠. 역시 시오리짱의 경력이 있어서인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장담은 못하겠네. 어쨌든, 빨리 움직이라구?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해.”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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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와의 연결을 끊은 코토리는 제어판의 버튼을 누르고 한 소녀를 불렀다.
“오리가미? 지금 사령실로 와 줄 수 있을까?‘
곧 코토리 곁에 백발의 보브 컷을 한 무표정의 소녀가 나타났다.
“오리가미, 무간극락호텔 레스토랑 메인 홀과 주변에 있는 복도, 창고,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줬으면 해. 너라면 우리 중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요조숙녀가 어떻게 남을 훔쳐보는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있겠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시도의 새로운 여장 모습을 모든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어.”
“언제 시작하면 되는 거지?”
역시, 오리가미다운 대답이었다. 코토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지금 당장. 저녁 6시 전까지는 철수하도록. 라타토스크의 창고를 털어서 줄 테니까, 카메라 개수는 걱정하지 마.”
오리가미는 말없이 텔레포터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칸나즈키가 큰 박스 몇 개가 쌓인 카트를 밀고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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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정확히 6시 30분, 시도, 아니 미쿠는 레스토랑의 홀로 들어섰다.
“아, 어서 와요, 미쿠 양. 기다리고 있었어요.”
홀을 통째로 빌린 듯, 둘을 제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홀에 발을 들이자마자 레이저로 스캔하는 듯한 타쿠로 씨의 시선이 시도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옷을 머리부터 발까지 차려입었는데도 그 시선만 마주하면 완전히 벗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도는 타쿠로 씨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웨이트리스가 접시 두 개를 가져왔다. 시도가 도착하기 전 미리 주문해 놓은 듯했다.
“캐비어를 곁들인 고베 스테이크, 두 접시 나왔습니다.”
낮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치켜든 시도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낮익은 얼굴에 한번 더 놀라 무의식적으로 속삭였다.
“레...레이네?”
웨이트리스, 아니 웨이트리스 복장을 한 무라사메 레이네는 타쿠로 씨가 고개를 돌린 사이 검지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었다 떼고는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인캠에서 코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진행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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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석에 앉은 코토리의 뒤로 오리가미가 다시 나타났다.
“그래, 몇 개나 남았어?”
코토리의 질문에는 오리가미를 따라 들어온 칸나즈키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전체 32952개 중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코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많은 카메라를 들키지 않게 부착할 수 있는 사람은 오리가미 외에는 없을 것이었다.
“영상 띄워.”
프락시너스의 메인 화면이 수많은 각도에서 미쿠(시도)와 타쿠로 씨의 테이블에 집중된 영상들로 가득 찼다.
“역시 오리가미인가? 대단하네. 이 정도면 호텔을 삼차원 영상으로 만들어도 되겠어.”
코토리는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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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쿠의 모습을 한 시도와 타쿠로 씨는 식사에 한창이었다. 타쿠로 씨는 자기 음식을 먹으면서도 시선은 시도, 더 정확히는 시도의 목과 배꼽의 정중앙의 위치에 계속 집중되어 애초에 이 정도 볼륨의 가슴이 가뜩이나 불편했던 시도를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타쿠로 씨였다.
“미쿠 양, 이번 공연 정말 잘 봤어. 새로 발표한 곡이지?”
시도는 타쿠로 씨의 말투가 어느새 대기실에서의 경어에서 반말로 바뀐 것을 눈치챘다.
“네? 네... 새로 쓴 노래인데... 마음에 드셨나요, 타쿠로 씨?”
타쿠로 씨는 스테이크를 한 입 삼키고 재미있다는 투로 대화를 이어 갔다.
“타쿠로 씨가 뭔가, 미쿠 양? 어차피 친구처럼 지낼 사인데, 앞으로는 편하게 그냥 타쿠로라고 불러. 말도 좀 놓고.”
“알았어...요.”
“말 놓으래도.”
“아...알았어.”
두 사람은 별 대화 없이 식사를 끝마쳤다. 타쿠로 씨가 가슴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오늘은 내가 계산했어. 언제 한번 갚으라고, 미쿠 양.”
타쿠로 씨는 시도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둘렀다. 분명 친구와 같은 동작이었지만, 마치 도망가려는 것을 막듯이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타쿠로 씨는 미쿠를 이끌고 복도로 빠져나왔다.
“자, 그럼 바깥바람이나 잠깐 쐬러 갈까, 미쿠 양?”
코토리는 이로 막대사탕을 으깨며 중얼거렸다.
“거짓말이군. 그쪽 복도에는 창고랑 화장실밖에 없는데.”
인캠을 통해 전해들은 시도는 몸을 타쿠로 씨에게서 최대한 떼어놓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타쿠로 씨-아니, 타쿠로, 이 쪽은 테라스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타쿠로 씨가 미쿠를 옆에 있던 비품보관실 안으로 잡아끌었다.
“지금, 뭐하는—?”
미쿠(시도)를 안쪽 벽으로 몰아붙힌 타쿠로 씨가 시도의 앞가슴에 스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며 귓속에 대고 속삭였다.
“왜 이러시나, 미쿠 양? 다 알잖나? 매니저가 말 안 해 줬나 보구만? 여기서 이런 짓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 그...”
타쿠로 씨는 둘 사이의 간격을 점점 더 좁혀 왔다.
“미쿠 양, 요이마치 츠키노라고 알아?”
시도는 코앞까지 다가온 타쿠로 씨의 턱에 부딪히지 않게 최선을 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미쿠 양처럼 츠키노 양이랑도 친하게 지내자고 했는데, 츠키노 양이 거절을 해 버렸지 뭐야? 생각해 보면, 한 사람 인생 망치는 건 일도 아니더라. 그냥 기자들 몇 명 고용해서 적당히 구슬려 두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가리지도 않고 미친 개처럼 떠들면서 날뛰니까. 미쿠 양도 츠키노 양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니지?”
타쿠로 씨가 미쿠(시도)의 왼쪽 가슴을 움켜잡았다. 당황한 시도에게 코토리가 인캠에 대고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가 천국에서 구원의 천사가 부는 나팔소리처럼 들렸다.
“됐어, 시도. 증거는 충분해. 경찰을 보낼 테니, 이제 빠져나와!”
시도는 마음속으로 코토리에게 최대한의 감사를 보내며 있는 힘껏 타쿠로 씨의 가슴을 밀쳐 넘어뜨리고 비품실에서 뛰어나왔다. 복도 끝에서 경비원과 레이네 씨를 필두로 경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레이네가 달려오는 시도를 붙잡아 주었다.
“수고했어, 신. 적당한 데 가서 변신을 해제하도록 해.”
시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 감사합니다, 레이네 씨.”
경찰들이 타쿠로 씨를 제압해 수갑을 채우는 소리를 뒤로하고 시도는 복도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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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자의 모습으로 프락시너스에 돌아온 시도는 갑자기 뛰어들어 시야를 가린 누군가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다.
“다알링~ 아까 너무 용감했어요~!”
“보고 있었던 거야?”
“코토리 씨는 들어가 있으라고 했는데, 제가 보겠다고 했어요. 달링~ 너무 멋져요~!”
미쿠는 아름다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양팔을 벌려 시도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미쿠, 숨 좀, 숨 좀!”
사령석에서 몸을 돌린 코토리는 버둥거리는 시도에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얼굴이 미쿠의 압도적인 가슴에 파묻힌 시도에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에필로그--
노을의 빛마저 서서히 사라져 어두워져 갈 때쯤, 스고우 타쿠로는 터덜터덜 길을 걷고 있었다. 미쿠를 데리고 들어간 비품관리실에 전원이 켜진 카메라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몇 시간이고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요이마치 츠키노를 포함한 다른 사건들이 줄줄이 적발되는 바람에 한순간에 회사가 도산해 버렸다.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자요이 미쿠에게 꼭 복수의 한 방을 날려 주리라. 그럴려면 우선, 자본이 필요할 텐데... 머릿속으로 복수의 계획을 바삐 굴리던 타쿠로의 눈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고딕풍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예쁘장한 아이였다. 아직 자신의 소식이 저녁 뉴스를 타려면 몇 시간 정도 있어야 하므로, 이 아이를 잘 꼬드기면 급전 몇백만 원 정도는 쉽게 얻어낼 수 있을 터, 그리고 잘 키우면 두고두고 써먹을 만한 몸매도 갖추었으니 금상첨화였다. 그는 소녀에게 다가가 명함을 내밀었다.
“CVEX 프로덕션의 스고우 타쿠로란다. 혹시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 있니?”
머리카락으로 한쪽 눈을 가린 적안의 소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돌이요?”
“그, 그래. 지금의 너라면 충분히 세계급의 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어. 저쪽에 가서 오디션 한 번 보고, 계약금만 좀 입금하면...”
소녀가 얼굴을 붉혔다.
“어머, 지금 제 몸을 보고 싶다는 뜻인가요?”
“그래, 똑똑하네. 말이 아주 잘 통해. 그럼 저 쪽으로 가 볼까?”
소녀를 이끌고 가는 타쿠로의 눈에는 소녀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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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가 그 녀석하고 얘기하고 있을 때 선택지라도 한 번 꺼내 보고 싶었는데, AI가 선택지를 안 내놓더라고.”
시도는 코토리의 농담 섞인 푸념을 들으며 오랜만에 모두 한자리에 모인 정령들의 저녁식사를 막 차리고 있는 참이었다. 왜인지 창 밖 어디선가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시오리 팬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스토리상 미쿠가 더 잘 맞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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